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조용한 고백]

화려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약하고 부족한 자리에서 만나는 은혜,
그 솔직한 고백들을 담았습니다.

  • [조용한 고백] 우리 마음의 성전에는 두 기둥이 있습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우리 마음의 성전에는 두 기둥이 있습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우리 마음의 성전에는 두 기둥이 있습니다라는 이 고백을 주님 안에 능력이 있고 주님이 세우실 것이라는 말씀과 믿음이 우리 마음의 두 기둥임을 깨달아가는 묵상을 지나 붙들었습니다.

    솔로몬의 성전에는 전면에 큰 두 기둥이 서 있었습니다.

    성전에 들어서면 눈앞에 이 두 기둥이 웅장하게 서 있고 그 기둥을 반드시 통과해야 성전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 두 기둥의 이름은 보아스와 야긴이었습니다.

    보아스란 이름의 의미는 그가 세우실 것이다이며 야긴이란 이름의 의미는 그분 안에 능력이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성전에 나오는 자들로 예배하기 전에 하나님이 누구이신가를 기둥을 통해서 생각나게 하려 하셨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더 원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이신가를 알 때 우리에게 믿음이 생기고 그 믿음 안에서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을 받기 때문이었습니다.

    광야의 성막에도 두 기둥이 있었습니다.

    그 기둥이 바로 구름 기둥과 불기둥이었습니다.

    이 기둥은 하나님의 임재의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 친히 사시며 그들을 능력으로 보호하고 앞길을 인도하셨습니다.

    이 성막과 성전의 실체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주님만이 우리에게 능력이 되시고 우리를 세우실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에도 두 기둥이 있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기둥은 말씀과 기도였습니다.

    보이는 두 기둥은 베드로와 야고보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마음의 성전에는 두 기둥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 두 기둥이 바로 주님 안에 능력이 있고 주님이 세우실 것이다라는 말씀과 믿음이었습니다.

    주님은 우리 마음에 이러한 성전의 기둥이 있는 자를 교회의 기둥으로 쓰십니다.

    두 기둥이 굳건한 사람의 삶은 달랐습니다.

    주님 안에 능력이 있다는 것이 믿어지는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세우실 것이다라는 것이 믿어지는 사람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그랬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고백했습니다.

    그 고백이 그의 마음의 두 기둥이었습니다.

    다윗이 그랬습니다.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고 선포했습니다.

    그 선포가 그의 마음의 두 기둥이었습니다.

    우리 마음의 성전에는 두 기둥이 있습니다

    성전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두 기둥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매일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이 두 기둥을 통과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주님 안에 능력이 있다는 것을 먼저 고백합니다.

    주님이 세우실 것이라는 것을 먼저 고백합니다.

    그 고백으로 하루를 시작할 때 달라집니다.

    두려움 대신 담대함으로 시작합니다.

    포기 대신 기대로 시작합니다.

    오늘 두려운 일이 있습니까.

    주님 안에 능력이 있습니다.

    오늘 포기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까.

    주님이 세우실 것입니다.

    우리 마음의 성전에 이 두 기둥이 굳건히 서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 기둥이 우리를 세우고 우리를 통해 세상을 세웁니다.

    오늘도 그 두 기둥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 오늘의 질문

    오늘 내 마음의 두 기둥은 굳건히 서 있습니까. 주님 안에 능력이 있고 주님이 세우실 것이라는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있습니까.


    성경 말씀 더 깊이 읽기 → 대한성서공회

  • [조용한 고백] 우리는 이미 빛입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우리는 이미 빛입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우리는 이미 빛입니다라는 이 고백을 빛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빛임을 알고 확신하는 것이 빛의 삶의 시작임을 깨달아가는 묵상을 지나 붙들었습니다.

    주님은 어두움을 비추는 빛입니다.

    주님 안에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십니다.

    주님의 빛 안에는 생명이 있고 이 생명이 말씀이요 주님이십니다.

    그리고 그 빛 안에는 사랑과 의로움과 진실함과 모든 착함의 열매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두움이었습니다.

    어두움 가운데 살았습니다.

    어두움은 곧 거짓이요 미움이요 무질서와 혼돈과 공허이며 절망과 고통이요 죄요 죽음이었습니다.

    이 어두움이 우리의 눈을 멀게 하고 사망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 빛으로 오셔서 각 사람에게 빛을 비추어 주셨습니다.

    진리를 알게 하고 주님을 알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빛의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를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두움이었던 우리가 빛이 될 수 있음은 빛이신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미 빛이 되었음에도 우리의 삶은 아직도 어두움의 모습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빛이면서도 어두움의 삶을 사는 것은 어쩌면 빛이면서도 빛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이제는 우리가 빛임을 알아야 합니다.

    빛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 빛임을 알고 확신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우리는 이미 빛입니다.

    그 사실이 믿어질 때 빛의 삶이 시작됩니다.

    빛은 어두움과 함께 있을 수 없습니다.

    빛이 들어오면 어두움이 물러갑니다.

    우리가 있는 곳에서 거짓이 물러가고 진실이 드러나야 합니다.

    우리가 있는 곳에서 미움이 물러가고 사랑이 드러나야 합니다.

    그것이 빛의 삶이었습니다.

    때로 빛이면서도 어두움처럼 살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빛입니다.

    빛이신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십니다.

    그 주님을 의지할 때 빛의 삶이 다시 시작됩니다.

    빛은 나눠줄수록 줄어들지 않습니다.

    우리의 빛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웃에게 빛을 나눠줄수록 우리의 빛이 더 밝아집니다.

    빛과 어두움의 차이는 존재의 차이가 아닙니다.

    아는 것의 차이였습니다.

    우리는 이미 빛이라는 진리를 알 때 빛으로 살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빛이라는 사실을 믿을 때 달라집니다.

    아침에 눈을 뜰 때 나는 빛이다라고 고백해 봅니다.

    오늘 만나는 사람들에게 빛을 나눠줄 수 있다는 기대로 하루를 시작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미 빛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어두움의 세력이 물러가고 빛의 삶을 살게 됩니다.

    빛 가운데 행하므로 형제를 사랑하며 살게 됩니다.

    더 진실하고 더 의롭고 더 착한 존재와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언제나 주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을 비춥니다.

    주의 말씀이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 되셔서 어두움에 빠지지 않고 빛 가운데 행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이미 빛이라는 그 확신으로 오늘도 세상의 빛으로 만방의 빛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 오늘의 묵상 한 줄

    빛이 되려 애쓰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이미 빛이라는 것을 알 때 빛의 삶이 시작됩니다.

    성경 말씀 더 깊이 읽기 → 대한성서공회

  • [조용한 고백] 동행이 동역입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동행이 동역입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동행이 동역입니다라는 이 고백을 함께 존재하는 것 하나만으로도 두려움이 사라지고 담대함을 얻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묵상을 지나 붙들었습니다.

    동행이 동역입니다.

    동행 없는 동역은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와 동행하므로 동역하시기 위해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동행이 동역인 이유는 함께 존재하시고 동행하신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두려움이 사라지고 담대함을 얻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하심같이 우리와 동행하시므로 우리와 동역하십니다.

    자신은 감추시고 우리와 동행하시므로 우리와 함께 우리를 통해서 일하시기를 너무도 좋아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지만 주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음같이 주님도 우리 없이는 아무것도 하실 수 없습니다.

    동행이 동역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님이 우리와 동행함으로 친밀한 교제를 통해서 힘을 얻게 하시고 위험할 때는 지켜주시고 지쳐있을 때는 손을 잡아주시려 우리와 동행하십니다.

    그 동행이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을 보내실 때에 혼자가 아닌 둘씩 짝을 지어서 보내셨습니다.

    형제와 동행이 주님과 동행이었습니다.

    형제가 같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든든하고 힘을 얻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전도 여정이 그토록 험하고 힘이 들었지만 끝까지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도 바울과 동행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바울 곁에 기쁨으로 그와 동행하는 사람들을 붙여 주셔서 힘이 되게 하셨습니다.

    비록 바울과 동행했던 바나바 실라 누가의 행적이 거의 기록되지 않았을지라도 그들은 무대 뒤에 선 위대한 바울의 동역자들이었습니다.

    그들 없는 바울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동행이 동역이었기 때문입니다.

    동행은 말이 아닙니다.

    존재입니다.

    위로의 말을 백 번 하는 것보다 함께 있어주는 것이 더 큰 위로였습니다.

    주님도 말로 동역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동행하심으로 동역하셨습니다.

    임마누엘 하나님 우리와 함께 계신 하나님이라는 이름이 그것을 말해주었습니다.

    동행에는 희생이 따릅니다.

    바나바 실라 누가가 바울과 동행하기 위해 자신의 계획을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곳이 아닌 바울이 가는 곳을 함께 가야 했습니다.

    동행은 자신을 내려놓는 것이었습니다.

    그 내려놓음이 동역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동행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기적입니다.

    혼자서는 갈 수 없는 길을 함께이기에 갈 수 있게 됩니다.

    주님도 혼자 십자가 지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구레네 시몬이 잠깐이지만 십자가를 함께 졌습니다.

    요한이 십자가 아래 서 있었습니다.

    그 동행들이 주님의 길을 함께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오늘 누군가의 십자가 길을 함께 걸어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동행이고 그것이 동역이었습니다.

    동행이 동역입니다

    주님이 우리와 동행하신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로인지 모릅니다.

    세상 끝 날까지 항상 함께 있으리라는 그 약속이 오늘도 유효합니다.

    힘들고 지칠 때 주님이 동행하고 계신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담대함의 시작이었습니다.

    오늘 누가 내 곁에서 동행하고 있습니까.

    그 사람의 존재가 얼마나 귀한지 알아야 합니다.

    내가 누구의 동행이 되고 있습니까.

    기록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바나바 실라 누가처럼 함께 걸어주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그 동행이 동역이 됩니다.

    주님이 우리와 동행하시듯 우리도 누군가의 동행이 되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오늘의 기도

    주님 오늘도 우리와 동행하여 주소서. 힘들 때 손을 잡아주시고 지칠 때 함께 걸어주소서. 그리고 우리도 누군가의 동행이 되게 하소서. 아멘.

    성경 말씀 더 깊이 읽기 → 대한성서공회

  • [조용한 고백] 주님의 인격과 삶을 닮은 교회가 아름다운 교회입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주님의 인격과 삶을 닮은 교회가 아름다운 교회입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주님의 인격과 삶을 닮은 교회가 아름다운 교회입니다라는 이 고백을 성숙한 공동체는 자기보다 이웃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나타난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묵상을 지나 붙들었습니다.

    교회가 얼마나 아름답고 성숙한 교회인가를 보려면 얼마나 주님의 인격과 삶을 닮았는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얼마나 아름답고 성숙한 신앙을 가졌는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삶을 얼마나 닮았는가가 기준이었습니다.

    성숙하고 아름다운 공동체는 수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자기보다 이웃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나타납니다.

    주님의 삶은 자신은 어떻게 되든지 하나님만 영광되고 범죄한 우리를 구원할 수만 있다면 어떠한 고통도 달게 받으셨습니다.

    자신을 기꺼이 내어 놓으셨습니다.

    이 삶이 예수님의 삶이었습니다.

    이 마음이 바울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토록 모진 고통을 받으면서도 주님을 위하고 영혼을 살리는 일이라면 어떤 것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바울 곁에 있는 사람들도 그 험한 여정을 함께 하였습니다.

    직접 같이 하지 못한 때에는 간절한 기도로 동역하거나 어려움을 당하면 같은 마음으로 안타까워하며 자신이 그 짐을 대신 지기를 원했습니다.

    자신의 쓸 것을 아끼면서 물질로 동역하였습니다.

    이러한 삶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자기를 다 버리지 아니하거나 예수님의 마음을 갖지 아니하고는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서 그런 모습을 보게 될 때가 있습니다.

    자신이 비록 함께 가지 못하지만 마치 자신이 가는 것처럼 어려운 여정을 염려하며 기도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자신이 비록 함께 가지 못하지만 지체들을 섬기기 위하여 자신이 가는 만큼의 비용을 감당하는 형제들을 보게 됩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주님의 인격과 삶을 닮은 공동체의 모습이었습니다.

    지체들의 이토록 아름다운 마음과 성숙함을 보고 기뻐하실 주님을 생각하면 감동받습니다.

    아름다운 공동체는 기도로 연결됩니다.

    함께 갈 수 없어도 기도로 함께 갑니다.

    그 기도가 공동체를 하나로 묶습니다.

    아름다운 공동체는 물질로 연결됩니다.

    자신의 쓸 것을 아끼면서 동역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나눔이 공동체를 아름답게 만들었습니다.

    아름다운 공동체는 짐을 함께 집니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는 말씀대로였습니다.

    이웃의 짐을 함께 지는 것이 그리스도의 법이었습니다.

    주님의 인격과 삶을 닮은 교회가 아름다운 교회입니다

    아름다운 교회는 건물이 아름다운 교회가 아닙니다.

    사람이 많은 교회가 아닙니다.

    주님의 인격과 삶을 닮은 사람들이 모인 교회가 아름다운 교회입니다.

    주님을 닮아가는 것은 혼자 할 수 없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함께 닮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서로를 통해 주님의 모습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이웃의 섬김을 통해 주님의 섬김을 보게 됩니다.

    이웃의 기도를 통해 주님의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주님의 인격과 삶을 닮은 공동체 안에서 서로가 서로를 더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나 한 사람이 주님의 인격과 삶을 닮아가는 것이 아름다운 교회를 만드는 시작이었습니다.

    오늘도 이웃을 먼저 생각하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오늘의 질문

    오늘 나는 얼마나 주님의 인격과 삶을 닮아가고 있습니까. 이웃의 짐을 함께 지려는 마음이 있습니까.

    성경 말씀 더 깊이 읽기 → 대한성서공회

  • [조용한 고백] 아름다운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을 만듭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아름다운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을 만듭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아름다운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을 만듭니다라는 이 고백을 중심이 아름다운 사람을 통해 세상과 가정과 교회가 아름다워진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묵상을 지나 붙들었습니다.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이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마음이 아름답다는 말은 중심이 아름답다는 말입니다.

    중심이 아름답기에 생각이 아름답고 말이 아름답고 관계가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관심은 언제나 우리의 마음에 있으며 중심이 아름다운 사람과 함께 하시며 사랑하며 사용하시고 축복하십니다.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이 많으면 세상이 아름다워집니다.

    가정이 아름다워지고 교회가 아름다워집니다.

    아름다운 사람을 통해서 또 다른 사람이 아름답게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중심이 아름다운 다윗과 함께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인데 어떻게 아름다운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아름다운 마음은 우리의 수양이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마음 예수님이 있는 마음이 아름다운 마음입니다.

    진리로 가득 찬 마음이 아름다운 마음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다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은 그리스도가 우리 마음 안에 실제로 계시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믿을 때 주님이 우리의 존재 안에 계심을 믿고 늘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날마다 부인하고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성경에 나타내신 그리스도의 마음을 늘 품어야 합니다.

    주님의 성품이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할 때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충만해집니다.

    아름다운 마음이 아름다운 말을 만듭니다.

    같은 상황에서도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은 아름다운 말을 합니다.

    상처받은 사람에게 위로의 말을 합니다.

    낙심한 사람에게 격려의 말을 합니다.

    그 말이 또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름답게 만듭니다.

    아름다운 마음이 아름다운 삶을 만듭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이 충만할 때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의 열매가 맺힙니다.

    아름다운 마음은 전염됩니다.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한 사람이 주변을 아름답게 만듭니다.

    가정에서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한 사람이 가정을 아름답게 만듭니다.

    그 아름다움이 퍼져나가 세상이 아름다워집니다.

    아름다운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을 만듭니다

    그래서 이웃이 우리를 보면 그리스도를 보는 것 같고 우리의 말을 들으면 주님의 말을 듣는 것 같고 우리를 만나는 사람이 그리스도를 만나게 됩니다.

    주님은 이것을 너무도 원하십니다.

    이것을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름다운 마음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훈련이 쌓여 만들어집니다.

    자신을 날마다 부인하는 훈련이 쌓여 만들어집니다.

    그 훈련이 쌓이면서 그리스도의 마음이 채워집니다.

    주님이 우리의 존재 안에서 자신의 삶을 사시도록 내어드리는 것이 아름다운 마음의 시작이었습니다.

    내가 주님 안에서 살 때 아름다운 마음이 됩니다.

    오늘도 말씀을 묵상합니다.

    주님의 성품을 묵상합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기를 구합니다.

    아름다운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을 만들고 아름다운 사람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듭니다.

    오늘도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오늘의 묵상 한 줄

    아름다운 마음은 노력이 아닌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채워질 때 만들어집니다.

    성경 말씀 더 깊이 읽기 → 대한성서공회

  • [조용한 고백]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할 때 풍성한 열매가 맺힙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할 때 풍성한 열매가 맺힙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할 때 풍성한 열매가 맺힙니다라는 이 고백을 모든 것을 후히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는 것이 가장 기쁜 열매임을 깨달아가는 묵상을 지나 붙들었습니다.

    가을을 떠올리면 왠지 우리의 마음이 풍성해지고 넉넉해집니다.

    아름다운 열매가 있기 때문입니다.

    농부는 그 열매를 바라기에 길이 참고 땀을 흘리는 수고를 기쁨으로 감당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혼이 풍성해지고 존재가 넉넉해질 때가 있습니다.

    모든 것을 후히 주시고 풍성케 하시는 하나님을 깊이 묵상하면 뜨거운 감사로 우리 마음이 풍성해집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늘 떠올리며 감사하는 사람이 존재의 넉넉함을 누리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기뻐하시며 더 풍성한 은혜를 주십니다.

    그래서 다윗은 고난 중에서도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광대하시다 하리니 이것이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할 때 그 감사가 가장 기쁜 제물이 됐습니다.

    그러나 정작 열매가 결실하도록 햇빛과 때를 따라 비를 주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며 사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모든 아름다운 열매와 풍성한 것을 넘치도록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살기 쉽습니다.

    하나님께서도 농부로서 열매를 바라고 오래 참고 기다리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은혜와 사랑을 받았음에도 감사가 없고 열매가 없을 때 하나님은 탄식하십니다.

    이사야를 통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힘은 어찜인고라고 탄식하였습니다.

    주님은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열매가 바로 감사입니다.

    그 열매가 바로 자신을 주님께 온전히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 안에 사실 때 절로 열매가 맺힙니다.

    가을 들판의 황금빛 들녘을 바라볼 때 그 풍성함이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님을 압니다.

    우리의 영적 열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는 매일의 수고가 쌓여 풍성한 열매가 맺히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이 고난 중에도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기억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고난이 크더라도 하나님의 은혜가 더 크다는 것을 기억했습니다.

    그 기억이 감사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빌립보교회가 극한 가난 속에서도 바울을 위해 선교헌금을 기쁨으로 드렸던 것도 그랬습니다.

    자신들이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기억이 감사가 됐습니다.

    그 감사가 나눔이 됐습니다.

    그 나눔이 열매가 됐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할 때 풍성한 열매가 맺힙니다

    감사는 그냥 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할 때 감사가 옵니다.

    기억하지 않으면 잊어버립니다.

    잊어버리면 감사가 사라집니다.

    감사가 사라지면 열매가 사라집니다.

    감사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힘들 때 감사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럴 때 의지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은혜였습니다.

    지금 이 순간 숨을 쉬는 것이 은혜였습니다.

    그 은혜를 기억할 때 감사가 나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할 때 풍성한 열매가 맺힌다는 이 약속을 붙들고 오늘도 감사하기로 결단합니다.

    오늘도 감사하는 열매를 드립니다

    오늘 아침에 눈을 뜬 것이 감사입니다.

    숨을 쉬는 것이 감사입니다.

    말씀을 읽을 수 있는 것이 감사입니다.

    기도할 수 있는 것이 감사입니다.

    그 감사들이 쌓일 때 풍성한 열매가 맺힙니다.

    하나님이 농부처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 기다림에 감사의 열매로 응답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 오늘의 기도

    주님 오늘도 주신 모든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게 하소서. 감사의 열매가 가장 기쁜 제물임을 알게 하소서. 아멘.

    성경 말씀 더 깊이 읽기 → 대한성서공회

  • [조용한 고백] 잘 비우는 사람이 잘 채우는 사람입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잘 비우는 사람이 잘 채우는 사람입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잘 비우는 사람이 잘 채우는 사람입니다라는 이 고백을 하나님은 빈 공간을 채우시는 분이시기에 비울 때 채움을 경험한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묵상을 지나 붙들었습니다.

    모든 것에 풍성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쓸 것을 채우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채우지 않고는 직성이 풀리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풍성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채우지 못하는 삶을 사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채울 공간이나 그릇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실 때 먼저 3일 동안 궁창과 바다와 땅 즉 공간을 먼저 만드셨습니다.

    공간이 먼저였습니다.

    비움이 먼저였습니다.

    비워진 공간에 채우시는 것이 하나님의 방식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렙다 과부의 빈 그릇을 채우셨습니다.

    엘리사 시대에 빚진 선지자의 생도의 아내가 빌린 빈 그릇을 기름으로 가득 채우셨습니다.

    그릇이 빈 만큼 채워졌습니다.

    빈 그릇이 있는 곳에 채우심이 임했습니다.

    빌립보교회가 극한 가난 속에서도 바울을 위하여 선교헌금을 기쁨으로 했을 때 하나님이 모든 쓸 것을 채워주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난 속에서 나눴습니다.

    비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채워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잘 비우는 사람이 잘 채우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채워지지 않는 이유도 우리 마음이 자아로 욕심으로 세상 것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비우지 않는 한 영혼의 목마름은 계속될 것입니다.

    비운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자아를 비우는 것은 내가 주인이라는 생각을 내려놓는 것이었습니다.

    욕심을 비우는 것은 더 많이 가지려는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었습니다.

    세상 것을 비우는 것은 하나님보다 세상이 주는 것을 더 사랑하는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었습니다.

    그 비움이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비울 때마다 하나님이 채우셨습니다.

    비울 때 더 좋은 것으로 채워지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비우는 것이 두렵지 않게 됐습니다.

    기도도 비우는 시간이었습니다.

    매일 새벽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루를 맡기는 것이 내 것을 비우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하루를 내 계획대로 살겠다는 마음을 비우고 하나님의 계획대로 살겠다는 마음을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나눌 때도 채워졌습니다.

    가진 것을 나눌 때 더 채워주셨습니다.

    비우는 방식이 하나님이 채우시는 통로가 됐습니다.

    잘 비우는 사람이 잘 채우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좋은 것으로 채우신다고 하셨습니다.

    사모하는 영혼이 가난한 마음이었습니다.

    가난한 마음이 비어있는 그릇이었습니다.

    그 비어있는 마음에 하나님이 채우십니다.

    네 보배를 진토에 버리고 오빌의 금을 강가의 돌에 버리라는 말씀이 비우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세상의 보배를 버릴 때 하나님의 보배가 채워집니다.

    하나님의 본성은 비워진 공간에 늘 채우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본성을 믿을 때 비우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잘 비우는 사람이 잘 채우는 사람이라는 이 원리를 오늘도 붙들고 살아갑니다.

    오늘도 비우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오늘 내 마음이 무엇으로 가득 차 있습니까.

    자아가 가득합니까. 욕심이 가득합니까. 세상 것이 가득합니까.

    그것을 비워야 합니다.

    비울 때 하나님이 채우십니다.

    오늘도 비우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그 비움에 하나님이 채우실 것을 기대합니다.

    풍성하신 하나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빈 그릇을 들고 나아갑니다.

    채우시는 하나님을 만날 것입니다.

    💭 오늘의 질문

    지금 내 마음이 무엇으로 가득 차 있습니까. 하나님이 채우실 수 있도록 무엇을 비워야 합니까.


    성경 말씀 더 깊이 읽기 → 대한성서공회

  • [조용한 고백] 문제의 현상이 아니라 뿌리를 보아야 합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문제의 현상이 아니라 뿌리를 보아야 합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문제의 현상이 아니라 뿌리를 보아야 합니다라는 이 고백을 우리가 당하는 모든 일에는 꼭 그럴만한 이유가 있고 현상이 아닌 뿌리를 발견할 때 해결이 된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묵상을 지나 붙들었습니다.

    우리가 당하는 모든 일에는 꼭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니 누구를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모든 일의 중심에는 내가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무슨 일이 있을 때는 일어난 현상만을 보아서는 절대 안 됩니다.

    그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원인 즉 훨씬 먼저 있었던 뿌리를 발견해야 합니다.

    그러면 일어난 현상은 쉽게 해결이 됩니다.

    그 예가 바로 다윗이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메어 오려 할 때였습니다.

    소들이 뛰므로 궤가 흔들려 떨어지려 할 때 웃사가 궤를 붙잡으려다 죽는 일이 생겼습니다.

    다윗은 현상만 보고 마음이 상하여 궤를 옮겨오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되어진 현상 앞에서 문제의 원인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오벧에돔의 집에 복을 주시는 것을 보면서 다윗은 모든 문제의 원인이 다 자기에게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소가 뛸 수밖에 없고 웃사가 죽을 수밖에 없었던 분명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궤를 레위지파가 어깨에 메야 하는데 새 수레에 싣고 온 것이었습니다.

    현상이 아니라 뿌리를 보았을 때 원인이 보였습니다.

    더 깊은 뿌리도 있었습니다.

    사람한테 보이고자 한 교만한 마음이 있었기에 궤를 메야 하는 그 말씀을 기억하지 못해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교만이 말씀을 잊게 했습니다.

    말씀을 잊으니 잘못된 방식으로 궤를 옮겼습니다.

    그 결과가 웃사의 죽음이었습니다.

    현상만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뿌리를 보니 이해가 됐습니다.

    다윗은 곧 원인을 깨닫고 하나님의 궤를 다시 메어왔습니다.

    그리고 궤 앞에서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며 기뻐했습니다.

    현상만 보고 포기했던 다윗이 뿌리를 보고 나서 달라졌습니다.

    뿌리를 발견하자 춤출 수 있게 됐습니다.

    우리가 원망하고 불평할 때를 돌아보면 항상 현상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뿌리를 보기 시작했을 때 달라졌습니다.

    이 일이 일어난 뿌리가 무엇인가를 물었습니다.

    그 모든 일의 중심에 내가 들어가 있다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 순간 원망이 멈췄습니다.

    회개가 시작됐습니다.

    그 회개가 해결의 시작이었습니다.

    뿌리를 발견하는 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오벧에돔의 집에 복이 임하는 것을 보기까지 3개월이 걸렸습니다.

    때로 뿌리를 보는 데 시간이 필요합니다.

    침묵하고 기다리며 하나님이 뿌리를 보여주시기를 기다리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어떤 문제를 만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현상 앞에서 침묵하는 것이었습니다.

    원망하기 전에 침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모든 일의 중심에 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인정이 뿌리를 보게 하는 시작이었습니다.

    문제의 현상이 아니라 뿌리를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문제를 만날 때 당면한 현상만을 보아서는 안 됩니다.

    더 깊은 뿌리를 보아야 해결이 됩니다.

    침묵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뿌리를 보는 방식이었습니다.

    일어난 현상 앞에서 먼저 자신을 살피는 것이었습니다.

    그 인정이 쉽지 않습니다.

    현상을 보면 내 잘못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데 뿌리를 보면 내가 있습니다.

    뿌리를 발견하고 다윗처럼 돌이킬 때 해결이 됩니다.

    뿌리를 볼 때 해결이 오고 춤이 옵니다.

    오늘 문제 앞에서 현상이 아니라 뿌리를 보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오늘의 묵상 한 줄

    현상 앞에서 원망하는 대신 뿌리를 발견했을 때 다윗처럼 춤을 출 수 있게 됐습니다.


    성경 말씀 더 깊이 읽기 → 대한성서공회

  • [조용한 고백]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없이는 아무도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없이는 아무도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없이는 아무도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라는 이 고백을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겸손히 엎드릴 때 긍휼이 흘러내린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묵상을 지나 붙들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없이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

    주의 긍휼은 자신은 무익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진심으로 고백하고 겸손히 하나님께 엎드리는 자에게 흘러내립니다.

    아버지를 멀리 떠나 방탕하다 돼지와 함께 살다가 스스로 돌이켜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는 탕자에게 아버지의 크신 긍휼이 임했습니다.

    자신이 아들의 자격이 없다고 고백하는 그 자리에서 긍휼이 임했습니다.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엎드린 세리에게 하나님의 긍휼이 강같이 임했습니다.

    바리새인처럼 자신의 의를 자랑하는 자가 아니라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자에게 긍휼이 임했습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라고 애원한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는 주님의 긍휼이 임했습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엎드릴 때 긍휼이 임하는 것이었습니다.

    엘리야 앞에 꿇어 엎드려 하나님의 사람이여 원컨대 나의 생명과 당신의 종인 이 오십 인의 생명을 당신은 귀히 보소서 라고 간절히 간구하는 세 번째 오십 부장에게 하나님의 긍휼이 임했습니다.

    처음 두 오십 부장은 명령하듯 왔습니다.

    그런데 세 번째 오십 부장은 겸손히 무릎을 꿇었습니다.

    겸손히 엎드리는 자에게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임하는 것이었습니다.

    인구조사로 인하여 온역으로 7만 명이 죽을 때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비 집을 치시고 주의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지 마옵소서 라고 엎드린 다윗에게 주의 긍휼하심이 임했습니다.

    자신을 내어주면서 백성을 위해 구한 그 겸손한 기도에 긍휼이 임했습니다.

    긍휼은 자격이 없는 자에게 베풀어지는 것이었습니다.

    탕자가 아들의 자격을 내려놓았을 때 아버지의 긍휼이 임했습니다.

    세리가 자신의 의를 내려놓았을 때 하나님의 긍휼이 임했습니다.

    강도가 자신의 죄를 인정했을 때 주님의 긍휼이 임했습니다.

    모두 자격 없음을 고백하는 자리에서 긍휼이 임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없이는 아무도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

    멸망하는 나라를 바라보며 절망과 고통 가운데서 예레미야는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의 긍휼을 믿고 소망을 가졌습니다.

    예레미야의 기대대로 하나님은 진노 중에도 이스라엘에 긍휼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절망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믿고 소망을 가지는 것이 그 긍휼을 경험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야 합니다.

    담대히 나아가는 것이 교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믿기 때문에 나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긍휼을 경험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긍휼을 베풉니다

    긍휼을 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게 됩니다.

    탕자가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달려나가 안아준 것처럼 하나님의 긍휼을 경험한 사람은 돌아오는 사람을 달려가 안을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우리를 통해 흘러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필요합니까.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겸손히 엎드리십시오.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지 못하더라도 괜찮습니다.

    가슴을 치며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라고 고백하십시오.

    그 자리에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임합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무궁하다는 것이 오늘도 소망입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없이는 아무도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 긍휼이 오늘도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 오늘의 기도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저는 죄인이로소이다. 주의 긍휼하심이 없이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오늘도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갑니다. 아멘.

    성경 말씀 더 깊이 읽기 → 대한성서공회

  • [조용한 고백] 잊어야 할 것과 잊지 말아야 할 것을 구별하며 삽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조용한 고백] 잊어야 할 것과 잊지 말아야 할 것을 구별하며 삽니다 : 25년 차 IT CEO의 경영 묵상

    잊어야 할 것 잊지 말아야 할 것을 구별하며 사는 것이 성숙한 신앙입니다.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잊을 것인지를 의지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믿음의 성숙임을 깨달아가는 묵상을 지나 붙들었습니다.

    성숙한 사람 영성이 깊은 사람은 잊어야 할 것과 잊지 말아야 할 것을 확실하게 구별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억해야 할 것을 잊어버리고 잊어버려야 할 것은 기억하며 살아갑니다.

    정말 신앙의 영웅들은 기억해야 할 일은 의지적으로 늘 기억하며 살았고 잊어야 할 것은 의지적으로 기억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잊어버려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첫째는 과거에 추구하며 살았던 세상적이고 정욕적인 것들입니다.

    이것을 잊지 못하면 결국 실족하거나 죄에 빠지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애굽에서 먹었던 것들을 잊지 못하고 생각했기에 하나님을 원망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더 좋은 것을 주셨는데 과거의 작은 것을 잊지 못해 현재를 망친 것이었습니다.

    둘째는 과거의 아픔과 상처들입니다.

    이것들을 계속 생각하게 되면 분노와 원망이 자신의 존재 깊이 자리하게 되어 결국 스스로 파멸에 이르게 됩니다.

    그런데 믿음의 사람 요셉은 하나님이 나로 나의 모든 고난을 잊어버리게 하셨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요셉에게 과거의 아픔을 잊을 수 있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롯의 아내가 소돔을 뒤돌아봤습니다.

    잊어야 할 것을 잊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가 소금 기둥이 됐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애굽을 그리워했습니다.

    잊어야 할 것을 잊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40년을 광야에서 보냈습니다.

    잊어야 할 것 잊지 말아야 할 것을 구별하는 삶

    그러나 잊어서는 결코 안 되며 늘 기억하며 살아야 할 일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또 하나는 지난날 죄 가운데 무익하고 죄인중의 괴수로 살았던 자신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늘 은혜에 감사할 수 있고 그 일을 기억할 때마다 겸손히 주님 위해 살 수 있습니다.

    바울이 그 좋은 예였습니다.

    바울은 지난날 교회를 핍박하던 자신을 기억했습니다.

    그 기억이 바울을 더 열심히 달리게 했습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는 고백과 함께 어떤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할 수 있었습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을 기억하는 것이 더 열심히 달리게 하는 힘이 됐습니다.

    잊어야 할 것과 잊지 말아야 할 것을 구별하며 삽니다

    성숙한 신앙은 의지적인 선택이었습니다.

    잊어야 할 것을 의지적으로 잊는 것이었습니다.

    기억해야 할 것을 의지적으로 기억하는 것이었습니다.

    기억해야 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잊어야 할 과거의 상처와 죄를 잊을 때 가장 자유롭고 가장 힘 있는 삶이 됐습니다.

    오늘 잊어야 할 것과 잊지 말아야 할 것을 구별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합니다.

    지난날의 상처는 내려놓습니다.

    그 선택이 오늘 하루를 결정합니다.

    💭 오늘의 질문

    오늘 무엇을 기억하고 있습니까. 잊어야 할 것을 붙들고 있지는 않습니까. 기억해야 할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있지는 않습니까.

    성경 말씀 더 깊이 읽기 → 대한성서공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