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라.” (마태복음 7장 13-14절)
짧은 두 구절 안에 예수님의 메시지가 선명하게 담겨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택하는 길과, 적은 사람만이 찾는 길. 산상수훈을 마무리하시며 주님은 우리에게 분명한 선택을 요구하십니다.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신앙이 아니라, 매일의 삶 속에서 실제로 걸어가야 할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하시는 것입니다.
본문을 읽을 때마다 저는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은, 사람들이 많이 가는 편한 길인가, 아니면 적은 이들만 찾는 그 길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IT 현장에서 만난 갈림길
25년 가까이 IT 회사를 이끌어 오면서, 저는 수없이 많은 갈림길 앞에 섰습니다.
매출을 위해 눈을 감으면 쉬워지는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단가를 부풀려도 모를 거래처, 직원에게 부담을 떠넘기면 해결될 일정, 경쟁사처럼 약속을 가볍게 여기면 풀릴 협상까지 있었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습니다.
한 프로젝트가 예상보다 두 배 가까운 공수가 드는 것을 뒤늦게 발견했을 때였습니다.
계약서대로만 진행하면 회사는 손해를 피할 수 있었지만, 고객사 담당자는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침묵하면 아무 문제 없이 넘어갈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순간마다 마음속에 두 갈래 길이 보였습니다.
하나는 넓고 편한 길, 다른 하나는 좁고 불편한 길이었습니다.
회사가 어려웠던 시기에는 특히 그 유혹이 컸습니다. 직원들 월급을 걱정하면서도, 거래처에 사실대로 상황을 알리는 일은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결국 선택한 것은 좁고 협착한 길이었습니다.
손해를 감수하고 진실을 말했고, 당장의 이익보다 신뢰를 택했습니다.
그 선택이 늘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은 아닙니다.
거래가 끊긴 적도 있고, 동료에게 답답하다는 말을 들은 적도 있습니다.
손해를 메우느라 그 달 직원 보너스를 줄여야 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좁은 길로 들어간 자리에는,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평안이 있었습니다. 세상의 인정은 적었지만,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떳떳함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 떳떳함이 오래도록 회사를 지탱하는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사업이 어려워질 때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매출 숫자가 아니라, 그때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직원들도 그런 결정들을 곁에서 지켜보며, 회사를 단순한 일터가 아니라 신뢰할 수 있는 공동체로 여겨주었습니다.
두 문, 두 길의 차이
마태복음 7장은 산상수훈의 결론부에 해당합니다.
예수님은 율법과 선지자의 모든 가르침을 정리하시며, 마지막으로 두 개의 문, 두 개의 길을 비교하십니다.
이는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듣는 이들에게 지금 당장 결단을 촉구하는 선언에 가깝습니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 ‘문’은 단순한 통로가 아니라 운명을 결정짓는 입구였습니다.
넓은 문은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길이었고, 사회적으로 환영받는 삶의 방식을 상징했습니다.
반면 협착한 문은 율법학자나 종교 지도자들조차 외면하던 길, 곧 자기 부인과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원어 표현을 살펴보면 ‘협착하다’는 단어는 좁아서 몸을 굽혀야 겨우 통과할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낮추지 않고는 결코 지나갈 수 없는 문이라는 뜻입니다.
누가복음에서도 주님은 그 협착한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거듭 당부하십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신앙이 다수결로 결정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많은 사람이 택한다고 해서 그것이 생명의 길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오히려 따르는 사람이 적다는 사실 자체가, 그 길이 진리에 가깝다는 또 하나의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이 박해 속에서도 신앙을 지킬 수 있었던 것도, 다수의 인정이 아니라 이 좁은 길의 약속을 붙들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날마다 다시 선택해야 하는 좁은 문
그 문은 단 한 번의 결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날마다, 매 순간의 선택 속에서 다시 찾아야 하는 문이었습니다.
오른뺨을 맞고 왼뺨을 내어주는 일, 속옷을 달라면 겉옷까지 내어주는 일, 원수를 용서하고 축복하는 일은 인간의 본성으로는 결코 자연스럽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오직 내 자아가 매일 십자가에서 죽을 때에만 가능한 일임을 깨닫습니다.
사업의 성공도, 사람들의 인정도, 교회 안에서의 직분도 그 길을 보장해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들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좁은 문이 다시 보이기 시작합니다.
쉽게 살고자 하면 한없이 쉬워질 수 있는 것이 우리네 삶이지만, 중요한 것은 쉽게 사는 것이 아니라 바르게 사는 것임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깁니다.
장로로 살아가는 삶도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신앙 좋은 모습을 보이기 쉬워도,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 정직하게 살아내는 일은 여전히 좁고 불편한 길입니다.
그 길에는 인정도, 박수도 없을 때가 많습니다.
교회 안에서든 일터에서든, 손해를 감수하며 정직을 택하는 사람을 알아주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외로운 자리야말로 주님이 함께하시는 자리임을 믿습니다.
세상이 박수쳐주지 않아도, 그 길 끝에서 주님이 알아주신다는 사실 하나로 오늘도 다시 걸어갈 힘을 얻습니다.
🙏 오늘의 기도
주님, 넓고 편한 길이 보일 때마다 눈을 돌려 그 문을 찾게 하소서.
손해 보더라도 진실하게, 외롭더라도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오늘 제가 서 있는 일터에서, 가정에서, 작은 선택들 속에서 자아를 부인하고 주님의 십자가를 질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
세상의 인정을 구하기보다,
주님 앞에 떳떳한 하루를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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