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믿음을 원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믿음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믿음이었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자신의 현실이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는 절망과 사망 중에 있더라도 반드시 하나님의 구원을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하여도 응답은 없고 고난만 계속 되더라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믿음이 왜 특별한지를 생각합니다.
조건이 맞을 때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상황이 좋을 때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응답이 왔을 때 믿는 것은 경험이고 확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믿음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 믿는 것이었습니다.
상황이 반대로 말할 때 믿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진짜 믿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랬습니다.
백세가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의심치 않았습니다.
이삭을 드리라는 말씀을 받았을 때도 이튿날 아침 일찍 일어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종했습니다.
그 믿음이 모든 믿는 자의 조상이 되게 했습니다.
욥이 그랬습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몸마저 병이 들어 죽을 지경에 이르렀어도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었습니다.
결국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믿음을 지켰을 때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났습니다.
다윗이 그랬습니다.
블레셋으로 도망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육백 명이 돌을 들어 죽이려 하는 비참함 속에서도 그럼에도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도망자에서 왕이 됐습니다.
요셉이 그랬습니다.
노예로 팔리고 깊은 옥에 갇히고 기약 없는 옥중 생활을 하면서도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구원자가 됐습니다.
야곱이 그랬습니다.
환도뼈가 위골되어도 그럼에도 믿고 간구하므로 이스라엘이 됐습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이 그랬습니다.
침묵으로 거절로 모욕으로 대하셨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었습니다.
주님이 그 믿음에 감동하셨습니다.
주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믿음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왜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믿음을 원하시는 것입니까.
그 믿음이 진짜 관계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조건이 맞을 때만 믿는 관계는 진짜 관계가 아니었습니다.
조건과 상관없이 신뢰하는 것이 진짜 사랑이고 진짜 믿음이었습니다.
주님도 우리를 조건 없이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사랑에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믿음으로 응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어떤 상황에 있습니까.
절망스럽습니까.
응답이 없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으십시오.
그 믿음이 하나님을 감동시킵니다.
🙏 오늘의 기도
주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겠습니다. 절망 중에도 응답 없는 시간에도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선하심을 믿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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