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은 우리를 입체적으로 사랑하십니다라는 이 고백을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로 사랑하시는 주님의 완전한 사랑을 깨달아 알고 의지하는 것이 입체적 믿음임을 깨달아가는 묵상을 지나 붙들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입체적으로 사랑하십니다.
이 사랑을 주님의 완전한 사랑 무한한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에게 입체적 사랑이 아닌 입체적 믿음을 원하십니다.
그것은 우리가 결코 주님을 입체적으로 사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입체적 사랑을 깨달아 알고 또한 믿고 의지하면 우리의 존재가 주님의 사랑으로 충만하여 우리도 그 사랑을 반사할 수 있습니다.
그 입체적 사랑을 바울은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사랑이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충만한 것으로 충만하게 하기를 무릎을 꿇고 비노니라는 말을 통해서 그가 얼마나 간절히 원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이 무릎을 꿇고 빌었습니다.
주님의 입체적 사랑을 아는 것이 그만큼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사랑의 넓이는 어떤 사람도 다 품을 수 있는 사랑입니다.
어떤 우리의 약점이나 실수도 다 품는 사랑입니다.
아무리 부족해도 아무리 실수해도 다 품어주시는 사랑이었습니다.
그 넓이 안에 우리가 있었습니다.
사랑의 길이는 끝까지 사랑하는 사랑으로 우리가 부족해도 실패해도 변함없이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포기하지 않는 사랑이었습니다.
그 길이가 우리를 붙들었습니다.
사랑의 높이는 희생적인 사랑으로 가장 소중한 것을 기쁨으로 내어주는 사랑입니다.
주님이 자신을 내어 줌으로 우리를 하나님 자녀로 올리는 사랑이었습니다.
그 높이만큼 우리를 올려주셨습니다.
사랑의 깊이는 은밀하고 섬세한 사랑으로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또한 그 사랑을 이해하지 못해도 묵묵히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그 깊이가 우리를 안심하게 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면 두려움 속에서 삽니다.
그런데 주님의 입체적 사랑을 알 때 그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사랑의 넓이가 우리의 모든 약점과 실수를 품어주신다는 것을 알 때 두렵지 않게 됩니다.
사랑의 길이가 끝까지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 때 포기하지 않게 됩니다.
사랑의 높이가 가장 소중한 것을 기쁨으로 내어주셨다는 것을 알 때 감사하게 됩니다.
사랑의 깊이가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 때 안심하게 됩니다.
그래서 요한은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사랑은 주님의 사랑에 대한 반응이었습니다.
주님의 입체적 사랑을 알 때 우리도 그 사랑을 반사할 수 있게 됩니다.
이웃을 품을 수 있게 됩니다.
포기하지 않고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주님은 우리를 입체적으로 사랑하십니다
주님이 이처럼 우리를 입체적으로 사랑하시기에 우리도 주님을 전 존재로 전 삶에서 세밀하게 진실한 마음으로 주님을 의지하고 살아갈 때 주님도 우리의 믿음에 대하여 전 존재와 전 삶에 세밀하게 반응하십니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전심으로 주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적용하며 살아가는 것이 입체적 믿음이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뜰 때 주님의 사랑 안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었습니다.
관계가 어려울 때 주님의 사랑의 넓이를 생각하며 품는 것이었습니다.
포기하고 싶을 때 주님의 사랑의 길이를 기억하며 끝까지 가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주님의 입체적 사랑을 기억합니다.
그 사랑의 넓이 안에 내가 있습니다.
그 사랑의 길이가 오늘도 나를 붙들고 있습니다.
그 사랑의 높이가 나를 올려주고 있습니다.
그 사랑의 깊이가 나를 안심하게 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입체적으로 사랑하십니다.
오늘도 그 사랑으로 충만한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오늘의 질문
오늘 나는 주님의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그 사랑을 알 때 두려움이 사라집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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