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날마다 용서를 받아야 할 존재입니다.
우리가 용서를 받기 위해서는 형제를 용서해야 했습니다.
우리 마음에 상처가 있다는 것은 용서하지 못한 죄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막히고 있거나 응답이 없다면 용서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영적인 침체가 오랫동안 계속되고 있다면 용서하지 못한 죄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가 받은 상처만을 생각하고 우리가 형제에게 상처를 준 사실을 잊고 살아갑니다.
자신의 잘못은 하나도 생각하지 못하고 형제의 잘못만을 생각하며 스스로 고통에 빠져 살아갑니다.
용서가 왜 그토록 어려운지를 생각합니다.
상처가 실제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아픔이 분명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용서는 그 상처가 없었던 것처럼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상처를 인정하면서도 그 사람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람에 대한 판단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보복하지 않겠다고 하나님 앞에서 결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용서였습니다.
요셉이 그것을 알았습니다.
형들이 자신을 팔았을 때 분명히 잘못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라고 했습니다.
판단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이 그랬습니다.
사울을 용서했습니다.
시므이가 저주할 때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 수용이 용서였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을 생각한다면 우리가 용서하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주님은 자신을 조롱하고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을 향하여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저들이 알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도 알지 못하면서 상처를 줍니다.
형제도 알지 못하면서 상처를 줬습니다.
그 알지 못함을 이해할 때 용서가 시작됩니다.
우리는 날마다 용서를 받아야 할 존재입니다
용서를 못 하면 어떻게 됩니까.
그 상처가 내 안에 남아있었습니다.
나를 계속 아프게 했습니다.
용서는 상대방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내가 그 묶임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었습니다.
욥이 친구들을 위해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셨습니다.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복을 주셨습니다.
용서가 자신의 회복을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용서의 놀라운 힘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은 모두 용서를 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형제들을 용서하는 요셉을 귀하게 사용하셨습니다.
사울을 용서한 다윗을 쓰셨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버린 자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는다고 용서했습니다.
용서하는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이었습니다.
오늘 용서하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까.
나도 날마다 용서를 받아야 할 존재임을 기억하십시오.
그 기억이 용서의 문을 열 것입니다.
용서할 때 예수님을 가장 많이 닮게 됩니다.
오늘 그 닮음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 오늘의 기도
주님 저도 날마다 용서를 받아야 할 존재임을 고백합니다. 형제를 용서하는 마음을 주소서. 주님처럼 용서하는 오늘이 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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