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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용한 고백] 말씀과 접붙임의 비밀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말씀과 접붙임의 비밀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주님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들을 통해서 알게 하시려고 여러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특히 두 비유가 마음에 남습니다.

    씨 뿌리는 비유와 접붙임의 비유였습니다.

    씨 뿌리는 비유는 우리 마음의 밭에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져 열매를 맺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비유의 가장 큰 강조점은 씨가 아니라 밭이 어떤 밭인가였습니다.

    각 사람이 어떻게 말씀을 마음에 받느냐를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접붙임의 비유는 달랐습니다.

    우리가 본질적으로 타락하고 무능한 존재인 나쁜 나무라 할지라도 그 나무를 자르고 좋은 나무에 접붙임을 받으면 결국 좋은 나무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좋은 나무가 예수님이며 말씀이었습니다.

    그 누구라도 예수님께 접붙임을 받기만 하면 좋은 나무가 되어 구원을 얻게 되고 아름다운 존재와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씨 뿌리는 비유는 우리의 마음 밭이 얼마나 좋으냐에 달려있었습니다.

    그런데 접붙임의 비유는 달랐습니다.

    나쁜 나무라도 좋은 나무에 접붙이기만 하면 됐습니다.

    내가 좋은 사람이어야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오직 예수님께 접붙임을 받는 것이면 충분했습니다.

    접붙임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생각합니다.

    나무를 접붙일 때 가장 먼저 기존 가지를 찍어내는 것이었습니다.

    그 찍어냄이 아프지만 그것 없이는 접붙임이 불가능했습니다.

    자아를 죽이는 것이 그 찍어냄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좋은 나무의 접순을 붙였습니다.

    말씀을 존재 깊은 곳에 심는 것이었습니다.

    말씀이 접순이었습니다.

    그 접순이 뿌리를 내리면서 예수님의 생명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좋은 나무의 열매를 맺는 것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5장에서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가지가 나무에 붙어있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나무에 붙어있을 때 열매가 맺히는 것이었습니다.

    말씀과 접붙임의 비밀

    그래서 바울은 자신을 날마다 죽고 자신 안에 예수님이 사신다고 말하였습니다.

    죄인 중에 괴수요 살기가 등등한 그가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을 닮은 삶을 살았던 이유였습니다.

    접붙임의 비밀이었습니다.

    내가 사나 주님이 사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나를 통해서 사시므로 주님의 아름다운 삶을 사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아름다운 존재가 되고 아름다운 삶을 사는 것은 우리의 노력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말씀과 접붙임이었습니다.

    내가 더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더 깊이 예수님께 접붙여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그 접붙임이 더 깊어지기를 소망합니다.

    날마다 자아를 찍어내고 말씀을 심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 오늘의 묵상 한 줄

    말씀과 접붙임의 비밀. 내가 날마다 죽고 예수님께 접붙일 때 주님의 아름다운 인격과 삶이 나를 통해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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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용한 고백] 하나님은 우리가 스스로 즐거이 하나님을 의뢰할 때까지 기다리십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하나님은 우리가 스스로 즐거이 하나님을 의뢰할 때까지 기다리십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하나님은 기다리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수없이 반복적으로 넘어지고 실패하고 그래서 수십 년의 시간이 걸린다고 해도 자원하는 마음으로 즐거이 하나님을 의뢰할 때까지 하나님은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하나님이 왜 기다리시는지를 생각합니다.

    우리의 약함이나 습관적인 죄성을 결코 제거하지 않으십니다.

    반복적으로 넘어지므로 슬퍼하고 아파하며 낙심할지라도 하나님은 결코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그 이유는 참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를 존중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두렵고 징계가 무서워서가 아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좋아 스스로 즐거운 마음으로 죄를 버리고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을 원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말씀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반복적으로 넘어질 때마다 하나님이 나를 포기하셨다고 느꼈습니다.

    이번에도 실패했다고 자책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함께 아파하시면서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베드로가 그랬습니다.

    주님을 세 번 부인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부활하신 후 가장 먼저 베드로를 찾으셨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 질문이 베드로에게 자원하는 마음으로 즐거이 하나님을 의뢰하는 기회를 주신 것이었습니다.

    야곱도 그랬습니다.

    형을 속이고 도망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기다리셨습니다.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습니다라고 고백했을 때 그것이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의뢰하는 것이었습니다.

    탕자의 이야기가 그것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떠나갈 때 모든 것을 아시면서도 그렇게 허용하셨습니다.

    스스로 깨닫고 돌아올 때까지 찾아가지 않으시고 기다리셨습니다.

    그 기다림의 고통은 아버지의 참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돌아온 그 아들은 분명 잃었다 그리고 죽었다 다시 얻은 새로운 아들이 되었습니다.

    아버지와 참 사랑의 관계가 실패와 아픔을 통해서 얻어졌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스스로 즐거이 하나님을 의뢰할 때까지 기다리십니다

    하나님은 두려움 때문에 오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랑해서 오는 것을 원하셨습니다.

    억지로 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기뻐서 하는 것을 원하셨습니다.

    그 자원하는 마음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셨습니다.

    그것이 우리를 존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우리 스스로 알아서 할 때까지 기다리신다고 해서 방관하시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도 함께 아파하시고 마음을 졸이시지만 참고 기다리심은 우리를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의 관계로 이끄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오랜 시간이 걸려도 괜찮습니다.

    수없는 실패 속에 실망을 당해 아파해도 괜찮습니다.

    하나님은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 기다림이 우리를 향한 무한한 사랑이었습니다.

    자원하는 마음으로 즐거이 하나님을 의뢰하는 그 날까지 하나님이 함께하십니다.

    🙏 오늘의 기도

    주님 수없이 넘어지고 실패했습니다. 그래도 기다려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두려움이 아닌 진심으로 하나님이 좋아 의뢰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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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용한 고백] 평탄한 일상에서 하나님과 동행합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평탄한 일상에서 하나님과 동행합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신실하고 성숙한 신앙은 아무 일이 없는 평탄한 일상생활에서 주님과 동행하며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어려움과 환난을 당할 때 하나님을 찾고 깨어있는 신앙생활을 하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평탄한 일상생활 속에서 믿음을 지키며 하나님의 임재 속에 살기란 쉽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하나님 없이 살아가거나 피상적이고 미지근한 신앙을 하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가장 신앙생활을 하기에 어렵고 위험한 때는 평탄한 일상생활을 사는 때였습니다.

    평탄한 일상이 왜 가장 위험한 때인지를 생각합니다.

    어려울 때는 하나님을 찾을 이유가 분명했습니다.

    그런데 평탄할 때는 그 이유가 흐릿해졌습니다.

    하나님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것이 가장 위험한 상태였습니다.

    솔로몬이 그 예였습니다.

    전쟁이 끝났습니다.

    나라가 평화로웠습니다.

    부귀영화가 넘쳤습니다.

    평탄한 일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평탄함 속에서 하나님과의 동행이 끊어졌습니다.

    가장 지혜로운 자가 가장 어리석은 자가 된 것이었습니다.

    에녹은 달랐습니다.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매일 일어나 자식을 돌봤습니다.

    밥을 먹었습니다.

    잠을 잤습니다.

    그 평범한 일상을 300년간 반복했습니다.

    그런데 그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에녹을 얼마나 사랑하셨으면 모든 사람들이 다 죽었다고 말씀하시는 중에도 에녹은 죽지 않고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노아도 그랬습니다.

    일상의 생활에서 묵묵히 하나님을 경외하며 순종하며 살아가므로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그 일상의 동행이 자신과 가족은 물론 모든 동물들을 구원하는 사람이 되게 했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그랬습니다.

    천막 만드는 평범한 일상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일상에서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바울을 도왔습니다.

    아볼로를 가르쳤습니다.

    교회를 세웠습니다.

    평범한 일상이 하나님 나라의 사역이 됐습니다.

    평탄한 일상에서 하나님과 동행합니다

    어렵고 힘들고 무엇이 필요하기 때문이 아니라 아무 일이 없고 모든 것이 풍요할 때 하나님이 너무 좋아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고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진정한 신앙이고 하나님과 동행이었습니다.

    날마다 세상을 버려야 했습니다.

    날마다 자신을 부인하고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했습니다.

    삶이 기도가 되고 예배가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누가 보거나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자신의 마음을 그분 앞에 토하고 순종하며 사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에녹을 데려가셨을 때 에녹은 얼마나 행복했을까요.

    이 땅의 평범한 일상이 하나님과 함께하는 영원한 일상으로 이어진 것이었습니다.

    평탄한 일상에서의 동행이 영원한 동행으로 이어졌습니다.

    오늘 이 평탄한 일상에서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소망합니다.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하나님을 찾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 동행이 쌓여 에녹처럼 노아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 오늘의 질문

    오늘 평탄한 일상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습니까. 아무 일이 없을 때 하나님을 찾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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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용한 고백] 하나님의 부재와 임재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하나님의 부재와 임재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하나님의 부재는 하나님께서 존재하시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존재하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 없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변함없이 우리와 함께 존재하시며 친밀한 관계로 교제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성령으로 우리 존재 안에 영원토록 함께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주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육신의 소욕을 따라 살아가므로 성령을 소멸하고 근심하게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 않거나 성령께 순종하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주님의 부재를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의 부재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생각합니다.

    가인이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에덴 동편 놋 땅에 거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에서 떠나간 것이었습니다.

    그 이후의 가인의 삶은 도망자의 삶이었습니다.

    사울이 하나님께 버림받았을 때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떠난 자리를 악령이 채운 것이었습니다.

    솔로몬도 그랬습니다.

    세상의 즐거움에 빠지면서 하나님의 임재를 잃어버렸습니다.

    그 결과는 우상 숭배와 왕국의 분열이었습니다.

    다윗이 그 고통을 알았습니다.

    주께서 내게 잠잠하시면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고 죽은 지 이미 오랜 자와 같다고 말하였습니다.

    주님의 부재가 죽음과 같다는 고백이었습니다.

    아브라함도 부르심을 받은 후에 주님의 부재 속에 13년 동안을 살았습니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자녀를 얻으려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때 그는 살았으나 죽은 것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자신에게도 가정에도 큰 고통과 갈등과 번민이 있었습니다.

    그 후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자신을 나타내셔서 약속을 견고케 하셨습니다.

    제자들도 주님 없이 항해를 하다가 큰 물결로 인하여 고통하였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배에 오르자 곧 잔잔하여 평안해졌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부재의 고통을 맛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부재의 고통이 하나님을 더 간절히 찾게 만들었습니다.

    그 찾음이 더 깊은 임재로 이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부재와 임재

    따라서 하나님의 부재도 하나님의 임재도 선하신 하나님의 은혜로운 행위였습니다.

    하나님은 그 얼굴을 숨기심과 나타내심을 통해서 우리를 만드시고 함께 하시고 영광스럽게 하셨습니다.

    주님의 부재는 언제 찾아왔습니까.

    분주함이나 편리함 부요함 세상의 즐거움 속에 빠져 주님에 대해 무관심할 때였습니다.

    아브라함이 13년의 부재의 시간을 통과한 후 하나님과 더 깊은 언약을 맺었습니다.

    부재의 고통이 더 깊은 임재를 준비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오늘 나는 주님의 임재를 느끼고 있습니까.

    아니면 부재를 느끼고 있습니까.

    부재를 느낀다면 그 고통 속에서 간절하게 하나님을 찾기를 소망합니다.

    찾는 자에게 하나님이 얼굴을 비추십니다.

    그 얼굴이 비추일 때 평안이 임합니다.

    오늘 그 임재를 경험하기를 기도합니다.

    🌿 오늘의 묵상 한 줄

    하나님의 부재의 고통이 오히려 하나님을 더 간절히 찾게 합니다. 찾는 자에게 하나님이 얼굴을 비추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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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용한 고백] 우리는 이미 빛입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우리는 이미 빛입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악하고 음란하고 패역한 어두움의 시대입니다.

    어두움의 주관자는 세상 임금인 마귀요 죄입니다.

    수많은 악들이 우리 주위에서 우리 존재와 우리와 관계된 사람들과 삶의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 악하고 음란하고 패역한 시대에서 구원을 얻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바울은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벌써 깰 때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이 악하고 음란하고 패역한 시대를 보고 살아가면서 무엇을 느끼고 있으며 어떻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이 시대가 패역한 시대임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면 자기도 악에 빠져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분별하고 느끼고 있다고 해도 거기에 영향을 받거나 반응하고 있다면 그것 또한 패역한 일이었습니다.

    빛과 어두움의 차이를 생각합니다.

    어두움 속에 있으면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모릅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잘못은 보입니다.

    비판하고 정죄합니다.

    그것이 어두움 속에 있는 자의 특징이었습니다.

    빛은 달랐습니다.

    빛이 비추면 먼저 자신이 보였습니다.

    내 죄가 보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다른 사람의 죄가 보일 때 비판이 아니라 애통함이 왔습니다.

    이사야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을 때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라고 했습니다.

    먼저 자신이 보였습니다.

    욥이 하나님 앞에 섰을 때도 그랬습니다.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빛 가운데 있는 자의 반응이었습니다.

    이 패역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었습니다.

    나도 자기중심적으로 살았는지 돌아보는 것이었습니다.

    나도 배은망덕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는 것이었습니다.

    그 돌아봄이 회개의 시작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악으로 갚는 패역한 죄를 짓지 않도록 간구하는 기도가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에서 빛이 나왔습니다.

    패역과 악을 보면서 비판하고 탄식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과 관계된 사람들로부터 패역한 일을 직접 당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들을 정죄하거나 미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거기서 교훈을 받고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빛입니다

    우리는 이미 빛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빛으로 살아갈 때 어두움이 물러났습니다.

    비판하고 탄식하는 것이 아니라 빛으로 서 있는 것이 이 패역한 시대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어두움을 향해 소리치는 것보다 빛으로 존재하는 것이 어두움을 물리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내가 경험하는 패역한 일들이 있습니까.

    그 앞에서 비판하고 탄식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것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있습니까.

    우리는 이미 빛이었습니다.

    오늘도 빛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 오늘의 기도

    주님 이 패역한 시대 앞에서 비판하고 탄식하기보다 먼저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소서. 빛으로 살게 하소서. 하나님의 은혜를 악으로 갚지 않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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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용한 고백] 동행이 동역입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동행이 동역입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동행이 동역이었습니다.

    다 함께 가지 못해도 동역이 됩니다.

    기도로 함께하는 것도 동역이었습니다.

    물질로 함께하는 것도 동역이었습니다.

    마음으로 함께하는 것도 동역이었습니다.

    같은 자리에 있지 않아도 같은 방향을 바라볼 때 그것이 동역이었습니다.

    사도행전을 읽으면 동역의 아름다움이 보입니다.

    바울 혼자 선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나바가 있었습니다.

    실라가 있었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있었습니다.

    각 지역 교회의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기도로 물질로 동역했습니다.

    빌립보 교회가 그랬습니다.

    바울이 감옥에 있을 때도 헌금을 보냈습니다.

    바울은 그 헌금이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희생이라고 했습니다.

    다 함께 가지 못해도 물질로 동역한 것이 그토록 귀한 것이었습니다.

    선교는 가는 자만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보내는 자의 일이기도 했습니다.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그 발이 가능하도록 보내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기도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물질을 드리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 모든 사람이 함께 참여하는 것이었습니다.

    에스더와 모르드개가 그랬습니다.

    유대 민족의 위기 앞에서 함께 기도하고 함께 금식했습니다.

    그 동역이 민족을 구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여러 여인들이 그랬습니다.

    제자들이 도망쳤을 때도 그들은 자리를 지켰습니다.

    십자가 곁에 있었습니다.

    그 동행이 동역이었습니다.

    거창한 역할이 아니었습니다.

    그 자리에 있는 것이 동역이었습니다.

    동행이 동역입니다

    동역의 반대가 무엇인지 생각합니다.

    혼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다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혼자 일하지 않으셨습니다.

    모세에게 아론과 미리암을 주셨습니다.

    다윗에게 요나단을 주셨습니다.

    바울에게 바나바와 실라를 주셨습니다.

    동역이 하나님의 방식이었습니다.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기도의 동역이 하늘을 움직이는 것이었습니다.

    주님도 나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친구라 하였노니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먼저 동역자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 초청에 응답하는 것이 동역이었습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습니다.

    그 일을 주님 혼자 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자들과 동역하셨습니다.

    지금도 우리와 동역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그 사도행전의 주인공이 되어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동행이 동역입니다.

    오늘도 그 동역 안에 거하기를 기도합니다.

    💭 오늘의 질문

    오늘 나는 누구와 동역하고 있습니까. 혼자 감당하려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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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용한 고백] 잠근 동산 덮은 우물 봉한 샘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잠근 동산 덮은 우물 봉한 샘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아가서는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사랑의 이야기가 성경이 되어 우리에게 기쁨이 되고 소망이 되는 이유는 바로 주님과 우리와의 고귀하고 깊은 사랑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사랑하는 술람미 여인에게 노래합니다.

    나의 누이 나의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라.

    이것은 술람미 여인의 순결한 사랑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잠근 동산 덮은 우물 봉한 샘이라는 말은 어떤 경우에도 누구에게도 그 무엇에게도 결코 자신의 존재를 내어 주지 않는다는 말이었습니다.

    오직 사랑하는 솔로몬 하나만을 위하여 자신의 존재를 잠그고 봉하여 그에게만 허용한다는 말이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솔로몬이 자신과 같이 보잘것없고 초라한 존재를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사랑에 너무도 감격하여 그에게 기쁨이 되고 싶기 때문이었습니다.

    잠근 동산이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생각합니다.

    동산은 아름다운 곳입니다.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는 곳입니다.

    그런데 잠겨있습니다.

    주인만이 들어올 수 있습니다.

    우리의 존재도 그래야 했습니다.

    주님만이 들어오실 수 있어야 했습니다.

    덮은 우물이 된다는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우물은 생명의 물이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덮여있습니다.

    그 물은 주인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생명도 주님을 위한 것이어야 했습니다.

    봉한 샘이 된다는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샘은 끊임없이 솟아나는 생수가 있는 곳입니다.

    우리의 존재 안에서 솟아나는 모든 것이 주님을 향한 것이어야 했습니다.

    술람미 여인은 왜 자신을 잠글 수 있었습니까.

    솔로몬의 사랑이 분명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알 때 다른 것에 눈이 가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사랑이 분명할 때 세상을 향해 문을 닫을 수 있었습니다.

    잠근 동산 덮은 우물 봉한 샘

    우리가 영적 침체에 빠지거나 자신의 존재가 흐트러지는 이유는 바로 세상의 즐거움이나 세상에 있는 것이나 세상의 편리함에 자신의 존재를 내어 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잠근 동산 덮은 우물 봉한 샘이 되도록 존재 관리를 철저히 하지 않고는 결코 주님과 친밀한 사랑 가운데 넉넉하고 풍성한 삶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말했습니다.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라.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한다고.

    바울과 같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자기의 유익을 다 해로 여기며 배설물로 여기고 버려야 주님을 얻게 됩니다.

    매일 새벽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그 잠금을 유지하는 훈련이었습니다.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오직 주님을 위해 이 하루를 드리겠다고 결단하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의 사랑이 분명할 때 세상을 향해 문을 닫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 나의 존재는 잠근 동산입니까.

    오직 주님만을 위하여 나의 존재를 드리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 오늘의 묵상 한 줄

    잠근 동산 덮은 우물 봉한 샘. 오직 주님만을 위하여 나의 존재를 내어드리는 영적 순결이 주님과의 친밀함의 비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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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용한 고백] 신앙에도 터닝 포인트가 필요합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신앙에도 터닝 포인트가 필요합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신앙에도 터닝 포인트가 필요합니다.

    터닝 포인트는 지난날들의 무의미한 삶이나 아픔이나 실패의 삶을 청산하고 새로운 삶의 방향전환을 말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 중에 터닝 포인트가 있었던 사람들은 모두 한결같이 하나님을 만나거나 믿음의 사람을 만남으로부터 시작됐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에녹이었습니다.

    에녹은 65세에 므두셀라를 낳기 전까지의 삶은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삶 동행도 영생도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므두셀라를 낳은 후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였고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에녹의 터닝 포인트의 비밀은 므두셀라의 출생이었습니다.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았습니다.

    경건치 않는 모든 사람들을 심판하실 것인데 므두셀라가 죽는 날에 그 모든 심판이 있을 것이란 말씀이었습니다.

    므두셀라의 이름의 뜻은 창을 던지는 자라는 의미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창을 던지므로 모든 것이 끝이 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 말씀 하나가 에녹의 터닝 포인트였습니다.

    65년의 기록 없는 삶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으로 바뀌었습니다.

    말씀이 그 방향을 바꿨습니다.

    터닝 포인트가 어떻게 찾아오는지를 생각합니다.

    에녹의 경우에는 아이의 탄생이라는 일상의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일상의 사건 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야곱의 터닝 포인트는 얍복 강의 어두운 밤이었습니다.

    가장 어려운 자리가 가장 큰 변화의 자리가 된 것이었습니다.

    모세의 터닝 포인트는 광야에서 40년을 지낸 후였습니다.

    의미 없어 보이던 광야의 40년이 터닝 포인트를 준비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의미 없어 보이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아픔이었습니다.

    실패였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가 하나님이 터닝 포인트를 준비하시는 자리였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그랬습니다.

    아볼로를 만나 더 자세히 하나님의 도를 가르쳤습니다.

    그 만남이 아볼로의 터닝 포인트였습니다.

    우리도 누군가의 터닝 포인트가 되는 만남이 될 수 있었습니다.

    신앙에도 터닝 포인트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과 만남을 통해서 일하시기도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거나 들음을 통해 만나시기도 했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 모든 것은 다 하나님께서 하시고 계신다는 것이었습니다.

    매일 새벽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그 터닝 포인트를 준비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에녹이 므두셀라를 낳은 후 300년간 하나님과 동행했듯이 매일 새벽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그 동행의 시작이었습니다.

    신앙에도 터닝 포인트가 필요합니다.

    오늘 그 터닝 포인트가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에녹처럼 노아처럼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신앙의 터닝 포인트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 오늘의 질문

    나의 신앙의 터닝 포인트는 언제였습니까. 오늘이 새로운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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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용한 고백] 다윗의 고백을 나의 고백으로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다윗의 고백을 나의 고백으로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시편에 다윗의 시를 보면 우리의 마음을 감동케 하는 진실하고도 애절한 간구와 고백들이 있습니다.

    그 고백을 묵상할 때마다 다윗의 존재가 느껴집니다.

    그리고 그 고백을 나의 고백으로 붙잡고 살아갈 때가 많이 있습니다.

    다윗도 우리와 똑같은 연약함과 죄에 넘어짐과 고통과 절망이 있었습니다.

    절실한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한 존재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그토록 영광스럽고 아름다운 삶을 살았던 이유는 하나님을 향한 간절하고도 진실한 고백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의 고백이 특별한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합니다.

    솔직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숨기지 않았습니다.

    아프면 아프다고 했습니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영히 잊으시나이까.

    이 고백이 얼마나 인간적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것이 진실이었습니다.

    그 진실이 하나님 앞에 쏟아졌습니다.

    하나님은 그 솔직한 고백을 들으셨습니다.

    다윗의 고백들을 천천히 읽어봅니다.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

    주는 나의 주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주의 종에게 심판을 행치 마소서 주의 목전에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나이다.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으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라는 이 고백이 가장 마음에 남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눈물을 병에 담으신다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흘린 눈물을 하나님이 기억하고 계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었습니다.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곤핍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

    단 한 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다윗의 간절함이었습니다.

    그 간절함이 다윗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 만들었습니다.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사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강하게 해달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연약함을 알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연약함을 아는 것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시작이었습니다.

    다윗의 고백을 나의 고백으로

    오늘 어떤 고백이 필요합니까.

    다윗의 고백 중에 오늘 내 마음과 가장 가까운 것이 있습니까.

    그 고백을 오늘 하나님께 드려보십시오.

    하나님은 그 솔직한 고백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의 존재가 아무리 연약하고 의롭지 못해도 그의 고백을 우리의 고백으로 삼고 살 때 우리도 그러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될 때 다윗이 경험한 하나님을 나도 경험하게 됩니다.

    그 고백을 오늘도 드립니다.

    🙏 오늘의 기도

    여호와여 나의 힘이 되신 주를 사랑합니다.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합니다.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아주시는 주님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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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용한 고백] 자다가 벌써 깰 때가 되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자다가 벌써 깰 때가 되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바울은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벌써 깰 때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다가 벌써 깰 때가 되었다는 말은 성도들마저도 영적인 잠을 자고 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세상문화가 주는 사치와 쾌락과 물질의 풍요로움에 취해 혼미한 상태에서 깨어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영적인 잠이 어떻게 찾아오는지를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잠깐이었습니다.

    오늘 하루만 쉬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잠깐이 쌓이면서 깊은 잠이 됐습니다.

    세상문화가 주는 쾌락이 처음에는 낯설었다가 익숙해졌습니다.

    익숙해지면서 더 이상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게 됐습니다.

    그것이 영적인 잠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의 존재에 있습니다.

    그런데 평상시에 존재보다 일 중심의 삶을 살았기 때문에 세상문화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익숙해지므로 존재 관리가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왜 일 중심으로 살게 될까요.

    일 중심이 존재 관리보다 훨씬 더 쉽기 때문이었습니다.

    존재 관리가 안 되어도 일은 잘 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일은 당장에 그 성과가 나타나지만 존재 관리는 힘들고 더디기 때문이었습니다.

    세상은 존재가 아닌 일과 성과에 찬사나 보상을 주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밤이 깊으면 깊을수록 존재 관리를 잘한 사람의 가치가 드러났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사람들의 특징은 모두 존재 관리에 실패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바울이 고백했습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라.

    존재 관리를 위해 몸을 쳤습니다.

    자신을 다스리는 것이 존재 관리의 핵심이었습니다.

    요셉이 그랬습니다.

    노예로 팔렸을 때도 어떻게 하나님께 득죄 하리이까 하고 거부했습니다.

    감옥에 있을 때도 존재를 지켰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그를 높이셨습니다.

    다니엘이 그랬습니다.

    바벨론의 세상문화 한가운데서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 존재 관리가 사자 굴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게 했습니다.

    자다가 벌써 깰 때가 되었다

    존재 관리는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려울 때도 풍부할 때도 바쁠 때도 한가할 때도 해야 했습니다.

    존재 관리는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었습니다.

    세상 즐거움이나 유익 정과 욕심을 끊어내는 것이었습니다.

    주님 말씀에 따라 주님의 임재 속에서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 존재 관리였습니다.

    존재 관리의 실패는 자신을 귀신과 각 종 더러운 영에게 내어준 결과라는 사실을 알아야 했습니다.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아들아 세상을 버려라.

    이 말씀이 오늘도 울립니다.

    자다가 벌써 깰 때가 되었습니다.

    오늘 이 말씀 앞에 멈추어 서기를 소망합니다.

    세상문화에 익숙해진 것들을 하나씩 내려놓기를 소망합니다.

    일 중심에서 존재 중심으로 돌아오기를 소망합니다.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는 그 존재 관리를 오늘부터 다시 시작하기를 기도합니다.

    🌿 오늘의 묵상 한 줄

    자다가 벌써 깰 때가 되었습니다. 일 중심이 아닌 존재 중심으로 살아갈 때 주님이 아신다고 하십니다.

    성경 말씀 더 깊이 읽기 → 대한성서공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