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은혜와 함께 가시를 주셨습니다라는 이 고백을 형통하고 성공할 때 가장 위험하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묵상을 지나 붙들었습니다.
인간은 자신도 모르게 교만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교만하지 않게 하기 위해 은혜와 함께 육체의 가시를 주셨다고 말했습니다.
이 가시가 사단의 사자 곧 질병이나 우리의 약점들입니다.
우리가 자신도 모르게 교만해지면 이 가시가 찌르므로 자신의 교만을 보게 하고 하나님께로 겸손히 서게 합니다.
그렇다면 언제 인간은 교만해질까요.
바울의 고백처럼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큰 은혜를 받을 때입니다.
자신으로부터 많은 주님의 일들이 나타날 때입니다.
사람으로부터 찬사를 받게 될 때입니다.
그리고 모든 일이 잘되어 성공했을 때입니다.
형통할 때 교만이 들어옵니다.
잘 될 때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보다 자신이 더 크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토저의 말이 마음에 걸립니다.
우리가 가장 위험한 때가 바로 자신의 삶이 형통하여 편안할 때다.
그러므로 가장 위험한 곳에 자신을 두는 것이야말로 자신을 가장 안전하게 하는 것이다.
성공하고 편안할 때가 가장 위험한 때라는 이 역설이 마음에 새겨집니다.
헨리 나우웬도 오르막길 인생에는 성공과 칭찬에 가려 예수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이제 낮은 곳에서 예수를 만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형통할 때 하나님이 보이지 않기 시작하면 이미 위험한 자리에 들어선 것이었습니다.
성경의 많은 인물들도 성공하고 형통하고 사람으로부터 칭찬과 존경을 한 몸에 받을 때 사단이 그들을 넘어지게 했습니다.
다윗이 그랬습니다.
솔로몬도 그랬습니다.
우리 또한 그들과 다르지 않는 연약한 존재일 뿐입니다.
교만은 서서히 들어옵니다.
처음에는 작은 자만이었습니다.
그것이 쌓이면서 교만이 됩니다.
그런데 가시가 찌릅니다.
그 순간 자신의 교만을 보게 됩니다.
가시가 찌를 때 비로소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게 됩니다.
그 무릎 꿇음이 회복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래서 가시가 은혜였습니다.
성공과 찬사가 있을 때 더 조심해야 했습니다.
칭찬을 받을 때 그 칭찬이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것인데 내가 칭찬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그 칭찬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교만이 시작됩니다.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것이 교만을 막는 방식이었습니다.
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은혜와 함께 가시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가시를 주셨습니다.
가시가 고통스럽지만 그 가시가 우리를 하나님 앞에 겸손히 서게 합니다.
가시가 없으면 교만해집니다.
교만하면 하나님이 보이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가시가 사랑이었습니다.
은혜와 함께 가시를 주신 것이 하나님의 가장 깊은 사랑이었습니다.
바울은 그 가시를 세 번씩 제거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거절하셨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 하셨습니다.
가시가 있을 때 은혜가 더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형통할 때 더 많이 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었습니다.
어려울 때는 자연스럽게 기도하게 됩니다.
그런데 형통할 때는 기도가 줄어들기 쉽습니다.
그때 교만이 들어옵니다.
형통할 때 더 겸손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했습니다.
그것이 교만을 막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래서 고난과 약함도 복이라고 하셨나 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로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은혜만 성공만 주시지 않고 은혜와 함께 가시를 남겨두신 것이었습니다.
성공만이 축복이 아니라 고난과 궁핍과 핍박과 약함도 눈물 흘리는 일도 복이라고 하신 이유가 여기 있었습니다.
오늘 어떤 가시가 있습니까.
그 가시가 고통스럽습니까.
그 가시가 하나님의 사랑일 수 있습니다.
교만해지지 않도록 지켜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일 수 있습니다.
오르막길 인생에 성공과 칭찬에 가려 예수님이 보이지 않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낮은 곳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오늘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오늘의 기도
주님 형통할 때 교만해지지 않게 하소서. 은혜와 함께 주신 가시의 의미를 깨닫게 하소서. 낮은 곳에서 주님을 만나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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