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ellice55

  • [조용한 고백] 하나님의 부재와 임재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하나님의 부재와 임재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하나님의 부재는 하나님께서 존재하시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존재하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 없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변함없이 우리와 함께 존재하시며 친밀한 관계로 교제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성령으로 우리 존재 안에 영원토록 함께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주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육신의 소욕을 따라 살아가므로 성령을 소멸하고 근심하게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 않거나 성령께 순종하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주님의 부재를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의 부재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생각합니다.

    가인이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에덴 동편 놋 땅에 거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에서 떠나간 것이었습니다.

    그 이후의 가인의 삶은 도망자의 삶이었습니다.

    사울이 하나님께 버림받았을 때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떠난 자리를 악령이 채운 것이었습니다.

    솔로몬도 그랬습니다.

    세상의 즐거움에 빠지면서 하나님의 임재를 잃어버렸습니다.

    그 결과는 우상 숭배와 왕국의 분열이었습니다.

    다윗이 그 고통을 알았습니다.

    주께서 내게 잠잠하시면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고 죽은 지 이미 오랜 자와 같다고 말하였습니다.

    주님의 부재가 죽음과 같다는 고백이었습니다.

    아브라함도 부르심을 받은 후에 주님의 부재 속에 13년 동안을 살았습니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자녀를 얻으려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때 그는 살았으나 죽은 것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자신에게도 가정에도 큰 고통과 갈등과 번민이 있었습니다.

    그 후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자신을 나타내셔서 약속을 견고케 하셨습니다.

    제자들도 주님 없이 항해를 하다가 큰 물결로 인하여 고통하였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배에 오르자 곧 잔잔하여 평안해졌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부재의 고통을 맛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부재의 고통이 하나님을 더 간절히 찾게 만들었습니다.

    그 찾음이 더 깊은 임재로 이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부재와 임재

    따라서 하나님의 부재도 하나님의 임재도 선하신 하나님의 은혜로운 행위였습니다.

    하나님은 그 얼굴을 숨기심과 나타내심을 통해서 우리를 만드시고 함께 하시고 영광스럽게 하셨습니다.

    주님의 부재는 언제 찾아왔습니까.

    분주함이나 편리함 부요함 세상의 즐거움 속에 빠져 주님에 대해 무관심할 때였습니다.

    아브라함이 13년의 부재의 시간을 통과한 후 하나님과 더 깊은 언약을 맺었습니다.

    부재의 고통이 더 깊은 임재를 준비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오늘 나는 주님의 임재를 느끼고 있습니까.

    아니면 부재를 느끼고 있습니까.

    부재를 느낀다면 그 고통 속에서 간절하게 하나님을 찾기를 소망합니다.

    찾는 자에게 하나님이 얼굴을 비추십니다.

    그 얼굴이 비추일 때 평안이 임합니다.

    오늘 그 임재를 경험하기를 기도합니다.

    🌿 오늘의 묵상 한 줄

    하나님의 부재의 고통이 오히려 하나님을 더 간절히 찾게 합니다. 찾는 자에게 하나님이 얼굴을 비추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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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용한 고백] 우리는 이미 빛입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우리는 이미 빛입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악하고 음란하고 패역한 어두움의 시대입니다.

    어두움의 주관자는 세상 임금인 마귀요 죄입니다.

    수많은 악들이 우리 주위에서 우리 존재와 우리와 관계된 사람들과 삶의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 악하고 음란하고 패역한 시대에서 구원을 얻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바울은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벌써 깰 때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이 악하고 음란하고 패역한 시대를 보고 살아가면서 무엇을 느끼고 있으며 어떻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이 시대가 패역한 시대임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면 자기도 악에 빠져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분별하고 느끼고 있다고 해도 거기에 영향을 받거나 반응하고 있다면 그것 또한 패역한 일이었습니다.

    빛과 어두움의 차이를 생각합니다.

    어두움 속에 있으면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모릅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잘못은 보입니다.

    비판하고 정죄합니다.

    그것이 어두움 속에 있는 자의 특징이었습니다.

    빛은 달랐습니다.

    빛이 비추면 먼저 자신이 보였습니다.

    내 죄가 보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다른 사람의 죄가 보일 때 비판이 아니라 애통함이 왔습니다.

    이사야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을 때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라고 했습니다.

    먼저 자신이 보였습니다.

    욥이 하나님 앞에 섰을 때도 그랬습니다.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빛 가운데 있는 자의 반응이었습니다.

    이 패역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었습니다.

    나도 자기중심적으로 살았는지 돌아보는 것이었습니다.

    나도 배은망덕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는 것이었습니다.

    그 돌아봄이 회개의 시작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악으로 갚는 패역한 죄를 짓지 않도록 간구하는 기도가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에서 빛이 나왔습니다.

    패역과 악을 보면서 비판하고 탄식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과 관계된 사람들로부터 패역한 일을 직접 당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들을 정죄하거나 미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거기서 교훈을 받고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빛입니다

    우리는 이미 빛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빛으로 살아갈 때 어두움이 물러났습니다.

    비판하고 탄식하는 것이 아니라 빛으로 서 있는 것이 이 패역한 시대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어두움을 향해 소리치는 것보다 빛으로 존재하는 것이 어두움을 물리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내가 경험하는 패역한 일들이 있습니까.

    그 앞에서 비판하고 탄식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것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있습니까.

    우리는 이미 빛이었습니다.

    오늘도 빛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 오늘의 기도

    주님 이 패역한 시대 앞에서 비판하고 탄식하기보다 먼저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소서. 빛으로 살게 하소서. 하나님의 은혜를 악으로 갚지 않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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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용한 고백] 동행이 동역입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동행이 동역입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동행이 동역이었습니다.

    다 함께 가지 못해도 동역이 됩니다.

    기도로 함께하는 것도 동역이었습니다.

    물질로 함께하는 것도 동역이었습니다.

    마음으로 함께하는 것도 동역이었습니다.

    같은 자리에 있지 않아도 같은 방향을 바라볼 때 그것이 동역이었습니다.

    사도행전을 읽으면 동역의 아름다움이 보입니다.

    바울 혼자 선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나바가 있었습니다.

    실라가 있었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있었습니다.

    각 지역 교회의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기도로 물질로 동역했습니다.

    빌립보 교회가 그랬습니다.

    바울이 감옥에 있을 때도 헌금을 보냈습니다.

    바울은 그 헌금이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희생이라고 했습니다.

    다 함께 가지 못해도 물질로 동역한 것이 그토록 귀한 것이었습니다.

    선교는 가는 자만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보내는 자의 일이기도 했습니다.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그 발이 가능하도록 보내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기도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물질을 드리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 모든 사람이 함께 참여하는 것이었습니다.

    에스더와 모르드개가 그랬습니다.

    유대 민족의 위기 앞에서 함께 기도하고 함께 금식했습니다.

    그 동역이 민족을 구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여러 여인들이 그랬습니다.

    제자들이 도망쳤을 때도 그들은 자리를 지켰습니다.

    십자가 곁에 있었습니다.

    그 동행이 동역이었습니다.

    거창한 역할이 아니었습니다.

    그 자리에 있는 것이 동역이었습니다.

    동행이 동역입니다

    동역의 반대가 무엇인지 생각합니다.

    혼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다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혼자 일하지 않으셨습니다.

    모세에게 아론과 미리암을 주셨습니다.

    다윗에게 요나단을 주셨습니다.

    바울에게 바나바와 실라를 주셨습니다.

    동역이 하나님의 방식이었습니다.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기도의 동역이 하늘을 움직이는 것이었습니다.

    주님도 나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친구라 하였노니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먼저 동역자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 초청에 응답하는 것이 동역이었습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습니다.

    그 일을 주님 혼자 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자들과 동역하셨습니다.

    지금도 우리와 동역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그 사도행전의 주인공이 되어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동행이 동역입니다.

    오늘도 그 동역 안에 거하기를 기도합니다.

    💭 오늘의 질문

    오늘 나는 누구와 동역하고 있습니까. 혼자 감당하려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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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용한 고백] 잠근 동산 덮은 우물 봉한 샘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잠근 동산 덮은 우물 봉한 샘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아가서는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사랑의 이야기가 성경이 되어 우리에게 기쁨이 되고 소망이 되는 이유는 바로 주님과 우리와의 고귀하고 깊은 사랑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사랑하는 술람미 여인에게 노래합니다.

    나의 누이 나의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라.

    이것은 술람미 여인의 순결한 사랑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잠근 동산 덮은 우물 봉한 샘이라는 말은 어떤 경우에도 누구에게도 그 무엇에게도 결코 자신의 존재를 내어 주지 않는다는 말이었습니다.

    오직 사랑하는 솔로몬 하나만을 위하여 자신의 존재를 잠그고 봉하여 그에게만 허용한다는 말이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솔로몬이 자신과 같이 보잘것없고 초라한 존재를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사랑에 너무도 감격하여 그에게 기쁨이 되고 싶기 때문이었습니다.

    잠근 동산이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생각합니다.

    동산은 아름다운 곳입니다.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는 곳입니다.

    그런데 잠겨있습니다.

    주인만이 들어올 수 있습니다.

    우리의 존재도 그래야 했습니다.

    주님만이 들어오실 수 있어야 했습니다.

    덮은 우물이 된다는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우물은 생명의 물이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덮여있습니다.

    그 물은 주인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생명도 주님을 위한 것이어야 했습니다.

    봉한 샘이 된다는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샘은 끊임없이 솟아나는 생수가 있는 곳입니다.

    우리의 존재 안에서 솟아나는 모든 것이 주님을 향한 것이어야 했습니다.

    술람미 여인은 왜 자신을 잠글 수 있었습니까.

    솔로몬의 사랑이 분명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알 때 다른 것에 눈이 가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사랑이 분명할 때 세상을 향해 문을 닫을 수 있었습니다.

    잠근 동산 덮은 우물 봉한 샘

    우리가 영적 침체에 빠지거나 자신의 존재가 흐트러지는 이유는 바로 세상의 즐거움이나 세상에 있는 것이나 세상의 편리함에 자신의 존재를 내어 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잠근 동산 덮은 우물 봉한 샘이 되도록 존재 관리를 철저히 하지 않고는 결코 주님과 친밀한 사랑 가운데 넉넉하고 풍성한 삶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말했습니다.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라.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한다고.

    바울과 같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자기의 유익을 다 해로 여기며 배설물로 여기고 버려야 주님을 얻게 됩니다.

    매일 새벽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그 잠금을 유지하는 훈련이었습니다.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오직 주님을 위해 이 하루를 드리겠다고 결단하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의 사랑이 분명할 때 세상을 향해 문을 닫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 나의 존재는 잠근 동산입니까.

    오직 주님만을 위하여 나의 존재를 드리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 오늘의 묵상 한 줄

    잠근 동산 덮은 우물 봉한 샘. 오직 주님만을 위하여 나의 존재를 내어드리는 영적 순결이 주님과의 친밀함의 비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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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용한 고백] 신앙에도 터닝 포인트가 필요합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신앙에도 터닝 포인트가 필요합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신앙에도 터닝 포인트가 필요합니다.

    터닝 포인트는 지난날들의 무의미한 삶이나 아픔이나 실패의 삶을 청산하고 새로운 삶의 방향전환을 말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 중에 터닝 포인트가 있었던 사람들은 모두 한결같이 하나님을 만나거나 믿음의 사람을 만남으로부터 시작됐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에녹이었습니다.

    에녹은 65세에 므두셀라를 낳기 전까지의 삶은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삶 동행도 영생도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므두셀라를 낳은 후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였고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에녹의 터닝 포인트의 비밀은 므두셀라의 출생이었습니다.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았습니다.

    경건치 않는 모든 사람들을 심판하실 것인데 므두셀라가 죽는 날에 그 모든 심판이 있을 것이란 말씀이었습니다.

    므두셀라의 이름의 뜻은 창을 던지는 자라는 의미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창을 던지므로 모든 것이 끝이 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 말씀 하나가 에녹의 터닝 포인트였습니다.

    65년의 기록 없는 삶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으로 바뀌었습니다.

    말씀이 그 방향을 바꿨습니다.

    터닝 포인트가 어떻게 찾아오는지를 생각합니다.

    에녹의 경우에는 아이의 탄생이라는 일상의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일상의 사건 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야곱의 터닝 포인트는 얍복 강의 어두운 밤이었습니다.

    가장 어려운 자리가 가장 큰 변화의 자리가 된 것이었습니다.

    모세의 터닝 포인트는 광야에서 40년을 지낸 후였습니다.

    의미 없어 보이던 광야의 40년이 터닝 포인트를 준비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의미 없어 보이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아픔이었습니다.

    실패였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가 하나님이 터닝 포인트를 준비하시는 자리였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그랬습니다.

    아볼로를 만나 더 자세히 하나님의 도를 가르쳤습니다.

    그 만남이 아볼로의 터닝 포인트였습니다.

    우리도 누군가의 터닝 포인트가 되는 만남이 될 수 있었습니다.

    신앙에도 터닝 포인트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과 만남을 통해서 일하시기도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거나 들음을 통해 만나시기도 했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 모든 것은 다 하나님께서 하시고 계신다는 것이었습니다.

    매일 새벽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그 터닝 포인트를 준비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에녹이 므두셀라를 낳은 후 300년간 하나님과 동행했듯이 매일 새벽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그 동행의 시작이었습니다.

    신앙에도 터닝 포인트가 필요합니다.

    오늘 그 터닝 포인트가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에녹처럼 노아처럼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신앙의 터닝 포인트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 오늘의 질문

    나의 신앙의 터닝 포인트는 언제였습니까. 오늘이 새로운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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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용한 고백] 다윗의 고백을 나의 고백으로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다윗의 고백을 나의 고백으로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시편에 다윗의 시를 보면 우리의 마음을 감동케 하는 진실하고도 애절한 간구와 고백들이 있습니다.

    그 고백을 묵상할 때마다 다윗의 존재가 느껴집니다.

    그리고 그 고백을 나의 고백으로 붙잡고 살아갈 때가 많이 있습니다.

    다윗도 우리와 똑같은 연약함과 죄에 넘어짐과 고통과 절망이 있었습니다.

    절실한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한 존재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그토록 영광스럽고 아름다운 삶을 살았던 이유는 하나님을 향한 간절하고도 진실한 고백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의 고백이 특별한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합니다.

    솔직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숨기지 않았습니다.

    아프면 아프다고 했습니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영히 잊으시나이까.

    이 고백이 얼마나 인간적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것이 진실이었습니다.

    그 진실이 하나님 앞에 쏟아졌습니다.

    하나님은 그 솔직한 고백을 들으셨습니다.

    다윗의 고백들을 천천히 읽어봅니다.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

    주는 나의 주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주의 종에게 심판을 행치 마소서 주의 목전에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나이다.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으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라는 이 고백이 가장 마음에 남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눈물을 병에 담으신다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흘린 눈물을 하나님이 기억하고 계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었습니다.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곤핍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

    단 한 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다윗의 간절함이었습니다.

    그 간절함이 다윗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 만들었습니다.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사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강하게 해달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연약함을 알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연약함을 아는 것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시작이었습니다.

    다윗의 고백을 나의 고백으로

    오늘 어떤 고백이 필요합니까.

    다윗의 고백 중에 오늘 내 마음과 가장 가까운 것이 있습니까.

    그 고백을 오늘 하나님께 드려보십시오.

    하나님은 그 솔직한 고백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의 존재가 아무리 연약하고 의롭지 못해도 그의 고백을 우리의 고백으로 삼고 살 때 우리도 그러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될 때 다윗이 경험한 하나님을 나도 경험하게 됩니다.

    그 고백을 오늘도 드립니다.

    🙏 오늘의 기도

    여호와여 나의 힘이 되신 주를 사랑합니다.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합니다.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아주시는 주님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나이다. 아멘.

    성경 말씀 더 깊이 읽기 → 대한성서공회

  • [조용한 고백] 자다가 벌써 깰 때가 되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자다가 벌써 깰 때가 되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바울은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벌써 깰 때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다가 벌써 깰 때가 되었다는 말은 성도들마저도 영적인 잠을 자고 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세상문화가 주는 사치와 쾌락과 물질의 풍요로움에 취해 혼미한 상태에서 깨어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영적인 잠이 어떻게 찾아오는지를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잠깐이었습니다.

    오늘 하루만 쉬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잠깐이 쌓이면서 깊은 잠이 됐습니다.

    세상문화가 주는 쾌락이 처음에는 낯설었다가 익숙해졌습니다.

    익숙해지면서 더 이상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게 됐습니다.

    그것이 영적인 잠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의 존재에 있습니다.

    그런데 평상시에 존재보다 일 중심의 삶을 살았기 때문에 세상문화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익숙해지므로 존재 관리가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왜 일 중심으로 살게 될까요.

    일 중심이 존재 관리보다 훨씬 더 쉽기 때문이었습니다.

    존재 관리가 안 되어도 일은 잘 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일은 당장에 그 성과가 나타나지만 존재 관리는 힘들고 더디기 때문이었습니다.

    세상은 존재가 아닌 일과 성과에 찬사나 보상을 주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밤이 깊으면 깊을수록 존재 관리를 잘한 사람의 가치가 드러났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사람들의 특징은 모두 존재 관리에 실패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바울이 고백했습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라.

    존재 관리를 위해 몸을 쳤습니다.

    자신을 다스리는 것이 존재 관리의 핵심이었습니다.

    요셉이 그랬습니다.

    노예로 팔렸을 때도 어떻게 하나님께 득죄 하리이까 하고 거부했습니다.

    감옥에 있을 때도 존재를 지켰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그를 높이셨습니다.

    다니엘이 그랬습니다.

    바벨론의 세상문화 한가운데서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 존재 관리가 사자 굴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게 했습니다.

    자다가 벌써 깰 때가 되었다

    존재 관리는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려울 때도 풍부할 때도 바쁠 때도 한가할 때도 해야 했습니다.

    존재 관리는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었습니다.

    세상 즐거움이나 유익 정과 욕심을 끊어내는 것이었습니다.

    주님 말씀에 따라 주님의 임재 속에서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 존재 관리였습니다.

    존재 관리의 실패는 자신을 귀신과 각 종 더러운 영에게 내어준 결과라는 사실을 알아야 했습니다.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아들아 세상을 버려라.

    이 말씀이 오늘도 울립니다.

    자다가 벌써 깰 때가 되었습니다.

    오늘 이 말씀 앞에 멈추어 서기를 소망합니다.

    세상문화에 익숙해진 것들을 하나씩 내려놓기를 소망합니다.

    일 중심에서 존재 중심으로 돌아오기를 소망합니다.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는 그 존재 관리를 오늘부터 다시 시작하기를 기도합니다.

    🌿 오늘의 묵상 한 줄

    자다가 벌써 깰 때가 되었습니다. 일 중심이 아닌 존재 중심으로 살아갈 때 주님이 아신다고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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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용한 고백]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것입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것입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것이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단 한 순간도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은혜 없이는 경건하게 살 수도 없습니다.

    세상을 이길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할 수도 없습니다.

    회개할 수도 없습니다.

    성숙할 수도 없습니다.

    겸손할 수도 없습니다.

    열매 맺을 수도 없습니다.

    변화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이 모든 것이 가능하게 됩니다.

    문제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인 줄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하려 하거나 은혜의 절대적 필요성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고 했습니다.

    온 세상이 하나님 앞에 부패했을 때 노아는 달랐습니다.

    그런데 그 의로움이 노아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은혜가 노아를 그렇게 만든 것이었습니다.

    바울이 고백했습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라.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내가 한 것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은혜의 반대가 무엇인지를 생각합니다.

    내 힘으로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내 의지로 버텨내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은혜를 막는 것이었습니다.

    교만이 은혜를 막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은혜를 회복할 수 있을까요.

    첫째는 겸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겸손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말씀을 달게 받고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둘째는 정직함이었습니다. 말씀에 비추어 죄가 발견되면 즉시 고백하고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럴 때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하게 나아가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게 됩니다.

    셋째는 말씀을 전 삶의 영역에 세밀하게 적용하는 것이었습니다.

    넷째는 징계를 달게 받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잠잠히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다섯째는 자신에게 있는 가시가 은혜임을 알고 자랑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이 육체의 가시를 자랑했습니다. 그 가시가 은혜의 통로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여섯째는 기쁨으로 예물을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마지막은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고 감사하며 자신을 철저히 부인하고 주님만 높이는 것이었습니다.

    매일 새벽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그 은혜를 받는 자리였습니다.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하게 나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하루를 은혜로 시작합니다.

    나의 나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라는 이 고백을 오늘도 드립니다.

    모든 자랑을 내려놓습니다.

    자신을 철저히 부인합니다.

    주님만 높입니다.

    노아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 오늘의 기도

    주님 나의 나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오늘도 그 은혜 없이는 단 한 순간도 살아갈 수 없는 자임을 인정하며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갑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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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용한 고백] 모든 것이 오직 성령으로만 가능합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모든 것이 오직 성령으로만 가능합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모든 것이 오직 성령으로만 가능합니다.

    이 고백이 얼마나 근본적인지를 생각합니다.

    오직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성령으로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내 힘으로도 아니고 내 의지로도 아니고 오직 성령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성령님을 인정하지도 않고 의지하지도 않고 도움을 구하지도 않음으로 실패하고 연약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노력으로 모든 일을 하려고만 했습니다.

    성령님보다 앞서 행했습니다.

    이것이 성령님을 무시하는 것으로 하나님을 가장 슬프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성령이 근심하신다는 말씀이 마음에 걸립니다.

    우리가 세상을 따라 살 때 근심하셨습니다.

    자기중심적인 반응을 할 때 슬퍼하셨습니다.

    성령님이 느끼시는 감정이 있었습니다.

    성령님을 의지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큰 일인지를 알게 됩니다.

    성령이 우리를 위해 하시는 것들을 생각합니다.

    성령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분이셨습니다.

    연약하여 할 수 없는 모든 것들을 할 수 있도록 도우시는 분이셨습니다.

    성령은 우리의 마음을 열어 주님의 말씀을 듣고 믿게 하실 뿐 아니라 자신도 모르는 죄까지도 깨닫게 하셔서 회개하도록 하시고 거듭나게 하시며 새롭게 하셨습니다.

    성령은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며 우리로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성령은 우리들의 마음을 감동하셔서 진리를 깨닫게 하시고 강하게 하시고 담대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시고 이기게 하시고 고치게 하시고 능하게 하시고 결단하게 하시고 구원하시고 살리시고 정직하게 하시고 사랑하게 하시고 용서하게 하시고 오래참게 하시고 겸손하게 하시고 온유하게 하시고 위로하시고 인도하시고 의롭게 하시고 자기를 부인하게 하시고 주님을 위하여 살게 하시고 헌신하게 하시고 감사하게 하시고 온전하게 하시고 평안하게 하셨습니다.

    이 목록이 얼마나 긴지 모릅니다.

    우리가 필요한 것들이 다 여기 있었습니다.

    성령 없이는 이 중 하나도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성령으로는 이 모든 것이 가능했습니다.

    모든 것이 오직 성령으로만 가능합니다

    성령님을 의지한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오늘 해야 할 일이 있을 때 먼저 성령님께 아뢰는 것이었습니다.

    주님 오늘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관계가 어려울 때 성령님의 지혜를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결단을 해야 할 때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도 성령으로 이 모든 일을 하셨습니다.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실 때 성령에 이끌리셨습니다.

    예수님도 성령을 의지하셨습니다.

    하물며 우리가 성령을 의지하지 않고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

    새벽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그 성령님과 만나는 시간이었습니다.

    오늘 하루를 내 힘으로 살지 않겠다는 결단을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오직 성령으로만 살겠다는 고백을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오직 성령으로만 가능했습니다.

    오늘도 그 성령님을 철저히 의지하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 오늘의 질문

    오늘 나는 성령님보다 앞서 행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성령님을 의지하고 기다리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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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용한 고백] 믿음은 곧 순종입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믿음은 곧 순종입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믿음은 곧 순종입니다.

    순종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것은 그 목소리를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순종이 무엇인지를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사는 줄 아는데 불순종 가운데 사는 사람이 너무도 많다는 것입니다.

    불순종에는 여러 얼굴이 있었습니다.

    외형적으로는 말씀에 순종하는데 아버지의 마음을 모르고 하는 순종이었습니다.

    자기만족이나 자기 의를 드러내려는 순종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함으로가 아닌 자기의 유익이나 세상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는 것이었습니다.

    단 마음으로 순종하지 않고 마지못해서 하는 순종이나 상황이나 기분에 따라 하는 순종이었습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불순종에 해당됐습니다.

    그렇다면 참 순종은 무엇일까요.

    마음으로 하는 순종이었습니다.

    순종은 마음에서부터 시작됐습니다.

    믿음이 순종이라면 순종은 행동 이전에 믿음이었습니다.

    마음에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믿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라는 말씀을 들었을 때를 생각합니다.

    그 말씀이 이해됐을까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이튿날 아침 일찍 일어났습니다.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단 마음으로 즉각 순종했습니다.

    그 순종이 참 순종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그 순종을 보시고 이제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아노라고 하셨습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말했습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형식보다 마음이 먼저라는 것이었습니다.

    순종의 모델은 주님이셨습니다.

    주님은 순종을 넘어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히브리서는 예수님은 아들이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셔서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다고 말씀합니다.

    순종이 어디서 시작되는지를 알 때 순종이 가능해졌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에서 시작됐습니다.

    하나님이 선하시다는 것을 믿을 때 그 말씀에 전 존재를 맡길 수 있었습니다.

    믿음이 순종의 기초였습니다.

    믿음은 곧 순종입니다

    참 순종의 모습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생각합니다.

    전 존재와 전 삶을 하나님께 내어드리고 맡기는 것이었습니다.

    약속을 잠잠히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언제든지 말씀에 복종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매일 새벽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그 순종의 훈련이었습니다.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오늘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매일의 훈련이 쌓이면서 순종이 삶이 됐습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그와 함께 존재하고 그를 통해서 일하시고 그에게 복을 주십니다.

    순종이 이토록 풍성한 것이었습니다.

    믿음은 곧 순종이었습니다.

    오늘 그 순종 안에 머물기를 기도합니다.

    믿음과 순종이 하나가 되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 오늘의 묵상 한 줄

    믿음은 곧 순종입니다. 마음에서 나오는 순종이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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