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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창세기 21장 22절) – IT CEO의 새벽 잠언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창세기 21장 22절) – IT CEO의 새벽 잠언

    “그때에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이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창세기 21장 22절)

    제안서만 작성하면 수주가 됐을 때 관리이사가 한 말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라는 이 말씀을 제안서만 작성하면 수주가 되던 시절 관리이사가 나를 보면 하나님이 계신 것 같다고 했던 경험을 지나 붙들었습니다.

    사업을 하면서 제안서 작성에 힘을 쏟던 때가 있었습니다.

    PT를 준비하고 제안서를 만들어 제출하면 수주가 되는 시기였습니다.

    그 시기에는 유독 제안서를 작성하면 결과로 이어지는 일들이 이어졌습니다.

    하나가 수주되고 또 하나가 수주됐습니다.

    큰 프로젝트들이 연달아 들어왔습니다.

    그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던 관리이사가 어느 날 이런 말을 했습니다.

    대표님을 보면 하나님이 계신 것 같습니다.

    그 말이 귓가에 맴돌았습니다.

    내가 능력이 있어서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전략이 뛰어나서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 말이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라는 말씀과 겹쳐졌습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감사하면서도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것 같다는 말을 들을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싶었습니다.

    직원을 편애했던 기억도 있었습니다.

    세상 방식을 따르고 싶었던 유혹도 있었습니다.

    완전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는 것을 더 분명하게 해줬습니다.

    내가 부족해도 하나님이 함께하실 때 그 함께하심이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도 완전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함께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완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드러난 것이었습니다.

    내 삶도 그랬습니다.

    그 깨달음이 더 겸손하게 기도하게 만들었습니다.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하셔야 한다는 것이 더 선명해졌습니다.

    그 시기를 돌아보면 특별히 더 열심히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기도에 더 집중했던 때였습니다.

    매일 새벽기도를 드리면서 오늘도 하나님이 인도해 주소서라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제안서를 작성하기 전에 기도했습니다.

    PT 자리에 들어가기 전에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들이 쌓이면서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이 실제로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곁에서 보는 사람들에게도 느껴진 것이었습니다.

    제안서를 작성하면 수주가 되던 그 시기가 영원히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이후에 탈락하는 프로젝트들도 생겼습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관리이사의 그 말이 떠올랐습니다.

    수주가 됐을 때만 하나님이 함께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탈락했을 때도 하나님이 함께하고 계셨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라는 말씀처럼 결과가 좋을 때도 좋지 않을 때도 하나님은 함께하고 계셨습니다.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창세기 21장 22절은 아브라함의 삶이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증명하는 장면입니다.

    아비멜렉이라는 외부인이 그것을 봤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앙인만 알아보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도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모든 행사에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을 때 그 동행하심이 삶으로 드러납니다.

    그 드러남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해집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라는 표현이 중요합니다.

    특정한 종교적 활동에만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안서를 작성하는 일에도 직원들을 이끄는 일에도 하나님이 함께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믿음으로 살아내는 것

    존재가 존재 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났지만 그 자녀다운 삶을 살아내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26년 사업을 돌아보면 그 모든 순간에 하나님이 함께하셨습니다.

    어음 부도의 차 안에서도 뇌출혈 병상에서도 하나님은 자리를 비우지 않으셨습니다.

    결코 이를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믿음으로 감사함으로 살아내기를 소망합니다.

    그 삶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이 계신 것 같다는 고백을 이끌어낼 것입니다.

    🌿 오늘의 묵상 한 줄

    제안서만 작성하면 수주가 되던 그 시기에 관리이사가 말했습니다. 대표님을 보면 하나님이 계신 것 같습니다.

  • 여호와여 주는 아침마다 우리의 팔이 되시며 (이사야 33장 2절) – IT CEO의 새벽 잠언

    여호와여 주는 아침마다 우리의 팔이 되시며 (이사야 33장 2절) – IT CEO의 새벽 잠언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우리가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아침마다 우리의 팔이 되시며 환난 때에 우리의 구원이 되소서” (이사야 33장 2절)

    출근하면 내 책상에서 제일 먼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다

    주는 아침마다 우리의 팔이 되시며 환난 때에 우리의 구원이 되소서라는 이 말씀을 출근하면 내 방 내 책상에서 제일 먼저 하나님께 기도를 드려온 삶을 지나 붙들었습니다.

    출근을 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있습니다.

    컴퓨터를 켜는 것이 아닙니다.

    커피를 마시는 것이 아닙니다.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는 것이 아닙니다.

    내 방 내 책상에 앉아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는 것이 제일 먼저입니다.

    그 기도가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습니다.

    30년 새벽기도가 그 습관을 만들어준 것 같았습니다.

    새벽에 예배당에서 기도를 드리고 왔어도 사무실에 도착하면 다시 하나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오늘 이 하루를 시작합니다.

    오늘 만나는 사람들을 지혜롭게 대하게 하소서.

    오늘 진행되는 프로젝트들을 인도해 주소서.

    그 짧은 기도가 하루의 시작이었습니다.

    그 아침 기도의 내용이 매일 달랐습니다.

    어떤 날은 오늘 중요한 미팅이 있으니 지혜를 주소서라는 기도였습니다.

    어떤 날은 어제 직원과의 관계가 불편했는데 오늘 잘 풀리게 해주소서라는 기도였습니다.

    어떤 날은 걱정이 있어서 그냥 하나님 오늘 하루를 맡깁니다라는 한 마디가 전부였습니다.

    그 기도가 길지 않았습니다.

    화려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기도가 하루를 달라지게 했습니다.

    기도하고 나서 책상을 정리하고 컴퓨터를 켜는 것과 그냥 켜는 것이 달랐습니다.

    기도 후에 시작하는 하루는 내가 혼자 이 하루를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어떤 날은 기도를 마치고 일어서면서 이상하게 마음이 가벼웠습니다.

    무거운 것들이 조금 내려진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 가벼움이 하루를 버티는 힘이 됐습니다.

    26년 사업을 하면서 어려운 아침들이 있었습니다.

    국세가 밀리던 때에도 아침에 책상에 앉아 기도했습니다.

    50억 투자가 무산되던 즈음에도 아침마다 책상에서 기도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앞이 막히던 때에도 그 기도가 있었습니다.

    그 기도들이 환난 때에 우리의 구원이 되소서라는 말씀처럼 위기마다 구원의 손길을 경험하게 해줬습니다.

    30년 새벽기도와 매일 아침 책상에서의 기도가 26년 사업을 이끌어온 두 기둥이었습니다.

    여호와여 우리가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아침마다 우리의 팔이 되시며

    이사야 33장 2절은 유다 백성이 앗수르의 위협 앞에서 드린 기도입니다.

    우리가 주를 앙망하오니.

    주를 앙망한다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상황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주를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상황과 환경에 따라 반응하기 쉽습니다.

    아침에 출근하면 이미 쌓여있는 이메일들이 보입니다.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보입니다.

    그런데 제일 먼저 기도를 드리면 달라집니다.

    보이는 것들 너머에 있는 하나님을 먼저 바라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는 아침마다 우리의 팔이 되시며라는 약속이 책상에서의 아침 기도를 통해 경험됐습니다.

    내 팔이 약해도 하나님이 팔이 되신다는 것이 그 기도 후에 느껴졌습니다.

    주를 앙망하는 아침이 하루의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아침마다 우리의 팔이 되시는 하나님이 오늘 아침에도 내 책상 앞에 계셨습니다.

    절망도 익숙해지는 법이지만 아침마다 하나님을 앙망하는 것이 습관이 될 때 절망보다 소망이 더 커졌습니다.

    그 습관이 은퇴 후에도 이어지기를 소망합니다.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우리가 주를 앙망하오니라는 그 고백이 오늘 아침에도 내 책상에서 울려 퍼집니다.

    한 주도 우리 주님의 은혜로 소망이 지속되기를 기도합니다.

    아침마다 우리의 팔이 되시는 하나님이 오늘도 함께 계십니다.

    🙏 오늘의 기도

    여호와여 오늘 아침도 책상에서 주를 앙망합니다. 아침마다 우리의 팔이 되시며 환난 때에 우리의 구원이 되소서.

  • [조용한 고백]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말씀하십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말씀하십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말씀하십니다

    성경을 읽다가 문득 마음을 울리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성경은 모두 사람이 기록했습니다.

    모세가 기록했고,

    다윗이 노래했고,

    이사야가 예언했으며,

    바울과 베드로, 요한이 편지를 썼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부를까요.

    그 이유는 성경의 저자들이 자신의 생각만 기록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을 받아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저자들의 개성과 삶의 경험은 그대로 사용하시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전하도록 인도하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다 보면 하나님의 마음과 사람의 마음이 함께 느껴집니다.

    25년 동안 IT 기업을 경영하며 수많은 문서를 작성했습니다.

    제안서도 쓰고, 사업계획서도 쓰고, 직원들에게 편지도 보냈습니다.

    같은 내용이라도 누가 작성하느냐에 따라 글의 분위기와 전달력이 달라졌습니다.

    그 경험을 통해 성경을 다시 읽으니 새로운 사실이 보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말씀하시지만, 그 말씀 속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 있었습니다.

    묵상 배경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디모데후서 3:16)

    또한 베드로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베드로후서 1:21)

    성경은 단순한 종교 서적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역사 속으로 들어오셔서 사람들과 함께하시며 남기신 구원의 이야기입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께서 선지자들과 백성을 통해 일하셨고,

    신약에서는 예수님께서 사람들 가운데 거하시며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도들은 교회와 성도들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 편지들까지도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읽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다

    신약의 대부분은 사도들이 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겉으로 보면 평범한 편지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편지 속에는 성도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위로, 책망과 소망이 담겨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마음으로 글을 썼지만, 하나님은 그 마음을 통해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도구로만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과 함께 기뻐하시고,

    함께 아파하시며,

    함께 걸어가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하나님과 사람이 함께 만들어 간 믿음의 이야기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성경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25년 동안 사업을 하며 중요한 결정을 앞둘 때마다 성경을 펼쳤습니다.

    놀랍게도 수천 년 전에 기록된 말씀이 지금 제 상황에 꼭 맞는 답이 될 때가 많았습니다.

    그때마다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성경 속에만 계시는 분이 아니라, 오늘도 우리의 삶 속에서 같은 방식으로 말씀하시고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려 주는 책일 뿐 아니라, 지금도 우리와 동행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는 책입니다.

    오늘도 말씀을 펼쳐 보십시오.

    그 말씀 속에서 오래전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던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의 삶에도 동일하게 말씀하고 계심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 성경별곡 묵상 유튜브 채널

    매일 새벽 말씀 묵상을 영상으로도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말씀이 삶이 되는 하루를 함께 만들어 가길 소망합니다.

    ▶ 유튜브 채널: https://youtube.com/channel/UCg2DqdMTJ1ADcbm8LBfnVZg

  • [조용한 고백] 사랑은 버리는 것이다: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사랑은 버리는 것이다: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사랑은 버리는 것입니다

    사랑은 무엇을 더 많이 가지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기꺼이 내려놓을 수 있는가를 묻습니다.

    우리는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쉽게 놓지 못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시간을 내려놓지 못하고,

    욕심을 내려놓지 못하고,

    자존심과 성공을 내려놓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랑은 말로는 고백하지만 삶에서는 자주 흔들립니다.

    25년 동안 IT 기업을 경영하며 이 사실을 깊이 배웠습니다.

    가족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일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세상의 성취와 인정받는 마음을 쉽게 붙잡고 있었습니다.

    두 가지를 모두 붙잡으려 했지만 결국 마음은 공허했고, 어느 하나도 온전히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사랑은 더 많이 가지는 것이 아니라, 더 소중한 것을 위해 다른 것을 내려놓는 결단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묵상 배경

    예수님은 마태복음 10장 37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마태복음 10:37)

    또한 부활하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세 번 같은 질문을 하셨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요한복음 21장)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도 독자 이삭을 통해 같은 질문을 하셨습니다.

    “네 마음의 가장 첫 자리에 내가 있느냐.”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위해 독생자를 내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버림의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사랑은 내려놓을 때 완성됩니다

    여기서 버린다는 것은 단순히 물질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마음속에서 하나님보다 앞서 있는 것들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욕심과 교만,

    두려움과 집착,

    세상의 인정과 성공을 향한 지나친 갈망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가장 소중한 자리를 둘에게 동시에 내어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가장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다른 것이 마음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면, 우리의 사랑은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IT 업계에서도 가장 좋은 결과는 한 가지 목표에 집중했을 때 찾아왔습니다.

    이것도 잡고 저것도 놓치지 않으려 할 때는 결국 둘 다 잃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신앙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가장 먼저 모실 때 삶의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버릴 때 비로소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랑에는 언제나 내려놓음이 따릅니다.

    그래서 버림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아픔은 잃는 아픔이 아니라 더 귀한 것을 얻는 과정입니다.

    25년 동안 사업을 하며 가장 중요한 것을 위해 덜 중요한 것을 내려놓았을 때, 비로소 성장의 길이 열렸습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보다 앞서 있던 것들을 하나씩 내려놓을 때, 하나님과의 관계는 이전보다 훨씬 깊어졌습니다.

    돌이켜 보면 하나님은 무엇을 빼앗기 위해 버리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더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시기 위해 내려놓게 하셨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해 보십시오.

    “주님, 제 마음에서 주님보다 앞서 있는 것이 있다면 기꺼이 내려놓게 하소서.”

    사랑은 붙잡는 것이 아니라, 가장 소중한 분을 위해 기꺼이 내려놓는 믿음의 결단입니다.

    오늘 하루 하나님을 더 사랑하기 위해 내려놓아야 할 한 가지를 실천하는 은혜의 시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 성경별곡 묵상 유튜브 채널

    매일 새벽 말씀 묵상을 영상으로도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말씀이 삶이 되는 하루를 함께 만들어 가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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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희 믿음대로 되라 (마태복음 9장 29절) – IT CEO의 새벽 잠언

    너희 믿음대로 되라 (마태복음 9장 29절) – IT CEO의 새벽 잠언

    “이에 예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이르시되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시니” (마태복음 9장 29절)

    임대 사무실을 자가로 소유하고 싶었는데 뜻하지 않게 길이 열렸다

    너희 믿음대로 되라는 이 말씀을 임대 사무실을 자가로 소유하고 싶다는 소망을 품었을 때 뜻하지 않게 신한은행 부지점장의 전화가 오고 기술신용보증재단의 보증으로 오피스텔을 매수하게 됐던 경험을 지나 붙들었습니다.

    사업을 하면서 임대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이 오랫동안 이어졌습니다.

    매달 임대료를 내면서 이 공간이 내 소유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업을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라면 언젠가는 내 소유의 공간에서 일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소망이었습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방법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자금이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적인 계산으로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 소망을 품기까지 오랜 시간이 있었습니다.

    기도하면서 그 마음을 점검했습니다.

    더 좋은 환경에서 직원들이 일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 마음이 욕심보다는 사명에 가까웠습니다.

    하나님이 이 사업을 통해 하시려는 일들이 더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 믿음이 소망을 만들었고 그 소망이 기도가 됐습니다.

    그래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사무실을 자가로 소유할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을까요.

    하나님이 허락하신다면 길을 열어주소서.

    그 기도를 드리고 나서 기다렸습니다.

    당장 무언가가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뜻하지 않게 전화가 왔습니다.

    신한은행 부지점장이었습니다.

    내가 연락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먼저 연락이 온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일반적인 영업 전화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달랐습니다.

    그 분이 안내해주는 내용이 내가 소망하던 것과 정확히 맞아떨어졌습니다.

    기술신용보증재단의 보증을 통해 자금을 융통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내가 먼저 알아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그 길을 만들어 보내주신 것이었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이것이 주님이 열어주시는 길이군요.

    심사 결과가 통과됐습니다.

    신한은행에서 자금이 나왔습니다.

    오피스텔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그 순간 너희 믿음대로 되라는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믿음으로 소망했던 것이 실제가 됐습니다.

    세상의 어떠한 환경도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를 막을 수 없음을 그 과정이 가르쳐줬습니다.

    너희 믿음대로 되라는 약속이 그 환경을 뚫고 이루어졌습니다.

    은퇴를 앞두고 있는 지금 그 오피스텔이 두 개가 됐습니다.

    하나님이 더 채워주셨습니다.

    믿음의 삶이 이어지면서 하나님이 이루어주시는 것들도 이어졌습니다.

    그 모든 것이 내가 잘나서가 아니었습니다.

    믿음으로 구했을 때 주님이 만져주신 것이었습니다.

    너희 믿음대로 되라

    마태복음 9장 29절은 두 맹인이 예수님께 나아와 고쳐달라고 구하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이 그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그들이 대답했습니다.

    주여 그러하오이다.

    그때 예수님이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믿음대로 되라.

    믿음이 먼저였습니다.

    증거가 먼저가 아니었습니다.

    믿는 것이 먼저였고 이루어지는 것이 그 다음이었습니다.

    우리 몸 안에 문제가 생겨서 아플 때 아무리 피부를 매만져도 낫지 않습니다.

    오직 주님께서 만져주실 때 비로소 이루어집니다.

    임대에서 자가 소유로 바뀐 것도 내가 해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이 만져주신 것이었습니다.

    믿음으로 구하십시오 뜻하지 않은 방식으로 길을 여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단순히 그분의 말씀을 믿기 원하시며 다른 확증이나 증거가 필요 없기를 원하십니다.

    오늘도 방법이 보이지 않는 소망을 품고 계신 분들이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기도하십시오.

    포기하지 마십시오.

    뜻하지 않은 곳에서 전화가 올 수 있습니다.

    생각지 못한 방식으로 길이 열릴 수 있습니다.

    너희 믿음대로 되라는 그 약속이 오늘도 살아있습니다.

    모든 근원을 해결하는 것은 주님께 있음을 잊지 않는 삶이 너희 믿음대로 되라는 약속 안에 거하는 삶이었습니다.

    🌿 오늘의 묵상 한 줄

    임대 사무실을 자가로 소유하고 싶다고 기도했을 때 뜻하지 않게 은행에서 먼저 전화가 왔습니다. 너희 믿음대로 됐습니다.

  •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에베소서 2장 14절) – IT CEO의 새벽 잠언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에베소서 2장 14절) – IT CEO의 새벽 잠언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에베소서 2장 14절)

    담임 목사님의 말씀에 찔려 상처 준 사람에게 인삼을 선물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셨다는 이 말씀을 담임 목사님의 설교에 심장이 찔려 상처 준 사람에게 인삼을 선물했던 경험을 지나 붙들었습니다.

    정든 교회를 떠나 새로운 믿음의 공동체에 정착한 지 9년이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이었습니다.

    주일 아침이었습니다.

    담임 목사님께서 강단에 오르셨습니다.

    그날 말씀이 심장을 저격하는 거룩한 말씀의 화살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성경에서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진짜 품어야 할 가장 지극히 작은 자의 범주 안에는 놀랍게도 과거 내 인생을 철저하게 해롭게 하고 내 가슴에 지워지지 않는 칼날의 상처를 준 뒤 나를 배신하고 떠나간 내 원수 같은 그 사람까지도 반드시 포함시켜야 하는 것이 십자가의 진짜 복음입니다.

    그 말씀이 가슴에 꽂혔습니다.

    그 상처가 얼마나 깊었는지 모릅니다.

    사랑했던 공동체에서 받은 상처였습니다.

    함께 신앙생활을 하던 사람에게 받은 상처였기에 더 아팠습니다.

    교회 안에서 받은 상처는 세상에서 받은 상처보다 더 오래갔습니다.

    그 상처가 쌓여서 담이 됐습니다.

    높고 두꺼운 담이었습니다.

    새로운 공동체에 정착하면서 그 담 뒤에서 지냈습니다.

    용서라는 단어를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기도해도 그 마음이 쉽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날 목사님의 말씀이 달랐습니다.

    원수 같은 그 사람까지도 품어야 하는 것이 십자가의 진짜 복음이라는 말씀이 그동안 외면하고 있던 그 담을 정면으로 가리켰습니다.

    그 말씀에 찔렸습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런데 그 아픔이 변화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리고 명절이 됐습니다.

    상처 준 사람에게 인삼을 선물했습니다.

    인삼을 보내기로 결정했을 때 손이 떨렸습니다.

    보내는 것이 맞는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계속 마음에 있었습니다.

    결국 보냈습니다.

    그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그 담을 향해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그 한 걸음이 내 마음 안에 있던 담을 조금씩 낮추기 시작했습니다.

    선물을 보내고 나서 이상하게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무거운 것이 조금 내려진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화평이 담을 허무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에베소서 2장 14절은 예수님이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막힌 담을 허셨다는 말씀입니다.

    그 담은 오랫동안 쌓여온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자기 육체로 그 담을 허셨습니다.

    십자가가 담을 허무는 방식이었습니다.

    우리가 진짜 품어야 할 지극히 작은 자의 범주에 원수 같은 사람까지 포함된다는 목사님의 말씀이 그것이었습니다.

    지금도 그 사람에 대한 의문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인삼을 보낸 그 한 걸음이 의문보다 화평을 선택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는 말씀처럼 예수님이 화평이시기 때문에 그 화평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내 힘으로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화평이 그 담을 향해 나아가게 했습니다.

    담을 허물고 있는 존재인가요 아니면 쌓고 있는 존재인가요

    우리는 예수님이 허무신 담을 다시 쌓고 있습니다.

    세상과 이웃과 가족과 형제와 심지어 교회에서조차 담을 쌓고 있습니다.

    얽히고설킨 미로 같은 우리 삶이지만 막힌 벽을 열어주는 것은 출입구 문이었습니다.

    담임 목사님의 말씀이 그 출입구였습니다.

    오늘 담을 쌓고 있는 관계가 있으십니까.

    인삼 한 박스가 담을 허무는 첫 걸음이 됐습니다.

    오늘 그 한 걸음을 내딛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오늘의 질문

    지금 나는 담을 허물고 있습니까 아니면 쌓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화평으로 그 담을 향해 첫 걸음을 내딛겠습니까.

  • [조용한 고백] 마음의 눈을 밝히는 삶: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마음의 눈을 밝히는 삶: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마음의 눈을 밝히는 삶

    우리에게는 세상을 바라보는 두 개의 눈이 있습니다.

    하나는 육신의 눈이고, 다른 하나는 마음의 눈입니다.

    육신의 눈은 눈에 보이는 세상을 바라보지만, 마음의 눈은 하나님과 영적인 세계를 바라보게 합니다.

    또한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게 하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게 합니다.

    25년 동안 IT 기업을 경영하며 마음의 눈이 어두웠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경쟁자의 부족함은 잘 보이는데 제 허물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현실의 문제는 크게 보였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겉으로는 바쁘게 일했지만 마음은 점점 메말라 갔고, 그 시기가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어두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는 눈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가 결정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묵상 배경

    사도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을 위해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인지 알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에베소서 1:18)

    바울은 지식이나 능력이 아니라 마음의 눈이 밝아지기를 기도했습니다.

    마음의 눈이 열려야 하나님의 부르심을 알 수 있고, 하나님의 약속과 소망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 또한 기도했습니다.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의 눈을 밝히소서.”
    (시편 13:3)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이 밝아질 때 삶의 방향도 함께 밝아집니다.

    마음의 눈이 어두우면

    마음의 눈이 어두우면 현실만 크게 보입니다.

    문제는 커 보이고, 하나님의 약속은 희미해집니다.

    다른 사람의 허물은 쉽게 보이지만 자신의 부족함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기도는 형식이 되고, 말씀의 감동도 점점 사라집니다.

    저 역시 IT 업계에서 경쟁과 성과에만 집중했을 때는 늘 문제와 경쟁자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시선을 돌리기 시작하자 같은 상황 속에서도 새로운 길이 보였습니다.

    환경은 그대로였지만 마음의 눈이 달라지니 세상이 다르게 보였습니다.

    유한한 존재로 사는 법

    우리는 스스로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유한한 존재이기에 하나님의 빛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말씀 앞에 머물며, 성령의 음성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겸손이 필요합니다.

    마음의 눈은 우리의 힘으로 밝아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열리기 때문입니다.

    25년 동안 사업을 하며 가장 분명한 길을 보았던 순간은 제 능력이 가장 뛰어났을 때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주님, 제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십시오.”라고 기도했던 순간이었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현실보다 먼저 소망을 보게 하셨고, 문제보다 먼저 은혜를 보게 하셨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 마음의 눈을 밝혀 달라고 기도해 보십시오.

    우리의 시선이 하나님께 머물 때, 현실은 그대로일지라도 삶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합니다.

    오늘 하루 하나님의 약속과 은혜를 더욱 선명하게 바라보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 성경별곡 묵상 유튜브 채널

    매일 새벽 말씀 묵상을 영상으로도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말씀이 삶이 되는 하루를 함께 만들어 가길 소망합니다.

    ▶ 유튜브 채널: https://youtube.com/channel/UCg2DqdMTJ1ADcbm8LBfnVZg

  • 외인에게 대해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 (골로새서 4장 5절) – IT CEO의 새벽 잠언

    외인에게 대해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 (골로새서 4장 5절) – IT CEO의 새벽 잠언

    “외인에게 대해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 (골로새서 4장 5절)

    새벽예배 금요예배 셀모임이 세월을 아끼는 방식이었다

    외인에게 대해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는 이 말씀을 새벽예배 금요예배 셀모임으로 26년 사업의 시간을 영원한 것을 위해 써온 경험을 지나 붙들었습니다.

    26년 사업을 하면서 시간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늘 있었습니다.

    해야 할 일들이 쌓여있었습니다.

    프로젝트 마감이 있었습니다.

    직원들 관리가 있었습니다.

    거래처 미팅이 있었습니다.

    그 모든 것들이 시간을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그 바쁜 시간 속에서도 새벽예배를 드리러 갔습니다.

    금요예배를 드리러 갔습니다.

    셀모임에 참석했습니다.

    그 시간들이 세월을 아끼는 것이었습니다.

    새벽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날이 생기면 그 날이 달랐습니다.

    새벽예배를 드린 날과 드리지 못한 날의 차이를 몸으로 알게 됐습니다.

    새벽예배를 드리지 못한 날은 하루가 조금 더 버거웠습니다.

    같은 문제인데 더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그 차이가 새벽예배를 30년 동안 이어가게 하는 힘이 됐습니다.

    금요예배도 처음부터 쉬웠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금요일 저녁은 한 주를 마무리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피곤했습니다.

    그냥 쉬고 싶은 날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금요예배를 드리고 나면 그 피곤이 달라졌습니다.

    몸의 피곤은 그대로였는데 마음의 피곤이 내려진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 느낌이 금요예배를 이어가게 했습니다.

    셀모임은 또 다른 선물이었습니다.

    셀모임에서 다른 성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신앙이 성장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함께 기도할 때 혼자 기도할 때보다 더 깊은 자리가 있었습니다.

    그 자리들이 모두 영원한 것을 위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세월을 아끼라는 말씀처럼 그 시간들이 가장 가치 있는 시간 사용이었습니다.

    사업을 하면서 영원하지 않은 것들을 추구하는 유혹이 많았습니다.

    더 많은 프로젝트를 수주하고 더 많은 매출을 올리는 것이 목표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목표들이 영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수주한 프로젝트는 끝나면 사라졌습니다.

    영원하지 않은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새벽예배에서 드린 기도는 영원했습니다.

    금요예배에서 받은 말씀은 영원했습니다.

    셀모임에서 나눈 공동체는 영원한 것을 향해 함께 걸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인생의 목적이 영원한 것에 있는가 돌이켜 봐야 합니다.

    새벽예배 금요예배 셀모임이 계속 그것을 가르쳐줬습니다.

    하나님 나라만이 영원하다는 것이 그 시간들을 통해 마음에 새겨졌습니다.

    그 새겨짐이 사업의 목표를 조금씩 바꿔갔습니다.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이 허락하신 일을 충실히 하는 것이 목적이 됐습니다.

    그 목적의 변화가 세월을 아끼는 것이었습니다.

    외인에게 대해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

    골로새서 4장 5절은 바울이 세월을 아끼라고 권면하는 말씀입니다.

    세월을 아끼라는 헬라어는 시간을 사는 것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시간을 값을 주고 사듯 아껴서 쓰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추구하고 원하는 모든 것의 대부분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영원한 것은 하나님 나라뿐이었습니다.

    세월을 아끼는 것은 영원한 것을 사모하며 추구하는 인생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새벽예배 금요예배 셀모임이 그 영원한 것을 사모하며 추구하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영원한 것을 사모하며 추구하는 인생이 세월을 아끼는 것이다

    시간은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집니다.

    그 시간을 어디에 쓰느냐가 중요합니다.

    새벽예배 금요예배 셀모임에 쓴 그 시간들이 가장 가치 있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영원한 것을 위해 쓴 시간들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도 새벽예배를 드리러 갑니다.

    세월을 아끼는 그 시간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언제나 샬롬이기를 소망합니다.

    🌿 오늘의 묵상 한 줄

    새벽예배 금요예배 셀모임이 세월을 아끼는 것이었습니다. 영원한 것을 위해 쓴 그 시간들이 26년 사업을 이끌어온 뿌리였습니다.

  •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셨으니 주 앞에서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사도행전 2장 28절) – IT CEO의 새벽 잠언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셨으니 주 앞에서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사도행전 2장 28절) – IT CEO의 새벽 잠언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셨으니 주 앞에서 내게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사도행전 2장 28절)

    입찰에서 탈락해도 포기하지 않으니 하나님이 다른 길을 열어주셨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셨으니 주 앞에서 내게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라는 이 말씀을 입찰에서 탈락하고 절망스러운 순간에도 주를 의지하니 하나님이 다른 길을 열어주셨던 경험을 지나 붙들었습니다.

    IT 사업을 하면서 입찰에 도전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정성 평가와 정량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야 수주가 됐습니다.

    제안서를 정성껏 준비했습니다.

    PT를 연습했습니다.

    팀원들과 함께 밤을 새워 준비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결과가 탈락으로 나오는 때가 있었습니다.

    탈락 통보를 받을 때의 느낌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정성을 다해 준비했는데 탈락이라는 한 마디가 돌아올 때의 그 무거움이었습니다.

    직원들을 보면서 미안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입찰 탈락을 경험한 횟수가 적지 않습니다.

    처음 탈락했을 때는 그 충격이 컸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준비했는데 왜 안 되는 건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탈락을 거듭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

    내가 원하는 길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반드시 이 프로젝트를 수주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은 다른 계획을 갖고 계셨습니다.

    탈락한 그 프로젝트를 수주했다면 오히려 더 힘들어졌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탈락했기 때문에 더 좋은 프로젝트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계셨습니다.

    탈락은 끝이 아니라 하나님이 다른 길을 준비하고 계신다는 신호였습니다.

    그런데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주를 의지했습니다.

    탈락한 그 자리에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길이 막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다른 길을 열어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됐습니다.

    탈락한 입찰이 있었는데 예상치 못한 다른 프로젝트가 들어왔습니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셨으니라는 말씀이 그 경험을 통해 살아있었습니다.

    팀원들도 탈락 소식을 들으면 힘들어했습니다.

    그럴 때 내가 팀원들에게 했던 말이 있었습니다.

    이 길이 막혔으면 하나님이 더 좋은 길을 준비하고 계신 겁니다.

    포기하지 말고 다음을 준비합시다.

    그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믿음이 실제로 경험됐기 때문이었습니다.

    절망 중에 있을 때 필요한 것이 희망이었습니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보이신다는 그 희망이 탈락 후에 다시 일어서게 했습니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셨으니 주 앞에서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사도행전 2장 28절은 다윗의 시편을 베드로가 인용한 말씀입니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셨으니.

    생명의 길을 보이셨다는 것입니다.

    내가 선택한 길이 아니라 주께서 보이신 길이었습니다.

    입찰이 탈락됐을 때 내가 선택한 그 길이 닫혔습니다.

    그런데 주께서 다른 생명의 길을 보이셨습니다.

    우리가 희망이 필요할 때는 절망 중에 있을 때입니다.

    탈락이라는 절망 중에 생명의 길을 보이시는 하나님이 희망이었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주를 의지하는 것이 생명의 길로 나아가는 방식이었습니다.

    이 길이 막혔다면 하나님이 더 좋은 길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이 세상에서 사명을 다하는 그날까지 요동하지 않게 하신다는 말씀처럼 입찰 탈락으로 요동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 주께서 생명의 길을 보이신다는 믿음이었습니다.

    주 앞에서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는 그 약속이 탈락 후 새로운 길이 열릴 때마다 경험됐습니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셨으니 주 앞에서 내게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는 그 약속이 오늘도 나를 향한 약속입니다.

    그 약속을 붙들고 오늘도 포기하지 않습니다.

    공의와 겸손과 담대함과 감사함으로 주님이 열어주시는 그 생명의 길로 오늘도 행진합니다.

    💭 오늘의 질문

    지금 막힌 길 앞에 서 있습니까. 하나님이 다른 생명의 길을 보이실 것을 믿고 포기하지 않겠습니까.

  • [조용한 고백] 마음의 채널을 바꾸는 법: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마음의 채널을 바꾸는 법: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마음의 채널을 바꾸는 법

    살다 보면 어느 순간 하나님이 멀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기도는 형식이 되고, 말씀은 마음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예배를 드려도 감동이 없고, 이유 없이 마음이 메말라집니다.

    그럴 때 우리는 종종 환경을 탓합니다.

    하지만 돌아보면 하나님이 떠나신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방향이 조금씩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25년 동안 IT 기업을 경영하며 가장 바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해야 할 일은 끝이 없었고, 중요한 회의와 일정이 하루를 가득 채웠습니다.

    ‘오늘은 너무 바쁘니 기도는 짧게 해야지.’

    ‘말씀은 내일 읽으면 되겠지.’

    그렇게 하루 이틀 미루다 보니 하나님과의 거리는 점점 멀어졌습니다.

    겉으로는 모든 일이 잘되는 것 같았지만 마음에는 평안이 사라졌습니다.

    작은 일에도 쉽게 흔들리고, 사람들의 말에 예민해졌습니다.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주님 없이 바쁜 삶은 방향을 잃은 달음질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묵상 배경

    시편 143편에서 다윗은 하나님과 멀어진 자신의 마음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 영이 내 속에서 상하며 내 마음이 내 속에서 처량하도다.”
    (시편 143:4)

    다윗은 마치 죽은 지 오래된 사람처럼 힘을 잃었다고 고백합니다.

    세상이 온통 어둠으로 덮인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절망 속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손을 하나님께 내밀었고, 다시 주님을 찾았습니다.

    회복은 완벽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솔직히 나아가는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왜 주님을 잃어버릴까

    하나님은 우리 곁을 떠나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은 너무 쉽게 다른 곳으로 향합니다.

    분주함이 기도를 밀어내고,

    성공이 교만을 가져오며,

    익숙함이 감사와 간절함을 잃게 만듭니다.

    저 역시 IT 업계에서 좋은 성과를 거둘 때, 어느새 하나님보다 제 경험과 능력을 더 의지하고 있었습니다.

    기도보다 계획을,

    말씀보다 업무를 먼저 생각했습니다.

    주님을 잃어버린 이유는 환경 때문이 아니라, 마음의 방향이 달라졌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음의 채널을 다시 하나님께

    하나님을 다시 만나는 길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먼저 내가 어디에서 하나님과 멀어졌는지 돌아보는 것입니다.

    잠시라도 분주함을 내려놓고 침묵하는 시간을 가져보십시오.

    그리고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말씀드리십시오.

    “주님, 제가 주님보다 다른 것들을 더 붙잡고 살았습니다.”

    그 진실한 고백을 하나님은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자신을 간절히 찾는 사람을 언제나 만나 주십니다.

    돌아온 자를 꾸짖기보다 품어 주시고, 이전보다 더 깊은 은혜로 회복시켜 주십니다.

    돌이켜 보면 제 삶도 그랬습니다.

    주님을 잃어버렸다가 다시 만날 때마다 믿음은 더 깊어졌고, 감사는 더 커졌습니다.

    오늘도 혹시 마음이 메말라 있다면 하나님께 채널을 다시 맞춰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오늘 하루, 하나님과 다시 연결되는 은혜의 시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 성경별곡 묵상 유튜브 채널

    매일 새벽 말씀 묵상을 영상으로도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말씀이 삶이 되는 하루를 함께 만들어 가길 소망합니다.

    ▶ 유튜브 채널: https://youtube.com/channel/UCg2DqdMTJ1ADcbm8LBfnVZ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