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라는 이 고백을 이해되지 않는 일을 만났을 때도 기대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아무런 대답이 없을 때조차도 신뢰하는 것이 믿음임을 깨달아가는 묵상을 지나 붙들었습니다.
믿음은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냥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경우에도 신뢰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어떤 경우라는 말은 자신이 이해되지 않는 일을 만났을 때도 더 나아가 자신이 기대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자신의 말에 아무런 대답이 없을 때조차도 신뢰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런 존재가 되고 하나님을 그렇게 신뢰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렇게까지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언제 어떤 경우에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의롭고 선하시다는 것을 확실히 믿을 때 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의롭고 선하십니다.
그 사실이 흔들리지 않을 때 어떤 상황에서도 신뢰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그렇게 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칠 때 그랬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이었습니다.
기대와 전혀 다른 방향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다니엘이 사자굴 속에 들어갈 때도 그랬습니다.
억울하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잃은 욥도 그랬습니다.
아무런 대답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욥은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삼대 의인을 노아 다니엘 욥이라고 말씀합니다.
이들은 자신의 처지가 어떻게 되든 하나님을 신뢰하므로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신뢰는 증명된 이후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증명되기 전에 하는 것이 신뢰였습니다.
결말을 보지 않고 신뢰하는 것이 믿음이었습니다.
욥도 고통 중에 하나님이 침묵하셨습니다.
설명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욥은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보이지 않을 때도 신뢰하는 것이 어떤 경우에도 신뢰하는 믿음이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신뢰하는 믿음이 가장 어두운 순간에 빛났습니다
신약에는 빌립보에서 매를 맞고 상처투성이인데도 찬양했던 바울이 그랬습니다.
능욕과 채찍질을 당하면서도 이를 합당하게 여긴 베드로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삶이 너무도 존귀하고 영광스러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사용하시고 인정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바울이 빌립보 감옥에서 찬양했던 것도 그랬습니다.
매를 맞고 상처투성이인 상태에서 찬양한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찬양했습니다.
하나님이 의롭고 선하시다는 것이 그 상황에서도 믿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신뢰가 한밤중의 찬양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믿음과 신뢰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사람과의 관계로 흘러갑니다
믿음과 신뢰는 하나님과의 관계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사람과의 관계도 신뢰하므로 관계가 깊어지고 더욱 친밀해집니다.
어떤 사람을 신뢰한다는 말은 좋을 때뿐 아니라 좋지 않은 상황에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보았을 때도 실수하고 넘어질 때조차도 그를 신뢰하므로 기다리고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울 때 사람을 신뢰하는 법도 배우게 됩니다.
신뢰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매일 새벽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그 훈련이었습니다.
이해되지 않는 날도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신뢰의 훈련이었습니다.
대답이 없는 것 같아도 기도를 드리는 것이 신뢰의 훈련이었습니다.
그 훈련이 쌓이면서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자라났습니다.
오늘 이해되지 않는 상황 앞에 있습니까.
기대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대답이 없는 것 같습니까.
그때가 바로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필요한 때입니다.
하나님은 의롭고 선하십니다.
그 사실이 오늘도 변하지 않습니다.
💭 오늘의 질문
지금 이해되지 않는 상황 앞에 있습니까. 그 자리에서도 하나님이 의롭고 선하시다는 것이 믿어집니까.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