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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변화하리니 | 고린도전서 15장 51절 묵상 – IT CEO의 새벽 잠언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변화하리니 | 고린도전서 15장 51절 묵상 – IT CEO의 새벽 잠언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고린도전서 15장 51절)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변화하리니’라는 말씀은 죽음 이후에만 이루어질 약속이 아닙니다. 우리는 현실 앞에서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이제는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너무 쉽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변화하리니라고 말씀하시며, 오늘도 우리의 마음과 삶을 새롭게 변화시키시는 분이심을 선포하십니다. 부활의 믿음은 미래의 소망일 뿐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능력이기도 합니다.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변화하리니, 가장 어려운 프로젝트는 사람의 마음이었습니다

    26년 동안 공공기관과 대학의 정보시스템을 구축하며 수많은 프로젝트를 수행했습니다. 수십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사업도 있었고, 일정이 촉박해 밤을 새우는 날도 많았습니다. 프로그램 오류는 원인을 찾으면 해결할 수 있었고, 서버는 교체하면 다시 정상적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가장 어려웠던 것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었습니다.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면 모두가 변화의 필요성에는 공감했습니다. 하지만 실제 업무 방식을 바꾸자고 하면 분위기는 달라졌습니다.

    “예전 방식이 더 편합니다.”

    “굳이 지금 바꿔야 합니까?”

    “문제가 생기면 누가 책임집니까?”

    익숙함은 늘 변화를 두려워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답답해했던 적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는 제 마음을 먼저 보여 주셨습니다.

    직원들의 변화를 말하던 제가 정작 가장 변화를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사업이 어려우면 시장을 탓했고, 계약이 늦어지면 경기만 바라봤습니다. 사람 때문에 힘들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제 말투와 태도, 기도의 내용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새벽예배를 마치고 돌아오던 길이었습니다.

    문득 이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내가 먼저 변하면 하나님께서 일하실 수 있는 공간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그날 이후 기도가 달라졌습니다.

    “하나님, 상황을 바꿔 주십시오.”보다 “먼저 저를 바꿔 주십시오.”라는 기도가 많아졌습니다.

    놀랍게도 환경은 그대로인데 제 마음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문제도 다르게 보였고, 같은 사람도 이해하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변화는 상대가 아니라 제 안에서 먼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변화하리니, 부활의 믿음은 오늘을 바꾸는 능력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은 흔히 부활장이라고 불립니다. 많은 사람은 이 말씀을 마지막 날 영화로운 몸으로 다시 살아나는 사건으로만 이해합니다. 물론 그것은 모든 성도의 소망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미래만 바라보며 오늘을 살아가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부활을 믿는 사람은 오늘을 더욱 책임 있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언젠가 하나님 앞에 설 것을 믿기에 말 한마디도 함부로 하지 않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믿기에 오늘의 선택을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

    부활의 믿음은 미래를 기다리는 믿음이 아니라 현재를 변화시키는 믿음입니다.

    바울이 말한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변화하리니’라는 약속은 단지 육체가 변화되는 사건만이 아닙니다. 죄를 미워하게 되고, 용서하지 못하던 사람이 용서하게 되며, 절망 속에서도 다시 일어설 힘을 얻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 안에서 이루시는 변화입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던 사람이 부활의 주님을 만난 뒤 수천 명 앞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를 핍박하던 사람이 복음을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내어놓는 사도로 변화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사람을 변화시키시는 분이십니다.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변화하리니를 믿는 사람의 오늘

    우리의 현실에도 ‘어쩔 수 없다’고 말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회복되지 않는 관계가 있을 수 있습니다.

    건강 때문에 낙심할 수도 있습니다.

    사업의 어려움과 경제적인 부담 때문에 한숨을 쉬는 날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자리에서도 새로운 일을 시작하십니다.

    변화는 거창한 결단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을 읽는 10분.

    감사의 말 한마디.

    용서를 미루지 않는 선택.

    기도를 포기하지 않는 결단.

    이 작은 순종 하나가 하나님의 큰 변화를 시작하는 씨앗이 됩니다.

    IT 시스템도 작은 프로그램 오류 하나를 수정하면 전체 서비스가 안정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신앙도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거창한 능력을 찾으시기보다 오늘의 작은 순종을 통해 우리의 삶을 새롭게 빚어 가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변화하리니’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오늘도 한 걸음씩 걸어갑니다.

    내 힘으로는 어렵지만,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변화는 반드시 열매를 맺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내 안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들어 가실 것을 믿으며 그 은혜를 기대하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오늘의 질문

    나는 지금 환경이 변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먼저 나를 변화시키시도록 마음을 열고 있습니까?

  • [조용한 고백]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단순히 무서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을 너무 존귀하게 여기고, 너무 사랑하기에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마음입니다.

    우리는 정말 존경하는 사람 앞에서는 자연스럽게 말과 행동을 조심하게 됩니다.

    하물며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앞이라면 어떻겠습니까.

    그분의 거룩하심을 알수록,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경험할수록 우리의 마음에는 경외함이 자리하게 됩니다.

    25년 동안 IT 기업을 경영하면서 저 역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 무엇인지 조금씩 배워 갔습니다.

    사업이 잘될 때는 모든 것이 제 능력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착각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지금까지의 모든 길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제 마음속에는 한 가지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혹시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내 능력을 자랑하게 되지는 않을까.

    혹시 하나님보다 내 경험과 지혜를 더 의지하게 되지는 않을까.

    이 두려움은 저를 억누르는 두려움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더 겸손하게 서게 하는 은혜의 두려움이었습니다.

    묵상 배경

    성경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라고 말씀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잠언 9:10)

    또한 바울은 자신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고린도전서 2:3)

    그는 자신의 말솜씨나 능력으로 복음을 전하기보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기를 원했습니다.

    반면 성경은 죄에서 오는 두려움도 말합니다.

    아담과 가인은 죄를 지은 후 하나님을 피했습니다.

    바울은 또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디모데후서 1:7)

    그리고 요한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요한일서 4:18)

    성경이 말하는 두려움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죄 때문에 하나님을 피하는 두려움과, 하나님을 너무 사랑하기에 더욱 가까이 나아가는 경외함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늘 자신을 돌아봅니다.

    받은 은혜를 잊어버릴까 두려워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자신의 능력으로 착각할까 두려워합니다.

    자신의 이름이 높아지고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질까 두려워합니다.

    이 두려움은 사람을 자유롭게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한 분만 두려워하면 세상의 평가와 시선은 더 이상 우리를 흔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사업을 하면서 가장 평안했던 순간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했던 때였습니다.

    결과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기 시작하니 실패도 성공도 이전처럼 저를 지배하지 못했습니다.

    경외함은 사람을 작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더욱 담대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면 세상이 두렵지 않습니다

    세상을 두려워하면 늘 흔들립니다.

    사람의 평가를 두려워하면 사람에게 끌려다니게 됩니다.

    실패를 두려워하면 새로운 도전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만 바라봅니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습니다.

    25년 동안 사업을 돌아보면 가장 큰 실패도 가장 큰 성공도 결국 지나가는 과정이었습니다.

    끝까지 저를 붙드신 분은 하나님 한 분뿐이셨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하나님만 경외하며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가장 높이는 사람은 어떤 환경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오늘 하루 하나님을 더욱 경외하며 살아가는 은혜가 함께하시기를 기도합니다.

    📖 성경별곡 묵상 유튜브 채널

    매일 새벽 말씀 묵상을 영상으로도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말씀이 삶이 되는 하루를 함께 만들어 가길 소망합니다.

    ▶ 유튜브 채널: https://youtube.com/channel/UCg2DqdMTJ1ADcbm8LBfnVZg

  • 주께서 그 앞서 가꾸셨으므로 그 뿌리가 깊이 박혀서 땅에 가득하며 (시편 80편 9절) – IT CEO의 새벽 잠언

    주께서 그 앞서 가꾸셨으므로 그 뿌리가 깊이 박혀서 땅에 가득하며 (시편 80편 9절) – IT CEO의 새벽 잠언

    “주께서 그 앞서 가꾸셨으므로 그 뿌리가 깊이 박혀서 땅에 가득하며” (시편 80편 9절)

    무슨 일이 있더라도 목사님 편에서라 아버지의 유언이 뿌리가 됐다

    주께서 그 앞서 가꾸셨으므로 그 뿌리가 깊이 박혀서 땅에 가득하다는 이 말씀을 아버지께서 이 땅을 떠나시기 직전 떨리는 입술로 남기신 유언이 신앙의 뿌리가 됐던 경험을 지나 붙들었습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직전이었습니다.

    야윈 육신을 의학 연구를 위해 시신 기증하시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아낌없이 드리는 그 결정 자체가 이미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마지막 순간에 떨리는 입술로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목사님 편에서라.

    그 한 마디였습니다.

    병실 안이 조용했습니다.

    아버지의 숨소리가 거칠었습니다.

    그 마지막 순간에 힘을 다해 남기신 말씀이었습니다.

    시신까지 기증하신 아버지가 몸도 다 드리고 마지막으로 남기신 것이 재산도 아니었고 사업 이야기도 아니었습니다.

    신앙의 자리를 지키라는 것이었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어떤 갈등이 있어도 목사님을 신뢰하고 교회를 세우는 편에 서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유언을 듣는 순간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아버지가 평생 신앙생활을 하시면서 깨달으신 가장 중요한 것이 그 한 마디에 담겨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삶 자체가 그 유언을 뒷받침하는 것이었습니다.

    평생 새벽기도를 드리셨습니다.

    교회를 섬기는 일에 앞장서셨습니다.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공동체를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그 삶이 먼저 있었기에 그 유언이 무게가 있었습니다.

    말로만 남기신 유언이 아니었습니다.

    평생으로 증명하신 유언이었습니다.

    그리고 몸까지 드리시며 남기신 유언이었습니다.

    나는 아버지의 삶이라는 뿌리와 아버지의 유언이라는 뿌리 위에 서 있었습니다.

    그 뿌리들이 주께서 앞서 가꾸셨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버지를 통해 미리 심어주신 것이었습니다.

    그 뿌리가 60평생을 지탱해줬습니다.

    그 유언이 이후 수십 년 동안 흔들리지 않는 기준이 됐습니다.

    다른 중직자의 그릇된 모습에 내 믿음이 흔들리던 때에도 그 유언이 기준이 됐습니다.

    교회에서 상처를 받고 공동체를 떠나야 했던 그 아픔 속에서도 그 유언이 다시 일어서게 하는 힘이 됐습니다.

    12년 만에 인삼을 보내며 용서를 향해 한 걸음을 내딛던 그 날도 아버지의 유언이 떠올랐습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목사님 편에서라.

    그 말씀이 방향을 잃지 않게 해줬습니다.

    주께서 그 앞서 가꾸셨으므로 그 뿌리가 깊이 박혀서 땅에 가득하며

    시편 80편 9절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포도나무로 비유하여 친히 앞서 가꾸셨다는 말씀입니다.

    주께서 앞서 가꾸셨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내가 뿌리를 내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앞서 가꾸셨기 때문에 뿌리가 깊이 박혔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유언도 하나님이 아버지를 통해 심어주신 뿌리였습니다.

    잠언 22장 6절도 말씀합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아버지가 마지막 유언으로 남기신 그 말씀이 마땅히 행할 길이었습니다.

    그 길을 가르쳐주셨기에 지금도 그것을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에 충실하면 내일 거목으로 자라납니다

    잎만 무성한 나무는 언제 말라 버릴지 모릅니다.

    그러나 뿌리 깊은 나무는 비바람이 불어도 꺾이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유언이 그 뿌리가 됐습니다.

    은퇴를 앞두고 아버지의 유언을 다시 떠올립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목사님 편에서라.

    그 유언을 이제 아들에게도 전하고 싶습니다.

    아버지가 나에게 남기신 것처럼 나도 다음 세대에게 그 뿌리를 전하는 것이 주께서 앞서 가꾸셨다는 말씀의 계속이었습니다.

    주께서 그 앞서 가꾸셨으므로 그 뿌리가 깊이 박혀서 땅에 가득하다는 그 약속이 아버지의 유언을 통해 오늘도 살아있습니다.

    🌿 오늘의 묵상 한 줄

    아버지의 마지막 유언 무슨 일이 있더라도 목사님 편에서라가 60평생 신앙의 뿌리가 됐습니다.

  •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고린도전서 15장 51절) – IT CEO의 새벽 잠언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고린도전서 15장 51절) – IT CEO의 새벽 잠언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고린도전서 15장 51절)

    교인 장례식에서 대표기도를 드리고 나면 부활의 믿음이 더 커진다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라는 이 말씀을 교인 장례식에서 대표기도를 드리고 나서 부활의 믿음이 더 깊어지는 경험을 지나 붙들었습니다.

    교인의 장례식에 가는 일이 있습니다.

    장로로 섬기면서 대표기도를 드리는 자리에 서게 됩니다.

    그 자리에 설 때마다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함께 예배드리던 분이 이 땅의 삶을 마치고 하나님 앞에 간 것이었습니다.

    어제까지 곁에 있던 분이 오늘은 관 속에 누워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앞에서 대표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 이 형제가 이 땅의 삶을 마치고 주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부활의 소망으로 이 자리에 모인 우리를 위로해 주소서.

    그 기도를 드리면서 이상한 일이 생깁니다.

    슬픔이 있는데 동시에 믿음이 커집니다.

    저 분이 간 곳이 진짜라는 것이 느껴집니다.

    장례식장은 이상한 곳입니다.

    슬픔이 있지만 그 슬픔 안에 소망이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죽음이 끝이지만 믿음 안에서는 죽음이 변화의 시작이었습니다.

    대표기도를 마치고 자리에 앉을 때 마음이 달랐습니다.

    부활의 믿음이 더 커져 있었습니다.

    그 믿음이 커질수록 오늘의 삶이 달라 보였습니다.

    장례식에서 돌아오는 길에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내가 지금 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지가 새롭게 보였습니다.

    부활의 믿음은 죽은 후의 일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이 순간을 주님 앞에서 옷깃을 여미며 경건하게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장례식에 가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오히려 삶에 대한 감사가 커졌습니다.

    뇌출혈로 쓰러지고 재활을 했던 경험이 있기에 그 감사가 더 깊었습니다.

    병상에 누워있을 때 저 자리에 내가 누울 뻔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장례식에서 드리는 대표기도가 달라졌습니다.

    단순히 형식적으로 드리는 기도가 아니라 부활의 소망을 진짜로 붙드는 기도가 됐습니다.

    하나님 이 형제가 오늘 부활의 첫 열매이신 주님께 나아갔습니다.

    우리도 그날이 올 것입니다.

    그날까지 오늘을 경건하게 살게 하소서.

    그 기도를 드리면서 내가 먼저 변화됐습니다.

    60평생을 살아오면서 부모님의 장례식도 있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시신 기증을 하시며 마지막 유언을 남기신 그 자리도 있었습니다.

    그 모든 자리에서 부활의 믿음이 없다면 얼마나 절망적인 자리인가를 느꼈습니다.

    그런데 부활의 믿음이 있을 때 그 슬픔 안에 소망이 있었습니다.

    그 자리마다 아버지의 유언이 떠올랐습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목사님 편에서라.

    아버지도 그 믿음으로 살다가 시신까지 기증하시며 이 땅을 떠나셨습니다.

    그 삶이 부활의 믿음으로 산 삶이었습니다.

    나도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이 땅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장례식장에서 드는 기도였습니다.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고린도전서 15장 51절은 부활의 비밀을 선포하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죽음이 끝이 아니라 변화의 시작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부활의 믿음은 단순히 신자가 죽은 후에 다시 사는 것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 부활의 믿음으로 살고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로마서 8장 11절도 말씀합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부활의 능력이 오늘 이 순간에도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부활의 믿음이 오늘을 살게 한다

    교인 장례식에서 드리는 대표기도가 나를 먼저 변화시켰습니다.

    부활의 믿음이 오늘의 삶을 함부로 살지 않게 하고 매일의 삶을 중요하게 여기며 주님 앞에서 옷깃을 여미게 합니다.

    은퇴를 앞두고 있는 지금 장례식에서의 그 기도가 더 가깝게 느껴집니다.

    오늘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부활의 믿음으로 사는 것이었습니다.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라는 그 약속 앞에서 오늘을 더 소중하게 살겠다는 다짐이 새로워집니다.

    부활의 믿음이 오늘 이 자리에서 가장 실제적인 힘이 됩니다.

    그 믿음으로 오늘도 한 걸음을 내딛습니다.

    💭 오늘의 질문

    지금 나는 부활의 믿음으로 오늘을 살고 있습니까. 그 믿음이 오늘의 삶을 얼마나 경건하게 하고 있습니까.

  • [조용한 고백] 하나님을 아는 것이 인생의 시작입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하나님을 아는 것이 인생의 시작입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하나님을 아는 것이 인생의 시작입니다

    사람은 많은 것을 알기 위해 평생을 살아갑니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세상을 이해하며, 사람을 알아갑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가장 먼저 알아야 할 대상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바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쌓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알고, 그분의 마음을 이해하며, 삶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25년 동안 IT 기업을 경영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했습니다.

    기술도 배웠고, 경영도 배웠으며, 사람을 다루는 법도 익혔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가장 중요한 것은 세상을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업이 어려울 때도,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도 저를 붙들어 준 것은 제 경험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더 알아 갈수록 두려움은 줄어들었고, 평안은 깊어졌습니다.

    묵상 배경

    호세아 선지자는 하나님의 마음을 이렇게 전합니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호세아 6:6)

    또한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호세아 4:6)

    여기서 말하는 지식은 세상의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입니다.

    죄는 결국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알면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고, 그 뜻을 따라 살아갈 힘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경을 주셨습니다.

    성경은 단순한 역사책이나 교훈집이 아니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 주시는 하나님의 자기소개서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웁니다.

    하나님을 알면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을 알았기에 담대하게 살아간 사람들이 많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기생 라합입니다.

    라합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사회적으로도 낮은 위치에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듣고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심을 믿었습니다.

    그 믿음으로 정탐꾼을 숨겼고, 결국 자신과 가족 모두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의 족보에 이름이 기록되는 놀라운 은혜를 누렸습니다.

    환경이 그녀를 바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믿음이 그녀의 삶을 바꾸었습니다.

    저 역시 사업을 하며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섰습니다.

    때로는 계산으로는 답이 보이지 않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며 결정했을 때, 제 생각보다 더 좋은 길을 하나님께서 열어 주시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정보를 얻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가장 큰 지혜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지식은 열심히 쌓으면서도 하나님을 아는 일에는 쉽게 소홀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모르면 아무리 많은 것을 가져도 중심을 잃게 됩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알면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기준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호세아는 외쳤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호세아 6:3)

    25년 동안 사업을 돌아보며 가장 큰 축복은 성공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조금씩 더 알아 가는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알수록 삶의 의미를 알게 되었고, 하나님을 신뢰할수록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아 가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우리 인생의 가장 큰 지혜이며, 가장 큰 축복입니다.

    📖 성경별곡 묵상 유튜브 채널

    매일 새벽 말씀 묵상을 영상으로도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말씀이 삶이 되는 하루를 함께 만들어 가길 소망합니다.

    ▶ 유튜브 채널: https://youtube.com/channel/UCg2DqdMTJ1ADcbm8LBfnVZg

  •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히브리서 13장 6절) – IT CEO의 새벽 잠언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히브리서 13장 6절) – IT CEO의 새벽 잠언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 (히브리서 13장 6절)

    2주 동안 천장만 바라보며 하나님만 바라봤던 날들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는 이 말씀을 신경 수술 후 2주 동안 꼼짝 못하고 천장만 바라보면서 하나님만 바라보는 것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었던 경험을 지나 붙들었습니다.

    8년 전이었습니다.

    우측 신경을 좌측으로 옮기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쉽지 않은 수술이었습니다.

    수술이 끝나고 병원 침대에 누웠습니다.

    수술 후 연결된 신경이 끊어질까봐 2주 동안 똑바로 누운 채로 있어야 했습니다.

    몸을 움직이면 안 됐습니다.

    고개를 돌려서도 안 됐습니다.

    오직 천장만 바라보며 누워있어야 했습니다.

    그 2주가 얼마나 길게 느껴졌는지 모릅니다.

    처음 하루는 버틸 만했습니다.

    그런데 이틀 사흘이 지나면서 그 천장이 지겨워졌습니다.

    몸을 움직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움직이면 안 됐습니다.

    신경이 끊어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수술이 잘못되면 어떻게 될까 하는 불안이 밤마다 찾아왔습니다.

    그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움직일 수도 없었습니다.

    사업을 챙길 수도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는 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천장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을 바라봤습니다.

    기도했습니다.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그 2주 동안 많은 것을 생각했습니다.

    26년 사업을 하면서 너무 바쁘게만 달려온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몸을 혹사하며 달려온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병실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 되고 나서야 멈추게 됐습니다.

    천장만 바라보면서 지나온 시간들을 돌아봤습니다.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를 다시 알게 됐습니다.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를 알게 됐습니다.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는 말씀이 그 2주 동안 가장 큰 힘이 됐습니다.

    처음에는 두려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하나님이 돕는 자이시라면 이 수술의 결과도 하나님이 이끄실 것이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믿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 믿음이 2주를 버티게 해줬습니다.

    2주가 지났습니다.

    신경이 제대로 연결됐다는 확인이 왔습니다.

    수술 결과가 좋았습니다.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2주 동안 천장만 바라보며 드린 기도들이 응답됐습니다.

    뇌출혈로 쓰러졌을 때도 그 담대함이 힘이 됐습니다.

    신경 수술 후 2주 동안 천장을 바라볼 때도 그 담대함이 힘이 됐습니다.

    어떤 자리에서도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는 그 고백이 무너지지 않는 기둥이 됐습니다.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히브리서 13장 6절은 시편 118편 6절의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하나님이 돕는 자이시기 때문에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두려움이 없어서 담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돕는 자이심을 믿기 때문에 담대한 것이었습니다.

    수술 후 2주 동안 두려움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입니다.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돕는 자이심을 믿었기에 그 두려움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는 보이지 않지만 돕는 이로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 동행하심을 병실의 천장을 바라보며 경험했습니다.

    겨울 나무처럼 내려놓을 때 하나님이 돕는 자이심을 경험한다

    겨울을 준비하는 나무가 낙엽을 떨궈내듯 혹독한 시련이 닥칠수록 내려놓고 가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그 병실에서 사업도 내려놓았습니다.

    계획도 내려놓았습니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만 바라봤습니다.

    그 내려놓음이 하나님이 돕는 자이심을 경험하는 자리가 됐습니다.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는 그 약속을 오늘도 붙들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돕는 자이심을 믿는 것이 담대함의 뿌리였습니다.

    🙏 오늘의 기도

    주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자리에서도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는 고백을 드리게 하소서.

  •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충만하게 하사 (로마서 15장 13절) – IT CEO의 새벽 잠언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충만하게 하사 (로마서 15장 13절) – IT CEO의 새벽 잠언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로마서 15장 13절)

    어음 부도가 났을 때 소망의 하나님을 붙들었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신다는 이 말씀을 IT 사업 이전 제조업을 하던 시절 받은 어음이 부도가 났을 때 소망이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하나님을 붙들었던 경험을 지나 붙들었습니다.

    지금은 IT 사업을 하고 있지만 30년 전에는 제조업을 했습니다.

    그 시절에는 어음으로 결제를 받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거래처에서 물건을 납품하면 현금 대신 어음을 받았습니다.

    그 어음이 도래하는 날짜에 은행에 가서 현금으로 바꾸는 방식이었습니다.

    그 어음이 사업의 흐름을 이어가는 생명줄이었습니다.

    직원들 월급도 거래처 대금도 그 어음이 현금으로 바뀌어야 가능했습니다.

    어음 하나가 연쇄적으로 연결돼 있었습니다.

    한 곳에서 부도가 나면 그 파장이 컸습니다.

    그런데 그날이 왔습니다.

    어음이 도래하는 날짜였습니다.

    은행에 갔습니다.

    그런데 부도가 났습니다.

    어음을 발행한 거래처가 부도를 낸 것이었습니다.

    납품한 물건의 대금을 받지 못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 연락을 받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은행 창구에서 나와 차 안에 혼자 앉아있었습니다.

    한동안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다리에 힘이 빠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직원들 월급을 어떻게 맞춰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방법을 찾으려 했습니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연락했습니다.

    그런데 쉽게 해결될 것 같지 않았습니다.

    소망이 완전히 보이지 않는 순간이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채워지지 않는 것 같은 그 공허함이 밀려왔습니다.

    그런데 그 차 안에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지금 소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소망의 하나님이시니 소망을 주소서.

    그 기도가 짧았지만 진심이었습니다.

    소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고백하는 것이 기도가 됐습니다.

    그 솔직함이 소망의 하나님과 만나는 자리였습니다.

    인간적인 소망이 다 사라졌을 때 비로소 소망의 하나님이 유일한 소망이심을 알게 됐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나서 마음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상황이 달라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혼자가 아니라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소망의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 느낌이 다시 움직이게 해줬습니다.

    차에서 내려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길이 열렸습니다.

    그 어음 부도 이후 IT 사업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어음 부도라는 절망의 자리가 새로운 방향의 시작점이 됐습니다.

    지금 26년을 이어온 IT 사업의 출발점이 그 어음 부도의 자리였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뇌출혈로 쓰러졌을 때도 그 경험이 떠올랐습니다.

    국세가 밀렸을 때도 그 경험이 떠올랐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앞이 막혔을 때도 그 경험이 떠올랐습니다.

    어음 부도의 차 안에서 소망의 하나님을 붙들었던 그 기도가 이후 모든 절망의 자리에서 같은 힘을 발휘했습니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충만하게 하사

    로마서 15장 13절은 소망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으로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소망 자체이심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소망이 보이지 않을 때 소망의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충만하게 하신다는 약속이 있습니다.

    상황이 해결돼서 기쁨이 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믿음 안에서 기쁨과 평강이 충만해지는 것이었습니다.

    시편 39편 7절도 말씀합니다.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소망이 보이지 않을 때 소망이 주께 있다는 이 고백이 어음 부도의 차 안에서 드린 기도였습니다.

    소망이 보이지 않을 때 소망의 하나님을 붙드는 삶

    소망이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소망의 하나님을 붙드는 것이 믿음이었습니다.

    소망이 보이지 않을 때 소망의 하나님을 붙드는 것이 가장 빠르고 확실한 길이었습니다.

    그 길을 어음 부도의 차 안에서 배웠습니다.

    오늘도 소망이 보이지 않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 자리에서 소망의 하나님을 붙드십시오.

    믿음 안에서 기쁨과 평강이 충만해질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실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오늘도 함께 계십니다.

    🙏 오늘의 기도

    주님, 소망이 보이지 않는 이 자리에서 소망의 하나님을 붙들게 하소서.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소서.

  • [조용한 고백] 힘을 빼야 하나님이 일하신다: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힘을 빼야 하나님이 일하신다: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힘을 빼야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우리는 중요한 일을 앞두면 자신도 모르게 힘이 들어갑니다.

    더 빨리 이루고 싶고, 더 완벽하게 해내고 싶은 마음 때문입니다.

    하지만 힘이 들어갈수록 마음은 조급해지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점점 경직됩니다.

    평안은 사라지고, 작은 일에도 쉽게 흔들리게 됩니다.

    돌이켜보면 하나님께서 가장 크게 일하셨던 순간은 제가 가장 애썼던 때가 아니라, 가장 많이 내려놓았던 때였습니다.

    25년 동안 IT 기업을 경영하면서 모든 것을 제 힘으로 해결하려 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성과를 빨리 내기 위해 직원들을 몰아붙였고, 제 방식이 가장 옳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조직의 분위기는 무거워졌고, 사람들의 마음은 점점 닫혀 갔습니다.

    무엇보다 제 마음에서 평안이 사라졌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내 힘이 커질수록 하나님의 자리는 작아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묵상 배경

    스가랴 4장 6절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스가랴 4:6)

    하나님은 우리의 능력보다 하나님의 영으로 일하십니다.

    또한 바울은 고린도후서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고린도후서 12:9)

    우리가 약해질 때 하나님의 능력은 더욱 선명하게 나타납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원리를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힘을 의지하는 사람보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다.

    힘을 뺄 때 보이는 것

    믿음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힘으로 하려고 하면 쉽게 지치고, 작은 실패에도 낙심하게 됩니다.

    반대로 하나님께 맡길수록 마음에는 여유가 생기고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도 부드러워집니다.

    영성이 깊은 사람은 무엇이든 억지로 밀어붙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맡길 줄 아는 사람입니다.

    저 역시 IT 업계에서 가장 좋은 결과를 얻었던 순간은 가장 강하게 밀어붙였을 때가 아니었습니다.

    팀원들을 신뢰하고,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며 함께 걸어갔을 때 오히려 예상하지 못했던 좋은 결과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때 비로소 알았습니다.

    힘을 빼는 것은 포기가 아니라 하나님께 주도권을 드리는 믿음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내려놓을 때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우리에게 힘이 들어가는 이유는 대부분 같습니다.

    집착 때문입니다.

    욕심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이든 빨리 이루고 싶은 조급함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모든 것을 붙잡고 있을 때보다, 두 손을 펼쳐 맡길 때 더 크게 일하십니다.

    내려놓는다는 것은 책임을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최선을 다한 후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는 믿음의 선택입니다.

    25년 동안 사업을 하며 가장 놀라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했던 순간들도 모두 그때였습니다.

    더 이상 제 힘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고 하나님께 맡겼을 때, 생각하지 못했던 길이 열렸고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힘이 아니라, 내 은혜로 여기까지 왔다.”

    오늘도 혹시 마음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다면 잠시 내려놓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빈손을 통해 일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오늘 하루 하나님을 신뢰하며 모든 것을 맡기는 평안과 은혜가 함께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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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 새벽 말씀 묵상을 영상으로도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말씀이 삶이 되는 하루를 함께 만들어 가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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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창세기 21장 22절) – IT CEO의 새벽 잠언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창세기 21장 22절) – IT CEO의 새벽 잠언

    “그때에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이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창세기 21장 22절)

    제안서만 작성하면 수주가 됐을 때 관리이사가 한 말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라는 이 말씀을 제안서만 작성하면 수주가 되던 시절 관리이사가 나를 보면 하나님이 계신 것 같다고 했던 경험을 지나 붙들었습니다.

    사업을 하면서 제안서 작성에 힘을 쏟던 때가 있었습니다.

    PT를 준비하고 제안서를 만들어 제출하면 수주가 되는 시기였습니다.

    그 시기에는 유독 제안서를 작성하면 결과로 이어지는 일들이 이어졌습니다.

    하나가 수주되고 또 하나가 수주됐습니다.

    큰 프로젝트들이 연달아 들어왔습니다.

    그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던 관리이사가 어느 날 이런 말을 했습니다.

    대표님을 보면 하나님이 계신 것 같습니다.

    그 말이 귓가에 맴돌았습니다.

    내가 능력이 있어서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전략이 뛰어나서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 말이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라는 말씀과 겹쳐졌습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감사하면서도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것 같다는 말을 들을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싶었습니다.

    직원을 편애했던 기억도 있었습니다.

    세상 방식을 따르고 싶었던 유혹도 있었습니다.

    완전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는 것을 더 분명하게 해줬습니다.

    내가 부족해도 하나님이 함께하실 때 그 함께하심이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도 완전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함께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완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드러난 것이었습니다.

    내 삶도 그랬습니다.

    그 깨달음이 더 겸손하게 기도하게 만들었습니다.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하셔야 한다는 것이 더 선명해졌습니다.

    그 시기를 돌아보면 특별히 더 열심히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기도에 더 집중했던 때였습니다.

    매일 새벽기도를 드리면서 오늘도 하나님이 인도해 주소서라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제안서를 작성하기 전에 기도했습니다.

    PT 자리에 들어가기 전에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들이 쌓이면서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이 실제로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곁에서 보는 사람들에게도 느껴진 것이었습니다.

    제안서를 작성하면 수주가 되던 그 시기가 영원히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이후에 탈락하는 프로젝트들도 생겼습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관리이사의 그 말이 떠올랐습니다.

    수주가 됐을 때만 하나님이 함께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탈락했을 때도 하나님이 함께하고 계셨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라는 말씀처럼 결과가 좋을 때도 좋지 않을 때도 하나님은 함께하고 계셨습니다.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창세기 21장 22절은 아브라함의 삶이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증명하는 장면입니다.

    아비멜렉이라는 외부인이 그것을 봤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앙인만 알아보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도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모든 행사에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을 때 그 동행하심이 삶으로 드러납니다.

    그 드러남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해집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라는 표현이 중요합니다.

    특정한 종교적 활동에만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안서를 작성하는 일에도 직원들을 이끄는 일에도 하나님이 함께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믿음으로 살아내는 것

    존재가 존재 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났지만 그 자녀다운 삶을 살아내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26년 사업을 돌아보면 그 모든 순간에 하나님이 함께하셨습니다.

    어음 부도의 차 안에서도 뇌출혈 병상에서도 하나님은 자리를 비우지 않으셨습니다.

    결코 이를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믿음으로 감사함으로 살아내기를 소망합니다.

    그 삶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이 계신 것 같다는 고백을 이끌어낼 것입니다.

    🌿 오늘의 묵상 한 줄

    제안서만 작성하면 수주가 되던 그 시기에 관리이사가 말했습니다. 대표님을 보면 하나님이 계신 것 같습니다.

  • 여호와여 주는 아침마다 우리의 팔이 되시며 (이사야 33장 2절) – IT CEO의 새벽 잠언

    여호와여 주는 아침마다 우리의 팔이 되시며 (이사야 33장 2절) – IT CEO의 새벽 잠언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우리가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아침마다 우리의 팔이 되시며 환난 때에 우리의 구원이 되소서” (이사야 33장 2절)

    출근하면 내 책상에서 제일 먼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다

    주는 아침마다 우리의 팔이 되시며 환난 때에 우리의 구원이 되소서라는 이 말씀을 출근하면 내 방 내 책상에서 제일 먼저 하나님께 기도를 드려온 삶을 지나 붙들었습니다.

    출근을 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있습니다.

    컴퓨터를 켜는 것이 아닙니다.

    커피를 마시는 것이 아닙니다.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는 것이 아닙니다.

    내 방 내 책상에 앉아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는 것이 제일 먼저입니다.

    그 기도가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습니다.

    30년 새벽기도가 그 습관을 만들어준 것 같았습니다.

    새벽에 예배당에서 기도를 드리고 왔어도 사무실에 도착하면 다시 하나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오늘 이 하루를 시작합니다.

    오늘 만나는 사람들을 지혜롭게 대하게 하소서.

    오늘 진행되는 프로젝트들을 인도해 주소서.

    그 짧은 기도가 하루의 시작이었습니다.

    그 아침 기도의 내용이 매일 달랐습니다.

    어떤 날은 오늘 중요한 미팅이 있으니 지혜를 주소서라는 기도였습니다.

    어떤 날은 어제 직원과의 관계가 불편했는데 오늘 잘 풀리게 해주소서라는 기도였습니다.

    어떤 날은 걱정이 있어서 그냥 하나님 오늘 하루를 맡깁니다라는 한 마디가 전부였습니다.

    그 기도가 길지 않았습니다.

    화려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기도가 하루를 달라지게 했습니다.

    기도하고 나서 책상을 정리하고 컴퓨터를 켜는 것과 그냥 켜는 것이 달랐습니다.

    기도 후에 시작하는 하루는 내가 혼자 이 하루를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어떤 날은 기도를 마치고 일어서면서 이상하게 마음이 가벼웠습니다.

    무거운 것들이 조금 내려진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 가벼움이 하루를 버티는 힘이 됐습니다.

    26년 사업을 하면서 어려운 아침들이 있었습니다.

    국세가 밀리던 때에도 아침에 책상에 앉아 기도했습니다.

    50억 투자가 무산되던 즈음에도 아침마다 책상에서 기도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앞이 막히던 때에도 그 기도가 있었습니다.

    그 기도들이 환난 때에 우리의 구원이 되소서라는 말씀처럼 위기마다 구원의 손길을 경험하게 해줬습니다.

    30년 새벽기도와 매일 아침 책상에서의 기도가 26년 사업을 이끌어온 두 기둥이었습니다.

    여호와여 우리가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아침마다 우리의 팔이 되시며

    이사야 33장 2절은 유다 백성이 앗수르의 위협 앞에서 드린 기도입니다.

    우리가 주를 앙망하오니.

    주를 앙망한다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상황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주를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상황과 환경에 따라 반응하기 쉽습니다.

    아침에 출근하면 이미 쌓여있는 이메일들이 보입니다.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보입니다.

    그런데 제일 먼저 기도를 드리면 달라집니다.

    보이는 것들 너머에 있는 하나님을 먼저 바라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는 아침마다 우리의 팔이 되시며라는 약속이 책상에서의 아침 기도를 통해 경험됐습니다.

    내 팔이 약해도 하나님이 팔이 되신다는 것이 그 기도 후에 느껴졌습니다.

    주를 앙망하는 아침이 하루의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아침마다 우리의 팔이 되시는 하나님이 오늘 아침에도 내 책상 앞에 계셨습니다.

    절망도 익숙해지는 법이지만 아침마다 하나님을 앙망하는 것이 습관이 될 때 절망보다 소망이 더 커졌습니다.

    그 습관이 은퇴 후에도 이어지기를 소망합니다.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우리가 주를 앙망하오니라는 그 고백이 오늘 아침에도 내 책상에서 울려 퍼집니다.

    한 주도 우리 주님의 은혜로 소망이 지속되기를 기도합니다.

    아침마다 우리의 팔이 되시는 하나님이 오늘도 함께 계십니다.

    🙏 오늘의 기도

    여호와여 오늘 아침도 책상에서 주를 앙망합니다. 아침마다 우리의 팔이 되시며 환난 때에 우리의 구원이 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