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께서 그 앞서 가꾸셨으므로 그 뿌리가 깊이 박혀서 땅에 가득하며” (시편 80편 9절)
무슨 일이 있더라도 목사님 편에서라 아버지의 유언이 뿌리가 됐다
주께서 그 앞서 가꾸셨으므로 그 뿌리가 깊이 박혀서 땅에 가득하다는 이 말씀을 아버지께서 이 땅을 떠나시기 직전 떨리는 입술로 남기신 유언이 신앙의 뿌리가 됐던 경험을 지나 붙들었습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직전이었습니다.
야윈 육신을 의학 연구를 위해 시신 기증하시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아낌없이 드리는 그 결정 자체가 이미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마지막 순간에 떨리는 입술로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목사님 편에서라.
그 한 마디였습니다.
병실 안이 조용했습니다.
아버지의 숨소리가 거칠었습니다.
그 마지막 순간에 힘을 다해 남기신 말씀이었습니다.
시신까지 기증하신 아버지가 몸도 다 드리고 마지막으로 남기신 것이 재산도 아니었고 사업 이야기도 아니었습니다.
신앙의 자리를 지키라는 것이었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어떤 갈등이 있어도 목사님을 신뢰하고 교회를 세우는 편에 서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유언을 듣는 순간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아버지가 평생 신앙생활을 하시면서 깨달으신 가장 중요한 것이 그 한 마디에 담겨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삶 자체가 그 유언을 뒷받침하는 것이었습니다.
평생 새벽기도를 드리셨습니다.
교회를 섬기는 일에 앞장서셨습니다.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공동체를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그 삶이 먼저 있었기에 그 유언이 무게가 있었습니다.
말로만 남기신 유언이 아니었습니다.
평생으로 증명하신 유언이었습니다.
그리고 몸까지 드리시며 남기신 유언이었습니다.
나는 아버지의 삶이라는 뿌리와 아버지의 유언이라는 뿌리 위에 서 있었습니다.
그 뿌리들이 주께서 앞서 가꾸셨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버지를 통해 미리 심어주신 것이었습니다.
그 뿌리가 60평생을 지탱해줬습니다.
그 유언이 이후 수십 년 동안 흔들리지 않는 기준이 됐습니다.
다른 중직자의 그릇된 모습에 내 믿음이 흔들리던 때에도 그 유언이 기준이 됐습니다.
교회에서 상처를 받고 공동체를 떠나야 했던 그 아픔 속에서도 그 유언이 다시 일어서게 하는 힘이 됐습니다.
12년 만에 인삼을 보내며 용서를 향해 한 걸음을 내딛던 그 날도 아버지의 유언이 떠올랐습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목사님 편에서라.
그 말씀이 방향을 잃지 않게 해줬습니다.
주께서 그 앞서 가꾸셨으므로 그 뿌리가 깊이 박혀서 땅에 가득하며
시편 80편 9절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포도나무로 비유하여 친히 앞서 가꾸셨다는 말씀입니다.
주께서 앞서 가꾸셨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내가 뿌리를 내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앞서 가꾸셨기 때문에 뿌리가 깊이 박혔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유언도 하나님이 아버지를 통해 심어주신 뿌리였습니다.
잠언 22장 6절도 말씀합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아버지가 마지막 유언으로 남기신 그 말씀이 마땅히 행할 길이었습니다.
그 길을 가르쳐주셨기에 지금도 그것을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에 충실하면 내일 거목으로 자라납니다
잎만 무성한 나무는 언제 말라 버릴지 모릅니다.
그러나 뿌리 깊은 나무는 비바람이 불어도 꺾이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유언이 그 뿌리가 됐습니다.
은퇴를 앞두고 아버지의 유언을 다시 떠올립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목사님 편에서라.
그 유언을 이제 아들에게도 전하고 싶습니다.
아버지가 나에게 남기신 것처럼 나도 다음 세대에게 그 뿌리를 전하는 것이 주께서 앞서 가꾸셨다는 말씀의 계속이었습니다.
주께서 그 앞서 가꾸셨으므로 그 뿌리가 깊이 박혀서 땅에 가득하다는 그 약속이 아버지의 유언을 통해 오늘도 살아있습니다.
🌿 오늘의 묵상 한 줄
아버지의 마지막 유언 무슨 일이 있더라도 목사님 편에서라가 60평생 신앙의 뿌리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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