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고백] 죽음은 절망이 아니라 더욱 영광스러운 몸이 되기 위한 과정입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죽음은 절망이 아니라 더욱 영광스러운 몸이 되기 위한 과정입니다

봄이 오면 겨우내 죽은 것 같은 만물이 다시 소생합니다.

따스한 봄볕이 얼어붙은 대지를 녹이면 땅속에서 깊은 잠을 자던 각종 애벌레들과 곤충들과 식물들이 새로운 생명으로 살아납니다.

하나님은 만물의 소생함을 통해서 우리에게도 부활의 진리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욱 확실한 부활에 대한 증거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 보이셨습니다.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시고 핍박자 사울에게까지 보이시므로 부활을 확증하셨습니다.

씨앗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열매의 시작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땅에 묻힌 씨앗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죽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그 안에서 생명이 준비되고 있었습니다.

봄이 오면 싹이 올라옵니다.

그것이 부활의 그림이었습니다.

나사로가 죽었을 때 마르다가 울었습니다.

그때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그리고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우리도 마르다처럼 죽음 앞에서 울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그 말씀이 슬픔 속에서도 소망을 붙들게 합니다.

죽음은 절망이 아니라 더욱 영광스러운 몸이 되기 위한 과정입니다

주님의 부활이 우리에게 참 소망이 됨은 주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사 우리도 주님과 같이 부활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의 썩을 몸이 주님과 같은 영광의 몸으로 변화됩니다.

봄에 만물의 소생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더욱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죽음은 끝이 아니었습니다.

절망이 아니었습니다.

더욱 영광스러운 몸이 되기 위하여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일 뿐이었습니다.

바울이 그 소망을 알았습니다.

부활이 목표였습니다.

그 목표가 바울의 고난을 이기게 했습니다.

부활의 소망이 있는 사람은 오늘의 고난이 달리 보입니다.

이 세상에 소망을 두지 않을 수 있습니다.

주의 일에 힘쓸 수 있습니다.

우리의 수고가 주 안에서 결코 헛되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살아서 주님을 믿는 사람은 지금 이 순간도 영원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 영원한 삶이 오늘의 선택을 달라지게 합니다.

이 세상의 것에 집착하지 않게 합니다.

주의 일에 힘쓰게 합니다.

죽음은 절망이 아닌 더욱 영광스러운 몸이 되기 위한 과정이었습니다.

그 확신으로 오늘도 살아갑니다.

💭 오늘의 질문

오늘 나는 이 세상에 소망을 두고 있습니까. 아니면 부활의 소망으로 살고 있습니까.

✅ 성경 말씀 더 깊이 읽기 → 대한성서공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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