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고백] 누림이 은혜요 복입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누림이 은혜요 복입니다

누림이 은혜요 복입니다라는 이 고백을 누림은 환경적인 조건이 아니라 버림과 비움과 감사에서 오는 은혜임을 깨달아가는 묵상을 지나 붙들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평강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누리고 진리를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누림은 환경적인 조건이 아닙니다.

버림과 비움에서 오는 은혜입니다.

누림은 주어진 것에 대한 감사에서 옵니다.

누림은 관계의 친밀함이나 소중함을 인식하는 데서 옵니다.

누림은 무엇보다도 주님으로부터 오며 말씀을 통해 오는 진정한 행복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물질이 많고 세상적인 명예나 권세가 있다고 해도 누림이 없다면 그의 인생은 실패자입니다.

그에게 누림이 없었다는 것은 정직함이나 진실함이 없는 거짓된 삶을 살았다는 증거입니다.

그에게 누림이 없었다는 것은 자신의 욕심만을 이루기 위하여 살았다는 증거입니다.

그에게 누림이 없었다는 것은 과정보다 결과만을 위하여 살았다는 증거입니다.

그에게 누림이 없었다는 것은 관계보다 일만을 위하여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누림이 없었다는 것은 베풀기보다는 자기 이익만을 위하여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누림이 없었다는 것은 세상 것을 얻으려다 하나님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누림이 없는 일은 그 일이 무엇이든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는 일을 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근심이나 두려움과 함께 복을 주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누림이 있는 삶은 달랐습니다.

주님은 풍랑 속에서도 주무시는 누림이 있었습니다.

세상이 보기에는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평안히 주무셨습니다.

그것이 누림이었습니다.

다윗은 광야의 외로움 속에서도 자신의 생명을 노리는 위험함 속에서도 주님으로부터 기쁨을 누렸습니다.

바울과 실라 그리고 베드로는 옥에서도 평안을 누렸습니다.

상황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오는 누림이었습니다.

누림은 훈련이 필요합니다.

결과에 집착하면 과정이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의 이목에 신경 쓰면 하나님의 기쁨이 보이지 않습니다.

매일 새벽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그 훈련이었습니다.

오늘 주어진 것에 감사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함께하는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었습니다.

그 훈련이 쌓이면서 누림이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세상이 말하는 성공과 하나님이 말하는 성공이 달랐습니다.

세상은 결과로 성공을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누림으로 성공을 말하십니다.

풍랑 속에서 평안히 주무실 수 있었던 주님의 누림이 성공이었습니다.

광야에서도 기뻐할 수 있었던 다윗의 누림이 성공이었습니다.

옥에서도 찬양할 수 있었던 바울과 실라의 누림이 성공이었습니다.

누림이 은혜요 복이라는 이 진리가 오늘도 마음에 새겨집니다.

누림이 은혜요 복입니다

누림이 사역이고 열매입니다.

아름다운 사역은 누림이 있는 사역이었습니다.

과정을 누리는 사역이었습니다.

관계를 누리는 사역이었습니다.

주님을 누리는 사역이었습니다.

버리고 비울 때 누림이 옵니다.

욕심을 버릴 때 평안이 채워집니다.

사람의 이목을 내려놓을 때 하나님의 기쁨이 채워집니다.

결과를 내려놓을 때 과정의 아름다움이 보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풍랑 속에서도 옥 속에서도 광야 속에서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그 누림이 오늘도 유효합니다.

오늘도 주님으로부터 오는 누림을 경험합니다.

💭 오늘의 질문

오늘 나는 누리고 있습니까. 결과를 향해 달리면서 과정의 아름다움을 놓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성경 말씀 더 깊이 읽기 → 대한성서공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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