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시편 37편 7절)
변명 한마디 하지 않았던 그 시간
중고등부 부장을 맡았을 때였습니다.
어느 주일, 한 아이가 예배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걱정이 돼서 그 부모에게 연락했습니다.
오늘 안 왔는데 어디 아프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아이가 부모에게 교회에 갔다고 거짓말을 한 상태였습니다.
부모는 당황했고, 그 당황함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렀습니다.
내가 거짓말을 했다는 이야기가 가까운 교인들 사이에 퍼졌습니다.
처음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내가 한 일이라고는 아이를 걱정해서 연락한 것뿐이었는데, 거짓말쟁이가 된 셈이었습니다.
교인들의 시선이 달라지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오래 함께 신앙생활을 해온 분들이었는데, 그분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가 신경 쓰였습니다.
당장 해명하고 싶었습니다.
사실관계를 정리해서 주변에 알리고, 내가 얼마나 억울한지를 설명하고 싶었습니다.
그 아이가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밝히면 오해는 금방 풀릴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멈췄습니다.
말을 꺼낼수록 더 복잡해질 것 같았습니다.
무엇보다 그 아이가 상처를 받을 것 같았습니다.
청소년 시기에 부모 앞에서 거짓말쟁이로 드러나는 것이 그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걱정이 됐습니다.
그리고 그 부모도 생각이 났습니다.
아이의 거짓말을 알게 되는 순간 그 부모가 얼마나 당황하고 민망할지가 그려졌습니다.
결국 변명 한마디 하지 않고 그냥 넘어갔습니다.
억울했지만 잠잠히 있었습니다.
그 결정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며칠간 마음이 무거웠고, 교회에 가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습니다.
수련회 자리에서 그 부모가 찾아왔습니다.
진실을 알게 됐다며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 순간, 잠잠했던 그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말을 참았던 것이 그 아이를, 그 가정을, 그리고 나 자신을 지켜준 것이었습니다.
잠잠하라는 명령의 진짜 의미
시편 37편 7절의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는 명령은 히브리어로 적극적인 침묵을 의미합니다.
억울해도 말하지 않는 것, 하고픈 말을 참는 것, 그 자리를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모두가 하고픈 말을 다 토해낸다면 그 뒷감당은 누가 할 수 있을까요.
잠언 17장 28절도 말씀합니다. “미련한 자라도 잠잠하면 지혜로운 자로 여겨지고 그의 입술을 닫으면 슬기로운 자로 여겨지느니라.”
하고픈 말을 다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불평이 쏟아지고, 그 결과는 모두에게 상처가 됩니다.
잠잠함은 약함이 아니라, 하나님이 일하실 자리를 비워두는 것입니다.
진실은 때가 되면 스스로 드러난다
그 수련회 자리에서 부모가 용서를 구하러 왔을 때, 내가 몇 년 전에 해명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했습니다.
말이 말을 낳고, 오해가 오해를 키웠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잠잠했기 때문에 진실이 스스로 드러날 자리가 생겼습니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는 말씀은, 결국 진실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자세입니다.
지금도 억울한 자리에 있다면, 그 자리를 하나님께 맡기고 잠잠히 기다리는 것이 가장 강한 선택입니다.
💭 오늘의 질문
지금 해명하고 싶은 억울한 자리가 있다면, 그 말을 잠시 내려놓고 하나님께 맡겨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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