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해 감사의 이유를 분명히 밝힙니다.
그것은 믿음이 자라는 것과 사랑이 풍성해지는 것입니다.
두 가지는 따로 떨어진 열매가 아니라, 하나의 뿌리에서 나오는 두 줄기와 같습니다.
바울은 다른 어떤 성과나 칭찬이 아니라, 오직 믿음과 사랑이 자라는 것만을 감사의 이유로 삼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누군가에게 감사할 때, 그 기준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하는 대목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사랑을 친절하거나 다정한 감정 정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바울이 말하는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함께 견디고 자라나는 헌신을 가리킵니다.
교회 안에서도 다른 이의 비위를 맞추는 것을 사랑이라 착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진짜 사랑은 상대를 편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를 위해 기꺼이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입니다.
IT 현장에서 배운 사랑의 무게
몇 해 전, 회사에 한 직원이 큰 실수로 거래처와의 계약을 위태롭게 만든 적이 있습니다.
손해 금액이 작지 않았고, 다른 직원들은 그를 내보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저 역시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직원의 사정을 들여다보니, 그는 가정의 어려움 속에서 지쳐 있던 상태였습니다.
그를 내보내는 것은 회사를 보호하는 가장 쉬운 길이었지만, 그것이 사랑의 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임원 회의에서도 의견이 갈렸습니다.
한쪽은 원칙대로 책임을 묻자고 했고, 다른 한쪽은 한 번의 기회를 더 주자고 했습니다.
결정을 내리기까지 며칠 동안 잠을 설칠 만큼 고민했습니다.
새벽마다 무릎을 꿇고, 제 판단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구했습니다.
결국 저는 그를 다른 부서로 옮기고, 시간을 두고 다시 신뢰를 쌓을 기회를 주기로 결정했습니다.
손해는 회사가 떠안았고, 일부 직원들의 불만도 감수해야 했습니다.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매번 그의 실수를 다시 마주할 때마다 인내가 필요했고, 회사의 손익을 따지는 제 안의 다른 목소리와도 싸워야 했습니다.
몇몇 동료는 제가 너무 무르게 대처한다며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1년 뒤, 그 직원은 회사에서 가장 신뢰받는 사람 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
그는 누구보다 꼼꼼하게 일을 챙기는 사람으로 변해 있었고, 후배들에게도 자신의 실수를 솔직히 나누며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또 다른 일도 있었습니다.
오랜 거래처 사장님이 자금 사정으로 약속한 대금을 몇 달째 미루고 있었습니다.
법적으로 따지면 충분히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회사 사정을 알고 나니, 차마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결제 일정을 다시 조정해 드리고, 그 시기를 함께 견뎌드렸습니다.
직원들 중에는 “우리도 어려운데 왜 저쪽을 봐주냐”며 서운해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풍성한 사랑은 비위를 맞추는 일이 아니라, 손해를 감수하고 끝까지 견디는 일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고난 속에서 자란 사랑
데살로니가 교회는 극심한 박해와 환난 가운데 있던 공동체였습니다.
사도행전의 기록을 보면, 바울이 이 도시에서 복음을 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유대인들의 소동으로 쫓기듯 떠나야 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럼에도 그곳에 남겨진 성도들은 같은 박해를 그대로 이어받아야 했습니다.
바울은 그런 그들에게 안타까움이 아니라 감사를 표현합니다.
고난 속에서도 믿음이 자라고 사랑이 자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사용한 ‘풍성하다’는 표현은 차고 넘쳐 흘러간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사랑이 자기 안에 머무르지 않고, 고통 중에도 다른 이들에게로 흘러간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에 머물던 짧은 기간 동안에도 그들을 위해 수고하며 인내했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자신이 떠난 뒤에도 환난 속에서 자라나는 그들의 사랑을 보며 깊이 감사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감정이 좋을 때만 베푸는 사랑이 아닙니다.
형편이 어렵고 마음이 지칠 때조차 서로를 향해 흘러가는 사랑, 그것이 바울이 본 데살로니가 교회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들은 박해 가운데서도 서로를 향한 마음의 문을 닫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어려운 형편이 서로를 더 단단히 묶어주는 끈이 되었습니다.
함께 견디는 시간을 통과하며, 그들의 사랑은 말로만이 아니라 삶으로 증명되고 있었습니다.
비위를 맞추는 사랑과 끝까지 견디는 사랑의 차이
우리는 종종 사랑을 쉽고 편한 것으로 오해합니다.
그러나 진짜 사랑은 언제나 대가를 요구합니다.
나무가 열매를 맺기 위해 해산의 고통을 거치듯, 사랑의 열매도 인내와 희생을 통해서만 맺힙니다.
원수를 용서하고,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감정이 시켜서 되는 일이 아니라, 믿음의 뿌리에서 길어 올린 결단으로만 가능한 일입니다.
감정은 오르락내리락하지만, 믿음의 뿌리는 그 변덕 아래에서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믿음이라는 뿌리가 깊어질 때, 우리는 그 고통을 평안히 견딜 힘을 얻습니다.
풍성한 사랑은 감정의 결과가 아니라, 성숙한 믿음의 결과임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장로로서 교회 공동체를 섬길 때도 같은 원리가 적용됩니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려는 마음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누군가를 위해 진짜 불편함을 감수하는 사랑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성도들의 비위를 맞추는 것과, 성도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내 곁에 있는 사람을 향해, 비위를 맞추는 대신 끝까지 견디는 사랑을 선택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 오늘의 묵상 한 줄
비위를 맞추는 사랑이 아니라, 끝까지 견디는 사랑이 진짜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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