[조용한 고백] 동행이 동역입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동행이 동역입니다

동행이 동역이었습니다.

다 함께 가지 못해도 동역이 됩니다.

기도로 함께하는 것도 동역이었습니다.

물질로 함께하는 것도 동역이었습니다.

마음으로 함께하는 것도 동역이었습니다.

같은 자리에 있지 않아도 같은 방향을 바라볼 때 그것이 동역이었습니다.

사도행전을 읽으면 동역의 아름다움이 보입니다.

바울 혼자 선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나바가 있었습니다.

실라가 있었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있었습니다.

각 지역 교회의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기도로 물질로 동역했습니다.

빌립보 교회가 그랬습니다.

바울이 감옥에 있을 때도 헌금을 보냈습니다.

바울은 그 헌금이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희생이라고 했습니다.

다 함께 가지 못해도 물질로 동역한 것이 그토록 귀한 것이었습니다.

선교는 가는 자만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보내는 자의 일이기도 했습니다.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그 발이 가능하도록 보내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기도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물질을 드리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 모든 사람이 함께 참여하는 것이었습니다.

에스더와 모르드개가 그랬습니다.

유대 민족의 위기 앞에서 함께 기도하고 함께 금식했습니다.

그 동역이 민족을 구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여러 여인들이 그랬습니다.

제자들이 도망쳤을 때도 그들은 자리를 지켰습니다.

십자가 곁에 있었습니다.

그 동행이 동역이었습니다.

거창한 역할이 아니었습니다.

그 자리에 있는 것이 동역이었습니다.

동행이 동역입니다

동역의 반대가 무엇인지 생각합니다.

혼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다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혼자 일하지 않으셨습니다.

모세에게 아론과 미리암을 주셨습니다.

다윗에게 요나단을 주셨습니다.

바울에게 바나바와 실라를 주셨습니다.

동역이 하나님의 방식이었습니다.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기도의 동역이 하늘을 움직이는 것이었습니다.

주님도 나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친구라 하였노니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먼저 동역자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 초청에 응답하는 것이 동역이었습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습니다.

그 일을 주님 혼자 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자들과 동역하셨습니다.

지금도 우리와 동역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그 사도행전의 주인공이 되어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동행이 동역입니다.

오늘도 그 동역 안에 거하기를 기도합니다.

💭 오늘의 질문

오늘 나는 누구와 동역하고 있습니까. 혼자 감당하려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성경 말씀 더 깊이 읽기 → 대한성서공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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