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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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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솔직한 고백들을 담았습니다.

  • [조용한 고백]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하나님은 혼자 일하시지 않고 사람과 함께 일하시기를 좋아하십니다.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실 때 아담에게 맡기시고 매우 기뻐하셨습니다.

    그것은 아담을 복 주시고 너무도 사랑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하는 일에 있어서도 주님이 직접 하시거나 천사를 통해서 하시지 않고 자신이 죽으심으로 뿌리시고 제자들을 통해서 거두게 하심으로 함께 일하시고 기뻐하게 하셨습니다.

    사람을 위로하고 섬기며 필요를 공급하실 때도 사람을 통해서 행하십니다.

    재판할 때도 사람에게 위임된 권위를 주셔서 공의를 따라 재판하게 하십니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서 행하시는 일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절대 사람이 대신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 일하신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를 생각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연약한 사람을 통해 일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담에게 피조물을 다스리는 일을 맡기신 것이 그것이었습니다.

    모세에게 이스라엘 민족을 이끄는 일을 맡기신 것이 그것이었습니다.

    제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맡기신 것이 그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일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반대편에 경계선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있고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 경계선을 넘는 것이 하나님의 자리를 침범하는 것이었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서 연단하시거나 징계를 할 때 달게 받지 않고 거절하거나 제거하는 일이었습니다.

    다윗이 그 경계선을 지켰습니다.

    사울이 자신을 죽이려 할 때 달게 받고 죽이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시므이가 티끌을 날리며 자신을 저주할 때도 하나님이 저를 통해서 저주하는 것이라고 달게 받았습니다.

    엔게디 굴에서 사울의 겉옷 자락을 벗겼을 때 그것만으로도 양심에 찔렸습니다.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 손을 대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그 경계선을 지키는 것이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했습니다.

    두 번째는 형제가 죄를 회개하여 하나님이 이미 용서한 사람을 사람이 용서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요셉이 그것을 알았습니다.

    형들이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지난날들의 악을 보복하지나 않을까 두려워할 때 말했습니다.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만약 요셉이 보복했다면 어떻게 됐겠습니까.

    하나님의 계획이 무너졌을 것이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을 완성하는 것이었습니다.

    세 번째는 형제를 비방하고 판단하는 일이었습니다.

    야고보 사도가 엄히 경고했습니다.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고.

    판단은 하나님의 영역이었습니다.

    네 번째는 하나님이 위임하여 세우신 권세자들을 비방하거나 판단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이 경고했습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라고.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우리도 매일 그 경계선 앞에 서게 됩니다.

    억울한 일을 당할 때 그 경계선 앞에 섭니다.

    내가 판단하고 싶을 때 그 경계선 앞에 섭니다.

    내가 보복하고 싶을 때 그 경계선 앞에 섭니다.

    형제를 비방하고 싶을 때 그 경계선 앞에 섭니다.

    그때마다 요셉의 고백이 필요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그 고백이 경계선을 지키게 합니다.

    내가 물러설 때 하나님이 나서십니다.

    하나님이 하실 일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삶이었습니다.

    그것이 가장 강한 사람의 모습이었습니다.

    보복하지 않는 것이 약함이 아니었습니다.

    판단하지 않는 것이 무능함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가장 성숙한 신앙이었습니다.

    오늘 그 경계선을 지키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 오늘의 기도

    주님 내가 하나님의 자리에 서려 했던 것을 내려놓겠습니다. 판단을 주님께 맡깁니다. 용서를 주님께서 하신 것처럼 나도 용서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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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용한 고백] 자다가 벌써 깰 때가 되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자다가 벌써 깰 때가 되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하나님은 친밀한 관계나 존재 관리를 일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일의 결과보다 과정을 더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그러나 세상은 관계나 자신의 존재보다는 일을 일의 과정보다 결과를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쓰임을 받다가 자신의 존재 관리를 잘못하여 버림받게 됐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철저하게 세상과 반대였습니다.

    그것을 모르고 세상적인 가치관이나 삶의 방식을 그대로 따르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일의 결과를 얻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고 순종하는 것을 더 중히 여기셨습니다.

    어떤 일을 얼마나 많이 하느냐를 보시기보다는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하느냐를 보셨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하느냐는 자원하는 마음과 겸손하고 은밀하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느냐는 내 힘과 지혜가 아닌 오직 하나님을 힘입어 함께 일하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우리가 하는 일이 더디고 아무런 성과가 없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고 그 뜻을 따라 행하였다면 그것이 아름다운 것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영성의 대가인 토저가 말했습니다.

    때로는 가만히 있는 것이 가장 많은 일을 하는 것이고 그 자리에 서있는 것이 가장 많이 가는 것이며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이라고.

    그 말이 하나님 나라의 방식이었습니다.

    기다림이나 침묵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데 필수적인 조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기다리지 못했습니다.

    하갈을 취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 하다가 얼마나 많은 고통의 대가를 지불하였는지 모릅니다.

    기다리지 못한 대가가 얼마나 컸는지 모릅니다.

    이스마엘과 이삭의 갈등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달랐습니다.

    사울을 죽이고 방랑자의 삶을 끝내고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거절하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습니다.

    능히 이스라엘 왕이 될 수 있었으나 유다 지파의 왕으로 7년을 기다렸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일하시므로 이스라엘 전체의 왕이 됐습니다.

    일의 성취보다는 과정을 더 중히 여기시는 하나님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존재 관리가 무엇인지를 더 생각합니다.

    일을 하는 동안 자신의 내면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일이 잘 될 때 교만해졌습니다.

    일이 잘 안 될 때 낙심했습니다.

    성과에 따라 자신의 존재 가치가 흔들렸습니다.

    그것이 존재 관리가 안 된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달랐습니다.

    왕이 됐을 때도 하나님 앞에 겸손했습니다.

    자신의 존재를 하나님 앞에서 바라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이 존재 관리였습니다.

    요셉이 그랬습니다.

    보디발의 집에서 인정받았을 때도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을 때도 동일했습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요셉을 통해 일하셨습니다.

    존재 관리가 된 사람과 함께 일하셨습니다.

    자다가 벌써 깰 때가 되었다

    어떻게 하면 존재 관리가 될 수 있는지를 생각합니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결과를 내려놓고 과정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었습니다.

    기다림을 훈련하는 것이었습니다.

    침묵을 훈련하는 것이었습니다.

    느림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것 같은 날도 하나님 앞에서 성실히 살았다면 그것이 아름다운 날이었습니다.

    세상은 그것을 실패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기뻐하셨습니다.

    그 차이를 아는 것이 깨어나는 것이었습니다.

    자다가 벌써 깰 때가 되었다는 말씀이 오늘 나에게 말씀하십니다.

    세상적인 가치관의 잠에서 깨어나십시오.

    일의 결과 중심에서 관계와 존재 중심으로 깨어나십시오.

    빠름의 잠에서 기다림으로 깨어나십시오.

    그 깨어남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의 시작이었습니다.

    존재 관리를 잘 하는 사람은 기도를 멈추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새벽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존재 관리의 시작이었습니다.

    그 시간이 하루의 방향을 결정했습니다.

    일보다 관계를 먼저 챙기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결과보다 과정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자다가 벌써 깰 때가 됐습니다.

    오늘 그 깨어남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 오늘의 묵상 한 줄

    하나님은 일의 결과보다 과정을 관계보다 일보다 존재 관리를 더 중히 여기십니다. 자다가 깰 때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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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용한 고백] 기도는 깨어 있음의 능력입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기도는 깨어 있음의 능력입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깨어 있다는 것은 정신을 차리고 기도하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기도하지 않고는 깨어 있을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기도는 자신을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하는 최고의 저항이었습니다.

    정결하게 하고 경건한 존재와 삶을 위한 능력이었습니다.

    마귀는 기도하는 사람을 쉽게 유혹하지 못하고 두려워했습니다.

    기도 없이 세상을 이기거나 마귀를 이기는 일은 없었습니다.

    기도가 없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생각합니다.

    사울이 그랬습니다.

    기도하지 않고 스스로 번제를 드렸습니다.

    그것이 그를 무너뜨렸습니다.

    삼손이 그랬습니다.

    기도 없이 육체의 욕심을 따랐습니다.

    힘을 잃었습니다.

    기도가 없는 자리에 마귀가 들어왔습니다.

    예수님이 그것을 보여주셨습니다.

    40일을 금식하신 후 마귀의 시험을 이기시고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새벽 아직 밝기 전에 일어나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라.

    기도 없이 하신 일이 없었습니다.

    하물며 우리가 기도 없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반면에 기도의 사람들은 달랐습니다.

    다니엘은 하루 세 번 기도했습니다.

    사자 굴에서도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셨습니다.

    느헤미야는 성벽을 쌓으면서도 기도했습니다.

    대적들이 방해해도 이겼습니다.

    바울이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말했습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기도가 얼마나 중요하였으면 여섯 번이나 반복하며 강조하고 있었을까요.

    기도는 깨어 있음의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음도 기도요 경건한 존재와 삶도 기도요 시험에 들지 않고 세속에 물들지 않고 마귀를 대적하는 것도 기도요 하나님과 동행함도 기도요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도 기도뿐이었습니다.

    기도가 최고의 저항이라는 말이 마음에 남습니다.

    세속에 물들지 않기 위한 최고의 저항이었습니다.

    싸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마귀는 기도하는 사람을 두려워했습니다.

    기도의 자리가 전쟁터였습니다.

    따라서 기도는 하나님을 향한 최고의 순종이었습니다.

    최고의 경외함이었습니다.

    최고의 헌신이었습니다.

    최고의 영광이었습니다.

    오늘 기도하고 있습니까.

    기도하지 않으면서 깨어 있으려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기도가 깨어 있음의 능력이었습니다.

    오늘도 그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기를 기도합니다.

    🙏 오늘의 기도

    주님 기도가 없어 시험에 들고 세속에 물든 것을 고백합니다. 오늘 다시 기도의 자리로 나아갑니다. 기도가 깨어 있음의 능력임을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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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용한 고백] 하나님은 우리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심으로 새로운 길로 이끄십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하나님은 우리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심으로 새로운 길로 이끄십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하나님은 우리를 새로운 길로 이끄시기 위하여 우리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십니다.

    그래서 편안하고 안일한 자리에서 떠나 하나님의 길을 가게 하십니다.

    우리가 자원해서 떠나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환경을 통해서나 사람을 통해서 그렇게 하십니다.

    그 자리에 머물러 안주하고 있으면 변화되거나 성장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부패하여 죽기 때문이었습니다.

    보금자리가 어지럽혀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생각합니다.

    갑자기 일이 풀리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사람 관계가 어그러지는 것이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상실이 찾아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독수리가 새끼를 가르치는 방법이 그랬습니다.

    보금자리에 가시를 넣어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면 새끼가 스스로 둥지를 벗어났습니다.

    날개를 펴게 됩니다.

    야곱이 그랬습니다.

    세겜에 편안히 안주하려다 보금자리를 어지럽히는 큰 환난을 당한 후 거기를 떠나 벧엘에 올라가 하나님을 만나 구체적인 약속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편안한 세겜이 아닌 어지럽혀진 자리가 벧엘로 가게 했습니다.

    한나가 그랬습니다.

    브닌나로부터 심한 고통을 당한 그 고통으로 인하여 소원을 가지고 간구하므로 사무엘을 얻어 이스라엘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주인공이 됐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랬습니다.

    갈 바를 모르고 나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계시어 지키시고 복을 주셨습니다.

    모름이 하나님을 의지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의지가 믿음의 조상이 되게 했습니다.

    요셉이 그랬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안주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셨습니다.

    노예로 외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부모와 형제들과 애굽을 기근에서 구원하고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을 이루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심으로 새로운 길로 이끄십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모든 사람은 다 꿈의 사람이었습니다.

    꿈의 사람은 세상의 즐거움을 버리고 편안한 자리를 떠나야 했습니다.

    떠남과 버림이 없이는 꿈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낯선 곳을 향해 떠날 때 두렵기도 하고 외롭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꿈을 위하여 지불해야 할 대가였습니다.

    당장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도 괜찮았습니다.

    하나님이 보고 계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성령은 지금도 우리 안에서 꿈을 주십니다.

    그 꿈이 불편한 자리로 이끕니다.

    그 불편함이 하나님의 역사를 만듭니다.

    보금자리가 어지럽혀지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그 사랑에 이끌려 오늘도 한 걸음 나아가기를 기도합니다.

    💭 오늘의 질문

    오늘 내 보금자리가 어지럽혀지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어디로 이끄시려는 것인지 묻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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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용한 고백] 참 기쁨은 남을 위하여 살 때 옵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참 기쁨은 남을 위하여 살 때 옵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좋은 집에 살고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옷을 입고 아름다운 곳을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은 직장에 다니고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해도 참 기쁨이 없는 이유가 무엇 때문일까요.

    잠시 즐거운 것 같은데 영혼의 목마름이 계속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자기를 위하여 살기 때문이었습니다.

    자기를 위하여 사는 사람은 무엇을 하든지 무엇을 가졌든지 결코 진정한 행복이나 만족한 삶을 살 수 없었습니다.

    왜 자기를 위한 삶이 만족이 없는지를 생각합니다.

    물이 흘러가지 않으면 썩기 때문이었습니다.

    사해가 그랬습니다.

    요단강에서 물이 들어오지만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 물이 죽었습니다.

    아무것도 살 수 없는 바다가 됐습니다.

    받기만 하고 주지 않으면 그렇게 됩니다.

    반면에 갈릴리 호수는 달랐습니다.

    들어오고 나갔습니다.

    그래서 생명이 넘쳤습니다.

    자기를 위한 삶은 사해였습니다.

    남을 위한 삶은 갈릴리였습니다.

    예수님의 삶이 그것이었습니다.

    오직 아버지의 영광만을 위하여 사셨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사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살릴 수만 있다면 자기의 목숨도 기꺼이 버리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었습니다.

    구원받은 사람 안에는 남을 위하여 살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 마음이 예수님의 생명이었습니다.

    바울이 그 삶을 알았습니다.

    감옥에서 빌립보 성도들에게 썼습니다.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라고.

    자기 처지가 가장 어려운 자리에서 남을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참 기쁨은 남을 위하여 살 때 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복을 관계 속에서 섬김 속에서 희생과 자기를 버림 속에 얻도록 숨겨 놓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살고 남을 위하여 사는 것이 진정으로 나를 위하여 사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가정에서 누군가를 위하여 한 가지만 해보십시오.

    직장에서 동료를 위하여 한 가지만 해보십시오.

    그 작은 것이 하나님이 숨겨두신 행복의 문을 여는 것이었습니다.

    대가를 지불하는 그 과정에 기쁨이 있었습니다.

    지불하고 나서야 알게 됩니다.

    그것이 남을 위하여 사는 삶의 비밀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그 길을 가는 사람을 이 세상에 남겨 두셨습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의 희망이었습니다.

    그 사람으로 인하여 이 세상이 멸망하지 않고 보존되고 있었습니다.

    자기를 위한 삶에서 하나님과 남을 위한 삶으로 방향을 바꾸는 것이 오늘 시작될 수 있습니다.

    그 방향 전환이 참 기쁨의 시작이었습니다.

    🌿 오늘의 묵상 한 줄

    참 기쁨은 자기를 위할 때가 아니라 하나님과 남을 위하여 살 때 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숨겨두신 행복의 비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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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용한 고백]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라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라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주님은 누구든지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처음에는 이해가 어렵습니다.

    생명을 미워하라고 하십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우리에게 고통을 주려 하심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존재와 삶을 영광스럽게 하기 위하여 주신 복된 말씀이었습니다.

    자기의 생명을 미워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생각합니다.

    자기를 죽이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편한 것보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셨습니다.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이 기도가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선택이 십자가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그 십자가가 부활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그 부활이 우리의 구원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주님이 그 길을 몸소 가셨습니다.

    수많은 고난이 있었지만 그 길을 가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 길을 자신이 영광을 얻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반대로 모든 것을 버려도 자기를 살리고 남을 살리면 그것이 영광이었습니다.

    세상은 더 갖는 것을 성공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버리는 것을 영광이라고 하셨습니다.

    사사시대 입다의 딸이 그랬습니다.

    아버지가 하나님께 잘못된 서원을 했지만 그 서원을 지키기 위하여 처녀로 죽었습니다.

    그 결단이 얼마나 무거운지 모릅니다.

    하물며 주님의 선한 뜻을 위하여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라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이제부터 다시는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남은 때를 살아야 되지 않겠느냐고.

    너희가 죽고자 하면 살 것이요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라.

    이 역설이 주님이 걸어가신 길이었습니다.

    매일 죽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매일 자기를 부인하는 선택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제 죽으면 오늘 또 자라납니다.

    그래서 날마다였습니다.

    그 날마다의 선택이 쌓이면서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 됩니다.

    그 길을 가기로 결단할 때부터 주님께서 도우십니다.

    혼자 가는 길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이 먼저 그 길을 가셨고 지금도 함께 걸어가십니다.

    오늘 그 역설의 진리 안에서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 오늘의 기도

    주님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오늘 가르쳐 주소서.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을 따르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아멘.

    ✅ 성경 말씀 더 깊이 읽기 → 대한성서공회

  • [조용한 고백] 하나님의 사람은 기도의 사람입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하나님의 사람은 기도의 사람입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하나님의 사람은 기도의 사람입니다.

    기도의 사람은 꿈의 사람이요 또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꿈과 믿음이 있을 때 기도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기도하지 않는 이유는 꿈이 없고 믿음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인가 아닌가를 아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있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인가 아닌가를 보면 알 수 있었습니다.

    누구도 기도 없이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비밀한 계획을 알게 하시고 기도하는 사람과 함께 일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기도가 없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생각합니다.

    사울이 그랬습니다.

    블레셋과의 전쟁 앞에서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조급했습니다.

    스스로 번제를 드렸습니다.

    기도가 아닌 행동으로 앞서갔습니다.

    그것이 그를 무너뜨렸습니다.

    반면에 다윗은 늘 주님께 물었습니다.

    내가 이 블레셋 사람을 치러 올라가리이까.

    그리고 이겼습니다.

    기도가 먼저였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려 할 때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존이 되리라고.

    이 말씀을 들은 그때 다윗은 고백했습니다.

    주의 종이 이 기도로 구할 마음이 생겼나이다.

    하나님의 약속이 꿈이 됐습니다.

    그 꿈이 기도를 낳았습니다.

    예수님이 그랬습니다.

    새벽 아직 밝기 전에 일어나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라.

    인류의 구원을 위해 오신 분이 새벽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셨습니다.

    기도의 분량이 사역의 분량이었습니다.

    느헤미야가 그랬습니다.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 소식을 듣고 수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 이후에 왕 앞에 나아갔습니다.

    그 기도가 왕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성벽이 다시 세워졌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기도의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을 기도행전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기도를 통해서 성령이 임하기까지는 어떤 행동도 하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기도 없이는 그 어떤 것으로도 이런 유가 나갈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기도를 막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아야 합니다.

    바빠서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가장 바쁘실 때 가장 많이 기도하셨습니다.

    기도가 바쁨을 이기는 방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시대가 어두울 때에 한없이 아파하시면서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고통 때문에 기도하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고통의 응답을 통해서 하나님의 큰 계획을 함께 이루십니다.

    오늘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십시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람임을 보여주는 증거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도 기도하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오늘의 질문

    오늘 나는 기도하고 있습니까. 기도하지 않는다면 꿈이 없는 것은 아닙니까. 믿음이 식은 것은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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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용한 고백] 네 믿는 대로 되라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네 믿는 대로 되라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이 있으라 하시매 있었고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셨으며 말씀하신 대로 그대로 됐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되어진 것이 다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창조 때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말씀하신 것을 다 되게 하시고 그 결과 다 보시기에 좋게 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성경 말씀을 우리에게 주시고 그 약속의 말씀을 믿을 때 그대로 되게 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성경 말씀을 믿을 때 네 믿는 대로 되라 하시고 영광을 받으시고 기뻐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말씀을 믿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생각합니다.

    아는 것과 다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 홍해를 건넜습니다.

    그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 앞에 섰을 때 믿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반면에 갈렙과 여호수아는 믿었습니다.

    우리가 능히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리이다라고 했습니다.

    같은 상황 같은 말씀인데 믿음이 달랐습니다.

    그 믿음의 차이가 결과의 차이를 만들었습니다.

    백부장이 그랬습니다.

    주님께 말씀만 하소서 그리하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감탄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네 믿는 대로 되라고 하셨습니다.

    그 즉시 하인이 나았습니다.

    네 믿는 대로 되라

    우리가 기도할 때 받은 줄로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이루어진 후에 믿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구하는 그 순간 이미 받은 줄로 믿는 것이었습니다.

    그 믿음에 하나님이 그대로 되게 하셨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크기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의심하지 않는 믿음이었습니다.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신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말씀을 믿을 때 그대로 되게 하신다는 약속이 있습니다.

    어떤 말씀을 붙들고 있습니까.

    그 말씀을 의심하지 않고 믿으십시오.

    받은 줄로 믿고 기도하십시오.

    네 믿는 대로 하나님이 이루십니다.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그 결과를 오늘 믿음으로 기대합니다.

    🌿 오늘의 묵상 한 줄

    하나님은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셨고 지금도 우리가 그 말씀을 믿을 때 그대로 되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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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용한 고백] 주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믿음을 원하십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주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믿음을 원하십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주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믿음을 원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믿음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믿음이었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자신의 현실이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는 절망과 사망 중에 있더라도 반드시 하나님의 구원을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하여도 응답은 없고 고난만 계속 되더라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믿음이 왜 특별한지를 생각합니다.

    조건이 맞을 때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상황이 좋을 때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응답이 왔을 때 믿는 것은 경험이고 확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믿음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 믿는 것이었습니다.

    상황이 반대로 말할 때 믿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진짜 믿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랬습니다.

    백세가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의심치 않았습니다.

    이삭을 드리라는 말씀을 받았을 때도 이튿날 아침 일찍 일어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종했습니다.

    그 믿음이 모든 믿는 자의 조상이 되게 했습니다.

    욥이 그랬습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몸마저 병이 들어 죽을 지경에 이르렀어도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었습니다.

    결국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믿음을 지켰을 때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났습니다.

    다윗이 그랬습니다.

    블레셋으로 도망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육백 명이 돌을 들어 죽이려 하는 비참함 속에서도 그럼에도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도망자에서 왕이 됐습니다.

    요셉이 그랬습니다.

    노예로 팔리고 깊은 옥에 갇히고 기약 없는 옥중 생활을 하면서도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구원자가 됐습니다.

    야곱이 그랬습니다.

    환도뼈가 위골되어도 그럼에도 믿고 간구하므로 이스라엘이 됐습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이 그랬습니다.

    침묵으로 거절로 모욕으로 대하셨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었습니다.

    주님이 그 믿음에 감동하셨습니다.

    주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믿음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왜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믿음을 원하시는 것입니까.

    그 믿음이 진짜 관계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조건이 맞을 때만 믿는 관계는 진짜 관계가 아니었습니다.

    조건과 상관없이 신뢰하는 것이 진짜 사랑이고 진짜 믿음이었습니다.

    주님도 우리를 조건 없이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사랑에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믿음으로 응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어떤 상황에 있습니까.

    절망스럽습니까.

    응답이 없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으십시오.

    그 믿음이 하나님을 감동시킵니다.

    🙏 오늘의 기도

    주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겠습니다. 절망 중에도 응답 없는 시간에도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선하심을 믿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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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용한 고백] 복을 주시면 하나님을 버릴지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복을 주십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복을 주시면 하나님을 버릴지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복을 주십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인간은 왜 편안하고 응답은 받고 축복을 받고 부요하고 쓰임을 받으면 누구나 예외 없이 나태하고 교만하고 배은망덕하여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악을 행하는 것일까요.

    이 질문이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도 그렇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그랬습니다.

    애굽에서 구원받았습니다.

    홍해를 건넜습니다.

    만나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광야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에는 바알을 섬겼습니다.

    복을 받으면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그 패턴이 반복됐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또 구원하셨습니다.

    선지자를 보내셨습니다.

    또 기회를 주셨습니다.

    솔로몬이 그랬습니다.

    지혜를 받았습니다.

    부귀영화를 누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가장 많이 받은 자가 가장 크게 타락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솔로몬을 완전히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시는지를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탕자의 아버지를 보면 조금 이해가 됩니다.

    아들이 재산을 받아 떠날 것을 알면서도 주셨습니다.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셨습니다.

    돌아왔을 때 달려나가셨습니다.

    그것이 아버지의 사랑이었습니다.

    하나님도 그 아버지와 같으셨습니다.

    버릴 줄 알면서도 주셨습니다.

    그 기다림이 사랑이었습니다.

    복을 주시면 하나님을 버릴지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복을 주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자신을 믿고 의지하고 찾는 자들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기를 기뻐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복을 주시면 하나님을 버릴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그렇게 좋은 것으로 주시기를 기뻐하시며 우리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또한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교만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살아갈 때 근심하시고 슬퍼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떠난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스스로 알게 하셔서 하나님이 주신 선물 때문이 아닌 하나님을 갈망하여 찾게 하셨습니다.

    세상을 즐거워하는 마음이 아닌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수많은 시간과 수많은 실패와 수많은 좌절과 탄식이 있다고 해도 기다리십니다.

    모두가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천에 한 사람 만에 한 사람이 그렇게 된다고 해도 하나님은 그 사람을 바라보시고 그렇게 하십니다.

    그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모릅니다.

    오늘 받은 복이 있다면 그 복 때문이 아닌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복을 주시면 버림받으실 것을 알면서도 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그 사랑이 오늘도 우리를 붙들고 있습니다.

    천에 한 사람 그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 오늘의 묵상 한 줄

    복을 주시면 버림받으실 것을 알면서도 복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 사랑 때문에 오늘도 하나님을 즐거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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