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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용한 고백] 아름다운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을 만듭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아름다운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을 만듭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아름다운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을 만듭니다라는 이 고백을 중심이 아름다운 사람을 통해 세상과 가정과 교회가 아름다워진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묵상을 지나 붙들었습니다.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이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마음이 아름답다는 말은 중심이 아름답다는 말입니다.

    중심이 아름답기에 생각이 아름답고 말이 아름답고 관계가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관심은 언제나 우리의 마음에 있으며 중심이 아름다운 사람과 함께 하시며 사랑하며 사용하시고 축복하십니다.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이 많으면 세상이 아름다워집니다.

    가정이 아름다워지고 교회가 아름다워집니다.

    아름다운 사람을 통해서 또 다른 사람이 아름답게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중심이 아름다운 다윗과 함께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인데 어떻게 아름다운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아름다운 마음은 우리의 수양이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마음 예수님이 있는 마음이 아름다운 마음입니다.

    진리로 가득 찬 마음이 아름다운 마음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다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은 그리스도가 우리 마음 안에 실제로 계시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믿을 때 주님이 우리의 존재 안에 계심을 믿고 늘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날마다 부인하고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성경에 나타내신 그리스도의 마음을 늘 품어야 합니다.

    주님의 성품이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할 때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충만해집니다.

    아름다운 마음이 아름다운 말을 만듭니다.

    같은 상황에서도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은 아름다운 말을 합니다.

    상처받은 사람에게 위로의 말을 합니다.

    낙심한 사람에게 격려의 말을 합니다.

    그 말이 또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름답게 만듭니다.

    아름다운 마음이 아름다운 삶을 만듭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이 충만할 때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의 열매가 맺힙니다.

    아름다운 마음은 전염됩니다.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한 사람이 주변을 아름답게 만듭니다.

    가정에서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한 사람이 가정을 아름답게 만듭니다.

    그 아름다움이 퍼져나가 세상이 아름다워집니다.

    아름다운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을 만듭니다

    그래서 이웃이 우리를 보면 그리스도를 보는 것 같고 우리의 말을 들으면 주님의 말을 듣는 것 같고 우리를 만나는 사람이 그리스도를 만나게 됩니다.

    주님은 이것을 너무도 원하십니다.

    이것을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름다운 마음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훈련이 쌓여 만들어집니다.

    자신을 날마다 부인하는 훈련이 쌓여 만들어집니다.

    그 훈련이 쌓이면서 그리스도의 마음이 채워집니다.

    주님이 우리의 존재 안에서 자신의 삶을 사시도록 내어드리는 것이 아름다운 마음의 시작이었습니다.

    내가 주님 안에서 살 때 아름다운 마음이 됩니다.

    오늘도 말씀을 묵상합니다.

    주님의 성품을 묵상합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기를 구합니다.

    아름다운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을 만들고 아름다운 사람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듭니다.

    오늘도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오늘의 묵상 한 줄

    아름다운 마음은 노력이 아닌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채워질 때 만들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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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용한 고백]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할 때 풍성한 열매가 맺힙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할 때 풍성한 열매가 맺힙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할 때 풍성한 열매가 맺힙니다라는 이 고백을 모든 것을 후히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는 것이 가장 기쁜 열매임을 깨달아가는 묵상을 지나 붙들었습니다.

    가을을 떠올리면 왠지 우리의 마음이 풍성해지고 넉넉해집니다.

    아름다운 열매가 있기 때문입니다.

    농부는 그 열매를 바라기에 길이 참고 땀을 흘리는 수고를 기쁨으로 감당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혼이 풍성해지고 존재가 넉넉해질 때가 있습니다.

    모든 것을 후히 주시고 풍성케 하시는 하나님을 깊이 묵상하면 뜨거운 감사로 우리 마음이 풍성해집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늘 떠올리며 감사하는 사람이 존재의 넉넉함을 누리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기뻐하시며 더 풍성한 은혜를 주십니다.

    그래서 다윗은 고난 중에서도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광대하시다 하리니 이것이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할 때 그 감사가 가장 기쁜 제물이 됐습니다.

    그러나 정작 열매가 결실하도록 햇빛과 때를 따라 비를 주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며 사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모든 아름다운 열매와 풍성한 것을 넘치도록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살기 쉽습니다.

    하나님께서도 농부로서 열매를 바라고 오래 참고 기다리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은혜와 사랑을 받았음에도 감사가 없고 열매가 없을 때 하나님은 탄식하십니다.

    이사야를 통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힘은 어찜인고라고 탄식하였습니다.

    주님은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열매가 바로 감사입니다.

    그 열매가 바로 자신을 주님께 온전히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 안에 사실 때 절로 열매가 맺힙니다.

    가을 들판의 황금빛 들녘을 바라볼 때 그 풍성함이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님을 압니다.

    우리의 영적 열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는 매일의 수고가 쌓여 풍성한 열매가 맺히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이 고난 중에도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기억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고난이 크더라도 하나님의 은혜가 더 크다는 것을 기억했습니다.

    그 기억이 감사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빌립보교회가 극한 가난 속에서도 바울을 위해 선교헌금을 기쁨으로 드렸던 것도 그랬습니다.

    자신들이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기억이 감사가 됐습니다.

    그 감사가 나눔이 됐습니다.

    그 나눔이 열매가 됐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할 때 풍성한 열매가 맺힙니다

    감사는 그냥 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할 때 감사가 옵니다.

    기억하지 않으면 잊어버립니다.

    잊어버리면 감사가 사라집니다.

    감사가 사라지면 열매가 사라집니다.

    감사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힘들 때 감사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럴 때 의지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은혜였습니다.

    지금 이 순간 숨을 쉬는 것이 은혜였습니다.

    그 은혜를 기억할 때 감사가 나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할 때 풍성한 열매가 맺힌다는 이 약속을 붙들고 오늘도 감사하기로 결단합니다.

    오늘도 감사하는 열매를 드립니다

    오늘 아침에 눈을 뜬 것이 감사입니다.

    숨을 쉬는 것이 감사입니다.

    말씀을 읽을 수 있는 것이 감사입니다.

    기도할 수 있는 것이 감사입니다.

    그 감사들이 쌓일 때 풍성한 열매가 맺힙니다.

    하나님이 농부처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 기다림에 감사의 열매로 응답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 오늘의 기도

    주님 오늘도 주신 모든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게 하소서. 감사의 열매가 가장 기쁜 제물임을 알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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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용한 고백] 잘 비우는 사람이 잘 채우는 사람입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잘 비우는 사람이 잘 채우는 사람입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잘 비우는 사람이 잘 채우는 사람입니다라는 이 고백을 하나님은 빈 공간을 채우시는 분이시기에 비울 때 채움을 경험한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묵상을 지나 붙들었습니다.

    모든 것에 풍성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쓸 것을 채우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채우지 않고는 직성이 풀리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풍성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채우지 못하는 삶을 사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채울 공간이나 그릇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실 때 먼저 3일 동안 궁창과 바다와 땅 즉 공간을 먼저 만드셨습니다.

    공간이 먼저였습니다.

    비움이 먼저였습니다.

    비워진 공간에 채우시는 것이 하나님의 방식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렙다 과부의 빈 그릇을 채우셨습니다.

    엘리사 시대에 빚진 선지자의 생도의 아내가 빌린 빈 그릇을 기름으로 가득 채우셨습니다.

    그릇이 빈 만큼 채워졌습니다.

    빈 그릇이 있는 곳에 채우심이 임했습니다.

    빌립보교회가 극한 가난 속에서도 바울을 위하여 선교헌금을 기쁨으로 했을 때 하나님이 모든 쓸 것을 채워주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난 속에서 나눴습니다.

    비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채워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잘 비우는 사람이 잘 채우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채워지지 않는 이유도 우리 마음이 자아로 욕심으로 세상 것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비우지 않는 한 영혼의 목마름은 계속될 것입니다.

    비운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자아를 비우는 것은 내가 주인이라는 생각을 내려놓는 것이었습니다.

    욕심을 비우는 것은 더 많이 가지려는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었습니다.

    세상 것을 비우는 것은 하나님보다 세상이 주는 것을 더 사랑하는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었습니다.

    그 비움이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비울 때마다 하나님이 채우셨습니다.

    비울 때 더 좋은 것으로 채워지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비우는 것이 두렵지 않게 됐습니다.

    기도도 비우는 시간이었습니다.

    매일 새벽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루를 맡기는 것이 내 것을 비우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하루를 내 계획대로 살겠다는 마음을 비우고 하나님의 계획대로 살겠다는 마음을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나눌 때도 채워졌습니다.

    가진 것을 나눌 때 더 채워주셨습니다.

    비우는 방식이 하나님이 채우시는 통로가 됐습니다.

    잘 비우는 사람이 잘 채우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좋은 것으로 채우신다고 하셨습니다.

    사모하는 영혼이 가난한 마음이었습니다.

    가난한 마음이 비어있는 그릇이었습니다.

    그 비어있는 마음에 하나님이 채우십니다.

    네 보배를 진토에 버리고 오빌의 금을 강가의 돌에 버리라는 말씀이 비우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세상의 보배를 버릴 때 하나님의 보배가 채워집니다.

    하나님의 본성은 비워진 공간에 늘 채우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본성을 믿을 때 비우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잘 비우는 사람이 잘 채우는 사람이라는 이 원리를 오늘도 붙들고 살아갑니다.

    오늘도 비우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오늘 내 마음이 무엇으로 가득 차 있습니까.

    자아가 가득합니까. 욕심이 가득합니까. 세상 것이 가득합니까.

    그것을 비워야 합니다.

    비울 때 하나님이 채우십니다.

    오늘도 비우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그 비움에 하나님이 채우실 것을 기대합니다.

    풍성하신 하나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빈 그릇을 들고 나아갑니다.

    채우시는 하나님을 만날 것입니다.

    💭 오늘의 질문

    지금 내 마음이 무엇으로 가득 차 있습니까. 하나님이 채우실 수 있도록 무엇을 비워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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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용한 고백] 문제의 현상이 아니라 뿌리를 보아야 합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문제의 현상이 아니라 뿌리를 보아야 합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문제의 현상이 아니라 뿌리를 보아야 합니다라는 이 고백을 우리가 당하는 모든 일에는 꼭 그럴만한 이유가 있고 현상이 아닌 뿌리를 발견할 때 해결이 된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묵상을 지나 붙들었습니다.

    우리가 당하는 모든 일에는 꼭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니 누구를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모든 일의 중심에는 내가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무슨 일이 있을 때는 일어난 현상만을 보아서는 절대 안 됩니다.

    그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원인 즉 훨씬 먼저 있었던 뿌리를 발견해야 합니다.

    그러면 일어난 현상은 쉽게 해결이 됩니다.

    그 예가 바로 다윗이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메어 오려 할 때였습니다.

    소들이 뛰므로 궤가 흔들려 떨어지려 할 때 웃사가 궤를 붙잡으려다 죽는 일이 생겼습니다.

    다윗은 현상만 보고 마음이 상하여 궤를 옮겨오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되어진 현상 앞에서 문제의 원인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오벧에돔의 집에 복을 주시는 것을 보면서 다윗은 모든 문제의 원인이 다 자기에게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소가 뛸 수밖에 없고 웃사가 죽을 수밖에 없었던 분명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궤를 레위지파가 어깨에 메야 하는데 새 수레에 싣고 온 것이었습니다.

    현상이 아니라 뿌리를 보았을 때 원인이 보였습니다.

    더 깊은 뿌리도 있었습니다.

    사람한테 보이고자 한 교만한 마음이 있었기에 궤를 메야 하는 그 말씀을 기억하지 못해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교만이 말씀을 잊게 했습니다.

    말씀을 잊으니 잘못된 방식으로 궤를 옮겼습니다.

    그 결과가 웃사의 죽음이었습니다.

    현상만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뿌리를 보니 이해가 됐습니다.

    다윗은 곧 원인을 깨닫고 하나님의 궤를 다시 메어왔습니다.

    그리고 궤 앞에서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며 기뻐했습니다.

    현상만 보고 포기했던 다윗이 뿌리를 보고 나서 달라졌습니다.

    뿌리를 발견하자 춤출 수 있게 됐습니다.

    우리가 원망하고 불평할 때를 돌아보면 항상 현상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뿌리를 보기 시작했을 때 달라졌습니다.

    이 일이 일어난 뿌리가 무엇인가를 물었습니다.

    그 모든 일의 중심에 내가 들어가 있다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 순간 원망이 멈췄습니다.

    회개가 시작됐습니다.

    그 회개가 해결의 시작이었습니다.

    뿌리를 발견하는 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오벧에돔의 집에 복이 임하는 것을 보기까지 3개월이 걸렸습니다.

    때로 뿌리를 보는 데 시간이 필요합니다.

    침묵하고 기다리며 하나님이 뿌리를 보여주시기를 기다리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어떤 문제를 만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현상 앞에서 침묵하는 것이었습니다.

    원망하기 전에 침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모든 일의 중심에 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인정이 뿌리를 보게 하는 시작이었습니다.

    문제의 현상이 아니라 뿌리를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문제를 만날 때 당면한 현상만을 보아서는 안 됩니다.

    더 깊은 뿌리를 보아야 해결이 됩니다.

    침묵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뿌리를 보는 방식이었습니다.

    일어난 현상 앞에서 먼저 자신을 살피는 것이었습니다.

    그 인정이 쉽지 않습니다.

    현상을 보면 내 잘못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데 뿌리를 보면 내가 있습니다.

    뿌리를 발견하고 다윗처럼 돌이킬 때 해결이 됩니다.

    뿌리를 볼 때 해결이 오고 춤이 옵니다.

    오늘 문제 앞에서 현상이 아니라 뿌리를 보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오늘의 묵상 한 줄

    현상 앞에서 원망하는 대신 뿌리를 발견했을 때 다윗처럼 춤을 출 수 있게 됐습니다.


    성경 말씀 더 깊이 읽기 → 대한성서공회

  • [조용한 고백]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없이는 아무도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없이는 아무도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없이는 아무도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라는 이 고백을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겸손히 엎드릴 때 긍휼이 흘러내린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묵상을 지나 붙들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없이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

    주의 긍휼은 자신은 무익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진심으로 고백하고 겸손히 하나님께 엎드리는 자에게 흘러내립니다.

    아버지를 멀리 떠나 방탕하다 돼지와 함께 살다가 스스로 돌이켜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는 탕자에게 아버지의 크신 긍휼이 임했습니다.

    자신이 아들의 자격이 없다고 고백하는 그 자리에서 긍휼이 임했습니다.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엎드린 세리에게 하나님의 긍휼이 강같이 임했습니다.

    바리새인처럼 자신의 의를 자랑하는 자가 아니라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자에게 긍휼이 임했습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라고 애원한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는 주님의 긍휼이 임했습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엎드릴 때 긍휼이 임하는 것이었습니다.

    엘리야 앞에 꿇어 엎드려 하나님의 사람이여 원컨대 나의 생명과 당신의 종인 이 오십 인의 생명을 당신은 귀히 보소서 라고 간절히 간구하는 세 번째 오십 부장에게 하나님의 긍휼이 임했습니다.

    처음 두 오십 부장은 명령하듯 왔습니다.

    그런데 세 번째 오십 부장은 겸손히 무릎을 꿇었습니다.

    겸손히 엎드리는 자에게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임하는 것이었습니다.

    인구조사로 인하여 온역으로 7만 명이 죽을 때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비 집을 치시고 주의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지 마옵소서 라고 엎드린 다윗에게 주의 긍휼하심이 임했습니다.

    자신을 내어주면서 백성을 위해 구한 그 겸손한 기도에 긍휼이 임했습니다.

    긍휼은 자격이 없는 자에게 베풀어지는 것이었습니다.

    탕자가 아들의 자격을 내려놓았을 때 아버지의 긍휼이 임했습니다.

    세리가 자신의 의를 내려놓았을 때 하나님의 긍휼이 임했습니다.

    강도가 자신의 죄를 인정했을 때 주님의 긍휼이 임했습니다.

    모두 자격 없음을 고백하는 자리에서 긍휼이 임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없이는 아무도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

    멸망하는 나라를 바라보며 절망과 고통 가운데서 예레미야는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의 긍휼을 믿고 소망을 가졌습니다.

    예레미야의 기대대로 하나님은 진노 중에도 이스라엘에 긍휼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절망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믿고 소망을 가지는 것이 그 긍휼을 경험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야 합니다.

    담대히 나아가는 것이 교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믿기 때문에 나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긍휼을 경험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긍휼을 베풉니다

    긍휼을 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게 됩니다.

    탕자가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달려나가 안아준 것처럼 하나님의 긍휼을 경험한 사람은 돌아오는 사람을 달려가 안을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우리를 통해 흘러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필요합니까.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겸손히 엎드리십시오.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지 못하더라도 괜찮습니다.

    가슴을 치며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라고 고백하십시오.

    그 자리에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임합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무궁하다는 것이 오늘도 소망입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없이는 아무도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 긍휼이 오늘도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 오늘의 기도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저는 죄인이로소이다. 주의 긍휼하심이 없이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오늘도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갑니다. 아멘.

    성경 말씀 더 깊이 읽기 → 대한성서공회

  • [조용한 고백] 잊어야 할 것과 잊지 말아야 할 것을 구별하며 삽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잊어야 할 것과 잊지 말아야 할 것을 구별하며 삽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잊어야 할 것 잊지 말아야 할 것을 구별하며 사는 것이 성숙한 신앙입니다.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잊을 것인지를 의지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믿음의 성숙임을 깨달아가는 묵상을 지나 붙들었습니다.

    성숙한 사람 영성이 깊은 사람은 잊어야 할 것과 잊지 말아야 할 것을 확실하게 구별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억해야 할 것을 잊어버리고 잊어버려야 할 것은 기억하며 살아갑니다.

    정말 신앙의 영웅들은 기억해야 할 일은 의지적으로 늘 기억하며 살았고 잊어야 할 것은 의지적으로 기억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잊어버려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첫째는 과거에 추구하며 살았던 세상적이고 정욕적인 것들입니다.

    이것을 잊지 못하면 결국 실족하거나 죄에 빠지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애굽에서 먹었던 것들을 잊지 못하고 생각했기에 하나님을 원망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더 좋은 것을 주셨는데 과거의 작은 것을 잊지 못해 현재를 망친 것이었습니다.

    둘째는 과거의 아픔과 상처들입니다.

    이것들을 계속 생각하게 되면 분노와 원망이 자신의 존재 깊이 자리하게 되어 결국 스스로 파멸에 이르게 됩니다.

    그런데 믿음의 사람 요셉은 하나님이 나로 나의 모든 고난을 잊어버리게 하셨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요셉에게 과거의 아픔을 잊을 수 있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롯의 아내가 소돔을 뒤돌아봤습니다.

    잊어야 할 것을 잊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가 소금 기둥이 됐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애굽을 그리워했습니다.

    잊어야 할 것을 잊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40년을 광야에서 보냈습니다.

    잊어야 할 것 잊지 말아야 할 것을 구별하는 삶

    그러나 잊어서는 결코 안 되며 늘 기억하며 살아야 할 일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또 하나는 지난날 죄 가운데 무익하고 죄인중의 괴수로 살았던 자신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늘 은혜에 감사할 수 있고 그 일을 기억할 때마다 겸손히 주님 위해 살 수 있습니다.

    바울이 그 좋은 예였습니다.

    바울은 지난날 교회를 핍박하던 자신을 기억했습니다.

    그 기억이 바울을 더 열심히 달리게 했습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는 고백과 함께 어떤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할 수 있었습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을 기억하는 것이 더 열심히 달리게 하는 힘이 됐습니다.

    잊어야 할 것과 잊지 말아야 할 것을 구별하며 삽니다

    성숙한 신앙은 의지적인 선택이었습니다.

    잊어야 할 것을 의지적으로 잊는 것이었습니다.

    기억해야 할 것을 의지적으로 기억하는 것이었습니다.

    기억해야 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잊어야 할 과거의 상처와 죄를 잊을 때 가장 자유롭고 가장 힘 있는 삶이 됐습니다.

    오늘 잊어야 할 것과 잊지 말아야 할 것을 구별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합니다.

    지난날의 상처는 내려놓습니다.

    그 선택이 오늘 하루를 결정합니다.

    💭 오늘의 질문

    오늘 무엇을 기억하고 있습니까. 잊어야 할 것을 붙들고 있지는 않습니까. 기억해야 할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있지는 않습니까.

    성경 말씀 더 깊이 읽기 → 대한성서공회

  • [조용한 고백] 우리의 것이란 아무것도 없습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우리의 것이란 아무것도 없습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우리의 것이란 아무것도 없습니다라는 이 고백을 자신으로부터 된 것은 아무것도 없고 다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임을 깨달아가는 묵상을 지나 붙들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의 것이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소유는 물론 자녀 그리고 자기 자신마저도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과 경건한 삶까지도 우리에게서 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얻은 것처럼 소유하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의 힘으로 얻은 줄 생각할 때부터 문제가 생기고 연약함에 빠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물질이나 지식 권세 등 외적인 것뿐 아니라 우리의 구원 칭찬받을 만한 믿음 깊은 영성 진실한 존재 남보다 더 많은 수고와 헌신 그리고 사역의 많은 열매 등입니다.

    그것들을 내가 이룬 것처럼 생각할 때 교만이 시작됩니다.

    교만이 시작될 때 연약함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삶의 여러 정황을 통해서 자신은 무능하고 무익한 존재요 자신으로부터 된 것은 아무것도 없고 다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을 알게 하십니다.

    고통이 올 때 낮아집니다.

    실패할 때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병들 때 내 몸도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낮아짐이 회복의 시작이었습니다.

    바울은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생각하여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말합니다.

    내가 잘 서 있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이 가장 위험한 순간이었습니다.

    잘 서 있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인데 내 힘으로 서 있다고 생각할 때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선진들의 삶을 통해서 이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자신으로 말미암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큰 은혜나 능력 이김이나 축복을 주셨을 때 자신의 힘으로 한 것으로 여겨 자긍하는 것을 하나님이 두려워하십니다.

    사사기 7장 2절에서 하나님이 기드온에게 군사를 줄여주신 것도 그 이유였습니다.

    군사가 너무 많으면 이긴 후에 내 손이 나를 구원했다고 자긍할까봐였습니다.

    내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고통을 통해서입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을 만날 때 내 것이 없다는 것이 선명해집니다.

    그 느낌이 고통스럽지만 그 고통이 가장 중요한 것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우리의 것이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구원도 내 것이 아니었습니다.

    믿음도 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을 잊을 때 실패하게 됩니다.

    철저히 깨달을 때 회복이 됩니다.

    내 것이 없다는 것을 알 때 오히려 가장 안전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알 때 하나님이 지키신다는 것이 믿어졌습니다.

    내가 지켜야 할 것이 없으니 두렵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지키시는 것이니 안전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는 고백이 주는 자유였습니다.

    자랑은 없고 감사만 있는 삶이 가장 아름다운 삶이었습니다

    자신으로부터 된 것은 아무것도 없고 다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임을 알 때 감사가 넘칩니다.

    내가 이룬 것이 없으니 자랑할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루신 것이 있으니 감사할 것은 넘칩니다.

    자랑은 없고 감사만 있는 삶이 가장 아름다운 삶이었습니다.

    오늘 무엇을 내 것이라고 붙들고 있습니까.

    그것이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할 때 진정한 자유가 옵니다.

    우리의 것이란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 고백이 오늘 하루를 가장 가볍게 시작하는 방식이었습니다.

    🌿 오늘의 묵상 한 줄

    우리의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는 고백이 가장 자유롭고 가장 안전한 고백이었습니다.

  • [조용한 고백] 믿음은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믿음은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믿음은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라는 이 고백을 이해되지 않는 일을 만났을 때도 기대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아무런 대답이 없을 때조차도 신뢰하는 것이 믿음임을 깨달아가는 묵상을 지나 붙들었습니다.

    믿음은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냥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경우에도 신뢰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어떤 경우라는 말은 자신이 이해되지 않는 일을 만났을 때도 더 나아가 자신이 기대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자신의 말에 아무런 대답이 없을 때조차도 신뢰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런 존재가 되고 하나님을 그렇게 신뢰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렇게까지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언제 어떤 경우에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의롭고 선하시다는 것을 확실히 믿을 때 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의롭고 선하십니다.

    그 사실이 흔들리지 않을 때 어떤 상황에서도 신뢰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그렇게 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칠 때 그랬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이었습니다.

    기대와 전혀 다른 방향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다니엘이 사자굴 속에 들어갈 때도 그랬습니다.

    억울하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잃은 욥도 그랬습니다.

    아무런 대답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욥은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삼대 의인을 노아 다니엘 욥이라고 말씀합니다.

    이들은 자신의 처지가 어떻게 되든 하나님을 신뢰하므로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신뢰는 증명된 이후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증명되기 전에 하는 것이 신뢰였습니다.

    결말을 보지 않고 신뢰하는 것이 믿음이었습니다.

    욥도 고통 중에 하나님이 침묵하셨습니다.

    설명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욥은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보이지 않을 때도 신뢰하는 것이 어떤 경우에도 신뢰하는 믿음이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신뢰하는 믿음이 가장 어두운 순간에 빛났습니다

    신약에는 빌립보에서 매를 맞고 상처투성이인데도 찬양했던 바울이 그랬습니다.

    능욕과 채찍질을 당하면서도 이를 합당하게 여긴 베드로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삶이 너무도 존귀하고 영광스러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사용하시고 인정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바울이 빌립보 감옥에서 찬양했던 것도 그랬습니다.

    매를 맞고 상처투성이인 상태에서 찬양한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찬양했습니다.

    하나님이 의롭고 선하시다는 것이 그 상황에서도 믿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신뢰가 한밤중의 찬양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믿음과 신뢰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사람과의 관계로 흘러갑니다

    믿음과 신뢰는 하나님과의 관계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사람과의 관계도 신뢰하므로 관계가 깊어지고 더욱 친밀해집니다.

    어떤 사람을 신뢰한다는 말은 좋을 때뿐 아니라 좋지 않은 상황에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보았을 때도 실수하고 넘어질 때조차도 그를 신뢰하므로 기다리고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울 때 사람을 신뢰하는 법도 배우게 됩니다.

    신뢰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매일 새벽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그 훈련이었습니다.

    이해되지 않는 날도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신뢰의 훈련이었습니다.

    대답이 없는 것 같아도 기도를 드리는 것이 신뢰의 훈련이었습니다.

    그 훈련이 쌓이면서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자라났습니다.

    오늘 이해되지 않는 상황 앞에 있습니까.

    기대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대답이 없는 것 같습니까.

    그때가 바로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필요한 때입니다.

    하나님은 의롭고 선하십니다.

    그 사실이 오늘도 변하지 않습니다.

    💭 오늘의 질문

    지금 이해되지 않는 상황 앞에 있습니까. 그 자리에서도 하나님이 의롭고 선하시다는 것이 믿어집니까.

  • [조용한 고백] 내 인생을 진리에 걸 수 있을까요?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내 인생을 진리에 걸 수 있을까요?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내 인생을 진리에 걸 수 있을까요?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것에 인생을 겁니다.

    어떤 사람은 돈에,

    어떤 사람은 성공에,

    어떤 사람은 자신의 경험과 능력에 인생을 겁니다.

    저 역시 25년 동안 IT 기업을 경영하며 한때는 제 경험과 판단을 가장 큰 무기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 경험은 한계가 있었지만 하나님의 진리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사업이 잘될 때도 있었고, 모든 것이 무너질 것 같은 시간도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붙들어 준 것은 제 경영 노하우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정말 내 인생을 진리에 걸고 살아가고 있는가?’

    묵상 배경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요한복음 14:6)

    진리는 단순한 교훈이 아닙니다.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한복음 8:31~32)

    진리 안에 거한다는 것은 단순히 성경 지식을 많이 아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삶의 기준으로 삼고,

    말씀을 신뢰하며,

    말씀에 자신을 맡기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진리에 인생을 건다는 것

    우리는 중요한 결정을 할 때 누구의 말을 믿을지 선택합니다.

    세상의 기준을 따를 수도 있고,

    내 감정을 따를 수도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수도 있습니다.

    진리에 인생을 건다는 것은

    내 생각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신뢰하는 것입니다.

    내 계산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더 붙드는 것입니다.

    25년 동안 사업을 하며 여러 번 이런 선택의 순간이 있었습니다.

    계산으로는 손해처럼 보였지만 말씀을 따라 결정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반대로 말씀보다 제 경험을 앞세웠다가 후회한 일도 있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하나님은 늘 진리 위에 선 사람을 붙드셨습니다.

    진리는 우리를 억누르는 규칙이 아니라 우리를 살리는 생명이었습니다.

    진리는 오늘도 우리를 붙드십니다

    진리는 책 속에만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살아 계신 진리이십니다.

    그래서 말씀을 붙드는 것은 예수님을 붙드는 것이고,

    진리를 신뢰하는 것은 주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연약합니다.

    때로는 흔들리고,

    두려워하며,

    내 생각을 앞세우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도 말씀을 통해 우리를 부르십니다.

    “네 인생을 내게 맡겨 보지 않겠느냐.”

    25년 동안 사업을 돌아보면 가장 안전했던 길은 가장 쉬운 길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었던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저는 다시 결단합니다.

    제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에 제 인생을 걸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서는 은혜가 함께하시기를 기도합니다.

    📖 성경별곡 묵상 유튜브 채널

    매일 새벽 말씀 묵상을 영상으로도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말씀이 삶이 되는 하루를 함께 만들어 가길 소망합니다.

    ▶ 유튜브 채널: https://youtube.com/channel/UCg2DqdMTJ1ADcbm8LBfnVZg

  • [조용한 고백]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자신이 한 것은 아무것도 없고 다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임을 고백하는 묵상을 지나 붙들었습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은혜란 자신이 한 것은 아무것도 없고 다 하나님께서 하신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마땅히 영광을 받으실 분은 하나님이시기에 전 존재로 그분께 영광을 돌립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믿음이 성숙하고 변화된 것도 은혜입니다.

    남보다 더 진리를 깊이 깨닫는 것도 남보다 더 수고하고 희생하는 것도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자신을 통해 많은 열매가 나타나는 것도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샌가 은혜는 사라지고 자신의 공로가 들어가게 됩니다.

    우리가 말로는 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지만 자신의 의가 드러나고 은혜를 자신이 누리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때부터 하나님의 은혜의 손은 거두어지게 됩니다.

    은혜의 손이 거두어지는 순간 나약한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지금까지 은혜로 덧입고 살았던 거룩한 모습은 사라지고 본성적인 모습이 드러납니다.

    하나님 없는 자신의 존재가 얼마나 의미가 없고 보잘것없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더러운 옷 같다고 말했습니다.

    다윗은 주께서 내게 잠잠하시면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을까 하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이것이 나약한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나약함을 인정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다시 흘러옵니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인정할 때 하나님이 채우기 시작하십니다.

    비어있는 그릇에 물이 채워지듯 자신을 비울 때 하나님의 은혜가 채워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도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 했습니다.

    은혜를 은혜로 받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당연한 것으로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당연함이 사라질 때 은혜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내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지를 알 때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중단되거나 변경되지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의 어떤 조건이나 행위로 인하여 베풀어지거나 중단되거나 변경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잘해서 은혜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못해서 은혜가 거두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흘러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랑이 변하지 않기에 은혜도 변하지 않습니다.

    내가 실수해도 하나님의 은혜는 여전합니다.

    내가 넘어져도 하나님의 은혜는 기다립니다.

    그것이 은혜의 본질이었습니다.

    값없이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은혜 앞에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의 행위로는 주 앞에 설 수 없기에 늘 하나님의 은혜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이 은혜입니다.

    숨을 쉬는 것이 은혜입니다.

    말씀을 읽을 수 있는 것이 은혜입니다.

    기도할 수 있는 것이 은혜입니다.

    이 모든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한 것은 아무것도 없고 다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라는 그 고백이 가장 자유롭고 감사한 고백이었습니다.

    내가 다 해야 한다는 무게가 사라졌습니다.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이 믿어질 때 가장 평안했습니다.

    오늘도 그 은혜를 묵상합니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고백합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그 고백이 오늘 하루를 가장 풍성하게 시작하는 방식이었습니다.

    🌿 오늘의 묵상 한 줄

    자신이 한 것은 아무것도 없고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고백이 가장 자유로운 고백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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