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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아버지께 기도하라 (마태복음 6장 6절) – IT CEO의 새벽 잠언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아버지께 기도하라 (마태복음 6장 6절) – IT CEO의 새벽 잠언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마태복음 6장 6절)

    골방은 공간이 아니다 차 안에서 서재에서 수시로 드리는 기도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는 이 말씀을 정해진 공간이 아니라 차 안에서 TV 앞에서 서재에서 수시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기도의 삶을 지나 붙들었습니다.

    타메이온이라는 헬라어가 좋습니다.

    골방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기도하라고 하셨을 때 그 골방이 반드시 특정한 공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오랜 기도 생활을 통해 알게 됐습니다.

    골방은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과 단둘이 있는 상태였습니다.

    세상으로부터 문을 닫고 하나님 앞에 집중하는 그 상태가 골방이었습니다.

    30년 새벽기도를 드려왔습니다.

    매일 새벽 예배당에 나가는 것이 기도의 기본이었습니다.

    그런데 삶을 살다 보면 예배당이 아닌 곳에서도 기도가 필요한 순간들이 찾아왔습니다.

    중요한 미팅을 앞두고 차 안에서 기도했습니다.

    출근길 신호등 앞에서 기도했습니다.

    저녁에 서재에 앉아 말씀을 읽다가 기도했습니다.

    TV 앞에서 뉴스를 보다가 나라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국세가 밀리던 밤에 거실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어음 부도 소식을 듣고 차 안에서 기도했습니다.

    뇌출혈로 쓰러지고 병상에서 기도했습니다.

    그 모든 자리가 골방이었습니다.

    예배당이 아니어도 문을 닫을 수 있었습니다.

    마음의 문을 닫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의 소음으로부터 마음의 문을 닫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골방이었습니다.

    차 안에서 기도할 때 그 차가 골방이 됐습니다.

    서재에서 기도할 때 그 서재가 골방이 됐습니다.

    거실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할 때 그 거실이 골방이 됐습니다.

    골방 기도가 습관이 되면서 달라진 것이 있었습니다.

    하루 중에 하나님을 생각하는 순간이 많아졌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 기도했습니다.

    출근하는 차 안에서 기도했습니다.

    미팅 전에 기도했습니다.

    저녁에 서재에서 말씀을 읽다가 기도했습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들이 특별한 장소에서 드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일상의 모든 자리에서 드린 기도들이었습니다.

    그 기도들이 쌓이면서 하루 종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됐습니다.

    바쁜 사업가로 26년을 달려오면서 정해진 골방에서만 기도했다면 기도할 시간이 없었을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곳이 골방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기도의 삶이 달라졌습니다.

    은밀한 중에 계신 아버지는 예배당에만 계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차 안에도 서재에도 거실에도 TV 앞에도 함께 계셨습니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는 약속이 그 모든 골방에서 경험됐습니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아버지께 기도하라

    마태복음 6장 6절은 예수님이 기도에 대해 가르치시는 산상수훈의 말씀입니다.

    외식하는 사람들이 사람에게 보이려고 기도하는 것과 대비됩니다.

    타메이온 즉 골방은 헬라어에서 창고나 비밀 장소를 뜻합니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곳이라는 것이 핵심이 아니라 하나님과 단둘이 있는 은밀한 상태가 핵심이었습니다.

    차 안에서도 서재에서도 거실에서도 그 은밀한 상태가 가능했습니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는 약속이 그 모든 자리에서 유효했습니다.

    골방은 공간이 아니라 하나님과 단둘이 있는 그 순간이다

    은퇴를 앞두고 있는 지금 돌아보면 26년 사업의 모든 순간에 기도가 있었습니다.

    차 안에서 서재에서 거실에서 수시로 드린 기도들이 쌓여서 26년이 됐습니다.

    타메이온 골방이라는 단어가 좋은 이유가 그것이었습니다.

    특정한 공간이 아니라 하나님과 단둘이 있는 그 순간이 골방이었습니다.

    골방은 공간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단둘이 있는 그 순간입니다.

    그 순간을 수시로 만들어가는 것이 기도의 삶이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아버지께 나아가는 오늘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오늘의 기도

    주님, 예배당이 아닌 차 안에서도 서재에서도 수시로 골방을 만들어 주님 앞에 나아가게 하소서. 은밀한 중에 보시는 아버지께서 갚아주심을 믿습니다.

  • 의인을 위하여 빛을 뿌리고 마음이 정직한 자를 위하여 기쁨을 뿌리시는도다 (시편 97편 11절) – IT CEO의 새벽 잠언

    의인을 위하여 빛을 뿌리고 마음이 정직한 자를 위하여 기쁨을 뿌리시는도다 (시편 97편 11절) – IT CEO의 새벽 잠언

    “의인을 위하여 빛을 뿌리고 마음이 정직한 자를 위하여 기쁨을 뿌리시는도다” (시편 97편 11절)

    팬데믹이 가르쳐준 것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이 감사라는 것

    의인을 위하여 빛을 뿌리고 마음이 정직한 자를 위하여 기쁨을 뿌리시는도다라는 이 말씀을 코로나 팬데믹을 통해 숨을 쉬고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깨달았던 경험을 지나 붙들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됐습니다.

    세상이 멈췄습니다.

    평범한 일상이 사라졌습니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두려워졌습니다.

    예배당에 모여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팬데믹 이전에는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출근하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직원들을 만나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거래처와 미팅을 하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그런데 팬데믹이 오면서 그 모든 것들이 멈췄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도 갈 곳이 없었습니다.

    그 멈춤 속에서 비로소 알게 됐습니다.

    그 모든 것들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었다는 것을.

    숨을 쉬는 것도 당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심장이 뛰는 것도 당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셔야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뇌출혈로 쓰러졌을 때 그 진리를 배웠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잊고 살았습니다.

    팬데믹이 그 진리를 다시 가르쳐줬습니다.

    팬데믹 속에서 새벽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날들이 있었습니다.

    30년 동안 이어온 새벽기도가 멈추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때 비로소 새벽에 예배당 문을 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를 알게 됐습니다.

    제한이 풀리고 다시 새벽예배를 드리러 갔을 때 예배당 문을 열면서 눈물이 났습니다.

    이 자리에 다시 올 수 있다는 것이 감사했습니다.

    당연한 것이 아니라 감사한 것이었습니다.

    26년 사업을 하면서 때로는 힘들기만 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팬데믹 속에서 오히려 직원을 가장 많이 채용하고 큰 프로젝트를 수주하게 됐을 때 그 모든 것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를 알게 됐습니다.

    코로나가 모두를 힘들게 하던 그 시기에 회사가 성장한 것이 분명히 하나님이 하신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당연한 것이 아니라 감사한 것이었습니다.

    의인을 위하여 빛을 뿌리고 마음이 정직한 자를 위하여 기쁨을 뿌리시는도다

    시편 97편 11절은 하나님이 의인을 위하여 빛을 뿌리신다는 말씀입니다.

    빛을 뿌리신다는 표현이 인상 깊습니다.

    씨앗을 뿌리듯 빛을 뿌리신다는 것입니다.

    감사도 그런 것이었습니다.

    감사는 씨앗처럼 심으면 자라나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한 것이 아니라 감사한 것임을 알게 될 때 그 감사가 씨앗이 되어 기쁨으로 자라났습니다.

    마음이 정직한 자를 위하여 기쁨을 뿌리시는도다.

    정직한 마음으로 감사를 드릴 때 기쁨이 뿌려졌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도 말씀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팬데믹이라는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이 감사였습니다.

    오늘도 눈을 뜰 수 있다는 것이 감사였습니다.

    감사는 기쁨으로 가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길

    주님의 겸허와 겸손을 닮기를 원하고 날마다 자신의 부족함을 진실로 인정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그 인정이 감사로 이어졌습니다.

    팬데믹이 그 인정을 가르쳐줬습니다.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팬데믹이 보여줬습니다.

    그 연약함을 인정할 때 감사가 나왔습니다.

    은퇴를 앞두고 있는 지금 60평생을 돌아보면 감사하지 않은 순간이 없었습니다.

    힘들었던 순간에도 하나님이 함께하셨습니다.

    어려웠던 때에도 숨을 쉬고 있었습니다.

    그 모든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감사한 것이었습니다.

    의인을 위하여 빛을 뿌리고 마음이 정직한 자를 위하여 기쁨을 뿌리시는도다는 그 약속이 오늘도 이어집니다.

    늘 감사드리며 주님을 전심으로 사랑하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당연한 것이 아니라 감사한 것임을 잊지 않는 오늘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 오늘의 묵상 한 줄

    팬데믹이 가르쳐줬습니다.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감사한 것이라는 것을.

  • [조용한 고백] 고난이 가장 큰 은혜다: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고난이 가장 큰 은혜다: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고난이 가장 큰 은혜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쉽게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큰 은혜가 고난이다.”

    은혜라면 건강이나 형통, 좋은 가정과 안정된 삶을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그런데 어떻게 고난이 가장 큰 은혜일 수 있을까요.

    하지만 신앙의 시간이 쌓일수록 이 역설이야말로 가장 깊은 진리라는 사실을 조금씩 깨닫게 되었습니다.

    25년 동안 IT 기업을 경영하며 가장 깊이 하나님을 만난 순간은 성공의 때가 아니라 언제나 고난의 한복판이었습니다.

    사업이 잘될 때는 하나님께 감사했지만, 솔직히 하나님은 삶의 한 부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업이 흔들리고, 사람이 떠나고, 자금 압박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했던 시간에는 하나님 외에는 붙잡을 것이 없었습니다.

    새벽마다 무릎을 꿇었고, 말씀을 붙들었고, 하나님께 살려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고난이 나를 하나님께 가장 가까이 이끌었습니다.

    그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입니다.

    묵상 배경

    사도 바울은 로마서 5장 3~4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야고보서 1장 2~3절에서도 말씀합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우리를 무너뜨리려 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인내를 만들고, 연단을 이루며, 마침내 소망으로 이끄십니다.

    금이 불 속에서 정금이 되고, 다이아몬드가 엄청난 압력 속에서 만들어지듯 하나님의 사람도 고난을 통하여 빚어집니다.

    고난이 없었다면 무엇을 놓쳤을까

    구원의 은혜는 놀라운 은혜입니다.

    건강을 주신 은혜, 가족을 주신 은혜, 일용할 양식을 주신 은혜도 모두 감사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왜 고난을 허락하실까요.

    돌이켜 보면 고난이 없었다면 나는 기도하는 사람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말씀 앞에 오래 머무르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정말 필요한 분이라는 사실을 깊이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IT 업계에서도 가장 큰 성장은 언제나 가장 큰 위기 뒤에 찾아왔습니다.

    편안한 시절에는 실력이 크게 자라지 않았습니다.

    어려움을 통과하면서 기술도, 사람을 보는 시선도, 경영의 지혜도 함께 성장했습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고난은 사람을 성숙하게 만들고,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만들었습니다.

    고난은 하나님의 또 다른 은혜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습니다.

    고난은 결코 반가운 손님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더 좋은 길로 이끄시는 도구였습니다.

    고난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연단을 이루며,

    연단은 흔들리지 않는 소망을 만들어 갑니다.

    25년의 사업을 돌아보면 수없이 힘들었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뒤돌아보니 그 모든 과정 속에서 하나님은 한 번도 나를 놓지 않으셨습니다.

    오늘도 혹시 고난의 시간을 지나고 있다면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신 것이 아니라, 더 깊은 믿음과 더 큰 소망으로 이끌고 계실지 모릅니다.

    고난은 끝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길이 시작되는 자리일 수 있습니다.

    📖 성경별곡 묵상 유튜브 채널

    매일 새벽 말씀 묵상을 영상으로도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말씀이 삶이 되는 하루를 함께 만들어 가길 소망합니다.

    ▶ 유튜브 채널: https://youtube.com/channel/UCg2DqdMTJ1ADcbm8LBfnVZg

  • 나는 주의 힘을 노래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높이 부르오리니 (시편 59편 16절) – IT CEO의 새벽 잠언

    나는 주의 힘을 노래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높이 부르오리니 (시편 59편 16절) – IT CEO의 새벽 잠언

    “나는 주의 힘을 노래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높이 부르오리니 주는 나의 요새이시며 나의 환난 날에 피난처이심이니라” (시편 59편 16절)

    IMF 3개월 전에 공장을 처분했다 하나님이 미리 피난처를 준비하셨다

    나는 주의 힘을 노래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높이 부르오리니 주는 나의 요새이시며 나의 환난 날에 피난처이심이니라는 이 말씀을 IMF 외환위기 3개월 전에 공장을 처분하여 대재앙의 폭풍우를 피할 수 있었던 경험을 지나 붙들었습니다.

    대한민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대재앙이었습니다.

    1997년 IMF 외환위기가 온 국토를 강타했습니다.

    기업들이 무너졌습니다.

    공장들이 문을 닫았습니다.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는 사람들이 쏟아졌습니다.

    가까운 지인들의 공장이 문을 닫는 것을 봤습니다.

    함께 사업을 하던 분들이 무너지는 것을 봤습니다.

    그 무시무시한 폭풍우가 온 국토를 덮었습니다.

    그런데 그 폭풍우가 몰아치기 3개월 전이었습니다.

    공장을 처분했습니다.

    그때는 IMF가 올 줄 몰랐습니다.

    그저 하나님이 이끄시는 대로 결정을 내린 것이었습니다.

    공장을 처분해야 할 것 같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분명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음이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기도하면서 그 결정을 내렸습니다.

    주변에서 말렸습니다.

    공장이 잘 돌아가고 있는데 왜 처분하느냐고 했습니다.

    지금 팔면 손해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음을 따라 공장을 처분했습니다.

    공장을 처분하던 그 날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나오면서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잘한 것인지 못한 것인지 확신이 없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면서 내린 결정이었기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3개월 후 IMF가 왔습니다.

    공장을 처분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합니다.

    주변에 공장을 운영하던 분들이 IMF 앞에서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이 미리 피난처를 준비해 주셨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내가 영리해서 미리 처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끄신 것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중요한 결정 앞에서 먼저 기도하는 습관이 더 단단해졌습니다.

    하나님이 기도를 통해 이끄신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30대에 어음 부도의 밤을 거실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며 넘겼습니다.

    그리고 IMF 3개월 전에 공장을 처분하고 환난을 피했습니다.

    하나님이 각각의 때에 각각의 방식으로 피난처를 준비하셨습니다.

    주는 나의 요새이시며 나의 환난 날에 피난처이심이니라는 그 약속이 삶으로 증명된 날이었습니다.

    나는 주의 힘을 노래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높이 부르오리니

    시편 59편 16절은 다윗이 원수들에게 둘러싸인 위기 속에서 드린 기도입니다.

    그 위기 속에서 다윗이 고백합니다.

    나는 주의 힘을 노래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높이 부르오리니.

    환난이 없어서가 아니었습니다.

    환난 속에서 주의 힘을 노래하는 것이었습니다.

    주는 나의 요새이시며 나의 환난 날에 피난처이심이니라.

    시편 46편 1절도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는 말씀처럼 IMF라는 환난 중에 하나님이 미리 큰 도움을 준비하셨습니다.

    환난 날의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을 아침마다 노래하는 삶

    IMF 외환위기는 대한민국 모든 사람들에게 환난의 날이었습니다.

    그 환난의 날에 하나님이 미리 피난처를 준비하셨다는 것을 경험한 것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은혜였습니다.

    내가 특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기도하는 자를 인도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옳은 것 바른 것을 소망하며 기도할 때 하나님이 미리 길을 내신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주의 힘을 노래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높이 부르는 고백이 오늘도 이어집니다.

    그 피난처를 경험한 자의 고백입니다.

    🙏 오늘의 기도

    주님, 환난 날 3개월 전에 미리 피난처를 준비해 주신 것처럼 오늘도 기도하는 자를 앞서 인도해 주소서. 주는 나의 요새이시며 환난 날에 피난처이심을 믿습니다.

  • 잠잠하라 고요하라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마가복음 4장 39절) – IT CEO의 새벽 잠언

    잠잠하라 고요하라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마가복음 4장 39절) – IT CEO의 새벽 잠언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마가복음 4장 39절)

    어음 부도 통보를 받은 칠흑 같은 밤 거실에 무릎을 꿇었다

    잠잠하라 고요하라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는 이 말씀을 30대 초 공장을 운영하면서 감당할 수 없는 어음 부도 통보를 받고 거실에 무릎 꿇고 기도했던 칠흑 같은 밤의 경험을 지나 붙들었습니다.

    30대 초에 공장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사업을 막 키워가던 시기였습니다.

    이제 자리를 잡아가나 싶은 때에 그런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그날 감당할 수 없는 규모의 어음 부도 통보가 왔습니다.

    그 연락을 받은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어음이 부도가 난다는 것은 단순한 재정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공장이 문을 닫아야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직원들의 생계가 달린 문제였습니다.

    그동안 함께 일해온 직원들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그 사람들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자존심도 무너졌습니다.

    사업가로서의 자신감도 흔들렸습니다.

    내가 과연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날 밤이 시작됐습니다.

    칠흑 같은 밤이었습니다.

    내일 아침 공장 문을 열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조차 불확실한 상황이었습니다.

    방법을 찾으려 했습니다.

    누구에게 연락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넘길 수 있을까.

    그런데 방법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인간적인 방법이 다 막힌 것이었습니다.

    그 잔인한 밤이 계속됐습니다.

    시계 바늘이 움직이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그때 거실로 나왔습니다.

    무릎을 꿇었습니다.

    거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았을 때 그 차가운 느낌이 기억납니다.

    아내는 잠들어 있었습니다.

    아이들도 잠들어 있었습니다.

    나 혼자 그 무게를 들고 하나님 앞에 나아간 것이었습니다.

    말이 나오지 않아서 그냥 무릎을 꿇고 있기만 한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조금씩 말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방법이 없습니다.

    내일 아침에 직원들이 출근할 텐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 폭풍을 잠재워 주십시오.

    그 기도가 이어지면서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폭풍이 사라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 폭풍 속에서 고요함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내 안이 잠잠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주님이 이 폭풍도 잠재우실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새벽이 됐습니다.

    새벽예배를 드리러 갔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공장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길을 내셨습니다.

    완전히 고요해지는 문제의 해결을 보게 됐습니다.

    그 어음 부도의 밤이 가르쳐준 것이 있었습니다.

    방법이 없을 때 무릎을 꿇는 것이 답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 약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가장 강한 것이었습니다.

    그 경험이 이후 국세가 밀리던 때에도 뇌출혈로 쓰러지던 때에도 코로나 팬데믹으로 앞이 막히던 때에도 다시 무릎을 꿇게 해줬습니다.

    그 잔잔함이 30대 초 칠흑 같은 밤부터 시작해 오늘까지 이어온 하나님의 선물이었습니다.

    잠잠하라 고요하라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마가복음 4장 39절은 제자들이 광풍을 만나 두려워하고 있을 때 예수님이 바람을 꾸짖으시는 장면입니다.

    제자들은 배가 뒤집힐 것 같은 상황에서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그 외침에 예수님이 일어나셨습니다.

    잠잠하라 고요하라.

    바람이 그쳤습니다.

    적당히 나아지는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아주 잔잔하여졌습니다.

    폭풍 속에서도 예수님이 함께 배에 타고 계셨습니다.

    그 칠흑 같은 밤 거실에서도 예수님이 함께 계셨습니다.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폭풍까지도 잠재우시는 주님 품에 안기는 삶

    오늘도 칠흑 같은 밤을 보내고 있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내일 아침이 두려운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거실로 나오십시오.

    무릎을 꿇으십시오.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는 주님이 그 폭풍을 꾸짖으실 것입니다.

    아주 잔잔하여지는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주님은 폭풍을 잠재우시는 분이십니다.

    그 주님이 오늘도 함께 배에 타고 계십니다.

    🙏 오늘의 기도

    주님, 칠흑 같은 밤 거실에 무릎을 꿇었을 때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며 폭풍을 잠재워 주신 것처럼 오늘도 함께하소서.

  •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전도서 3장 11절) – IT CEO의 새벽 잠언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전도서 3장 11절) – IT CEO의 새벽 잠언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전도서 3장 11절)

    60평생을 돌아보니 숨쉬는 순간순간마다 하나님이 친히 이끌어 주셨다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신 하나님을 60평생을 돌아보며 숨쉬는 순간순간마다 친히 이끌어 주셨다는 것을 깨달은 경험을 지나 붙들었습니다.

    60평생이라는 시간을 숫자로만 보면 길어 보입니다.

    그런데 그 안에 있었던 순간들을 하나씩 떠올리면 그 시간이 얼마나 촘촘하게 채워져 있었는지 알게 됩니다.

    모태신앙으로 태어나 부모님의 기도 안에서 자랐습니다.

    20대에 교회학교 교사로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사업을 시작하면서 수없이 많은 위기와 기회가 교차했습니다.

    장로가 되어 교회를 섬기면서 기쁨도 있었고 상처도 있었습니다.

    뇌출혈로 쓰러지고 재활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세상이 멈추는 시간을 지났습니다.

    그 모든 순간들이 하나님의 때였습니다.

    그 어느 하나도 하나님의 계획 밖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던 것들이 지나고 보면 하나님의 때였습니다.

    국세가 밀리던 그 시절이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줬습니다.

    투자가 무산되던 그 날이 하나님만 소망임을 가르쳐줬습니다.

    교회에서 상처받던 그 시간이 사람이 아닌 하나님을 바라보는 법을 가르쳐줬습니다.

    뇌출혈로 쓰러지던 그 순간이 존재의 넉넉함이 물질의 넉넉함보다 귀하다는 것을 가르쳐줬습니다.

    그 모든 것이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었습니다.

    사업을 시작하던 20대가 있었습니다.

    작은 오피스텔 한 칸에서 시작하던 그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 작은 시작이 26년이 될 줄을.

    40대에 뇌출혈로 쓰러졌습니다.

    그때는 이제 다 끝났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그 멈춤이 하나님이 허락하신 때였습니다.

    그 시간 동안 하나님이 두 자녀를 친히 이끌어 주셨습니다.

    내가 챙기지 못했는데 큰아이는 음대 피아노과 수석으로 졸업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모두가 어렵다고 할 때 하나님이 오히려 큰 프로젝트를 허락하셨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때였습니다.

    60평생을 돌아보면 숨쉬는 순간순간마다 하나님이 함께하셨습니다.

    좋은 날도 힘든 날도 기쁜 날도 슬픈 날도 하나님이 친히 이끌어 주셨습니다.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다는 말씀이 60평생을 통해 증명됐습니다.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신 하나님의 시종을 측량할 수 없다

    전도서 3장 11절은 전도서 3장의 절정입니다.

    1절에서 시작합니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좋을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습니다.

    성경은 언제나 좋을 거야라고 하지 않습니다.

    현실을 직시하게 합니다.

    그런데 그 모든 때를 따라 하나님이 아름답게 하신다는 것이 11절의 선포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다는 말씀도 중요합니다.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시종을 다 알고 계셨습니다.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는 말씀처럼 이 땅의 것들이 다 지나가도 영원을 향한 마음이 남습니다.

    30년 새벽기도가 그 믿음을 훈련해온 시간이었습니다.

    매일 새벽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서 오늘도 하나님의 때 안에 있다는 것을 확인해온 것이었습니다.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합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들을 우리의 손으로 입술로 허물지 않게 하시고 오직 믿음으로 세워 나가는 것이 이 말씀의 결론이었습니다.

    60평생을 돌아보며 가장 감사한 것은 숨쉬는 순간순간마다 하나님이 친히 이끌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 이끌어 주심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믿음이 오늘을 살아가는 힘이 됩니다.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시는 하나님을 오늘도 믿고 의지하고 신뢰합니다.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신 하나님이 앞으로의 날들도 친히 이끌어 주실 것을 믿습니다.

    🌿 오늘의 묵상 한 줄

    60평생을 돌아보니 숨쉬는 순간순간마다 하나님이 친히 때를 따라 이끌어 주셨습니다.

  • 집으로 돌아가 하나님이 네게 어떻게 큰일 행하신 것을 일일이 고하라 (누가복음 8장 38-39절) – IT CEO의 새벽 잠언

    집으로 돌아가 하나님이 네게 어떻게 큰일 행하신 것을 일일이 고하라 (누가복음 8장 38-39절) – IT CEO의 새벽 잠언

    “집으로 돌아가 하나님이 네게 어떻게 큰일 행하신 것을 일일이 고하라 하시니 저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 하신 것을 온 성내에 전파하니라” (누가복음 8장 38-39절)

    건축비가 부족하고 교인들이 떠나가도 하나님이 큰일을 이루셨다

    집으로 돌아가 하나님이 네게 어떻게 큰일 행하신 것을 일일이 고하라는 이 말씀을 교회 건축위원장으로 섬기면서 건축비도 부족하고 교인들도 떠나가는 상황에서 결국 큰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경험했던 것을 지나 붙들었습니다.

    교회 건축위원장을 맡았습니다.

    교회를 짓는 일은 단순한 건물을 세우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공동체의 꿈이 담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건축이 진행되면서 예상치 못한 일들이 생겼습니다.

    건축비가 부족했습니다.

    헌금이 모였지만 필요한 금액에는 못 미쳤습니다.

    은행 대출 이자를 납입해야 할 날이 왔는데 재정이 따라주지 않았습니다.

    개인 카드로 돌려막기 시작했습니다.

    두 달 세 달이 이어졌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교인들이 떠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건축 과정의 어려움과 갈등 속에서 공동체가 흔들렸습니다.

    함께 꿈을 꿨던 분들이 하나둘 교회를 떠났습니다.

    건축위원장으로서 그 무게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이 건축이 완공이나 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밤마다 그 무게를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아갔습니다.

    하나님 이 건축을 시작하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면 이루시는 것도 하나님이십니다.

    그 기도를 드리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하나님이 하셔야 하는 것을 구분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일하셨습니다.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재정이 채워졌습니다.

    특별 헌금을 드리는 분들이 생겼습니다.

    외부에서 도움의 손길이 왔습니다.

    건축이 완공됐습니다.

    완공되던 날 그 건물을 바라보면서 눈물이 났습니다.

    재정이 부족해서 개인 카드로 돌려막던 그 밤들이 생각났습니다.

    교인들이 하나둘 떠나가던 그 시절이 생각났습니다.

    그 무거운 짐을 들고 새벽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던 그 기도들이 생각났습니다.

    그런데 그 건물이 완공됐습니다.

    내가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것이었습니다.

    건축 과정에서 떠났던 분들 중에 나중에 돌아오신 분들도 있었습니다.

    화합과 행복을 주신다는 말씀처럼 흩어졌던 것들이 다시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어려움으로부터의 회피를 허락하지 않으시고 그 자리에서 큰일을 행하신 하나님이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 하나님이 네게 어떻게 큰일 행하신 것을 일일이 고하라

    누가복음 8장 38-39절은 귀신 들렸다가 예수님을 만나 회복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그 사람은 예수님을 따라가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보내셨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셨습니다.

    회피가 아니라 돌아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려움을 피해 예수님 곁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어려움의 자리로 돌아가 하나님이 행하신 큰일을 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누가복음 8장에서 귀신 들렸던 그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있었습니다.

    그 변화가 큰일이었습니다.

    건축 과정의 압박이 나를 눌렀을 때 하나님이 그 압박에서 건져주신 것도 큰일이었습니다.

    재정의 압박이 건물이 완공되는 것으로 이어진 것도 큰일이었습니다.

    그 큰일을 고하는 것이 회복된 자의 사명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큰일을 일일이 고하는 삶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를 귀신이 어떻게 할 수 없듯이 재정의 압박도 공동체의 흔들림도 결국 하나님이 행하시는 큰일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믿음의 방패로 그들의 화살을 막아낼 때 하나님이 큰일을 행하십니다.

    하나님이 네게 어떻게 큰일 행하신 것을 일일이 고하라는 그 명령이 오늘 내게도 주어진 명령이었습니다.

    건축위원장으로 경험한 그 큰일이 오늘의 고백이 됩니다.

    오늘도 집으로 돌아가 하나님이 어떻게 큰일을 행하셨는지 일일이 고하는 삶을 살기를 소망합니다.

    🌿 오늘의 묵상 한 줄

    건축비가 부족하고 교인들이 떠나가던 그 자리에서 하나님이 친히 큰일을 행하셨습니다.

  •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이사야 40장 26절) – IT CEO의 새벽 잠언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이사야 40장 26절) – IT CEO의 새벽 잠언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그들의 모든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이사야 40장 26절)

    지쳤을 때 눈을 높이 들어 창조하신 하나님을 보라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창조하신 하나님을 보라는 이 말씀을 26년 사업을 하면서 지치고 힘들 때마다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았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경험을 지나 붙들었습니다.

    지칠 때가 있습니다.

    26년을 달려오면서 지치지 않은 척 할 수 없습니다.

    뇌출혈로 쓰러지고 재활을 하면서 지쳤습니다.

    국세가 밀리고 방법이 없을 때 지쳤습니다.

    교회에서 상처를 받고 사랑했던 공동체를 떠나야 했을 때 지쳤습니다.

    50억 투자가 무산되고 텅 빈 사무실에 홀로 앉아 울던 날 지쳤습니다.

    하루에 강원도청에서 가평 파주 안양까지 네 곳을 달리다 결국 쓰러지던 그 날도 지쳤습니다.

    은퇴를 앞두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지침이 찾아옵니다.

    지침에도 단계가 있었습니다.

    처음 지칠 때는 쉬면 회복되는 지침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지침이 오래 쌓이면 쉬어도 회복되지 않는 지침이 됩니다.

    뇌출혈이 그런 지침이었습니다.

    몸이 한계를 넘어서도 계속 달렸던 것이 결국 쓰러지는 것으로 이어졌습니다.

    재활을 하면서 처음에는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병상에서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면서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이 지침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시간이었습니다.

    빠르게 달리던 사람을 멈추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그 멈춤 속에서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교회에서 상처를 받았을 때의 지침은 달랐습니다.

    몸이 아닌 마음의 지침이었습니다.

    그 지침은 더 오래갔습니다.

    열심히 섬기고 순종했는데 돌아온 것이 아픔이었을 때 하나님 왜 이러십니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때도 눈을 들었습니다.

    당장 답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눈을 드는 그 행위 자체가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나아감이 지침을 버티게 해줬습니다.

    몸이 지쳤을 때 눈을 들면 이 몸을 만드신 하나님이 보였습니다.

    마음이 지쳤을 때 눈을 들면 이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보였습니다.

    영혼이 지쳤을 때 눈을 들면 이 영혼을 붙드시는 하나님이 보였습니다.

    그 하나님을 바라볼 때 지침이 나를 삼키지 못하게 됐습니다.

    별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시는 그 하나님이 내 이름도 부르고 계신다는 것을 알 때 혼자가 아니라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 느낌이 다시 한 걸음을 내딛게 해줬습니다.

    30년 새벽기도가 그 눈을 드는 훈련이었습니다.

    매일 새벽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는 연습을 30년 동안 해왔습니다.

    그 훈련이 쌓여서 지침이 찾아올 때 자연스럽게 눈이 위로 향하게 됐습니다.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창조하신 하나님을 보라

    이사야 40장 26절은 포로 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말씀입니다.

    지치고 낙심한 백성에게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눈을 높이 들어 보라고 하셨습니다.

    27절에서 이스라엘이 고백합니다.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께서 잊으셨다.”

    그 탄식에 하나님이 응답하십니다.

    28절에서 말씀합니다.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창조주께서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우리가 지쳐있어도 하나님은 지치지 않으셨습니다.

    31절에서 약속하십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에게 새 힘이 주어집니다.

    지쳐도 괜찮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면 됩니다

    전지전능하신 창조의 하나님은 태초부터 우리를 사랑하시어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이 지쳐있는 우리를 향해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창조하신 하나님을 보라.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는 그 약속 안에 지쳐있는 오늘의 나도 포함됩니다.

    오늘도 눈을 높이 듭니다.

    그 하나님이 오늘도 여기 계십니다.

    🙏 오늘의 기도

    주님, 지쳐있는 오늘 눈을 높이 들어 창조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소서. 그의 권세가 크고 능력이 강하므로 나도 하나도 빠짐없이 그분의 돌보심 안에 있음을 믿게 하소서.

  • 그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마태복음 13장 43절) – IT CEO의 새벽 잠언

    그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마태복음 13장 43절) – IT CEO의 새벽 잠언

    “그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마태복음 13장 43절)

    삶의 진짜 보화는 물질의 넉넉함이 아니라 존재의 넉넉함이었다

    그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는 이 말씀을 삶 속의 진짜 보화는 물질의 넉넉함이 아닌 존재의 넉넉함이라는 진리를 살면서 깨달았던 경험을 지나 붙들었습니다.

    사업을 시작하면서 성공의 기준이 분명했습니다.

    더 큰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것이었습니다.

    더 많은 직원을 두는 것이었습니다.

    더 넓은 사무실로 이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기준을 향해 달렸습니다.

    월세 오피스텔에서 시작해서 내 소유의 공간이 됐습니다.

    분당에 오피스텔 여러 개를 운영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물질이 채워질수록 더 많이 원하게 됐습니다.

    더 넓은 집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더 좋은 차가 마음을 당겼습니다.

    이 정도면 넉넉하다는 느낌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뇌출혈로 쓰러지면서 달라졌습니다.

    병상에서 가장 보고 싶었던 것이 큰 프로젝트가 아니었습니다.

    아이들의 얼굴이었습니다.

    가장 듣고 싶었던 것이 수주 소식이 아니었습니다.

    아내의 목소리였습니다.

    가장 그리웠던 것이 사무실이 아니었습니다.

    새벽예배당이었습니다.

    그때 알게 됐습니다.

    내가 그토록 달려온 것들보다 이미 가진 것들이 훨씬 귀했다는 것을.

    존재의 넉넉함은 가진 것이 많아서 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있는 것들의 가치를 알 때 오는 것이었습니다.

    함께하는 아내가 보화였습니다.

    건강하게 자라는 아이들이 보화였습니다.

    매일 새벽기도를 드릴 수 있는 것이 보화였습니다.

    26년을 함께 일해온 직원들이 보화였습니다.

    그 보화들이 이미 내 삶 안에 있었는데 물질을 쫓느라 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재활의 시간이 그 눈을 열어줬습니다.

    천천히 한 걸음씩 걷는 시간이 감추어진 보화를 발견하게 해줬습니다.

    은퇴를 앞두고 26년을 돌아봤을 때 가장 감사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봤습니다.

    큰 프로젝트를 수주했던 순간이 아니었습니다.

    교회 어르신들 야유회 때 점심을 대접하고 그분들이 환하게 웃으시던 그 표정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남아공 어린이의 심장수술비를 후원했을 때 한 생명이 살아있다는 그 소식이 떠올랐습니다.

    그것들이 진짜 보화였습니다.

    물질로 환산할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존재의 넉넉함이 물질의 넉넉함보다 훨씬 깊고 오래가는 것이었습니다.

    살아보니 알게 됐다는 표현이 가장 정직합니다.

    머리로 알던 것이 삶을 통해 가슴으로 내려왔을 때 비로소 진리가 됐습니다.

    그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마태복음 13장 43절은 천국 비유의 결론입니다.

    의인들이 해와 같이 빛난다는 약속입니다.

    우리 주변에 보물과 진주가 숨어 있지만 대가를 치르려 하지 않는 이들은 천국을 누릴 수 없습니다.

    뇌출혈이라는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존재의 넉넉함이라는 보화를 발견했습니다.

    그 발견이 값지게 느껴지는 것은 그 대가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귀 있는 자는 들으라는 말씀처럼 영적인 귀가 열려야 들을 수 있습니다.

    쓰러지기 전에는 그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삶이 느려지고 나서야 비로소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삶 속에 감추어진 보화를 발견하는 사람

    보물과 진주를 발견하는 사람은 따로 있었습니다.

    그 발견은 눈이 열려야 가능했습니다.

    물질의 넉넉함을 쫓느라 바쁜 사람은 그 보화 옆을 지나쳤습니다.

    존재의 넉넉함을 아는 사람만이 그 보화를 발견했습니다.

    그 발견이 삶을 해와 같이 빛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삶 속에 감추어진 보화를 발견하는 눈이 열리기를 소망합니다.

    그 보화가 이미 우리 곁에 있습니다.

    🌿 오늘의 묵상 한 줄

    진짜 보화는 물질의 넉넉함이 아니라 존재의 넉넉함이었습니다. 그 진리를 살아보고 나서야 알게 됐습니다.

  •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돼라 (고린도전서 15장 58절) – IT CEO의 새벽 잠언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돼라 (고린도전서 15장 58절) – IT CEO의 새벽 잠언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돼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고린도전서 15장 58절)

    모태신앙으로 부모의 기도를 물려받아 걸어온 길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돼라는 이 말씀을 모태신앙으로 시작해 세상 유혹 속에서도 부모님의 기도를 물려받아 지금까지 견실하게 신앙생활을 이어온 경험을 지나 붙들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교회가 삶의 일부였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을 따라 예배당에 앉았습니다.

    그 자리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자라면서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교회 밖에는 전혀 다른 세계가 있었습니다.

    친구들이 주일에 다른 곳에서 즐기고 있을 때 예배당에 앉아있는 것이 때로는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기도하시는 모습을 옆에서 봤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시는 부모님의 모습이 기억납니다.

    그 모습이 어린 마음에 깊이 새겨졌습니다.

    기도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는 것을 몸으로 배웠습니다.

    신앙은 입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배우는 것이었습니다.

    부모님이 살아낸 신앙이 나에게 전해졌습니다.

    어려운 시절에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이 실제로 살아계신 분이라는 것을 어릴 때부터 알게 됐습니다.

    그것이 모태신앙의 진짜 의미였습니다.

    단순히 교회에 일찍 다닌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살아계신 분으로 믿는 신앙을 부모님을 통해 물려받은 것이었습니다.

    사업을 하면서 세상 방식이 더 쉬워 보이는 때가 있었습니다.

    정직하게 가면 손해를 보는 것 같은 자리가 있었습니다.

    타협하면 더 쉬울 것 같은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45평보다 넓은 집이 눈에 밟혔습니다.

    더 좋은 차가 마음을 당기는 때도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부모님의 신앙이 그 자리에서 멈추게 했습니다.

    부모님이 정직하게 살아가시는 모습이 나의 기준이 됐기 때문이었습니다.

    세상 유혹 속에서 견실하게 신앙생활을 이어왔다고 하지만 사실 나 혼자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부모님의 기도가 함께 걸어왔습니다.

    뇌출혈로 쓰러졌을 때 절망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그 신앙의 뿌리 때문이었습니다.

    교회에서 상처를 받았을 때 신앙을 버리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그 뿌리 때문이었습니다.

    26년 사업의 위기마다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던 것도 어릴 때부터 심겨진 그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은퇴를 앞두고 아들에게 회사를 넘기면서 한 가지를 더 물려주고 싶습니다.

    재산이나 회사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습니다.

    부모님이 나에게 물려주신 것처럼 신앙을 물려주는 것이었습니다.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돼라

    고린도전서 15장 58절은 부활을 선포한 15장의 결론입니다.

    견실하다는 것은 기초가 단단하다는 뜻입니다.

    모태신앙이 그 기초였습니다.

    부모님의 기도가 그 기초였습니다.

    그 기초 위에 서 있었기 때문에 세상이 흔들어도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는 약속이 그 견실함의 근거였습니다.

    잠언 22장 6절도 말씀합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부모님이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길을 지금도 걷고 있습니다.

    부모님의 기도를 물려받아 다음 세대로 이어가는 삶

    마음의 빈틈을 타고 들어오는 유혹과 시험들 속에서 견고하고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것은 기초가 단단하기 때문입니다.

    그 기초를 놓아주신 부모님의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의 기도가 나에게서 멈추지 않고 다음 세대로 이어지기를 소망합니다.

    시험에 들지 않도록 항상 깨어 기도하며 신실하신 주를 믿고 의지하는 삶이 부모님의 기도를 물려받은 자의 삶이었습니다.

    주의 일에 더욱 힘쓰고 기쁨으로 감당하는 오늘이 그 기도의 유산에 보답하는 방식이었습니다.

    🙏 오늘의 기도

    주님, 부모님이 물려주신 신앙의 뿌리를 지키며 견실하게 살아가게 하소서. 그 기도의 유산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