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ellice55

  • [조용한 고백] 네가 낫고자 하느냐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네가 낫고자 하느냐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네가 낫고자 하느냐라는 이 고백을 주님은 우리가 원할 때 일하시며 우리의 원함을 통해 친밀한 관계를 원하신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묵상을 지나 붙들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원하지 않을 때는 어떤 일도 혼자 하지 않습니다.

    치료도 동행하심도 교제도 사용하심도 변화도 구원도 이김도 우리의 원함 없이 혼자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위급한 일을 만나고 고통 속에서 어려움을 당해도 알아서 구원해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계획이 아무리 크고 아름다워도 우리가 원하지 않는 한 주님은 아무것도 하실 수 없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능력이 제한받기 때문이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를 인격적으로 존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원함을 통해 주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며 자신이 누구신가를 알게 하심으로 우리와 친밀한 관계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일하시기보다는 혼자 일하시는 것이 훨씬 더 편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편하게 우리와 함께 그리고 우리가 원함을 통해서 일하심은 주님은 우리를 원하시고 함께 존재하고 싶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베데스다 연못가에 있는 38년 된 병자를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 줄을 아시고 고쳐 주려 가셨음에도 알아서 고쳐 주시지 않으시고 네가 낫고자 하느냐 물으셨습니다.

    병도 너무 오래고 연못에 넣어 줄 사람도 없고 물이 동할 때 간신히 일어나 가려하면 다른 사람이 먼저 들어갑니다.

    그저 바라만 보고 낙망하고 있었습니다.

    절망 중에 있는 그를 주님은 찾아가 그가 원할 때 고쳐 주셨습니다.

    38년 된 병자의 이야기가 마음에 걸립니다.

    38년 동안 그 자리에 누워 있었습니다.

    38년 동안 희망이 있었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습니다.

    낙망이 쌓이고 쌓였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찾아오셔서 물으셨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그 물음이 얼마나 놀라운지 모릅니다.

    38년의 낙망 속에서 이미 포기했을 수도 있었습니다.

    낫고 싶은 마음 자체를 잃어버렸을 수도 있었습니다.

    주님이 그 원함을 다시 깨우기 위해 물으신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랫동안 같은 상처를 붙들고 있을 때 자유하고 싶은 원함 자체를 잃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오랫동안 같은 죄를 반복할 때 이기고 싶은 원함 자체를 포기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주님이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물으십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네가 낫고자 하느냐

    주님은 우리의 원함을 소중히 여기십니다.

    인격적으로 존중하시기 때문입니다.

    원함을 통해 일하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원함이 우리와 주님 사이의 친밀한 관계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38년 된 병자에게 찾아가셨듯이 오늘도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물으십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그 물음에 응답하는 것이 치유의 시작이었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오랫동안 우리를 괴롭힌 마음의 상처와 죄의 쓴 뿌리 반복되는 실패 사람들과의 갈등을 바라보시며 물으십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그 물음에 오늘 응답하십시오.

    우리의 원함이 주님의 일하심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그 물음에 예라고 응답합니다.

    🌿 오늘의 묵상 한 줄

    38년 된 병자에게 찾아가 물으셨듯이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네가 낫고자 하느냐 물으십니다.

    성경 말씀 더 깊이 읽기 → 대한성서공회

  • [조용한 고백] 그 작은 자가 천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루리라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그 작은 자가 천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루리라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하나님께서 그 작은 자가 천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그 작은 자 그 약한 자는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요.

    자신이 너무도 작고 약하기 때문에 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그 앞에 나오는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작고 약함이 은혜였습니다.

    우리의 자랑이었습니다.

    우리의 강함이었습니다.

    믿음은 자신의 작음과 약함과 무능함을 알고 능하신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없도다라고 탄식하셨습니다.

    가장 큰 악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바로 하나님을 찾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교만이었습니다.

    우리가 실패하고 무능하게 사는 것은 우리의 약함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힘과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쓰신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모두 자신이 작고 약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모세는 나는 입이 둔한 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기드온은 나는 므낫세 지파 중에 가장 약하고 내 집에서도 가장 작은 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내가 티끌이나 재와 같사오나라고 했습니다.

    그 작음과 약함의 고백이 하나님의 부르심의 시작이었습니다.

    자신의 힘을 의지할 때 오히려 실패했습니다.

    베드로가 그랬습니다.

    다 버릴지라도 나는 버리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힘을 의지했습니다.

    그 밤에 주님을 세 번 부인했습니다.

    그런데 그 실패가 베드로를 진정으로 약한 자로 만들었습니다.

    그 약한 자 베드로를 통해 오순절에 삼천 명이 회개했습니다.

    자신의 강함이 약함이 되고 자신의 약함이 강함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가 약할 때 온전하게 나타났습니다.

    그 작은 자가 천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루리라

    바울이 고백했습니다.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라고.

    자신의 무능함을 알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구했습니다.

    그것이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할 수 있었던 비결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찾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악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것이 가장 큰 선이었습니다.

    작고 약하기에 하나님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 찾음이 하나님을 기쁘게 했습니다.

    그 찾음 위에 하나님이 천을 이루고 강국을 이루셨습니다.

    새벽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그 찾음이었습니다.

    그 작은 자가 천을 이루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루는 하나님의 약속이 오늘도 살아있습니다.

    🙏 오늘의 기도

    주님 저는 작고 약하고 무능합니다. 그렇기에 능하신 하나님을 찾습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합니다. 작은 자를 통해 천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아멘.

    성경 말씀 더 깊이 읽기 → 대한성서공회

  • [조용한 고백]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 합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 합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 합니다라는 이 고백을 신앙의 가장 큰 위기인 무사안일함을 베어내는 마음의 할례가 매 순간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묵상을 지나 붙들었습니다.

    우리 신앙의 가장 큰 위기요 적은 무사안일입니다.

    신앙이 좋은 사람도 고통의 때나 위험한 때가 아닌 무사안일한 때에 다 넘어지고 실패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무사안일함 속에서는 우리 육체의 본성이 가장 잘 자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그것을 잘 모른다는 것과 안다고 하더라도 거기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포기하기에는 너무도 익숙하도록 무사안일을 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을 포기하려면 버려야 하는 아픔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하나님의 언약 안에 거하기 위하여 자기의 생살을 잘라내는 아픔을 반드시 통과해야 합니다.

    무사안일함이 어떻게 우리에게 들어오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처음에는 작은 안일함에서 시작합니다.

    오늘 하루 쉬어도 되겠지 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 작은 안일함이 쌓이면서 무사안일이 됩니다.

    그리고 그 무사안일이 익숙해지면서 육체의 본성이 자라납니다.

    그렇게 신앙이 무너지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이 그랬습니다.

    전쟁에 나가야 할 때 궁에 머물렀습니다.

    그 무사안일함 속에서 밧세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신앙이 좋았던 다윗이 무사안일한 때에 넘어진 것이었습니다.

    솔로몬도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받았던 솔로몬이 부귀영화를 누리는 무사안일함 속에서 우상을 섬기게 됐습니다.

    무사안일함이 신앙의 가장 큰 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매일 새벽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마음의 할례를 받는 것이었습니다.

    편안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것이 무사안일함을 베어내는 것이었습니다.

    할례의 진정한 의미는 마음에 하는 것으로 마음의 가죽을 베는 것이었습니다.

    즉 무사안일함을 베어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야 언약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돌보심과 인도하심과 함께 하심의 은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마음의 할례를 받은 사람은 달랐습니다.

    무사안일함을 베어낸 자리에 열심이 채워졌습니다.

    안주함을 베어낸 자리에 도전이 채워졌습니다.

    익숙함을 베어낸 자리에 새로운 은혜가 채워졌습니다.

    오늘 내 마음을 점검합니다.

    어떤 익숙함에 안주하고 있습니까.

    어떤 무사안일함이 내 마음에 자라고 있습니까.

    그것을 발견했다면 지금 베어내야 합니다.

    오래 익숙해질수록 베어내는 아픔이 더 커지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 합니다

    구약의 할례는 일생에 한번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음의 가죽을 베는 할례는 매 순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로 할례의 수종자가 되셨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것이 우리 마음의 가죽을 벨 수 있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마음의 할례를 받는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오늘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나아가는 것이었습니다.

    무사안일함을 고백하는 것이었습니다.

    편안함을 내려놓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구별된 존재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기억이 마음의 할례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 합니다.

    그 아픔을 통과할 때 하나님의 돌보심과 인도하심의 은혜가 임합니다.

    마음의 할례가 오늘도 필요합니다.

    오늘도 그 할례를 구합니다.

    🙏 오늘의 기도

    주님 오늘도 내 마음의 무사안일함을 베어내는 할례를 허락하소서. 나는 구별된 존재라는 사실을 기억하게 하시고 언약 백성으로서의 은혜를 누리게 하소서. 아멘.

    성경 말씀 더 깊이 읽기 → 대한성서공회

  • [조용한 고백] 누림이 은혜요 복입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누림이 은혜요 복입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누림이 은혜요 복입니다라는 이 고백을 누림은 환경적인 조건이 아니라 버림과 비움과 감사에서 오는 은혜임을 깨달아가는 묵상을 지나 붙들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평강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누리고 진리를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누림은 환경적인 조건이 아닙니다.

    버림과 비움에서 오는 은혜입니다.

    누림은 주어진 것에 대한 감사에서 옵니다.

    누림은 관계의 친밀함이나 소중함을 인식하는 데서 옵니다.

    누림은 무엇보다도 주님으로부터 오며 말씀을 통해 오는 진정한 행복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물질이 많고 세상적인 명예나 권세가 있다고 해도 누림이 없다면 그의 인생은 실패자입니다.

    그에게 누림이 없었다는 것은 정직함이나 진실함이 없는 거짓된 삶을 살았다는 증거입니다.

    그에게 누림이 없었다는 것은 자신의 욕심만을 이루기 위하여 살았다는 증거입니다.

    그에게 누림이 없었다는 것은 과정보다 결과만을 위하여 살았다는 증거입니다.

    그에게 누림이 없었다는 것은 관계보다 일만을 위하여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누림이 없었다는 것은 베풀기보다는 자기 이익만을 위하여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누림이 없었다는 것은 세상 것을 얻으려다 하나님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누림이 없는 일은 그 일이 무엇이든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는 일을 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근심이나 두려움과 함께 복을 주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누림이 있는 삶은 달랐습니다.

    주님은 풍랑 속에서도 주무시는 누림이 있었습니다.

    세상이 보기에는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평안히 주무셨습니다.

    그것이 누림이었습니다.

    다윗은 광야의 외로움 속에서도 자신의 생명을 노리는 위험함 속에서도 주님으로부터 기쁨을 누렸습니다.

    바울과 실라 그리고 베드로는 옥에서도 평안을 누렸습니다.

    상황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오는 누림이었습니다.

    누림은 훈련이 필요합니다.

    결과에 집착하면 과정이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의 이목에 신경 쓰면 하나님의 기쁨이 보이지 않습니다.

    매일 새벽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그 훈련이었습니다.

    오늘 주어진 것에 감사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함께하는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었습니다.

    그 훈련이 쌓이면서 누림이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세상이 말하는 성공과 하나님이 말하는 성공이 달랐습니다.

    세상은 결과로 성공을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누림으로 성공을 말하십니다.

    풍랑 속에서 평안히 주무실 수 있었던 주님의 누림이 성공이었습니다.

    광야에서도 기뻐할 수 있었던 다윗의 누림이 성공이었습니다.

    옥에서도 찬양할 수 있었던 바울과 실라의 누림이 성공이었습니다.

    누림이 은혜요 복이라는 이 진리가 오늘도 마음에 새겨집니다.

    누림이 은혜요 복입니다

    누림이 사역이고 열매입니다.

    아름다운 사역은 누림이 있는 사역이었습니다.

    과정을 누리는 사역이었습니다.

    관계를 누리는 사역이었습니다.

    주님을 누리는 사역이었습니다.

    버리고 비울 때 누림이 옵니다.

    욕심을 버릴 때 평안이 채워집니다.

    사람의 이목을 내려놓을 때 하나님의 기쁨이 채워집니다.

    결과를 내려놓을 때 과정의 아름다움이 보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풍랑 속에서도 옥 속에서도 광야 속에서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그 누림이 오늘도 유효합니다.

    오늘도 주님으로부터 오는 누림을 경험합니다.

    💭 오늘의 질문

    오늘 나는 누리고 있습니까. 결과를 향해 달리면서 과정의 아름다움을 놓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성경 말씀 더 깊이 읽기 → 대한성서공회

  • [조용한 고백] 하나님은 나의 산업이시며 상급이십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하나님은 나의 산업이시며 상급이십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하나님은 나의 산업이시며 상급이십니다라는 이 고백을 하나님 자신이 우리에게 주시는 최고의 상급이라는 것을 깨달아가는 묵상을 지나 붙들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영광스럽고 광대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서는 한없는 긍휼하심과 친밀하고도 섬세한 사랑으로 관계하십니다.

    지극히 높으시지만 자신을 낮추시고 우리를 얼마나 깊이 세밀하고 친근하게 사랑하시는지 모릅니다.

    그 예가 바로 하나님이 초라한 아브라함에게 친히 찾아오셔서 나의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하시며 속마음을 털어놓으셨습니다.

    그가 어려운 환경에서 두려워 할 때는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광대하신 하나님이 보잘 것 없는 아브라함의 방패가 되어 주시고 그에게 지극히 큰 상급이 되어 주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지극히 큰 상급은 하나님 자신이었습니다.

    그와 함께 존재하고 역사하고 사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에게 그리하실 의무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신 것은 그를 사랑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랑은 스스로 채무자가 되어 주는 것이었습니다.

    존재가 되어주고 힘이 되어주고 도움이 되어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그렇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그리하실 의무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랑하기 때문에 스스로 채무자가 되어 주셨습니다.

    방패가 되어주셨습니다.

    상급이 되어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것은 하나님을 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라고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그의 존재뿐 아니라 그의 기업과 소득의 열매가 되셨습니다.

    이런 다윗을 하나님은 너무도 기뻐하셨습니다.

    그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의 모든 것이 되셨습니다.

    하나님 자신을 원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하나님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랬습니다.

    고향을 떠나라는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하나님 자신을 원하는 자에게 하나님 자신이 상급이 되어주신 것이었습니다.

    오늘 나는 무엇을 원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원합니까.

    아니면 하나님 자신을 원합니까.

    하나님 자신을 원할 때 하나님이 모든 것이 되어주십니다.

    방패가 되어주십니다.

    산업이 되어주십니다.

    상급이 되어주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산업이시며 상급이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자신을 원하는 자를 너무도 사랑하시며 그에게 모든 것이 되어주시고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최고의 상급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이에 비교할만한 다른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큰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 자신을 원하는 마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가장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산업이시며 상급이십니다라는 이 고백이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고백이었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우리에게 지극히 큰 상급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그 고백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사역이며 상급이며 열매이십니다.

    그 고백이 오늘도 가장 풍성한 삶을 만드는 고백이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 자신을 원하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오늘의 묵상 한 줄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원할 때 하나님이 모든 것이 되어주십니다.

    성경 말씀 더 깊이 읽기 → 대한성서공회

  • [조용한 고백] 오직 믿음으로만 됩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오직 믿음으로만 됩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오직 믿음으로만 됩니다라는 이 고백을 구원도 성화도 이김도 치료도 동행도 다 오직 믿음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묵상을 지나 붙들었습니다.

    진리는 지극히 단순합니다.

    하나님은 지혜로운 자에게는 철저히 감추시고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한 자에게 나타내십니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십자가의 복음이고 또 하나가 바로 믿음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가 바로 구원과 모든 신앙생활의 핵심이요 본질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두 가지 진리를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고 믿음 생활의 모든 것이 가능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이 단순한 진리만으로는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생각하여 무언가를 더하여 열심히 생활합니다.

    그런데 실패하거나 곤고함에 처하게 됩니다.

    결단코 다른 방법은 없으며 하나님이 원하시지도 않습니다.

    그 예가 바로 다윗이 언약궤를 새 수레로 모셔오다 실패한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방식대로가 아닌 자신이 더 좋다고 생각한 방식으로 했다가 실패했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방식 즉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만이 답이었습니다.

    구원도 십자가의 복음을 믿음으로 주어집니다.

    죄에서 용서받음도 죄를 고백하면 용서해 주신다는 진리를 믿음으로 됩니다.

    성화에 이르는 구원이나 온전한 존재가 되는 것도 온전케 하시는 주님을 믿을 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과 인도하심과 보호하심도 믿음으로 그렇게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악으로부터 이김이나 연약함으로부터 강하게 됨도 믿음으로 됩니다.

    다윗은 믿음으로 강한 자가 되었고 언제나 전쟁에서 이겼습니다.

    바울은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자주 넘어질지라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치료도 기도의 응답도 믿음으로 받습니다.

    에녹은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우리의 불가능한 모든 것은 다 오직 믿음으로만 됩니다.

    믿음은 단순합니다.

    그런데 그 단순함이 어렵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더 많이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더 무언가를 더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오직 믿음으로만이라고 하십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을 신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믿음이 구원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그 믿음이 이김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그 믿음이 동행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믿음이 단순하다는 것이 쉽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상황이 반대로 보일 때 믿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어려운 자리에서 믿음을 선택할 때 하나님이 일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랬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믿었습니다.

    그 믿음을 하나님이 의로 여기셨습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됩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삶이 가장 풍성합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았습니다.

    믿음으로 성화됩니다.

    믿음으로 이깁니다.

    믿음으로 동행합니다.

    이 모든 것이 오직 믿음으로만 됩니다.

    그 단순한 진리를 붙들고 살아갈 때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믿음은 또한 선택입니다.

    두려움 대신 믿음을 선택합니다.

    걱정 대신 믿음을 선택합니다.

    포기 대신 믿음을 선택합니다.

    그 믿음이 오늘도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하는 통로입니다.

    불가능한 모든 것이 오직 믿음으로 가능해집니다.

    그 믿음이 오늘도 유효합니다.

    오늘도 오직 믿음으로 걸어갑니다.

    🙏 오늘의 기도

    주님 오늘도 오직 믿음으로만 살아가게 하소서. 두려움 대신 믿음을 선택하게 하소서. 불가능 앞에서도 오직 믿음으로 담대히 나아가게 하소서. 아멘.

    성경 말씀 더 깊이 읽기 → 대한성서공회

  • [조용한 고백] 우리 마음의 성전에는 두 기둥이 있습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우리 마음의 성전에는 두 기둥이 있습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우리 마음의 성전에는 두 기둥이 있습니다라는 이 고백을 주님 안에 능력이 있고 주님이 세우실 것이라는 말씀과 믿음이 우리 마음의 두 기둥임을 깨달아가는 묵상을 지나 붙들었습니다.

    솔로몬의 성전에는 전면에 큰 두 기둥이 서 있었습니다.

    성전에 들어서면 눈앞에 이 두 기둥이 웅장하게 서 있고 그 기둥을 반드시 통과해야 성전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 두 기둥의 이름은 보아스와 야긴이었습니다.

    보아스란 이름의 의미는 그가 세우실 것이다이며 야긴이란 이름의 의미는 그분 안에 능력이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성전에 나오는 자들로 예배하기 전에 하나님이 누구이신가를 기둥을 통해서 생각나게 하려 하셨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더 원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이신가를 알 때 우리에게 믿음이 생기고 그 믿음 안에서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을 받기 때문이었습니다.

    광야의 성막에도 두 기둥이 있었습니다.

    그 기둥이 바로 구름 기둥과 불기둥이었습니다.

    이 기둥은 하나님의 임재의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 친히 사시며 그들을 능력으로 보호하고 앞길을 인도하셨습니다.

    이 성막과 성전의 실체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주님만이 우리에게 능력이 되시고 우리를 세우실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에도 두 기둥이 있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기둥은 말씀과 기도였습니다.

    보이는 두 기둥은 베드로와 야고보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마음의 성전에는 두 기둥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 두 기둥이 바로 주님 안에 능력이 있고 주님이 세우실 것이다라는 말씀과 믿음이었습니다.

    주님은 우리 마음에 이러한 성전의 기둥이 있는 자를 교회의 기둥으로 쓰십니다.

    두 기둥이 굳건한 사람의 삶은 달랐습니다.

    주님 안에 능력이 있다는 것이 믿어지는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세우실 것이다라는 것이 믿어지는 사람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그랬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고백했습니다.

    그 고백이 그의 마음의 두 기둥이었습니다.

    다윗이 그랬습니다.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고 선포했습니다.

    그 선포가 그의 마음의 두 기둥이었습니다.

    우리 마음의 성전에는 두 기둥이 있습니다

    성전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두 기둥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매일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이 두 기둥을 통과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주님 안에 능력이 있다는 것을 먼저 고백합니다.

    주님이 세우실 것이라는 것을 먼저 고백합니다.

    그 고백으로 하루를 시작할 때 달라집니다.

    두려움 대신 담대함으로 시작합니다.

    포기 대신 기대로 시작합니다.

    오늘 두려운 일이 있습니까.

    주님 안에 능력이 있습니다.

    오늘 포기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까.

    주님이 세우실 것입니다.

    우리 마음의 성전에 이 두 기둥이 굳건히 서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 기둥이 우리를 세우고 우리를 통해 세상을 세웁니다.

    오늘도 그 두 기둥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 오늘의 질문

    오늘 내 마음의 두 기둥은 굳건히 서 있습니까. 주님 안에 능력이 있고 주님이 세우실 것이라는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있습니까.


    성경 말씀 더 깊이 읽기 → 대한성서공회

  • [조용한 고백] 우리는 이미 빛입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우리는 이미 빛입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우리는 이미 빛입니다라는 이 고백을 빛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빛임을 알고 확신하는 것이 빛의 삶의 시작임을 깨달아가는 묵상을 지나 붙들었습니다.

    주님은 어두움을 비추는 빛입니다.

    주님 안에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십니다.

    주님의 빛 안에는 생명이 있고 이 생명이 말씀이요 주님이십니다.

    그리고 그 빛 안에는 사랑과 의로움과 진실함과 모든 착함의 열매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두움이었습니다.

    어두움 가운데 살았습니다.

    어두움은 곧 거짓이요 미움이요 무질서와 혼돈과 공허이며 절망과 고통이요 죄요 죽음이었습니다.

    이 어두움이 우리의 눈을 멀게 하고 사망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 빛으로 오셔서 각 사람에게 빛을 비추어 주셨습니다.

    진리를 알게 하고 주님을 알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빛의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를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두움이었던 우리가 빛이 될 수 있음은 빛이신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미 빛이 되었음에도 우리의 삶은 아직도 어두움의 모습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빛이면서도 어두움의 삶을 사는 것은 어쩌면 빛이면서도 빛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이제는 우리가 빛임을 알아야 합니다.

    빛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 빛임을 알고 확신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우리는 이미 빛입니다.

    그 사실이 믿어질 때 빛의 삶이 시작됩니다.

    빛은 어두움과 함께 있을 수 없습니다.

    빛이 들어오면 어두움이 물러갑니다.

    우리가 있는 곳에서 거짓이 물러가고 진실이 드러나야 합니다.

    우리가 있는 곳에서 미움이 물러가고 사랑이 드러나야 합니다.

    그것이 빛의 삶이었습니다.

    때로 빛이면서도 어두움처럼 살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빛입니다.

    빛이신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십니다.

    그 주님을 의지할 때 빛의 삶이 다시 시작됩니다.

    빛은 나눠줄수록 줄어들지 않습니다.

    우리의 빛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웃에게 빛을 나눠줄수록 우리의 빛이 더 밝아집니다.

    빛과 어두움의 차이는 존재의 차이가 아닙니다.

    아는 것의 차이였습니다.

    우리는 이미 빛이라는 진리를 알 때 빛으로 살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빛이라는 사실을 믿을 때 달라집니다.

    아침에 눈을 뜰 때 나는 빛이다라고 고백해 봅니다.

    오늘 만나는 사람들에게 빛을 나눠줄 수 있다는 기대로 하루를 시작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미 빛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어두움의 세력이 물러가고 빛의 삶을 살게 됩니다.

    빛 가운데 행하므로 형제를 사랑하며 살게 됩니다.

    더 진실하고 더 의롭고 더 착한 존재와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언제나 주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을 비춥니다.

    주의 말씀이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 되셔서 어두움에 빠지지 않고 빛 가운데 행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이미 빛이라는 그 확신으로 오늘도 세상의 빛으로 만방의 빛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 오늘의 묵상 한 줄

    빛이 되려 애쓰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이미 빛이라는 것을 알 때 빛의 삶이 시작됩니다.

    성경 말씀 더 깊이 읽기 → 대한성서공회

  • [조용한 고백] 동행이 동역입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동행이 동역입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동행이 동역입니다라는 이 고백을 함께 존재하는 것 하나만으로도 두려움이 사라지고 담대함을 얻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묵상을 지나 붙들었습니다.

    동행이 동역입니다.

    동행 없는 동역은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와 동행하므로 동역하시기 위해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동행이 동역인 이유는 함께 존재하시고 동행하신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두려움이 사라지고 담대함을 얻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하심같이 우리와 동행하시므로 우리와 동역하십니다.

    자신은 감추시고 우리와 동행하시므로 우리와 함께 우리를 통해서 일하시기를 너무도 좋아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지만 주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음같이 주님도 우리 없이는 아무것도 하실 수 없습니다.

    동행이 동역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님이 우리와 동행함으로 친밀한 교제를 통해서 힘을 얻게 하시고 위험할 때는 지켜주시고 지쳐있을 때는 손을 잡아주시려 우리와 동행하십니다.

    그 동행이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을 보내실 때에 혼자가 아닌 둘씩 짝을 지어서 보내셨습니다.

    형제와 동행이 주님과 동행이었습니다.

    형제가 같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든든하고 힘을 얻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전도 여정이 그토록 험하고 힘이 들었지만 끝까지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도 바울과 동행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바울 곁에 기쁨으로 그와 동행하는 사람들을 붙여 주셔서 힘이 되게 하셨습니다.

    비록 바울과 동행했던 바나바 실라 누가의 행적이 거의 기록되지 않았을지라도 그들은 무대 뒤에 선 위대한 바울의 동역자들이었습니다.

    그들 없는 바울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동행이 동역이었기 때문입니다.

    동행은 말이 아닙니다.

    존재입니다.

    위로의 말을 백 번 하는 것보다 함께 있어주는 것이 더 큰 위로였습니다.

    주님도 말로 동역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동행하심으로 동역하셨습니다.

    임마누엘 하나님 우리와 함께 계신 하나님이라는 이름이 그것을 말해주었습니다.

    동행에는 희생이 따릅니다.

    바나바 실라 누가가 바울과 동행하기 위해 자신의 계획을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곳이 아닌 바울이 가는 곳을 함께 가야 했습니다.

    동행은 자신을 내려놓는 것이었습니다.

    그 내려놓음이 동역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동행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기적입니다.

    혼자서는 갈 수 없는 길을 함께이기에 갈 수 있게 됩니다.

    주님도 혼자 십자가 지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구레네 시몬이 잠깐이지만 십자가를 함께 졌습니다.

    요한이 십자가 아래 서 있었습니다.

    그 동행들이 주님의 길을 함께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오늘 누군가의 십자가 길을 함께 걸어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동행이고 그것이 동역이었습니다.

    동행이 동역입니다

    주님이 우리와 동행하신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로인지 모릅니다.

    세상 끝 날까지 항상 함께 있으리라는 그 약속이 오늘도 유효합니다.

    힘들고 지칠 때 주님이 동행하고 계신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담대함의 시작이었습니다.

    오늘 누가 내 곁에서 동행하고 있습니까.

    그 사람의 존재가 얼마나 귀한지 알아야 합니다.

    내가 누구의 동행이 되고 있습니까.

    기록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바나바 실라 누가처럼 함께 걸어주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그 동행이 동역이 됩니다.

    주님이 우리와 동행하시듯 우리도 누군가의 동행이 되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오늘의 기도

    주님 오늘도 우리와 동행하여 주소서. 힘들 때 손을 잡아주시고 지칠 때 함께 걸어주소서. 그리고 우리도 누군가의 동행이 되게 하소서. 아멘.

    성경 말씀 더 깊이 읽기 → 대한성서공회

  • [조용한 고백] 주님의 인격과 삶을 닮은 교회가 아름다운 교회입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주님의 인격과 삶을 닮은 교회가 아름다운 교회입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주님의 인격과 삶을 닮은 교회가 아름다운 교회입니다라는 이 고백을 성숙한 공동체는 자기보다 이웃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나타난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묵상을 지나 붙들었습니다.

    교회가 얼마나 아름답고 성숙한 교회인가를 보려면 얼마나 주님의 인격과 삶을 닮았는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얼마나 아름답고 성숙한 신앙을 가졌는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삶을 얼마나 닮았는가가 기준이었습니다.

    성숙하고 아름다운 공동체는 수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자기보다 이웃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나타납니다.

    주님의 삶은 자신은 어떻게 되든지 하나님만 영광되고 범죄한 우리를 구원할 수만 있다면 어떠한 고통도 달게 받으셨습니다.

    자신을 기꺼이 내어 놓으셨습니다.

    이 삶이 예수님의 삶이었습니다.

    이 마음이 바울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토록 모진 고통을 받으면서도 주님을 위하고 영혼을 살리는 일이라면 어떤 것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바울 곁에 있는 사람들도 그 험한 여정을 함께 하였습니다.

    직접 같이 하지 못한 때에는 간절한 기도로 동역하거나 어려움을 당하면 같은 마음으로 안타까워하며 자신이 그 짐을 대신 지기를 원했습니다.

    자신의 쓸 것을 아끼면서 물질로 동역하였습니다.

    이러한 삶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자기를 다 버리지 아니하거나 예수님의 마음을 갖지 아니하고는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서 그런 모습을 보게 될 때가 있습니다.

    자신이 비록 함께 가지 못하지만 마치 자신이 가는 것처럼 어려운 여정을 염려하며 기도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자신이 비록 함께 가지 못하지만 지체들을 섬기기 위하여 자신이 가는 만큼의 비용을 감당하는 형제들을 보게 됩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주님의 인격과 삶을 닮은 공동체의 모습이었습니다.

    지체들의 이토록 아름다운 마음과 성숙함을 보고 기뻐하실 주님을 생각하면 감동받습니다.

    아름다운 공동체는 기도로 연결됩니다.

    함께 갈 수 없어도 기도로 함께 갑니다.

    그 기도가 공동체를 하나로 묶습니다.

    아름다운 공동체는 물질로 연결됩니다.

    자신의 쓸 것을 아끼면서 동역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나눔이 공동체를 아름답게 만들었습니다.

    아름다운 공동체는 짐을 함께 집니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는 말씀대로였습니다.

    이웃의 짐을 함께 지는 것이 그리스도의 법이었습니다.

    주님의 인격과 삶을 닮은 교회가 아름다운 교회입니다

    아름다운 교회는 건물이 아름다운 교회가 아닙니다.

    사람이 많은 교회가 아닙니다.

    주님의 인격과 삶을 닮은 사람들이 모인 교회가 아름다운 교회입니다.

    주님을 닮아가는 것은 혼자 할 수 없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함께 닮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서로를 통해 주님의 모습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이웃의 섬김을 통해 주님의 섬김을 보게 됩니다.

    이웃의 기도를 통해 주님의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주님의 인격과 삶을 닮은 공동체 안에서 서로가 서로를 더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나 한 사람이 주님의 인격과 삶을 닮아가는 것이 아름다운 교회를 만드는 시작이었습니다.

    오늘도 이웃을 먼저 생각하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오늘의 질문

    오늘 나는 얼마나 주님의 인격과 삶을 닮아가고 있습니까. 이웃의 짐을 함께 지려는 마음이 있습니까.

    성경 말씀 더 깊이 읽기 → 대한성서공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