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이 동역입니다라는 이 고백을 함께 존재하는 것 하나만으로도 두려움이 사라지고 담대함을 얻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묵상을 지나 붙들었습니다.
동행이 동역입니다.
동행 없는 동역은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와 동행하므로 동역하시기 위해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동행이 동역인 이유는 함께 존재하시고 동행하신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두려움이 사라지고 담대함을 얻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하심같이 우리와 동행하시므로 우리와 동역하십니다.
자신은 감추시고 우리와 동행하시므로 우리와 함께 우리를 통해서 일하시기를 너무도 좋아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지만 주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음같이 주님도 우리 없이는 아무것도 하실 수 없습니다.
동행이 동역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님이 우리와 동행함으로 친밀한 교제를 통해서 힘을 얻게 하시고 위험할 때는 지켜주시고 지쳐있을 때는 손을 잡아주시려 우리와 동행하십니다.
그 동행이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을 보내실 때에 혼자가 아닌 둘씩 짝을 지어서 보내셨습니다.
형제와 동행이 주님과 동행이었습니다.
형제가 같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든든하고 힘을 얻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전도 여정이 그토록 험하고 힘이 들었지만 끝까지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도 바울과 동행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바울 곁에 기쁨으로 그와 동행하는 사람들을 붙여 주셔서 힘이 되게 하셨습니다.
비록 바울과 동행했던 바나바 실라 누가의 행적이 거의 기록되지 않았을지라도 그들은 무대 뒤에 선 위대한 바울의 동역자들이었습니다.
그들 없는 바울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동행이 동역이었기 때문입니다.
동행은 말이 아닙니다.
존재입니다.
위로의 말을 백 번 하는 것보다 함께 있어주는 것이 더 큰 위로였습니다.
주님도 말로 동역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동행하심으로 동역하셨습니다.
임마누엘 하나님 우리와 함께 계신 하나님이라는 이름이 그것을 말해주었습니다.
동행에는 희생이 따릅니다.
바나바 실라 누가가 바울과 동행하기 위해 자신의 계획을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곳이 아닌 바울이 가는 곳을 함께 가야 했습니다.
동행은 자신을 내려놓는 것이었습니다.
그 내려놓음이 동역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동행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기적입니다.
혼자서는 갈 수 없는 길을 함께이기에 갈 수 있게 됩니다.
주님도 혼자 십자가 지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구레네 시몬이 잠깐이지만 십자가를 함께 졌습니다.
요한이 십자가 아래 서 있었습니다.
그 동행들이 주님의 길을 함께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오늘 누군가의 십자가 길을 함께 걸어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동행이고 그것이 동역이었습니다.
동행이 동역입니다
주님이 우리와 동행하신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로인지 모릅니다.
세상 끝 날까지 항상 함께 있으리라는 그 약속이 오늘도 유효합니다.
힘들고 지칠 때 주님이 동행하고 계신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담대함의 시작이었습니다.
오늘 누가 내 곁에서 동행하고 있습니까.
그 사람의 존재가 얼마나 귀한지 알아야 합니다.
내가 누구의 동행이 되고 있습니까.
기록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바나바 실라 누가처럼 함께 걸어주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그 동행이 동역이 됩니다.
주님이 우리와 동행하시듯 우리도 누군가의 동행이 되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오늘의 기도
주님 오늘도 우리와 동행하여 주소서. 힘들 때 손을 잡아주시고 지칠 때 함께 걸어주소서. 그리고 우리도 누군가의 동행이 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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