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고백]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 합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 합니다라는 이 고백을 신앙의 가장 큰 위기인 무사안일함을 베어내는 마음의 할례가 매 순간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묵상을 지나 붙들었습니다.

우리 신앙의 가장 큰 위기요 적은 무사안일입니다.

신앙이 좋은 사람도 고통의 때나 위험한 때가 아닌 무사안일한 때에 다 넘어지고 실패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무사안일함 속에서는 우리 육체의 본성이 가장 잘 자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그것을 잘 모른다는 것과 안다고 하더라도 거기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포기하기에는 너무도 익숙하도록 무사안일을 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을 포기하려면 버려야 하는 아픔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하나님의 언약 안에 거하기 위하여 자기의 생살을 잘라내는 아픔을 반드시 통과해야 합니다.

무사안일함이 어떻게 우리에게 들어오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처음에는 작은 안일함에서 시작합니다.

오늘 하루 쉬어도 되겠지 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 작은 안일함이 쌓이면서 무사안일이 됩니다.

그리고 그 무사안일이 익숙해지면서 육체의 본성이 자라납니다.

그렇게 신앙이 무너지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이 그랬습니다.

전쟁에 나가야 할 때 궁에 머물렀습니다.

그 무사안일함 속에서 밧세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신앙이 좋았던 다윗이 무사안일한 때에 넘어진 것이었습니다.

솔로몬도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받았던 솔로몬이 부귀영화를 누리는 무사안일함 속에서 우상을 섬기게 됐습니다.

무사안일함이 신앙의 가장 큰 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매일 새벽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마음의 할례를 받는 것이었습니다.

편안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것이 무사안일함을 베어내는 것이었습니다.

할례의 진정한 의미는 마음에 하는 것으로 마음의 가죽을 베는 것이었습니다.

즉 무사안일함을 베어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야 언약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돌보심과 인도하심과 함께 하심의 은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마음의 할례를 받은 사람은 달랐습니다.

무사안일함을 베어낸 자리에 열심이 채워졌습니다.

안주함을 베어낸 자리에 도전이 채워졌습니다.

익숙함을 베어낸 자리에 새로운 은혜가 채워졌습니다.

오늘 내 마음을 점검합니다.

어떤 익숙함에 안주하고 있습니까.

어떤 무사안일함이 내 마음에 자라고 있습니까.

그것을 발견했다면 지금 베어내야 합니다.

오래 익숙해질수록 베어내는 아픔이 더 커지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 합니다

구약의 할례는 일생에 한번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음의 가죽을 베는 할례는 매 순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로 할례의 수종자가 되셨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것이 우리 마음의 가죽을 벨 수 있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마음의 할례를 받는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오늘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나아가는 것이었습니다.

무사안일함을 고백하는 것이었습니다.

편안함을 내려놓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구별된 존재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기억이 마음의 할례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 합니다.

그 아픔을 통과할 때 하나님의 돌보심과 인도하심의 은혜가 임합니다.

마음의 할례가 오늘도 필요합니다.

오늘도 그 할례를 구합니다.

🙏 오늘의 기도

주님 오늘도 내 마음의 무사안일함을 베어내는 할례를 허락하소서. 나는 구별된 존재라는 사실을 기억하게 하시고 언약 백성으로서의 은혜를 누리게 하소서. 아멘.

성경 말씀 더 깊이 읽기 → 대한성서공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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