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음의 성전에는 두 기둥이 있습니다라는 이 고백을 주님 안에 능력이 있고 주님이 세우실 것이라는 말씀과 믿음이 우리 마음의 두 기둥임을 깨달아가는 묵상을 지나 붙들었습니다.
솔로몬의 성전에는 전면에 큰 두 기둥이 서 있었습니다.
성전에 들어서면 눈앞에 이 두 기둥이 웅장하게 서 있고 그 기둥을 반드시 통과해야 성전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 두 기둥의 이름은 보아스와 야긴이었습니다.
보아스란 이름의 의미는 그가 세우실 것이다이며 야긴이란 이름의 의미는 그분 안에 능력이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성전에 나오는 자들로 예배하기 전에 하나님이 누구이신가를 기둥을 통해서 생각나게 하려 하셨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더 원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이신가를 알 때 우리에게 믿음이 생기고 그 믿음 안에서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을 받기 때문이었습니다.
광야의 성막에도 두 기둥이 있었습니다.
그 기둥이 바로 구름 기둥과 불기둥이었습니다.
이 기둥은 하나님의 임재의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 친히 사시며 그들을 능력으로 보호하고 앞길을 인도하셨습니다.
이 성막과 성전의 실체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주님만이 우리에게 능력이 되시고 우리를 세우실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에도 두 기둥이 있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기둥은 말씀과 기도였습니다.
보이는 두 기둥은 베드로와 야고보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마음의 성전에는 두 기둥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 두 기둥이 바로 주님 안에 능력이 있고 주님이 세우실 것이다라는 말씀과 믿음이었습니다.
주님은 우리 마음에 이러한 성전의 기둥이 있는 자를 교회의 기둥으로 쓰십니다.
두 기둥이 굳건한 사람의 삶은 달랐습니다.
주님 안에 능력이 있다는 것이 믿어지는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세우실 것이다라는 것이 믿어지는 사람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그랬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고백했습니다.
그 고백이 그의 마음의 두 기둥이었습니다.
다윗이 그랬습니다.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고 선포했습니다.
그 선포가 그의 마음의 두 기둥이었습니다.
우리 마음의 성전에는 두 기둥이 있습니다
성전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두 기둥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매일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이 두 기둥을 통과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주님 안에 능력이 있다는 것을 먼저 고백합니다.
주님이 세우실 것이라는 것을 먼저 고백합니다.
그 고백으로 하루를 시작할 때 달라집니다.
두려움 대신 담대함으로 시작합니다.
포기 대신 기대로 시작합니다.
오늘 두려운 일이 있습니까.
주님 안에 능력이 있습니다.
오늘 포기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까.
주님이 세우실 것입니다.
우리 마음의 성전에 이 두 기둥이 굳건히 서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 기둥이 우리를 세우고 우리를 통해 세상을 세웁니다.
오늘도 그 두 기둥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 오늘의 질문
오늘 내 마음의 두 기둥은 굳건히 서 있습니까. 주님 안에 능력이 있고 주님이 세우실 것이라는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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