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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용한 고백]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 합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 합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 합니다라는 이 고백을 신앙의 가장 큰 위기인 무사안일함을 베어내는 마음의 할례가 매 순간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묵상을 지나 붙들었습니다.

    우리 신앙의 가장 큰 위기요 적은 무사안일입니다.

    신앙이 좋은 사람도 고통의 때나 위험한 때가 아닌 무사안일한 때에 다 넘어지고 실패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무사안일함 속에서는 우리 육체의 본성이 가장 잘 자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그것을 잘 모른다는 것과 안다고 하더라도 거기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포기하기에는 너무도 익숙하도록 무사안일을 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을 포기하려면 버려야 하는 아픔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하나님의 언약 안에 거하기 위하여 자기의 생살을 잘라내는 아픔을 반드시 통과해야 합니다.

    무사안일함이 어떻게 우리에게 들어오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처음에는 작은 안일함에서 시작합니다.

    오늘 하루 쉬어도 되겠지 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 작은 안일함이 쌓이면서 무사안일이 됩니다.

    그리고 그 무사안일이 익숙해지면서 육체의 본성이 자라납니다.

    그렇게 신앙이 무너지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이 그랬습니다.

    전쟁에 나가야 할 때 궁에 머물렀습니다.

    그 무사안일함 속에서 밧세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신앙이 좋았던 다윗이 무사안일한 때에 넘어진 것이었습니다.

    솔로몬도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받았던 솔로몬이 부귀영화를 누리는 무사안일함 속에서 우상을 섬기게 됐습니다.

    무사안일함이 신앙의 가장 큰 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매일 새벽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마음의 할례를 받는 것이었습니다.

    편안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것이 무사안일함을 베어내는 것이었습니다.

    할례의 진정한 의미는 마음에 하는 것으로 마음의 가죽을 베는 것이었습니다.

    즉 무사안일함을 베어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야 언약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돌보심과 인도하심과 함께 하심의 은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마음의 할례를 받은 사람은 달랐습니다.

    무사안일함을 베어낸 자리에 열심이 채워졌습니다.

    안주함을 베어낸 자리에 도전이 채워졌습니다.

    익숙함을 베어낸 자리에 새로운 은혜가 채워졌습니다.

    오늘 내 마음을 점검합니다.

    어떤 익숙함에 안주하고 있습니까.

    어떤 무사안일함이 내 마음에 자라고 있습니까.

    그것을 발견했다면 지금 베어내야 합니다.

    오래 익숙해질수록 베어내는 아픔이 더 커지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 합니다

    구약의 할례는 일생에 한번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음의 가죽을 베는 할례는 매 순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로 할례의 수종자가 되셨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것이 우리 마음의 가죽을 벨 수 있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마음의 할례를 받는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오늘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나아가는 것이었습니다.

    무사안일함을 고백하는 것이었습니다.

    편안함을 내려놓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구별된 존재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기억이 마음의 할례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 합니다.

    그 아픔을 통과할 때 하나님의 돌보심과 인도하심의 은혜가 임합니다.

    마음의 할례가 오늘도 필요합니다.

    오늘도 그 할례를 구합니다.

    🙏 오늘의 기도

    주님 오늘도 내 마음의 무사안일함을 베어내는 할례를 허락하소서. 나는 구별된 존재라는 사실을 기억하게 하시고 언약 백성으로서의 은혜를 누리게 하소서. 아멘.

    성경 말씀 더 깊이 읽기 → 대한성서공회

  • 여호와께서 내게 무슨 말씀을 더 하실는지 알아보리라 (민수기 22장 19절) – IT CEO의 새벽 잠언

    여호와께서 내게 무슨 말씀을 더 하실는지 알아보리라 (민수기 22장 19절) – IT CEO의 새벽 잠언

    “그런즉 이제 너희도 이 밤에 여기서 유하라 여호와께서 내게 무슨 말씀을 더 하실는지 알아보리라” (민수기 22장 19절)

    새벽을 깨우며 여호와께서 무슨 말씀을 더 하실는지 기다렸을 때 길이 열렸다

    여호와께서 내게 무슨 말씀을 더 하실는지 알아보리라는 이 말씀을 25년 IT CEO로 살며 새벽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렸을 때 길이 열렸던 경험을 지나 붙들었습니다.

    어찌 보면 우리는 참 단순합니다.

    소박한 밥상이 몸을 건강하게 하듯 소박한 신앙이 우리 영을 맑게 합니다.

    새벽은 소박함과 겸손의 극치였습니다.

    우리 영이 맑아지는 시간이었습니다.

    발람이 그랬습니다.

    밤에 여기서 유하라고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무슨 말씀을 더 하실는지 알아보리라고 했습니다.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렸습니다.

    그 기다림이 길의 시작이었습니다.

    30년 새벽기도가 그 기다림의 훈련이었습니다.

    매일 새벽 하나님 앞에 나아가 여호와께서 무슨 말씀을 더 하실는지 알아보리라는 마음으로 기다렸습니다.

    30대 초 어음 부도 통보를 받던 밤이 있었습니다.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때 거실에 무릎을 꿇고 기다렸습니다.

    소박하게 기다렸습니다.

    그랬더니 새벽이 됐습니다.

    새벽예배를 드리고 공장으로 향했습니다.

    하나님이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길을 내셨습니다.

    IT 사업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기다렸을 때 길이 열렸습니다.

    50억 투자가 무산되던 날도 그랬습니다.

    텅 빈 사무실에 홀로 앉아 기다렸습니다.

    소박하게 기다렸습니다.

    그랬더니 예상치 못한 새로운 프로젝트가 들어왔습니다.

    기다림이 왜 중요할까요.

    기다릴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기 때문입니다.

    서두를 때는 내 목소리만 들립니다.

    그런데 기다릴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뇌출혈로 쓰러지던 그 시절 병상에서 2주 동안 기다렸습니다.

    여호와께서 무슨 말씀을 더 하실는지 알아보리라는 마음으로 기다렸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더 중요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신한은행 부지점장이 먼저 연락을 해왔을 때도 그랬습니다.

    내가 먼저 찾아다닌 것이 아니었습니다.

    기다렸을 때 하나님이 먼저 길을 내주셨습니다.

    소박하게 기다리는 것이 가장 능력 있는 삶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이 가장 강한 삶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무슨 말씀을 더 하실는지 알아보리라

    우리가 순수한 마음으로 구할 때 주님은 그분의 뜻을 알려 주실 것입니다.

    새벽을 깨우는 것이 그 순수한 마음으로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소박하게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서두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기다림이 쌓일 때 하나님의 뜻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보호 안에서 죄와 아무 상관 없는 복된 삶 능력 있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오늘도 새벽을 깨우며 기다립니다.

    여호와께서 무슨 말씀을 더 하실는지 기다립니다.

    💭 오늘의 질문

    오늘 나는 서두르고 있습니까. 아니면 여호와께서 무슨 말씀을 더 하실는지 소박하게 기다리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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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용한 고백] 누림이 은혜요 복입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누림이 은혜요 복입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누림이 은혜요 복입니다라는 이 고백을 누림은 환경적인 조건이 아니라 버림과 비움과 감사에서 오는 은혜임을 깨달아가는 묵상을 지나 붙들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평강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누리고 진리를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누림은 환경적인 조건이 아닙니다.

    버림과 비움에서 오는 은혜입니다.

    누림은 주어진 것에 대한 감사에서 옵니다.

    누림은 관계의 친밀함이나 소중함을 인식하는 데서 옵니다.

    누림은 무엇보다도 주님으로부터 오며 말씀을 통해 오는 진정한 행복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물질이 많고 세상적인 명예나 권세가 있다고 해도 누림이 없다면 그의 인생은 실패자입니다.

    그에게 누림이 없었다는 것은 정직함이나 진실함이 없는 거짓된 삶을 살았다는 증거입니다.

    그에게 누림이 없었다는 것은 자신의 욕심만을 이루기 위하여 살았다는 증거입니다.

    그에게 누림이 없었다는 것은 과정보다 결과만을 위하여 살았다는 증거입니다.

    그에게 누림이 없었다는 것은 관계보다 일만을 위하여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누림이 없었다는 것은 베풀기보다는 자기 이익만을 위하여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누림이 없었다는 것은 세상 것을 얻으려다 하나님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누림이 없는 일은 그 일이 무엇이든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는 일을 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근심이나 두려움과 함께 복을 주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누림이 있는 삶은 달랐습니다.

    주님은 풍랑 속에서도 주무시는 누림이 있었습니다.

    세상이 보기에는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평안히 주무셨습니다.

    그것이 누림이었습니다.

    다윗은 광야의 외로움 속에서도 자신의 생명을 노리는 위험함 속에서도 주님으로부터 기쁨을 누렸습니다.

    바울과 실라 그리고 베드로는 옥에서도 평안을 누렸습니다.

    상황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오는 누림이었습니다.

    누림은 훈련이 필요합니다.

    결과에 집착하면 과정이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의 이목에 신경 쓰면 하나님의 기쁨이 보이지 않습니다.

    매일 새벽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그 훈련이었습니다.

    오늘 주어진 것에 감사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함께하는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었습니다.

    그 훈련이 쌓이면서 누림이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세상이 말하는 성공과 하나님이 말하는 성공이 달랐습니다.

    세상은 결과로 성공을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누림으로 성공을 말하십니다.

    풍랑 속에서 평안히 주무실 수 있었던 주님의 누림이 성공이었습니다.

    광야에서도 기뻐할 수 있었던 다윗의 누림이 성공이었습니다.

    옥에서도 찬양할 수 있었던 바울과 실라의 누림이 성공이었습니다.

    누림이 은혜요 복이라는 이 진리가 오늘도 마음에 새겨집니다.

    누림이 은혜요 복입니다

    누림이 사역이고 열매입니다.

    아름다운 사역은 누림이 있는 사역이었습니다.

    과정을 누리는 사역이었습니다.

    관계를 누리는 사역이었습니다.

    주님을 누리는 사역이었습니다.

    버리고 비울 때 누림이 옵니다.

    욕심을 버릴 때 평안이 채워집니다.

    사람의 이목을 내려놓을 때 하나님의 기쁨이 채워집니다.

    결과를 내려놓을 때 과정의 아름다움이 보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풍랑 속에서도 옥 속에서도 광야 속에서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그 누림이 오늘도 유효합니다.

    오늘도 주님으로부터 오는 누림을 경험합니다.

    💭 오늘의 질문

    오늘 나는 누리고 있습니까. 결과를 향해 달리면서 과정의 아름다움을 놓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성경 말씀 더 깊이 읽기 → 대한성서공회

  •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시편 32편 6절) – IT CEO의 새벽 잠언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시편 32편 6절) – IT CEO의 새벽 잠언

    “이로 말미암아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시편 32편 6절)

    예수님을 만난 그 순간 모든 나쁜 만남이 좋은 만남으로 바뀌었다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는 이 말씀을 25년 IT CEO로 살며 어떤 나쁜 만남도 예수님을 만난 후에 좋은 만남으로 바뀌는 경험을 지나 붙들었습니다.

    사람의 일생은 만남의 일생입니다.

    사람이 태어나면서 부모님과의 만남으로 그 삶이 시작됩니다.

    어떠한 부모님을 만나느냐에 따라서 그 인생이 크게 달라지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어떤 나쁜 만남으로 내가 망가지고 깊은 상처가 있고 문제가 있고 어려움이 있었다 할지라도 예수님을 만나면 그 인생이 단번에 역전됩니다.

    예수님 만난 그 순간 나의 모든 나쁜 만남이 좋은 만남으로 바뀌고 예수님 안에서 축복된 만남으로 변화된 기적의 인생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30대 초 어음 부도 통보를 받던 밤이 있었습니다.

    나쁜 만남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나쁜 만남 앞에서 주를 만날 기회를 얻었습니다.

    거실에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 나쁜 만남이 IT 사업으로 전환하는 좋은 만남으로 바뀌었습니다.

    함께 일하던 파트너에게 배신당한 때도 그랬습니다.

    나쁜 만남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를 만날 기회를 얻었습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그랬더니 그 나쁜 만남이 더 나은 파트너십을 만드는 계기가 됐습니다.

    교회에서 상처를 받았을 때도 그랬습니다.

    나쁜 만남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를 만날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랬더니 12년이 지나 인삼을 보낼 수 있는 마음이 됐습니다.

    나쁜 만남이 용서와 화해의 좋은 만남으로 바뀌었습니다.

    삭개오가 그랬습니다.

    세리로 살았습니다.

    탐욕의 나쁜 만남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난 그 순간 인생이 역전됐습니다.

    재산을 나눠주고 속인 것을 갚겠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그랬습니다.

    교회를 핍박했습니다.

    그런데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그 순간 인생이 역전됐습니다.

    가장 위대한 사도가 됐습니다.

    나쁜 만남의 인생이 가장 좋은 만남의 인생으로 바뀌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때도 그랬습니다.

    팬데믹이라는 나쁜 만남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를 만날 기회를 얻었습니다.

    오히려 직원을 가장 많이 채용하고 큰 프로젝트를 수주했습니다.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는 말씀이 살아있었습니다.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그래서 오늘도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야 합니다.

    매일 새벽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그 기회를 얻는 것이었습니다.

    30년 새벽기도가 그 주를 만날 기회를 매일 얻는 훈련이었습니다.

    오늘 어떤 나쁜 만남으로 상처받았습니까.

    예수님을 만나십시오.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하십시오.

    예수님 만난 그 순간 인생이 역전됩니다.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는 약속이 오늘도 유효합니다.

    주님과 교제하며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오늘도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기도합니다.

    🌿 오늘의 묵상 한 줄

    예수님 만난 그 순간 모든 나쁜 만남이 좋은 만남으로 바뀌고 홍수가 범람해도 미치지 못하는 삶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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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용한 고백] 하나님은 나의 산업이시며 상급이십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하나님은 나의 산업이시며 상급이십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하나님은 나의 산업이시며 상급이십니다라는 이 고백을 하나님 자신이 우리에게 주시는 최고의 상급이라는 것을 깨달아가는 묵상을 지나 붙들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영광스럽고 광대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서는 한없는 긍휼하심과 친밀하고도 섬세한 사랑으로 관계하십니다.

    지극히 높으시지만 자신을 낮추시고 우리를 얼마나 깊이 세밀하고 친근하게 사랑하시는지 모릅니다.

    그 예가 바로 하나님이 초라한 아브라함에게 친히 찾아오셔서 나의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하시며 속마음을 털어놓으셨습니다.

    그가 어려운 환경에서 두려워 할 때는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광대하신 하나님이 보잘 것 없는 아브라함의 방패가 되어 주시고 그에게 지극히 큰 상급이 되어 주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지극히 큰 상급은 하나님 자신이었습니다.

    그와 함께 존재하고 역사하고 사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에게 그리하실 의무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신 것은 그를 사랑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랑은 스스로 채무자가 되어 주는 것이었습니다.

    존재가 되어주고 힘이 되어주고 도움이 되어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그렇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그리하실 의무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랑하기 때문에 스스로 채무자가 되어 주셨습니다.

    방패가 되어주셨습니다.

    상급이 되어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것은 하나님을 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라고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그의 존재뿐 아니라 그의 기업과 소득의 열매가 되셨습니다.

    이런 다윗을 하나님은 너무도 기뻐하셨습니다.

    그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의 모든 것이 되셨습니다.

    하나님 자신을 원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하나님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랬습니다.

    고향을 떠나라는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하나님 자신을 원하는 자에게 하나님 자신이 상급이 되어주신 것이었습니다.

    오늘 나는 무엇을 원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원합니까.

    아니면 하나님 자신을 원합니까.

    하나님 자신을 원할 때 하나님이 모든 것이 되어주십니다.

    방패가 되어주십니다.

    산업이 되어주십니다.

    상급이 되어주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산업이시며 상급이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자신을 원하는 자를 너무도 사랑하시며 그에게 모든 것이 되어주시고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최고의 상급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이에 비교할만한 다른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큰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 자신을 원하는 마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가장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산업이시며 상급이십니다라는 이 고백이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고백이었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우리에게 지극히 큰 상급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그 고백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사역이며 상급이며 열매이십니다.

    그 고백이 오늘도 가장 풍성한 삶을 만드는 고백이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 자신을 원하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오늘의 묵상 한 줄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원할 때 하나님이 모든 것이 되어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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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마태복음 28장 9절) – IT CEO의 새벽 잠언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마태복음 28장 9절) – IT CEO의 새벽 잠언

    “예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시되 평안하냐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마태복음 28장 9절)


    바닥을 치는 믿음 한 조각이라도 끌어모아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았을 때 길이 열렸다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라는 이 말씀을 25년 IT CEO로 살며 가장 힘들고 어두운 자리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았을 때 길이 열렸던 경험을 지나 붙들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여자들이 그 발을 붙잡고 경배했습니다.

    절망의 끝에서 주님을 만났습니다.

    십자가의 죽음 이후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나타나셨습니다.

    평안하냐고 물으셨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무덤가에 나아갔던 자들에게 부활하신 주님이 먼저 찾아오신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힘들고 어려운 믿음의 길에서 예수님을 놓지 않음으로 교회의 반석이 되었던 베드로를 기억합니다.

    베드로는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했습니다.

    바닥까지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 믿음 한 조각이 그를 교회의 반석으로 만들었습니다.

    30대 초 어음 부도 통보를 받던 밤이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았습니다.

    그때 거실에 무릎을 꿇고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았습니다.

    바닥을 치는 믿음 한 조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거기서 일하셨습니다.

    IT 사업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IMF 외환위기 때도 그랬습니다.

    온 나라가 흔들렸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았습니다.

    바닥을 치는 믿음 한 조각으로 붙잡았을 때 보호하심이 임했습니다.

    뇌출혈로 쓰러지던 그 시절도 그랬습니다.

    병상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면서 주님을 붙잡았습니다.

    바닥을 치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거기 계셨습니다.

    두 자녀가 음대를 수석으로 졸업했습니다.

    내가 챙기지 못했는데 주님이 챙기셨습니다.

    50억 투자가 무산되던 날도 그랬습니다.

    텅 빈 사무실에 홀로 앉아 울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았습니다.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랬더니 주님이 예상치 못한 새로운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교회 건축위원장으로 섬기면서도 그랬습니다.

    재정이 바닥을 쳤습니다.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바닥을 치는 믿음 한 조각으로 기도했습니다.

    건축이 완공됐을 때 눈물이 났습니다.

    키르기즈스탄 선교 요청이 들어왔을 때도 그랬습니다.

    빚이라도 내겠다는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고 순종했습니다.

    그랬더니 성도들을 통해 필요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이 채워졌습니다.

    그 발을 붙잡고 경배했던 여자들처럼 포기하지 않았을 때 주님이 일하셨습니다.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예수님께서는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신 주님께서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지금도 성실하신 주님은 그 약속을 단 한 번도 어긴 적이 없으셨습니다.

    우리가 믿지 않아서 볼 수도 알 수도 누릴 수도 없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럴 때에도 예수님께서는 한 번도 우리를 떠난 적이 없으셨습니다.

    오늘 믿음이 바닥을 치고 있습니까.

    포기하고 싶습니까.

    그 바닥에서 믿음 한 조각이라도 끌어모아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으십시오.

    주님은 떠난 적이 없으셨습니다.

    오늘도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 발을 붙잡을 때 주님이 평안하냐고 물어주십니다.

    30년 새벽기도가 그 발을 붙잡는 매일의 훈련이었습니다.

    오늘도 그 발을 붙잡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바닥을 치는 믿음 한 조각으로도 주님은 일하십니다.

    🙏 오늘의 기도

    주님 오늘도 그 발을 붙잡습니다. 바닥을 치는 믿음 한 조각이라도 끌어모아 주님을 붙잡겠습니다. 한 번도 우리를 떠나지 않으신 주님 오늘도 함께하여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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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용한 고백] 오직 믿음으로만 됩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오직 믿음으로만 됩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오직 믿음으로만 됩니다라는 이 고백을 구원도 성화도 이김도 치료도 동행도 다 오직 믿음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묵상을 지나 붙들었습니다.

    진리는 지극히 단순합니다.

    하나님은 지혜로운 자에게는 철저히 감추시고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한 자에게 나타내십니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십자가의 복음이고 또 하나가 바로 믿음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가 바로 구원과 모든 신앙생활의 핵심이요 본질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두 가지 진리를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고 믿음 생활의 모든 것이 가능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이 단순한 진리만으로는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생각하여 무언가를 더하여 열심히 생활합니다.

    그런데 실패하거나 곤고함에 처하게 됩니다.

    결단코 다른 방법은 없으며 하나님이 원하시지도 않습니다.

    그 예가 바로 다윗이 언약궤를 새 수레로 모셔오다 실패한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방식대로가 아닌 자신이 더 좋다고 생각한 방식으로 했다가 실패했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방식 즉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만이 답이었습니다.

    구원도 십자가의 복음을 믿음으로 주어집니다.

    죄에서 용서받음도 죄를 고백하면 용서해 주신다는 진리를 믿음으로 됩니다.

    성화에 이르는 구원이나 온전한 존재가 되는 것도 온전케 하시는 주님을 믿을 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과 인도하심과 보호하심도 믿음으로 그렇게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악으로부터 이김이나 연약함으로부터 강하게 됨도 믿음으로 됩니다.

    다윗은 믿음으로 강한 자가 되었고 언제나 전쟁에서 이겼습니다.

    바울은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자주 넘어질지라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치료도 기도의 응답도 믿음으로 받습니다.

    에녹은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우리의 불가능한 모든 것은 다 오직 믿음으로만 됩니다.

    믿음은 단순합니다.

    그런데 그 단순함이 어렵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더 많이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더 무언가를 더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오직 믿음으로만이라고 하십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을 신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믿음이 구원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그 믿음이 이김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그 믿음이 동행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믿음이 단순하다는 것이 쉽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상황이 반대로 보일 때 믿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어려운 자리에서 믿음을 선택할 때 하나님이 일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랬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믿었습니다.

    그 믿음을 하나님이 의로 여기셨습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됩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삶이 가장 풍성합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았습니다.

    믿음으로 성화됩니다.

    믿음으로 이깁니다.

    믿음으로 동행합니다.

    이 모든 것이 오직 믿음으로만 됩니다.

    그 단순한 진리를 붙들고 살아갈 때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믿음은 또한 선택입니다.

    두려움 대신 믿음을 선택합니다.

    걱정 대신 믿음을 선택합니다.

    포기 대신 믿음을 선택합니다.

    그 믿음이 오늘도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하는 통로입니다.

    불가능한 모든 것이 오직 믿음으로 가능해집니다.

    그 믿음이 오늘도 유효합니다.

    오늘도 오직 믿음으로 걸어갑니다.

    🙏 오늘의 기도

    주님 오늘도 오직 믿음으로만 살아가게 하소서. 두려움 대신 믿음을 선택하게 하소서. 불가능 앞에서도 오직 믿음으로 담대히 나아가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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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 권능을 알라 (이사야 33장 13절) – IT CEO의 새벽 잠언

    나의 권능을 알라 (이사야 33장 13절) – IT CEO의 새벽 잠언

    “너희 먼 데에 있는 자들아 내가 행한 것을 들으라 너희 가까이에 있는 자들아 나의 권능을 알라” (이사야 33장 13절)

    나의 권능을 알라는 말씀을 25년 사업의 모든 자리에서 경험했다

    나의 권능을 알라는 이 말씀을 25년 IT CEO로 살며 문제의 원인을 따라가면 하나님을 만나게 됐던 경험을 지나 붙들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진의 원인은 지구 내부층의 운동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구 내부층의 운동의 원인을 알기란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원인이라 판단하는 것들이 또 다른 현상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에 문제가 있을 때도 그랬습니다.

    원인의 근원을 따라가면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30대 초 어음 부도 통보를 받던 밤이 있었습니다.

    거래처가 어음을 부도냈습니다.

    그것이 원인인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원인의 근원을 따라가니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제조업에서 IT 사업으로 이끄시는 과정이었습니다.

    부도가 현상이었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근원이었습니다.

    IMF 외환위기 때도 그랬습니다.

    외환위기가 원인인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원인의 근원을 따라가니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3개월 전에 공장을 처분하게 하신 것이 하나님이셨습니다.

    위기가 현상이었고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근원이었습니다.

    뇌출혈로 쓰러지던 그 시절도 그랬습니다.

    과로가 원인인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원인의 근원을 따라가니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달리기를 멈추게 하심으로 더 중요한 것들을 보게 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이었습니다.

    두 자녀가 음대를 수석으로 졸업했습니다.

    내가 챙기지 못했는데 하나님이 챙기셨습니다.

    50억 투자가 무산되던 날도 그랬습니다.

    텅 빈 사무실에 홀로 앉아 울었습니다.

    그런데 원인의 근원을 따라가니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그 이후 예상치 못한 새로운 프로젝트가 들어왔습니다.

    무산이 현상이었고 하나님의 더 좋은 계획이 근원이었습니다.

    교회 건축위원장으로 섬기면서도 그랬습니다.

    재정 부족이 원인인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원인의 근원을 따라가니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건축이 완공됐을 때 눈물이 났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그 과정 전체를 이끄셨습니다.

    키르기즈스탄 선교 요청이 들어왔을 때도 그랬습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원인인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원인의 근원을 따라가니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빚이라도 내겠다는 마음으로 순종했더니 성도들을 통해 필요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이 채워졌습니다.

    나의 권능을 알라는 하나님의 선포가 그 경험을 통해 선명해졌습니다.

    나의 권능을 알라

    이사야 33장 13절은 하나님이 선포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내가 행한 것을 들으라고 하십니다.

    나의 권능을 알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것을 보면 하나님의 권능이 보입니다.

    문제 뒤에 하나님이 행하고 계신 것이 있습니다.

    그 섭리를 믿을 때 문제 앞에서 두렵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의 행하심을 아는 사람은 달랐습니다.

    현상 뒤에 계신 하나님의 권능을 믿었습니다.

    원인의 근원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앎이 담대함의 기초였습니다.

    오늘 어떤 문제 앞에 있습니까.

    그 문제의 원인의 근원을 따라가 보십시오.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를 믿음으로 고백하는 복된 오늘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 오늘의 질문

    오늘 내 앞에 있는 문제의 원인의 근원을 따라가 보셨습니까. 거기서 하나님의 권능이 보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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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용한 고백] 우리 마음의 성전에는 두 기둥이 있습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우리 마음의 성전에는 두 기둥이 있습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우리 마음의 성전에는 두 기둥이 있습니다라는 이 고백을 주님 안에 능력이 있고 주님이 세우실 것이라는 말씀과 믿음이 우리 마음의 두 기둥임을 깨달아가는 묵상을 지나 붙들었습니다.

    솔로몬의 성전에는 전면에 큰 두 기둥이 서 있었습니다.

    성전에 들어서면 눈앞에 이 두 기둥이 웅장하게 서 있고 그 기둥을 반드시 통과해야 성전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 두 기둥의 이름은 보아스와 야긴이었습니다.

    보아스란 이름의 의미는 그가 세우실 것이다이며 야긴이란 이름의 의미는 그분 안에 능력이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성전에 나오는 자들로 예배하기 전에 하나님이 누구이신가를 기둥을 통해서 생각나게 하려 하셨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더 원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이신가를 알 때 우리에게 믿음이 생기고 그 믿음 안에서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을 받기 때문이었습니다.

    광야의 성막에도 두 기둥이 있었습니다.

    그 기둥이 바로 구름 기둥과 불기둥이었습니다.

    이 기둥은 하나님의 임재의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 친히 사시며 그들을 능력으로 보호하고 앞길을 인도하셨습니다.

    이 성막과 성전의 실체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주님만이 우리에게 능력이 되시고 우리를 세우실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에도 두 기둥이 있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기둥은 말씀과 기도였습니다.

    보이는 두 기둥은 베드로와 야고보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마음의 성전에는 두 기둥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 두 기둥이 바로 주님 안에 능력이 있고 주님이 세우실 것이다라는 말씀과 믿음이었습니다.

    주님은 우리 마음에 이러한 성전의 기둥이 있는 자를 교회의 기둥으로 쓰십니다.

    두 기둥이 굳건한 사람의 삶은 달랐습니다.

    주님 안에 능력이 있다는 것이 믿어지는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세우실 것이다라는 것이 믿어지는 사람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그랬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고백했습니다.

    그 고백이 그의 마음의 두 기둥이었습니다.

    다윗이 그랬습니다.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고 선포했습니다.

    그 선포가 그의 마음의 두 기둥이었습니다.

    우리 마음의 성전에는 두 기둥이 있습니다

    성전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두 기둥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매일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이 두 기둥을 통과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주님 안에 능력이 있다는 것을 먼저 고백합니다.

    주님이 세우실 것이라는 것을 먼저 고백합니다.

    그 고백으로 하루를 시작할 때 달라집니다.

    두려움 대신 담대함으로 시작합니다.

    포기 대신 기대로 시작합니다.

    오늘 두려운 일이 있습니까.

    주님 안에 능력이 있습니다.

    오늘 포기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까.

    주님이 세우실 것입니다.

    우리 마음의 성전에 이 두 기둥이 굳건히 서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 기둥이 우리를 세우고 우리를 통해 세상을 세웁니다.

    오늘도 그 두 기둥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 오늘의 질문

    오늘 내 마음의 두 기둥은 굳건히 서 있습니까. 주님 안에 능력이 있고 주님이 세우실 것이라는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있습니까.


    성경 말씀 더 깊이 읽기 → 대한성서공회

  • 주께서 나를 아시나이다 (시편 139편 1절 2절) – IT CEO의 새벽 잠언

    주께서 나를 아시나이다 (시편 139편 1절 2절) – IT CEO의 새벽 잠언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시편 139편 1절 2절)

    주님이 모든 것을 아신다는 것을 알 때 가장 안심할 수 있었다

    주께서 나를 아시나이다는 이 말씀을 25년 IT CEO로 살며 위기마다 주님이 먼저 알고 계셨다는 것을 경험하면서 붙들었습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닥치는 위기는 때때로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내곤 합니다.

    그 이유는 멀리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눈앞의 것만 보다가 더 큰 것을 놓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십니다.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계십니다.

    30대 초 어음 부도 통보를 받던 밤이 있었습니다.

    거실에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내가 왜 이런 상황에 처했는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셨습니다.

    그 부도 이후 IT 사업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주님이 먼저 알고 계셨습니다.

    IMF 외환위기 때도 그랬습니다.

    3개월 전에 공장을 처분하게 하신 것이 하나님이셨습니다.

    내가 미처 알지 못할 때 하나님이 먼저 아셨습니다.

    멀리 보시는 하나님이 미리 길을 준비하셨습니다.

    뇌출혈로 쓰러지던 그 시절도 그랬습니다.

    내가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아셨습니다.

    달리기를 멈추게 하심으로 더 중요한 것들을 보게 하셨습니다.

    주님이 먼저 알고 계셨습니다.

    50억 투자가 무산되던 날도 그랬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재앙 같았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 너머를 보고 계셨습니다.

    그 이후 예상치 못한 새로운 프로젝트가 들어왔습니다.

    신한은행 부지점장이 먼저 연락을 해와서 오피스텔을 매수하게 됐을 때도 그랬습니다.

    내가 찾아다닌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이 먼저 아시고 길을 내주셨습니다.

    두 자녀가 음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것도 그랬습니다.

    뇌출혈로 쓰러져 내가 챙기지 못했는데 하나님이 챙기셨습니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는 분이셨습니다.

    처남에게 30년 전 빌려준 돈이 3배로 돌아왔을 때도 그랬습니다.

    30년 전의 그 선택을 주님이 아셨습니다.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는 주님이 30년의 시간을 통해 갚아주신 것이었습니다.

    위기를 스스로 만들어 낼 때가 있습니다.

    멀리 보지 못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십니다.

    그래서 주님께 맡기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선택이었습니다.

    주께서 나를 아시나이다는 이 고백이 그 맡김의 기초였습니다.

    오늘도 그 고백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주께서 나를 아시나이다

    주님은 이 낮은 우리의 자리를 살펴주시고 마음을 살펴주시고 생각을 살피십니다.

    주님은 우리 삶의 모든 상황과 형편을 아십니다.

    주님은 나라는 존재를 알고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일상적인 소소한 일까지 다 알고 계십니다.

    주님은 언제 집을 나서고 언제 돌아오는지도 다 알고 계십니다.

    주님이 아신다는 것이 얼마나 위로인지 모릅니다.

    내가 억울해도 주님이 아십니다.

    내가 힘들어도 주님이 아십니다.

    내가 외로워도 주님이 아십니다.

    그 아심이 오늘도 일어나게 하는 힘이었습니다.

    30년 새벽기도가 그 주님과 나누는 대화였습니다.

    주님이 아시니까 맡길 수 있었습니다.

    긴 호흡으로 이 삶을 바라보며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지침을 바라볼 수 있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 오늘의 묵상 한 줄

    주님은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십니다. 그 아심에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 가장 평안한 삶이었습니다.

    성경 말씀 더 깊이 읽기 → 대한성서공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