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시편 139편 1절 2절)
주님이 모든 것을 아신다는 것을 알 때 가장 안심할 수 있었다
주께서 나를 아시나이다는 이 말씀을 25년 IT CEO로 살며 위기마다 주님이 먼저 알고 계셨다는 것을 경험하면서 붙들었습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닥치는 위기는 때때로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내곤 합니다.
그 이유는 멀리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눈앞의 것만 보다가 더 큰 것을 놓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십니다.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계십니다.
30대 초 어음 부도 통보를 받던 밤이 있었습니다.
거실에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내가 왜 이런 상황에 처했는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셨습니다.
그 부도 이후 IT 사업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주님이 먼저 알고 계셨습니다.
IMF 외환위기 때도 그랬습니다.
3개월 전에 공장을 처분하게 하신 것이 하나님이셨습니다.
내가 미처 알지 못할 때 하나님이 먼저 아셨습니다.
멀리 보시는 하나님이 미리 길을 준비하셨습니다.
뇌출혈로 쓰러지던 그 시절도 그랬습니다.
내가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아셨습니다.
달리기를 멈추게 하심으로 더 중요한 것들을 보게 하셨습니다.
주님이 먼저 알고 계셨습니다.
50억 투자가 무산되던 날도 그랬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재앙 같았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 너머를 보고 계셨습니다.
그 이후 예상치 못한 새로운 프로젝트가 들어왔습니다.
신한은행 부지점장이 먼저 연락을 해와서 오피스텔을 매수하게 됐을 때도 그랬습니다.
내가 찾아다닌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이 먼저 아시고 길을 내주셨습니다.
두 자녀가 음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것도 그랬습니다.
뇌출혈로 쓰러져 내가 챙기지 못했는데 하나님이 챙기셨습니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는 분이셨습니다.
처남에게 30년 전 빌려준 돈이 3배로 돌아왔을 때도 그랬습니다.
30년 전의 그 선택을 주님이 아셨습니다.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는 주님이 30년의 시간을 통해 갚아주신 것이었습니다.
위기를 스스로 만들어 낼 때가 있습니다.
멀리 보지 못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십니다.
그래서 주님께 맡기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선택이었습니다.
주께서 나를 아시나이다는 이 고백이 그 맡김의 기초였습니다.
오늘도 그 고백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주께서 나를 아시나이다
주님은 이 낮은 우리의 자리를 살펴주시고 마음을 살펴주시고 생각을 살피십니다.
주님은 우리 삶의 모든 상황과 형편을 아십니다.
주님은 나라는 존재를 알고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일상적인 소소한 일까지 다 알고 계십니다.
주님은 언제 집을 나서고 언제 돌아오는지도 다 알고 계십니다.
주님이 아신다는 것이 얼마나 위로인지 모릅니다.
내가 억울해도 주님이 아십니다.
내가 힘들어도 주님이 아십니다.
내가 외로워도 주님이 아십니다.
그 아심이 오늘도 일어나게 하는 힘이었습니다.
30년 새벽기도가 그 주님과 나누는 대화였습니다.
주님이 아시니까 맡길 수 있었습니다.
긴 호흡으로 이 삶을 바라보며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지침을 바라볼 수 있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 오늘의 묵상 한 줄
주님은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십니다. 그 아심에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 가장 평안한 삶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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