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고백] 자다가 벌써 깰 때가 되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자다가 벌써 깰 때가 되었다 |

바울은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벌써 깰 때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다가 벌써 깰 때가 되었다는 말은 성도들마저도 영적인 잠을 자고 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세상문화가 주는 사치와 쾌락과 물질의 풍요로움에 취해 혼미한 상태에서 깨어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영적인 잠이 어떻게 찾아오는지를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잠깐이었습니다.

오늘 하루만 쉬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잠깐이 쌓이면서 깊은 잠이 됐습니다.

세상문화가 주는 쾌락이 처음에는 낯설었다가 익숙해졌습니다.

익숙해지면서 더 이상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게 됐습니다.

그것이 영적인 잠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의 존재에 있습니다.

그런데 평상시에 존재보다 일 중심의 삶을 살았기 때문에 세상문화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익숙해지므로 존재 관리가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왜 일 중심으로 살게 될까요.

일 중심이 존재 관리보다 훨씬 더 쉽기 때문이었습니다.

존재 관리가 안 되어도 일은 잘 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일은 당장에 그 성과가 나타나지만 존재 관리는 힘들고 더디기 때문이었습니다.

세상은 존재가 아닌 일과 성과에 찬사나 보상을 주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밤이 깊으면 깊을수록 존재 관리를 잘한 사람의 가치가 드러났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사람들의 특징은 모두 존재 관리에 실패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바울이 고백했습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라.

존재 관리를 위해 몸을 쳤습니다.

자신을 다스리는 것이 존재 관리의 핵심이었습니다.

요셉이 그랬습니다.

노예로 팔렸을 때도 어떻게 하나님께 득죄 하리이까 하고 거부했습니다.

감옥에 있을 때도 존재를 지켰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그를 높이셨습니다.

다니엘이 그랬습니다.

바벨론의 세상문화 한가운데서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 존재 관리가 사자 굴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게 했습니다.

자다가 벌써 깰 때가 되었다

존재 관리는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려울 때도 풍부할 때도 바쁠 때도 한가할 때도 해야 했습니다.

존재 관리는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었습니다.

세상 즐거움이나 유익 정과 욕심을 끊어내는 것이었습니다.

주님 말씀에 따라 주님의 임재 속에서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 존재 관리였습니다.

존재 관리의 실패는 자신을 귀신과 각 종 더러운 영에게 내어준 결과라는 사실을 알아야 했습니다.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아들아 세상을 버려라.

이 말씀이 오늘도 울립니다.

자다가 벌써 깰 때가 되었습니다.

오늘 이 말씀 앞에 멈추어 서기를 소망합니다.

세상문화에 익숙해진 것들을 하나씩 내려놓기를 소망합니다.

일 중심에서 존재 중심으로 돌아오기를 소망합니다.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는 그 존재 관리를 오늘부터 다시 시작하기를 기도합니다.

🌿 오늘의 묵상 한 줄

자다가 벌써 깰 때가 되었습니다. 일 중심이 아닌 존재 중심으로 살아갈 때 주님이 아신다고 하십니다.

성경 말씀 더 깊이 읽기 → 대한성서공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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