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공의로 설 것이며 학대가 네게서 멀어질 것인즉 네가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며 공포도 네게 가까이하지 못할 것이라” (이사야 54장 14절)
정집사만 이뻐한다는 시선을 받던 시절
너는 공의로 설 것이며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는 이 말씀을 집사 시절 시기와 오해의 시선을 받으며 묵묵히 섬겼더니 시간이 지나 진심을 알아줬던 경험을 지나 붙들었습니다.
집사 시절 교회가 부흥하기 전이었습니다.
목사님께서 어떤 일을 맡기시면 최우선으로 처리하는 것이 제 스타일이었습니다.
다른 일이 있어도 교회 일을 먼저 챙겼고, 목사님의 부탁은 어떻게든 해결해드리려 했습니다.
그 마음이 순수했습니다.
교회를 사랑했고, 목사님을 존경했고, 그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방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업이 아무리 바빠도 교회 일이 생기면 먼저 달려갔습니다.
직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비운 적도 있었고, 중요한 미팅을 조율해서 교회 일을 처리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그 선택에 후회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바라보는 일부 교인들의 시선이 달랐습니다.
정집사만 이뻐한다는 말이 돌았습니다.
목사님과 뭔가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도 들렸습니다.
가까운 분에게서 그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 솔직히 충격이었습니다.
그렇게까지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는 것이 상처가 됐습니다.
열심히 섬겼는데 오해를 받는 것이 억울했습니다.
해명하고 싶었습니다.
내가 왜 그렇게 하는지, 어떤 마음으로 섬기는지를 한 명 한 명에게 설명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말을 아끼기로 했습니다.
해명할수록 더 복잡해질 것 같았습니다.
말을 보태면 보탤수록 오해가 더 깊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그 시선에 흔들려서 섬김을 멈추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냥 계속 했습니다.
목사님이 맡기시는 일을 최우선으로 처리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오해의 시선이 있어도, 뒷말이 들려도, 하던 대로 했습니다.
예배 때 그분들을 마주치는 것이 불편한 날도 있었습니다.
시선이 느껴지는 날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흔들리지 않으려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사람의 시선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서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이 버텨주었습니다.
시간이 흘렀습니다.
교회가 조금씩 부흥하기 시작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그동안 오해하던 분들이 진심을 알아주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다가와 고맙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었습니다.
억울함을 해명하지 않았는데, 시간이 그것을 대신 해줬습니다.
공의로 서 있으면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이 그 경험을 통해 삶으로 배워졌습니다.
공의로 설 것이며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이사야 54장 14절은 하나님이 세우시는 나라의 특징을 말씀합니다.
공의에 기초한 참된 정의가 실현되는 나라입니다.
공의로 선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움직여 반응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시선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으로 서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 서 있으면 학대가 멀어지고 두려움도 공포도 가까이하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시편 37편 6절도 말씀합니다.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억울함의 신원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그분의 손에 모든 판결을 맡기는 것이 가장 지혜롭습니다.
굽은 길이 곧게 펴지는 시간
우리의 삶의 종이를 직선으로 잘랐어야 하는데 곡선이 됐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다시 공의의 칼을 대시면 굽은 길이 곧게 펴집니다.
집사 시절 오해의 시선을 받던 그 시간이 굽은 선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시간을 통해 공의로 서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사람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서는 것 그것이 공의였습니다.
아직 우리들의 인생은 남은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아직 남은 종이가 많습니다.
공의로 서는 오늘이 쌓여 그 길이 곧게 펴집니다.
너는 공의로 설 것이며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는 말씀이 그 경험을 통해 삶으로 배워졌습니다.
🌿 오늘의 묵상 한 줄
공의로 서 있으면 해명하지 않아도 시간이 진심을 드러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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