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고린도전서 15장 51절) – IT CEO의 새벽 잠언

새벽녘, 도심이 내려다보이는 현대적인 IT 기업 CEO 집무실 창가에 서 있는 50-60대 한국인 남성 장로의 모습. 정장을 입은 그는 책상 위에 펼쳐진 성경책과 다이어리에 손을 얹은 채, 부활의 소망과 감사를 묵상하며 먼 곳을 차분하고 경건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고린도전서 15장 51절)

교인 장례식에서 대표기도를 드리고 나면 부활의 믿음이 더 커진다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라는 이 말씀을 교인 장례식에서 대표기도를 드리고 나서 부활의 믿음이 더 깊어지는 경험을 지나 붙들었습니다.

교인의 장례식에 가는 일이 있습니다.

장로로 섬기면서 대표기도를 드리는 자리에 서게 됩니다.

그 자리에 설 때마다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함께 예배드리던 분이 이 땅의 삶을 마치고 하나님 앞에 간 것이었습니다.

어제까지 곁에 있던 분이 오늘은 관 속에 누워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앞에서 대표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 이 형제가 이 땅의 삶을 마치고 주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부활의 소망으로 이 자리에 모인 우리를 위로해 주소서.

그 기도를 드리면서 이상한 일이 생깁니다.

슬픔이 있는데 동시에 믿음이 커집니다.

저 분이 간 곳이 진짜라는 것이 느껴집니다.

장례식장은 이상한 곳입니다.

슬픔이 있지만 그 슬픔 안에 소망이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죽음이 끝이지만 믿음 안에서는 죽음이 변화의 시작이었습니다.

대표기도를 마치고 자리에 앉을 때 마음이 달랐습니다.

부활의 믿음이 더 커져 있었습니다.

그 믿음이 커질수록 오늘의 삶이 달라 보였습니다.

장례식에서 돌아오는 길에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내가 지금 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지가 새롭게 보였습니다.

부활의 믿음은 죽은 후의 일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이 순간을 주님 앞에서 옷깃을 여미며 경건하게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장례식에 가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오히려 삶에 대한 감사가 커졌습니다.

뇌출혈로 쓰러지고 재활을 했던 경험이 있기에 그 감사가 더 깊었습니다.

병상에 누워있을 때 저 자리에 내가 누울 뻔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장례식에서 드리는 대표기도가 달라졌습니다.

단순히 형식적으로 드리는 기도가 아니라 부활의 소망을 진짜로 붙드는 기도가 됐습니다.

하나님 이 형제가 오늘 부활의 첫 열매이신 주님께 나아갔습니다.

우리도 그날이 올 것입니다.

그날까지 오늘을 경건하게 살게 하소서.

그 기도를 드리면서 내가 먼저 변화됐습니다.

60평생을 살아오면서 부모님의 장례식도 있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시신 기증을 하시며 마지막 유언을 남기신 그 자리도 있었습니다.

그 모든 자리에서 부활의 믿음이 없다면 얼마나 절망적인 자리인가를 느꼈습니다.

그런데 부활의 믿음이 있을 때 그 슬픔 안에 소망이 있었습니다.

그 자리마다 아버지의 유언이 떠올랐습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목사님 편에서라.

아버지도 그 믿음으로 살다가 시신까지 기증하시며 이 땅을 떠나셨습니다.

그 삶이 부활의 믿음으로 산 삶이었습니다.

나도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이 땅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장례식장에서 드는 기도였습니다.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고린도전서 15장 51절은 부활의 비밀을 선포하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죽음이 끝이 아니라 변화의 시작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부활의 믿음은 단순히 신자가 죽은 후에 다시 사는 것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 부활의 믿음으로 살고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로마서 8장 11절도 말씀합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부활의 능력이 오늘 이 순간에도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부활의 믿음이 오늘을 살게 한다

교인 장례식에서 드리는 대표기도가 나를 먼저 변화시켰습니다.

부활의 믿음이 오늘의 삶을 함부로 살지 않게 하고 매일의 삶을 중요하게 여기며 주님 앞에서 옷깃을 여미게 합니다.

은퇴를 앞두고 있는 지금 장례식에서의 그 기도가 더 가깝게 느껴집니다.

오늘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부활의 믿음으로 사는 것이었습니다.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라는 그 약속 앞에서 오늘을 더 소중하게 살겠다는 다짐이 새로워집니다.

부활의 믿음이 오늘 이 자리에서 가장 실제적인 힘이 됩니다.

그 믿음으로 오늘도 한 걸음을 내딛습니다.

💭 오늘의 질문

지금 나는 부활의 믿음으로 오늘을 살고 있습니까. 그 믿음이 오늘의 삶을 얼마나 경건하게 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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