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우리가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은 말씀과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이 두 가지를 통해서 우리를 만나시고 교제하시고 구원하시고 동행하시고 한 몸으로 존재하십니다.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원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존재와 삶에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원하고 바라고 구하지도 않는데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서 행하시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즉 우리의 원함이 없이 어떤 일도 하지 않으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를 인격적으로 관계하시고 존중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엘리야가 갈멜 산에서 기도했습니다.
비가 오지 않은 지 3년 반이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비가 오기를 구했습니다.
무릎을 땅에 꿇고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었습니다.
일곱 번을 그렇게 했습니다.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늘이 구름으로 덮이고 큰 비가 내렸습니다.
히스기야가 그랬습니다.
죽게 되었다는 선고를 받았습니다.
벽을 향하여 기도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구했습니다.
원했습니다.
구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15년을 더하셨습니다.
원함과 구함이 하나님을 움직였습니다.
반면에 원하지 않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벳세다 못가에 38년 된 병자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그에게 물으셨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당연히 낫고 싶을 것 같은데 주님이 물으셨습니다.
그 물음 속에 원함의 중요성이 있었습니다.
38년이 지나면서 낫고자 하는 원함이 희미해졌을 수 있었습니다.
포기했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 원함을 다시 깨우셨습니다.
우리도 오래 기다리다 보면 원함이 희미해집니다.
기도가 줄어듭니다.
그때 하나님도 일하시지 않습니다.
우리의 원함이 없이는 어떤 일도 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소통하는 방법은 말씀과 기도입니다
그렇다면 왜 인간은 하나님을 원하지도 않고 구하려 하지 않는 것일까요.
지금까지의 삶을 따라 사는 것이 익숙하고 편하고 쉽기 때문이었습니다.
구하고 찾는 대가를 지불하기 싫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원받고 고침을 받고 사람을 구원하는 일에 사용하시기를 우리보다도 더 원하십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하나님을 구하고 원하고 찾는 이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불행이고 또한 하나님의 고통이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지금도 누군가 보지 않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품고 기도하는 사람이 있기에 보존되고 있으며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 사람 되기를 원합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새벽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그 소통의 시작이었습니다.
오늘 무엇을 원하고 있습니까.
고침을 받고 싶습니까.
변화를 받고 싶습니까.
그 원함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십시오.
말씀과 기도로 소통하십시오.
하나님이 그 원함에 응답하십니다.
오늘도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과 소통하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 오늘의 묵상 한 줄
말씀과 기도는 하나님과의 소통입니다. 우리가 원하고 구할 때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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