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고백] 현상유지는 하나님의 본성이 아닙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현상유지는 하나님의 본성이 아닙니다

현상유지는 하나님의 본성이 아닙니다라는 이 고백을 안주하거나 머물러 있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오히려 퇴보임을 깨달아가는 묵상을 지나 붙들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특징은 생명력과 역동성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진정으로 심어지기만 하면 반드시 존재의 변화와 함께 성장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것이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이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신앙이 안주하거나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곧 현상유지가 아니라 퇴보였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한 달란트 받은 자가 주인 앞에 와서 땅에 묻어 두었던 한 달란트를 그대로 가져왔을 때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한 달란트를 그냥 가져 온 것은 현상유지가 아닌 주인에게 손해를 끼친 것이었습니다.

안주가 왜 위험할까요.

안주할 때 성장이 멈추기 때문입니다.

성장이 멈추면 퇴보가 시작됩니다.

중립이 없었습니다.

성장하지 않으면 퇴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신앙의 법칙이었습니다.

달란트 비유에서 다섯 달란트 받은 자와 두 달란트 받은 자를 똑같이 칭찬했습니다.

많이 남긴 것이 기준이 아니었습니다.

성장했느냐가 기준이었습니다.

현상유지를 거부하고 성장을 선택하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겨자씨는 처음에 씨앗이었습니다.

씨앗으로 머물면 현상유지였습니다.

그런데 땅에 심어지면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싹이 나고 줄기가 자라고 가지가 뻗고 새들이 깃들 수 있는 나무가 됐습니다.

현상유지가 아닌 성장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누룩도 그랬습니다.

누룩이 밀가루 속에 들어가면 온 밀가루를 부풀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에 심어질 때 그 누룩처럼 변화와 성장이 일어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도 나는 아직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푯대를 향하여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쫓아가노라 말했습니다.

안주하는 것을 가장 큰 위험으로 여겼습니다.

안주는 현상유지가 아니라 곧 타락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실패하거나 죄까지도 돌이켰을 때 원래의 자리에 두는 현상유지가 아닌 더 성숙함이나 더 깊은 영성의 사람으로 세워 실패가 사역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 예가 바로 다윗의 인구조사와 성전건축 터 마련이었습니다.

베드로의 실패와 더욱 겸손함도 그랬습니다.

하나님은 실패조차 현상유지로 두시지 않고 더 아름다운 것으로 만들어 가시는 분이셨습니다.

현상유지는 하나님의 본성이 아닙니다

아담의 범죄로 인간은 에덴을 상실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보다 더 완전한 천국을 주십니다.

실패를 현상유지로 두시지 않고 더 완전한 것으로 회복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본성이었습니다.

성장은 불편함을 동반합니다.

씨앗이 싹을 틔울 때 껍질이 깨집니다.

그 깨짐이 아프지만 그 아픔을 통해 성장이 시작됩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장하려면 안주함을 깨야 합니다.

현상유지를 깨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성장을 요구하십니다.

지금 있는 자리보다 더 나아가기를 원하십니다.

현상유지는 하나님의 본성이 아닙니다.

오늘도 성장을 향해 한 발을 내딛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현상유지를 거부하고 성장하는 오늘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 오늘의 질문

오늘 내 신앙은 성장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익숙한 자리에 안주하고 있습니까.

성경 말씀 더 깊이 읽기 → 대한성서공회

코멘트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Twenty Twenty-Five (2025)

WordPress로 디자인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