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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용한 고백] 자신을 정복할 수 있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자신을 정복할 수 있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자신을 정복할 수 있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훌륭한 사람들은 세상을 정복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정복했습니다.

    존 맥스웰은 말했습니다.

    우리가 어리석을 때는 세상을 정복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우리가 지혜로울 때는 자신을 정복하기를 원한다고.

    에베레스트 산을 정복했던 힐러리 경은 말했습니다.

    내가 정복한 것은 산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고.

    그는 산을 정복하기 전에 자신을 먼저 정복했습니다.

    자기를 정복한다는 말은 자기를 다스린다는 말이었습니다.

    자기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자신을 알아야 했습니다.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알아야 했습니다.

    자신의 성향과 기질을 알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자기를 아는 사람은 총명한 사람이었습니다.

    솔로몬은 말했습니다.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낫다고.

    마음을 다스린다는 말은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다스릴 줄 안다는 것이었습니다.

    자기 힘으로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기의 감정이나 생각을 전환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을 정복한다는 것이 왜 세상을 정복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지를 생각합니다.

    세상을 정복하는 것은 외부를 향한 싸움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을 정복하는 것은 내부를 향한 싸움이었습니다.

    내부의 적이 외부의 적보다 더 강했습니다.

    사울이 그랬습니다.

    전쟁에서는 이겼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시기심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그 시기심이 그를 무너뜨렸습니다.

    반면에 요셉이 그랬습니다.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 앞에서 자신을 다스렸습니다.

    그 순간의 자신을 정복하는 것이 결국 애굽을 다스리는 자리로 이끌었습니다.

    다윗이 그랬습니다.

    사울을 죽일 기회가 두 번 있었습니다.

    자신의 분노와 원한을 다스렸습니다.

    그 다스림이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만들었습니다.

    바울이 고백했습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한다고.

    가장 많이 사역한 사도가 가장 철저하게 자신을 정복한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을 정복할 수 있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자기를 정복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정복당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 자신이 정복당한 사람만이 자기를 정복할 수 있었습니다.

    자기의 마음을 하나님께 내드린 자만이 자신의 마음을 다스릴 수 있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기 싫을 때 일어나는 것이었습니다.

    기도하기 귀찮을 때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작은 자신과의 싸움이었습니다.

    그 작은 싸움을 매일 이기는 것이 자신을 정복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을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설득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이 가정을 다스리고 일터를 다스릴 수 있었습니다.

    내부의 싸움에서 이기는 사람이 외부의 싸움에서도 이겼습니다.

    그것이 자신을 정복하는 것이 세상을 정복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이유였습니다.

    자신을 아는 것이 총명이었고 자신을 다스리는 것이 지혜였습니다.

    그 총명과 지혜가 성령님의 다스림에서 왔습니다.

    날마다 우리의 마음이 성령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이 그 시작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정복당하는 하루가 오늘도 시작됩니다.

    🌿 오늘의 묵상 한 줄

    자신을 정복할 수 있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정복당할 때 비로소 자신을 정복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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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용한 고백] 묵상하면 형통해지는 이유 — 반복이 습관을 만들고 습관이 존재를 만든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묵상하면 형통해지는 이유 — 반복이 습관을 만들고 습관이 존재를 만든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우리의 습관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수많은 반복된 행동을 통해서 습관이 만들어집니다.

    세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의 습관이 인생의 행복과 불행 성공과 실패를 결정했습니다.

    좋은 습관은 아름다운 삶을 만들고 다른 사람에게도 좋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러나 나쁜 습관은 자신에게뿐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도 나쁜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며 벌레와 해물은 다 길들므로 사람에게 길들었거니와 사람은 잘 길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예레미야는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우리 본성의 문제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본성을 너무도 잘 아시기 때문에 우리를 변화시키기 위해 반복의 원리를 사용하셨습니다.

    사복음서에서도 예수님의 말씀은 반복됩니다.

    신명기를 보면 그동안 있었던 일을 반복해서 말씀하십니다.

    열왕기상하의 말씀이 역대상하에서 반복됩니다.

    선지자들의 예언도 반복되고 시편 잠언의 말씀도 반복됩니다.

    바울 서신은 더 많이 반복됩니다.

    하나님은 반복을 통해서 우리의 생각에 하나님의 말씀을 젖어들게 하십니다.

    묵상하면 형통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반복이 습관을 만들고 습관이 존재를 만들기 때문이었습니다.

    반복의 원리가 왜 그토록 중요한지를 더 생각합니다.

    자주 생각하는 것이 더 쉽게 떠오르게 됩니다.

    자주 하는 행동이 더 자연스러워집니다.

    그것이 습관이 되는 원리였습니다.

    말씀을 자주 읽으면 말씀이 더 쉽게 떠오르게 됩니다.

    그것이 말씀이 습관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다니엘이 그랬습니다.

    하루 세 번 기도했습니다.

    그 반복이 사자 굴에서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법이 바뀌어도 그 습관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습관이 그를 지켰습니다.

    묵상하면 형통해지는 이유

    시편 1편이 그것을 말했습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는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주야로 묵상하는 것이었습니다.

    낮에도 밤에도 반복했습니다.

    그 반복이 형통함을 만들었습니다.

    여호수아에게도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리하면 네가 형통하리라.

    반복이 형통함의 조건이었습니다.

    나쁜 습관은 어떻게 바꿀 수 있습니까.

    좋은 습관으로 대체하는 것이었습니다.

    나쁜 생각이 들 때 말씀을 떠올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대체가 반복될 때 습관이 바뀌었습니다.

    바울이 말했습니다.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이것들을 생각하라고.

    좋은 것을 반복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나쁜 습관을 대체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오늘도 그 반복을 합니다.

    말씀을 읽습니다.

    묵상합니다.

    기도합니다.

    하루아침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반복합니다.

    묵상하면 형통해지는 이유가 반복 안에 있었습니다.

    💭 오늘의 질문

    오늘 나에게 반복되고 있는 습관이 무엇입니까. 그 습관이 나를 어떤 존재로 만들어가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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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용한 고백] 가장 큰 은혜는 은혜를 잊지 않는 은혜입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가장 큰 은혜는 은혜를 잊지 않는 은혜입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가장 큰 은혜는 은혜를 잊지 않는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이 믿음에 서 있는 것도 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의 특징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린 경험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은혜를 잊어버림으로 은혜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경험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은혜를 잊어버렸습니다.

    교만해졌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자신의 것으로 도적질하여 누리며 살아갔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은혜의 손을 거두게 되는데 그때 육신의 정욕에 빠져 죄를 범하게 됩니다.

    그러면 죽은 지 오랜 자 같이 됐습니다.

    고통과 근심에 빠지게 됐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그랬습니다.

    홍해가 갈라졌습니다.

    만나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에 들어가자 은혜를 잊었습니다.

    바알을 섬겼습니다.

    하나님이 손을 거두셨습니다.

    이방 나라들에게 시달렸습니다.

    그 고통 속에서야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했습니다.

    솔로몬도 그랬습니다.

    하나님께 지혜를 받았습니다.

    부귀영화를 누렸습니다.

    그런데 은혜를 잊었습니다.

    히스기야가 그랬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15년이나 생명을 연장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바벨론 사신들이 찾아왔을 때 마음이 높아졌습니다.

    은혜 받은 것을 자기의 것처럼 자랑했습니다.

    은혜를 잊어버리는 그 순간이 가장 위험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은혜를 잊지 않을 수 있습니까.

    다윗처럼 기억하는 것이었습니다.

    시편에 다윗이 얼마나 많이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고백했는지 모릅니다.

    지난날의 은혜를 기억할 때 오늘도 겸손할 수 있었습니다.

    가장 큰 은혜는 은혜를 잊지 않는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은혜를 받으면 은혜를 잊어버리고 교만하여질 줄 알면서도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우리를 쓰시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사람을 잃어버릴 위험에 처하는 고통을 통해서라도 우리가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만을 의지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다윗이 그 은혜를 알았습니다.

    주의 인자가 영원하고 너무 커서 하늘에 미친다고 하였습니다.

    자신이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의지했습니다.

    은혜를 잊어버리고 죄의 고통에 처할 때에도 오직 주의 은혜만을 의지했습니다.

    그런 사람은 그 어떤 사람도 비판하거나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교만하여 넘어진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은혜를 잊어버리면 누구나 똑같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을 아는 것이 진정한 겸손이었습니다.

    겸손은 은혜가 임하는 가장 큰 통로였습니다.

    바울이 말했습니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라.

    그 고백이 바울을 가장 큰 사도로 만든 비결이었습니다.

    오늘 내가 이룬 것이 있습니까.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기억하십시오.

    겸손은 은혜가 임하는 가장 큰 통로였습니다.

    오늘도 은혜를 잊지 않는 은혜를 구합니다.

    🙏 오늘의 기도

    주님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은혜를 잊어버리지 않게 하소서. 겸손히 은혜만을 의지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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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용한 고백] 삶의 세 가지 원칙 — 속도보다 방향, 동기, 말미암음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삶의 세 가지 원칙 — 속도보다 방향, 동기, 말미암음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우리가 살아가야 할 원칙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빨리 목표를 이루느냐보다는 내 삶의 방향이 어디로 가고 있는가가 더 중요했습니다.

    속도만을 생각하고 방향이 잘못되면 빠른 만큼 되돌아가야 할 길이 더 멀어졌습니다.

    삶의 방향을 바르게 가르쳐주는 나침반이 성경이었습니다.

    세상은 속도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빠를수록 좋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는 방향이 먼저였습니다.

    바른 방향으로 천천히 가는 것이 잘못된 방향으로 빨리 가는 것보다 나았습니다.

    아브라함이 갈 바를 모르고 나갔습니다.

    속도는 느렸습니다.

    방향이 맞았습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방향을 따라갔습니다.

    그것이 결국 믿음의 조상이 되는 길이었습니다.

    반면에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빙빙 돌았습니다.

    불순종이 방향을 잃게 만들었습니다.

    40년이 걸렸습니다.

    방향이 맞지 않으면 속도가 의미 없었습니다.

    두 번째는 어떤 일을 얼마나 많이 하느냐보다는 어떤 동기로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동기란 마음속의 감추어진 깊은 뜻을 헤아려 보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주를 위한 일이라고 할지라도 자신의 내면 깊은 숨은 의도 속에는 주님의 영광이 아닌 자기의 유익과 영광을 위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동기의 순수함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이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왜 하는지가 문제였습니다.

    마르다가 많이 일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마리아가 좋은 편을 선택했다고 하셨습니다.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왜 하는지가 중요했습니다.

    삶의 세 가지 원칙 — 속도보다 방향, 동기, 말미암음

    세 번째는 누구로 말미암아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자신만의 힘으로도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일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거나 쓰임 받지 못했습니다.

    오직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하는 일만이 하나님께 영광이 됐습니다.

    사울이 열심히 번제를 드렸습니다.

    내 힘으로 열심히 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다윗이 블레셋과 싸우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내가 올라가리이까.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싸움이 하나님의 영광이 됐습니다.

    모세가 그것을 알았습니다.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으시면 가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새벽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그 점검의 시간이었습니다.

    방향을 확인하는 것이었습니다.

    동기를 점검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이 세 가지 원칙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했습니다.

    얼마나 많이 하느냐보다 동기가 중요했습니다.

    열심히 하느냐보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하느냐가 중요했습니다.

    그 원칙으로 오늘을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 오늘의 묵상 한 줄

    속도보다 방향이 동기의 순수함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 중요합니다. 이 세 가지 원칙으로 오늘을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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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용한 고백] 우리는 지금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우리는 지금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우리는 지금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세상으로 가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 나라를 향해 가고 있는가.

    진리를 향해 가고 있는가.

    아니면 사람을 향해 가고 있는가.

    우리는 지금 사단이 지배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음란하고 패역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절대가치나 절대진리를 부정하고 인간 중심의 상대가치만을 추구하는 것을 말했습니다.

    개성 다양성 자율성을 강조하여 개인의 인권과 가치만을 추구함으로 개인이 신이 되어 살아갑니다.

    그래서 진리가 삶의 기준이 아니라 자기의 생각이나 자기의 뜻이 삶의 절대기준이 되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자기가 왕이 되어 왕의 대접을 받는 데 익숙해졌습니다.

    자기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든지 자기의 가치를 존중해 주지 않으면 언제든지 자기에게 맞는 사람이나 환경을 선택하며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세상이 됐습니다.

    가장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교회 안에서조차 이것이 사랑으로 둔갑하여 행하여지고 있었습니다.

    진리 안에서 사랑이 아닌 지극히 인간적인 사랑이 진리를 대적하고 교회의 거룩함을 무너뜨리는 귀신의 가르침에 사람들이 속고 있었습니다.

    이 시대가 왜 이렇게 됐는지를 생각합니다.

    진리보다 사람의 마음이 중요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불편한 진리보다 편안한 거짓이 선택됐습니다.

    책망보다 위로가 선택됐습니다.

    회개보다 인정이 선택됐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것을 사랑이라 하지 않았습니다.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진짜 사랑은 진리를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불편해도 진리를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이 그랬습니다.

    부자 청년에게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고 하셨습니다.

    그 청년이 근심하며 떠났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 말씀을 거두지 않으셨습니다.

    떠나가는 아픔이 있어도 진리를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주님의 사랑이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그런데 문제는 교회조차도 본질을 떠난 지 오래됐다는 것이었습니다.

    진리나 교회보다 인간의 가치를 더 중히 여김으로 회개나 책망을 못하는 교회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진리를 전하고 진리대로 살라고 하면 떠나는 아픔을 겪어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가감할 수 없고 타협할 수 없는 절대불변의 영원한 진리였습니다.

    예수님께만 구원이 있었습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다고 하셨습니다.

    찾는 자가 적어도 그 길이 맞는 길이었습니다.

    오늘 나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습니까.

    세상이 가는 방향으로 따라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좁은 문으로 들어가고 있습니까.

    자기를 버려야 했습니다.

    세상을 버려야 했습니다.

    진리가 불편해도 진리를 붙들어야 했습니다.

    주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셨습니다.

    그 진리가 이 시대에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진리를 붙드는 것이 이 시대의 가장 큰 용기였습니다.

    오늘도 그 진리를 붙들고 하나님 나라를 향해 걸어갑니다.

    💭 오늘의 질문

    오늘 나는 하나님 나라를 향해 가고 있습니까. 진리를 향해 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세상과 사람을 향해 가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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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용한 고백] 어떤 생각을 붙드느냐가 존재를 결정합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어떤 생각을 붙드느냐가 존재를 결정합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사람은 누구나 한 번에 두 가지를 동시에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하루에 수만 번의 생각을 하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생각이 감정과 행동을 결정합니다.

    어떤 생각을 붙드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존재와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육신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은 육신의 생각을 하기 때문이요 영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은 영의 생각을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생각이 어떻게 행동으로 이어지는지를 생각합니다.

    생각이 먼저 왔습니다.

    그 생각이 감정을 만들었습니다.

    그 감정이 행동을 만들었습니다.

    그 행동이 습관을 만들었습니다.

    그 습관이 존재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생각이 존재의 시작이었습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판 것이 갑자기 일어난 일이 아니었습니다.

    사단이 그 마음속에 넣어준 생각을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시작됐습니다.

    그 생각이 감정이 됐습니다.

    그 감정이 결정이 됐습니다.

    그 결정이 행동이 됐습니다.

    사울이 번민하여 죽을 지경에 이른 것도 육신의 생각인 시기를 털어내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윗도 여러 번 실수하고 죄를 범한 것이 바로 육신의 안일한 생각을 떨치지 못하는 데서부터 시작됐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어려움과 위기를 당할 때 하나님을 의지하고 말씀을 붙잡음으로 회복했습니다.

    위기가 도리어 큰 복이 됐습니다.

    베드로도 그랬습니다.

    주님을 세 번 부인한 후 닭이 울자 주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 말씀의 생각이 회개를 낳았습니다.

    회개가 전혀 다른 존재를 만들었습니다.

    말씀이 생각날 때 돌이킬 수 있었습니다.

    어떤 생각을 붙드느냐가 존재를 결정합니다

    바울이 말했습니다.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고.

    이것들을 생각할 때 다른 생각이 들어올 자리가 없었습니다.

    한 번에 두 가지 생각을 동시에 할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좋은 생각을 붙들면 나쁜 생각이 밀려났습니다.

    말씀을 붙들면 육신의 생각이 밀려났습니다.

    그것이 생각을 관리하는 방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생각을 바꾸고 너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생각을 바꾸는 것이 회개의 시작이었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 생각을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누구인가는 평소에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오늘의 나의 삶은 과거의 생각의 결과였습니다.

    오늘 어떤 생각을 붙잡느냐에 따라 내일이 결정됩니다.

    아름다운 사람은 아름다운 생각을 붙잡기 때문이었습니다.

    육신의 생각을 잘 털어내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도 말씀의 생각을 붙드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어떤 생각을 붙드느냐가 존재를 결정하기 때문이었습니다.

    🌿 오늘의 묵상 한 줄

    어떤 생각을 붙드느냐가 존재를 결정합니다. 오늘 말씀의 생각을 붙드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성경 말씀 더 깊이 읽기 → 대한성서공회

  • [조용한 고백]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바울은 말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그 선이 바로 아들의 형상을 본받는 것이었습니다.

    고난을 당하지 않고 넘어지지 않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그러지 못하는 것이 연약한 우리 인간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의 악 그리고 형제의 악 그리고 세상의 악을 통해서 우리를 아름답게 만드는 도구로 사용하시나 봅니다.

    우리는 연약합니다.

    오늘을 힘겨워합니다.

    주의 뜻 이루며 살기엔 부족합니다.

    넘어집니다.

    오늘 하루 또 실수합니다.

    그런데 그 날에 우리를 이루실 주는 완전하십니다.

    그 고백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기도가 가슴을 미어지게 합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이 기도가 얼마나 깊은지 모릅니다.

    가장 고통스러운 자리에서 자신을 못 박은 자들을 위해 드린 기도였습니다.

    알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틀렸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나쁘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알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그 이해가 용서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우리도 알지 못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알지 못하면서 형제에게 상처를 주었습니다.

    알지 못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것을 아시면서도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 긍휼 위에서 오늘도 살아갑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모든 것이라는 말이 마음에 걸립니다.

    좋은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고난도 포함이었습니다.

    넘어짐도 포함이었습니다.

    실수도 포함이었습니다.

    형제의 악도 포함이었습니다.

    알지 못하면서 행한 모든 것들도 합력의 재료가 됐습니다.

    그것을 합력하여 선으로 만드시는 하나님이 완전하십니다.

    요셉의 이야기가 그것이었습니다.

    형들에게 팔린 것 하나만 보면 악이었습니다.

    감옥에 갇힌 것 하나만 보면 억울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합력하여 보면 총리가 됐습니다.

    가족을 구했습니다.

    민족을 구했습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었습니다.

    다윗이 고백했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골짜기를 피하지 않았습니다.

    다닐지라도라고 했습니다.

    그 함께하심이 골짜기도 합력의 재료로 만들었습니다.

    오늘 힘겨운 것이 있습니까.

    알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까.

    그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연약함도 넘어짐도 실수도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으로 이끄시는 주님이 함께 하십니다.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시는 그 선하신 손길을 오늘도 기다립니다.

    🙏 오늘의 기도

    주여 우린 연약합니다. 오늘도 힘겨워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주님을 신뢰합니다.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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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용한 고백] 존재 관리 —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라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존재 관리 —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라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하나님은 우리의 어떤 일이나 섬김보다 먼저 자기를 지키기를 원하십니다.

    자기를 지킨다는 말은 자기의 마음을 지키는 것을 말했습니다.

    이것을 존재 관리라고 했습니다.

    자기의 존재를 관리하지 않는다면 끝까지 믿음을 지킬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의 존재에 있고 존재와 관계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말씀하셨습니다.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라.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마음을 지키는 것이 성을 빼앗는 것보다 더 어렵고 더 중요했습니다.

    존재 관리가 왜 일보다 어려운지를 생각합니다.

    일은 결과가 보입니다.

    그런데 존재 관리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을 때 무너집니다.

    혼자 있을 때 무너집니다.

    그것이 존재 관리가 어려운 이유였습니다.

    솔로몬이 그랬습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존재 관리에 실패했습니다.

    이방 여인들을 사랑하면서 마음이 기울었습니다.

    가장 지혜로운 자의 존재 관리 실패가 왕국을 무너뜨렸습니다.

    반면에 요셉이 그랬습니다.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이 있었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라고 했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아도 하나님이 보고 계신다는 것이 존재 관리였습니다.

    그 존재 관리가 결국 애굽의 총리가 되게 했습니다.

    예수님도 존재 관리를 철저히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기적을 행하신 다음에도 자신의 몸을 피하여 숨으셨습니다.

    아무에게도 이것을 알리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높아지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이 존재 관리였습니다.

    바울이 그것을 알았습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한다고 했습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라고 고백했습니다.

    가장 많이 사역한 사도가 가장 철저하게 존재 관리를 한 사람이었습니다.

    존재 관리 —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라

    존재 관리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생각합니다.

    어떤 환경이나 어떤 상황에 처한다 할지라도 존재가 흔들리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자기를 버리고 자기를 말씀 앞에 두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죄에 대하여 민감하게 반응하며 자신을 정결하게 하는 것을 가장 우선에 두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정직한 존재와 삶을 사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인기나 높아지려는 마음과 인정받고 칭찬받으려는 마음을 해로 여기며 사는 것이었습니다.

    새벽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존재 관리의 훈련이었습니다.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말씀 앞에 두는 것이었습니다.

    그 훈련이 쌓이면서 어떤 상황에서도 존재가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됐습니다.

    자기의 존재 관리는 오직 자신이 해야 했습니다.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도 대신해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자기 마음을 지켜야 했습니다.

    생명의 근원이 마음에서 나온다는 말씀이 오늘도 살아있습니다.

    마음을 지키는 것이 생명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도 존재 관리를 우선에 두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오늘의 질문

    오늘 나는 존재 관리를 하고 있습니까. 일을 잘 하는 것보다 자기 마음을 지키는 것을 더 우선에 두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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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용한 고백] 참된 믿음은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참된 믿음은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참된 믿음은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어떤 경우란 무엇입니까.

    내가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또한 이해할 수 없는 환경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과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질지라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한다는 말은 하나님은 선하시기에 하나님이 행하시거나 허락하신 모든 일이 다 선한 것임을 믿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가장 절망적이고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평안을 누릴 수 있고 감사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악 우리들의 악을 통해서도 선을 이끌어 내시는 참으로 선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연약한 제자들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홍해를 건넌 지 사흘도 지나지 않아 원망했습니다.

    만나를 먹으면서도 원망했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경험하고도 원망이 나왔습니다.

    이해할 수 없을 때 원망이 나왔습니다.

    원하는 것과 다를 때 불평이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하는 것이 왜 어려운지를 생각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선하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고통이 느껴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팔렸을 때 선하지 않았습니다.

    감옥에 갇혔을 때 선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결과를 보면 하나님이 선하게 이끄셨습니다.

    총리가 됐습니다.

    가족을 구했습니다.

    민족을 구했습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었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지금 이 순간이 선하지 않아 보일 수 있습니다.

    이해할 수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이 모든 것을 통해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계십니다.

    참된 믿음은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 다윗은 달랐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때로는 두려워하기도 하고 근심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곧 평안을 누렸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에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고 자신의 머리에 기름을 부으실 주님을 기대했습니다.

    목자는 양을 이끌 때 양이 이해하는 길로만 이끌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어두운 골짜기로 이끌었습니다.

    그런데 그 길이 결국 푸른 초장으로 이어졌습니다.

    하나님도 그렇게 우리를 이끄셨습니다.

    다윗을 이런 믿음의 사람으로 빚으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다윗에게 그렇게도 많은 시간을 외로움과 눈물로 보내게 하셨습니다.

    아프지 않고 외롭게 홀로 울지 않고는 만들어질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이 선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선하게 이끄시는 방법이요 사랑이었습니다.

    많은 날들이 지난 다음에 그 이유를 알게 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이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 앞에 설 수 있었던 것은 사자와 곰을 이긴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기억이 믿음의 자산이 됐습니다.

    오늘 힘든 상황이 내일의 믿음의 자산이 됩니다.

    지금 이해할 수 없는 이 시간이 앞으로 하나님을 더 깊이 신뢰하게 하는 기초가 됩니다.

    오늘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있습니까.

    원하는 것과 정반대로 펼쳐지고 있습니까.

    그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참된 믿음은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도 그 믿음으로 하루를 살아갑니다.

    🌿 오늘의 묵상 한 줄

    하나님은 이해할 수 없는 고통과 악을 통해서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선하신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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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용한 고백]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하나님은 혼자 일하시지 않고 사람과 함께 일하시기를 좋아하십니다.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실 때 아담에게 맡기시고 매우 기뻐하셨습니다.

    그것은 아담을 복 주시고 너무도 사랑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하는 일에 있어서도 주님이 직접 하시거나 천사를 통해서 하시지 않고 자신이 죽으심으로 뿌리시고 제자들을 통해서 거두게 하심으로 함께 일하시고 기뻐하게 하셨습니다.

    사람을 위로하고 섬기며 필요를 공급하실 때도 사람을 통해서 행하십니다.

    재판할 때도 사람에게 위임된 권위를 주셔서 공의를 따라 재판하게 하십니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서 행하시는 일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절대 사람이 대신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 일하신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를 생각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연약한 사람을 통해 일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담에게 피조물을 다스리는 일을 맡기신 것이 그것이었습니다.

    모세에게 이스라엘 민족을 이끄는 일을 맡기신 것이 그것이었습니다.

    제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맡기신 것이 그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일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반대편에 경계선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있고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 경계선을 넘는 것이 하나님의 자리를 침범하는 것이었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서 연단하시거나 징계를 할 때 달게 받지 않고 거절하거나 제거하는 일이었습니다.

    다윗이 그 경계선을 지켰습니다.

    사울이 자신을 죽이려 할 때 달게 받고 죽이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시므이가 티끌을 날리며 자신을 저주할 때도 하나님이 저를 통해서 저주하는 것이라고 달게 받았습니다.

    엔게디 굴에서 사울의 겉옷 자락을 벗겼을 때 그것만으로도 양심에 찔렸습니다.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 손을 대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그 경계선을 지키는 것이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했습니다.

    두 번째는 형제가 죄를 회개하여 하나님이 이미 용서한 사람을 사람이 용서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요셉이 그것을 알았습니다.

    형들이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지난날들의 악을 보복하지나 않을까 두려워할 때 말했습니다.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만약 요셉이 보복했다면 어떻게 됐겠습니까.

    하나님의 계획이 무너졌을 것이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을 완성하는 것이었습니다.

    세 번째는 형제를 비방하고 판단하는 일이었습니다.

    야고보 사도가 엄히 경고했습니다.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고.

    판단은 하나님의 영역이었습니다.

    네 번째는 하나님이 위임하여 세우신 권세자들을 비방하거나 판단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이 경고했습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라고.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우리도 매일 그 경계선 앞에 서게 됩니다.

    억울한 일을 당할 때 그 경계선 앞에 섭니다.

    내가 판단하고 싶을 때 그 경계선 앞에 섭니다.

    내가 보복하고 싶을 때 그 경계선 앞에 섭니다.

    형제를 비방하고 싶을 때 그 경계선 앞에 섭니다.

    그때마다 요셉의 고백이 필요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그 고백이 경계선을 지키게 합니다.

    내가 물러설 때 하나님이 나서십니다.

    하나님이 하실 일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삶이었습니다.

    그것이 가장 강한 사람의 모습이었습니다.

    보복하지 않는 것이 약함이 아니었습니다.

    판단하지 않는 것이 무능함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가장 성숙한 신앙이었습니다.

    오늘 그 경계선을 지키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 오늘의 기도

    주님 내가 하나님의 자리에 서려 했던 것을 내려놓겠습니다. 판단을 주님께 맡깁니다. 용서를 주님께서 하신 것처럼 나도 용서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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